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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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여리면, 여린 사람들은 희미한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려야만 해. 나비 날개는 부드러운 색을 띄어야만 하고 불빛 위에 종이 갓을 씌워야 해… 여린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거든. 여리면서도 매력적이어야 해. (…)육체적 아름다움은 사라지죠. 순간적이죠. 하지만 마음의 아름다움과 영혼의 풍요로움 그리고 가슴속 부드러움은… 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더 증폭되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이요! 내가 가난한 여자라고 불려야만 하다니 정말 이상하죠! 내 가슴속에 이런 보물들이 간직되어 있는데요. 나는 나 자신을 매우 부유한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어리석었죠.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다니!

-테네시 윌리엄스의『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중에서

 

 




세상을 살다보면 혼란스런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혼란스런 일들이 전혀 뜻밖일 때 인생은 쉽게 망가질 수 있습니다. 찰랑찰랑 했던 행복이 어느 순간 우리 몸에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은 불행 때문입니다. 불행은 눈물을 빨아올리면서 마음 한 구석을 텅 비게 합니다. 온 몸이 가벼워진 탓에 그만큼 비틀거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10분이면 갈 거리를 불행한 사람들은 몇 분 몇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면 불행한 사람에게 제일 좋은 치료는 무엇일까요? 테네시 윌리엄스는『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친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블랑시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뉴올리언스 시의 극락이라는 곳’에 내린 이유는 친절이 필요해서 그랬습니다. 극락에는 자신의 여동생 스텔라와 제부인 스탠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블랑시는 그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 주리라 여겼습니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족들이 남겨놓은 차용증서 때문에 집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밝히면서 친절하게 위로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극락은 빈민가였으며 여동생 부부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더구나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여동생이 왜 단순하고 직선적인 스탠리와 결혼했는지 의아했습니다. 스텔라 말대로 스탠리가 가지고 있는 추진력 때문일까요? 스텔라는 판매원에 불과한 스탠리가 나중에 출세할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스탠리가 천재여서 그런 게 아니라 바로 추진력 때문이었습니다. 

추진력? 블랑시는 못마땅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스탠리가 화약통 같다고 했습니다. 만약 스탠리가 진짜 남자라고 한다면 신사다워야 했습니다. 그녀에게 신사는 인간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술, 음악이라는 광채 덕분에 부드러운 감정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탠리는 짐승 같은 행동을 했으며 짐승 같은 본성을 지녔습니다. 그가 즐기는 포커 파티를 석기 시대에 살아남은 유인원들의 잔치라고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그녀가 스탠리에게 심장이 터질 듯 한 전율을 느끼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스텔라 말대로 습관에 대해서는 서로 참아줘야 하는데 그녀는 금세 벽에 부딪쳤습니다. 그녀는 여리면서도 매력적이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환상이라는 보물을 간직한 그녀는 언젠가 백만 탄 왕자를 만나 부유한 삶을 살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녀는 ‘세련되고 지성과 교양을 갖춘 여자는 남자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탠리가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편으로 그녀의 바람대로 미치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미치는 ‘내 젊음이 갑자기 배수구로 사라지고, 그리고 당신을 만났어요.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당신이 말했지요. 그래요, 나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당신을 만난 것을 하느님께 감사했어요. 당신은 신사같이 보였기 때문이죠… 바위 덩어리 같은 이 세상에서 내가 숨을 수 있는 틈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사랑의 상처를 이미 겪었기 때문에 외로웠습니다. 둘 다 근심이 가득하고 심각했으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차는 얼마 못 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미치에게 말했던 마법 같은 말들이 스탠리를 통해서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녀는 그녀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했다고 용서를 빌지만 미치는 그녀의 거짓말에 놀아난 스스로를 더욱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진실은 ‘낯선 사람과 관계를 가지면서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미치의 변심을 두고 오히려 돼지 같다고 아주 현실적으로 미워합니다.

일찍이 카를 힐티는『행복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욕망은 내가 원하는 거을 얻게 된 것을 약속하며, 혐오는 내가 싫어하는 것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욕망에 속은 사람은 불행하지만, 참기 힘든 것과 마주친 사람은 더욱 불행하다는 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또한 ‘자기가 불행하다고 해서 남을 책망하는 것은 교양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태도이며, 자신을 책망하는 것은 미숙한 사람이고, 자신도 다른 사람도 책망하지 않는 것이 교양인, 완전하게 교육을 받은 사람이 취할 태도’라고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블랑시의 욕망은 불나방 같았습니다. 불나방에게 화려하게 빛나는 불빛은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불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불나방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불빛은 매우 부자인 사람입니다. 그럴수록 불나방은 자신을 세련된 여자라는 환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사랑한다고 했을 때 헤어지면 보고 싶은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불나방 같은 사랑은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결국 불나방의 사랑은 서로에게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낯선 사랑이라는 욕망은 낯선 친절에 자신을 속이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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