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사회에서 경제위기의 고통은 공정할까? 불공정할까? 존 롤스에 따르면 ‘자연의 분배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타고 나는 요소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고 거듭 말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세계를 버리고 한국 혼자 살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경제위기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 그래서 한국 경제를 변화하기 위해서는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불공정한 경제’를『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쾌한 통찰을 보여준 장하준 교수가 이번에는『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로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한꺼번에 사로잡았다.『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부자들이 자유시장주의를 역설하면서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개발도상국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신자유자들에게 세계화라는 현대판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하준의 ‘현실로서의 경제학’은 신자유주의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위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불공정한 경제’여서 심각하다는 것이다. 요즘 ‘워킹 푸어’(working poor)이라는 모순적 현상이 아주 일상적이다. 어떤 사람이 일하지 않아서 별다른 소득이 없어 가난하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일하는 가난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여전히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하준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더 나은 자본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상식적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방안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흰 코끼리 프로젝트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흰 코끼리 프로젝트(white elephant project)는 불교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흰 코끼리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왕권의 정당성과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을 시킬 수 없는 짐승이다. 보기에는 번드레하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데다 실질적인 이용가치는 전혀 없는 물건을 가리킨다. 그래서 세계 경제의 불공정을 만드는 근원이『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는 말 그대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나쁜 흰 코끼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쁜 흰 코끼리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자유 시장에 대한 문제다. 그들(신자유주의자)은 ‘시장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가장 이윤이 높은 일을 할 수 있으며 기술 혁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은 ‘자유 시장은 환상이다’라고 했다. 즉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제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규정하는 객관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학은 정치적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둘째,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임금 격차에 대한 그들은 개인의 생산성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가령 부자나라 버스운전자가 가난한 나라 버스운전자보다 50배나 높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이민자의 수용정책’ 때문이다. 셋째, 기술 혁명에 있어 그들은 인터넷이 세탁기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장하준은 반대다.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탈산업화 사회에 따른 제조업이 구닥다리 신세로 전락되었다는 점,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변화에 영향을 더 많아 받는 점을 지적하였다. 
 

넷째, 경제활동을 있어 인간의 본성을 두고 그들은 이기심을 정당화했다. 이기심이 지속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최악의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것을 유념하라고 한다. 반면에 장하준은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동기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보다는 이타심, 의무감 등이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하준은 ‘도덕성은 착시 현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섯 째, 그들은 선진국들이 자유 시장 덕분에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장하준은 자유 시장이 아니라 보호무역과 정부개입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섯 째, 아프리카 저개발에 대 그들은 ‘숙명’이라고 했다. 나쁜 기후, 민족 분쟁,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 등등 발전의 가능성을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장하준은 자유 시장 경제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비록 아프리카에 나쁜 문화가 산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라는 것은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곱째, 기업가 정신에 있어 그들은 부자나라들이 더 투철하다고 한다. 그러나 장하준은 가난한 나라들이 더 투철하다는 것이다. 다만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부족이 큰 장애 요인이었다. 다시 말하면 영웅적이고 개인적 차원이 기업가 정신은 제도적이고 집단적 차원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덟째, 교육에 있어 그들은 높은 교육이 경제적 성공의 원천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하준은 사회 전체의 능력이 좌우했다. 학력 인플레이션은 교육을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홉째, 기업에 좋은 것은 나라 경제에도 좋다고 하면서 그들은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장하준은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역설의 주장에는 규제의 효율성이 자리매김했다. 장하준이 말한 규제란 기업가들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에 저해되는 행위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 산업 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조치를 강제로 취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등에 있어 그들은 기회의 균등을 주장했다. 반면에 장하준은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했다. 기회의 균등은 차별 정책에는 부당하다는 데 그치지 않고 역차별 정책마저 부당하다고 한다. 이러한 불공정함 때문에 장하준은 결과의 균등이야말로 실질적인 기회의 균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하준의『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역사적인 자본주의 경제학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면서 우리가 경제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가 자본주의에 대해 통쾌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 말대로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다. 그러나 자유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마치 자본주의의 장밋빛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경제학을 배워야 이유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나쁜 경제 시스템에서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은 거대한 역설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나쁜 흰 코끼리들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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