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의 탄생 -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린 디트리히 슈바니트의『교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즉 ‘교양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주는 의사소통의 양식이다. 요컨대 교양은 정신의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형식이며, 다른 사람들의 거울 속에 자기를 비추어보는 형식’이라고 했다.

살다보면 종종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식이라고는 없는 그들과 의사소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사람들이 일으키는 마찰력은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세대 간의 불협화음은 치명적이다. 한마디로 교양은 무용지물이다. 교양을 단순한 앎 정도로만 가볍게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우리는 교양이라는 그럴듯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광주의『교양의 탄생』은 대단히 흥미롭다. 이 책은 교양인이 고전에 밝은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보다는 ‘경작(cultura)’에 대한 식견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키케로가 말한 ‘교양이 정신의 육성(cultura animi)’에서 비롯된 것으로 ‘교양인은 농민이 밭을 갈 듯 도처에 삶의 푸르름을, 교양의 토포스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양의 토포스를 박하다식하게 두루 살피면서 우리들을 교양의 역사로 안내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교양의 개념을 꺼내 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교양인의 어제와 오늘에 관해서 풍부한 교양을 쌓는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교양인의 고전적 초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등장하는 데 바로 ‘파우스트’였다. 끊임없이 묻고 탐색하는 인간이었다. 로마에 이르면 ‘후마니타스’였다. 파우스트와 후마니타스는 문자의 문화 대신 소리의 문화가 우세했던 시대의 교양인이었다. 그들은 아고라와 같은 광장에서 담론적, 사교적 교양인이었다. 이들의 차이점을 보면 파우스트가 관조적 교양인 반면에 후마니타스는 실천적 교양인이었다.

중세에 이르러 궁정 문화가 싹트면서 귀부인의 사교 문화가 발달했다. 이것이 바로 그랑 다메(귀부인)이다. “사랑은 12세기의 발명이다”라는 프랑스 샤를 세뇨보스의 말처럼 ‘기사와 귀부인의 만남이 낳은 여성에 대한 섬세한 마음가짐과 여성을 고귀한 존재로 받들고 사랑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높인 궁정풍 사랑(armour courtois)'였다. 이러한 궁정풍 사랑은 16~17세기 살롱 문화를 낳았다. 살롱 문화에서 프랑스는 오네톰을, 영국은 젠틀맨이라는 사교적 교양인이 탄생하였다.

한편으로 살롱문화가 발달한 시기의 유렵은 아카데미의 시기였다. 이로 인해 백과전서적 교양인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18세기 과학 혁명을 통해 ‘유용성은 이제 신사 교양인의 세계에서 키워드’가 되었다. 이전에 과학(science)은 ‘값싼 요리의 지식(세네카)’, ‘내가 이 반지에 관해 갖고 있는 지식(세익스피어)’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베이컨이 주장했던 유용성이 학문의 중심이 되면서 과학은 전문적인 지식인, 전문적인 대학(大學)을 발전시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전통적 교양지상주의에서 전문성으로 변화되어 온 교양인을 이해할 수있게 된다. 더불어 대학이 전문화된 계기를 알 수 있다. 오늘날 대학의 전문주의에 안타까움은 18세기『백과전서』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보편적 지식은 이미 인간의 범위를 벗어났다’에 드러났다. 저자 또한 이 책을 통해 대학의 전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아널드의 교양(liberal)’을 재조명하고 있다. 아널드는『교양과 무질서』에서 ‘교양이 생각하는 완성이란 개인이 고립되고 있는 한 불가능하다.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 했다. 이러한 아널드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인 교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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