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 강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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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 정신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과연 정복할 수 있을까?  

- 폴 발레리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근대에 대한 수많은 해석 중에서도 ‘액체 근대’는 낯설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겨보면 근대를 움직이는 새로운 힘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사회학적 관점으로 근대의 다채로운 향연을 만끽하고 있다. 시와 역사 다음으로 사회학을 제 3흐름이라고 하는 보는 저자는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으로 그의 명제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근대를 20세기 근대와 21세기 근대로 나눈다. 20세기 근대를 근대라고 했을 대 21세기 근대는 이차 근대, 탈근대 등등 여러 가지 용어로 쓰여 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저자는 감각적이면서도 쉽게 ‘고체 근대와 액체 근대’로 사고를 확장시킨다. 고체 근대가 견고해서 무거운 근대라고 한다면 액체 근대는 유동적이어서 가벼운 근대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정신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고체와 액체라는 물리적 특성을 통해 파악한다. 그래서 인간 정시이란 고체에서 액체로 되는 과정을 통해 충분히 정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유동성이라는 액화 과정은 견고한 것들을 녹여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한다. 어쩌면 창조라는 것이 결국에는 다시 고체화되겠지만 얼마든지 창조적 파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액체성 즉 유동성(流動性)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령, 문명의 역사를 '유목민에 대한 정착민의 승리‘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유목민이 원시적이며 자연적이며 비공간적이라고 한다면 정착민은 문명적이며 지배적이며 공간적이다. 정착민이 공간에 대한 지배를 통해 문명화를 가속화시키고 고체 근대를 포드주의적 세계로 결합시켰다. 포드주의적 세계는 생산자 사회이며 규격화된 시간 아래 노동을 지상에 묶어 두었다. 곧 육체화된 노동이며 개인의 자유는 통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액체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목민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다. 유목민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공간의 지배는 무의미하다. 그 보다는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 화두가 되면서 ‘더 빠른 것과 더 느린 것 사이의 게임’이 되었다. 휴대폰의 등장이 말해주듯 소비자 사회에서는 즉시성(卽時性)이 삶을 주도하고 있다. 공간이라는 지속성보다는 시간이라는 순간적인 만족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탈 육체화된 노동인 소비자 사회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인은 사회로부터 해방되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액체 근대에서 개인화의 역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사회에 복종하는데, 복종은 개인의 해방 조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화는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과 모호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법률상으로 시민이 되지 않고서는 실제상 개인’으로 변할 수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액체 근대』에서 발견한 독특한 사회 현상은 고체 근대와 액체 근대의 차이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차이는 ‘이성이 완전히 잠에서 깨지 못하거나 다시 잠에 빠져들 때 생겨났다.’라고 했다. 이성이 완전하다면 인간적 삶은 견고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이성의 힘을 해방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판단력 차이에서 오는 공동체 사회의 ‘안전 부재’에 대한 부작용을 성찰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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