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거랑,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이 콜레스테롤을 높인대요."

 

며칠 전에 아이가 내게 그런다.

아, 콜레스테롤.

요즘의 고지혈증 환자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아보이는 사람 중에 더 많은 것 같다.

몸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먹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그보다는 간에서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더 좌우되기 때문에, 고기, 술, 담배, 이런 것 좋아하지 않는 사람 (나도 여기 해당)에게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약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고지혈증 약을 안 먹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약 말고 다른 방법 없나 궁리하면서.

 

 

                               

  

                                                   

 

 

작년 겨울부터 시작한 나의 일이라는게, 엉덩이만 무거우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출퇴근 따로 없고 거의 하루 종일 집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다. 가끔 컴퓨터를 끄고 일어서야 할 때가 있는데 그건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 노트북 열 받아 빵 터지기라도 할까봐, 그러니까 노트북을 배려해서 하는 일이라고 해야하나.

 

출퇴근 안하고 '틈틈이' 하는 일이라 잘 되었다고 가족들은 말하는데, 그 말에 나는 순간 뾰족해졌다. 틈틈이라니, 뭐가 뭐의 틈이란 말이지?

집안 일, 살림살이 하고 남은 '틈'에 하는 일이 나의 일이란 말인가? 파박! (성질 나는 소리)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오래라는 것은 어쨌든 건강에 좋을리 없는데,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아이의 말은 그냥 흘려 넘긴다. 사람마다 적절한 수면 시간은 다 다르니까. 나는 아침형 인간. 새벽 시간은 나의 골든 타임. 남들보다 좀 일찍 일어날 뿐이지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제 또 나의 노트북을 위해, 그리고 저녁 준비를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줘야 할 때.

틈틈이 일 하는게 아니라, 일 하는 틈틈이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가끔) 하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는거란 말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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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7-1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의 버럭소리, 여기까지 들려요~ ㅋㅋ

수면 시간 부족 + 컴퓨터 오래 = 콜레스테롤 Up. 그렇다면 저도 고지혈증의 위험군이네요. 그런데 hnine님이 고지혈증 약을 드셔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래도 심각한 건 아니죠?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아픈거 보면 병의 원인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는 '스트레스' 그러니까 '마음' 자체가 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나봐요.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운동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 (그러나 둘 다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있네요 -_-)

hnine 2012-07-16 22:20   좋아요 0 | UR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것 자체가 병은 아닌데, 그게 여러 가지 병의 원인을 제공하지요. 저는 고기, 술 안 먹는 대신 단것을 비롯해서 탄수화물은 쫌...많이 좋아하는지라 ^^
예전에 비해 많이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나니 스트레스는 예전에 비해 댈것도 아니니 마음이 원인도 아닌 것 같고요. 운동도 나름 열심히 하는데 ㅠㅠ

다락방 2012-07-16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인님, 저는 이 글에서 약 기피증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저도 그래요! 약 싫어(무서워)해서 가급적 약 안먹으려고 하는데 주변에선 이런 저를 잘 이해 못하더라구요. 뜬금없이 반가운 마음에 역시 뜬금없는 댓글 달아버렸네요. ㅠㅠ

hnine 2012-07-16 22:22   좋아요 0 | URL
저는 약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진짜루 싫어한답니다, 싫어요 싫어!
약이나 곧 독이다, 막 이러구 있어요 혼자서. 약사분들이 들으시면 (달xx님이 순간 머리속에 휙 지나가네요) 야단맞을지 모르겠어요 ^^
약 안 먹고 나을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하는게 제 여가 시간에 하는 일 중 하나랍니다 ^^

책읽는나무 2012-07-16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즘 고지혈증환자들이 급증하는 것같더라구요.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신 것 아닌가요?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도 그렇다고 들은 것같아요.
아~ 울식구들은 육류 매니아거든요.신랑이 통풍때문에 단백질 섭취를 한동안 못했어요.그러다 요즘 신랑도 증세가 호전되고 나도 입이 자꾸 헐어서 고기를 좀 구워먹었는데..체한건지? 어제부터 배가 살살 아프면서 괜찮았던 위염이 도졌네요.ㅠ 전 알약을 잘 못삼키거든요.몇 달전에 먹던 위염약 꺼내서 마구 먹었어요.ㅋㅋ 이젠 고기를 나도 완전 끊어야 하는 것인가? 고민중이네요.

서로 서로 모두 모두 건강해야합니다.
요즘 아픈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네요.에휴~

hnine 2012-07-16 22:26   좋아요 0 | URL
중성지방도 높고요 ㅠㅠ LDL수치도 높아요 ㅠㅠ
유전적인 요소도 있는 것 같고 제가 탄수화물을 쫌 많이 먹기도 하고요.
아이쿠, 그런데 책나무님 위염 있으시군요. 음식 드실 때 조심스러우시겠어요.
건강이 최고 맞아요. 저희 집 가훈 삼을까 생각중입니다.

