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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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우선적으로 역사가로 유명하다. 그것도 궁형이라는 형벌을 감수하며『사기』를 남겼으니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 그가 명문가(名文家)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같은 책에서 “서쪽으로는 공동(空桐), 북쪽으로는 탁록(?鹿), 동쪽으로는 바다(발해), 남쪽으로는 장강(長江)과 회수(淮水)를 건넜다.”라고 적고 있다. 그의 명문은 수많은 답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런 사마천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18년간 유배 생활동안 경전에 관한 232권과 문집에 관한 260권을 저술했다. 그러나 다산에게 끌리는 이유는기록적인 수치보다는 그의 치학(治學) 전략에 있다. 그는「두 아들에게 답함(答二兒)」에서 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를 주장하였다. 파 껍질을 벗겨내듯 공부하라는 말이다.

이번에 정민 교수의『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역작이 나왔다. 교양 한문학자이자 뛰어난 저술가인 정민 교수에 의해 재구성된 다산의 진면목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책 또한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마음을 두근두근 만들어 버릴 만큼 위력이 대단하다. 그만큼 저자의 글쓰기는 고전읽기의 깨달음이 농축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다산을 실학자로만 알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산은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가이다. 법학, 과학, 그리고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식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럼, 다산은 어떻게 해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한 업적을 남긴 것일까?

저자는 이점에 주목하여 다산을 지식 경영가라고 우리에게 생소하게 알려준다. 저자의 일반지도법(一反至道法) 즉 발상을 뒤집어 깨달음에 도달해보면 결국 우리는 그동안 가짜 다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진짜 다산은 보다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요즘같이 정보가 압솔로지(쓰레기 지식)형태로 범람하는 세상에서 다산의 치학은 안성맞춤이다.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 구별하게 한다. 더 나아가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풍부한 사례로 접근하고 있다. 더불어 균형적인 글쓰기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를 주목하게 만든다.

가령, 지식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데 천자문에 대한 반성은 충분히 고민해 볼만하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되는 천자문은 달리 백수문(白首文)으로 불린다. 결과적으로 천자문은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를 따르지 않고 있다. 즉 비슷한 것끼리 역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아학편(兒學編)』이라는 일종의 대안 교과서를 만들었다. 다산의 천자문은 천지부모(天地父母)로 시작된다.

둘째,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말과 만나면 피하지 말고 끝장을 보라고 하면서 종핵파즐법(綜覈爬櫛法)을 전략을 구사한다. 즉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고 머리칼을 빗질하듯 깔끔하게 정리하라고 한다.
셋째, 경전을 해석하면서 의미가 모호할 때는 피차비대법(彼此比對法)를 활용하라고 한다. 즉 비교하고 대조하라는 것이다. 이는 다산이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시한 방법이다.
넷째, 말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것을 경계하며 실사구시법(實事求是法)을 추구하라고 한다. 수원 화성 축성 당시 오성지(五星池)를 만든 것을 보고 탄식하고 있듯이 겉보기만 그럴 뿐 아무런 실용이 없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는 냉철한 비판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공심공안법(公心公眼法)을 주장했다. 그는「이여홍에게 답함(答李汝弘)」에서 “마음가짐을 마치 빈 거울이나 공평한 저울대처럼 하였고, 뜻을 파헤치기는 마치 송사를 결단하고 옥사를 다스리듯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다산의 효율적이면서도 체계적인 공부 방법은 열정적이면서도 명쾌하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관리하는데 있어 전문가다운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정민 교수가 다산만한 논술 선생이 없다고 하는 까닭이 될 것이다. 여기서 논술 선생은 저자가 자랑스러워하는 표현이므로 다른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수시로 밑줄을 긋게 했다. 밑줄을 긋지 않는 다는 것은 다산의 생각을 재대로 읽어낼 수 없다. 고전이라는 케케묵은 어제의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도능독(徒能讀) 즉 읽기를 잘한다, 보다는 묘계질서(妙契疾書) 즉 번뜩이는 깨달음을 즉각 메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책을 저자 말대로 “눈으로만 입으로만 읽지 말고 손으로 읽어라.”하는 진정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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