무스탕 2012-07-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좀 엉뚱한 질문 하나요..;
위 그림에서 연두색 마지막 각형은 육각형을 그냥 저렇게 그린게 아니고 오각형인게 맞는건가요? ^^;;;;

hnine 2012-07-16 22:17   좋아요 0 | URL
예, 오각형이요. 육각형 세개랑 오각형 하나가 저렇게 붙어 있어요 ^^

야클 2012-07-1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방차원에서 폴리코사놀을 권하던데... 너무 비싸요. ㅜㅜ

hnine 2012-07-16 22:32   좋아요 0 | URL
저도 말로만 들어봤는데 비싸군요.
싼 약도 안먹으려고 아둥버둥하는 저 같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겠네요 ㅋㅋ

달사르 2012-07-1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익후..저도 공감입니다. 하하하. 다락방님의 답댓글은 물론 봤습니닷. ^^
저도 손님들이 이 약 저 약 막 드시믄 좀 덜 먹어야 된다고..막 잔소리하는 쪽이라서..무슨 약을 그리 많이 드시냐고, 막 혼내킵니다. ㅋㅋ

그나저나 콜레스테롤..ㅠ.ㅠ 요새들어 고지혈증약 드시는 분이 너무 늘어서 이게 왠일이지? 이러는 중이에요. 절반 이상이 고기 잘 안 드시고 야채 많이 드시는데도 말이죠.

그나저나 잠은..좀 최소한의 시간은 주무셔야 될텐데 말이죠. 뭐 하루에 4시간 자고도 정상이라면야 상관없는데 막상 어떤 한 가지라도 (고혈압, 당뇨, 고지혈 등) 증상이 나타나면 수면부족은 좀 치명적일 수 있어서요. 제 지인도 잠을 적게 자는 편인데, 이번에 결국 고혈압, 당뇨..진단받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자꾸 수면시간 늘려야 된다고 말을 하고 있어요. 하루에 최소 7시간은 자줘야 대사필요물질들이 생성된다니까..어익쿠..이제 잠도 내 맘대로 못자는구나..ㅠ.ㅠ 이러면서도 지인이 용케 제 말을 들어줘서 요새 좀 좋아지고 있어요. hnine님도 좀 푸욱 주무시면 좋은데 말이죠. ^^ (아..그러기엔 새벽의 그 아름다운 시간을 포기해야되서..아..)

hnine 2012-07-18 10:3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요즘 고지혈증 가진 사람이 급증했어요. 너나없이 식생활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운동량은 줄었다는 증거 같아요. 흔히 알려져있듯이 고기 많이 먹는 식성과 꼭 연관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도 요즘 많이 나타나는 고지혈증의 특성 같고요.
필요수면시간에 대한 말씀은 저도 동의하는데,제 습관을 좀 고쳐야겠어요. 밤에 잠이 오는데도 자기 싫어서 막 눈을 부릅뜨고 버틸 때가 있지 뭡니까 ㅋㅋ

울보 2012-07-1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엄마도 고지혈증이 있으시다고 해서,
벌써 3개월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에는 머리가 너무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하던데,병원에 가서 많은 검사를 했는데 약간의 고지혈증이 있으시다고 살을 빼시고 먹는 음식을 조절하시라고 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빵도 떡도 끝으시고,,간식도 견과류를 드시고 밥은 동생이 매일 엄마를 위해서 현미와 잡곡밥을 해와서 드시게 하더라구요,,
그래서 몸무게 조절도 많이 하시고 약드시고 음식조절하고 3개월후에 다시오라고 했다는데 다음달에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hnine 2012-07-18 10:38   좋아요 0 | URL
와, 빵과 떡을 끊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절대 못 그럴 것 같아요. 약간의 고지혈증에도 그렇게 철저하게 대비하시는데 저는 검사 결과를 보면 약간 정도가 아니거든요 ㅠㅠ
약도 병행하고 계시다니 다음달 검사에서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하늘바람 2012-07-1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집에서 일하면 정말 놀면서 돈버는 줄 알더라고요.
그런데 전 집에서 일하는 체질이 아닌지 자꾸 딴생각만 나고
내일이 이사라 맘이 분주해서 원고 마감을 못 지키고 있네요.
고지혈증 잇으신거예요?
다린이 엄마 사랑하는 마음이 커요.
저희엄마는 혈압약을 먹으라는 의사 권유 십년 만에 심장 수술 하셨어요.
정말 맘먹고 운도오가 음식조절을 하지 않으면 힘든게 고혈압과 콜레스테롤인거 같아요.
약을 드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hnine 2012-07-18 10:51   좋아요 0 | URL
출퇴근 안하고 집에서 일하려면 시간 관리, 자기 관리를 몇배로 더 조직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직접 해본 사람 아니면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하늘바람님 어머님 말씀 들으니 저도 버티기만 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운동 열심히 하고 있긴한데, 운동보다 음식 조절이 더 잘 안되요. 좀 있다가 검사해보고 그것만으로 개선되지 않겠다 싶으면 약을 먹도록 해야겠어요.
그나저나 오늘 이사날이네요? 에궁,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야할텐데 하늘바람님 성격상 또 그러실 수 있을지...

프레이야 2012-07-1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밤잠을 안 자는 게 확실히 여러모로 안 좋아요, 몸에.
버럭버럭!!! 저도 보태드릴게요. 일하는 틈틈히 집안일까지 하시는 나인님^^
저도 약기피증 있어요. 비타민 한 알도 안 먹지요. 근데 이제 진짜 나이가 드는지
체력이 뭔가 딸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종일 잠도 오구요.ㅠ

hnine 2012-07-18 10: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여러모로 안좋아요 몸에. 수면 부족이 여러 가지 나쁜 수치를 팍팍 올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잘 먹고 잘 잔다'는 이 단순한 말이 얼마나 중요한 뜻인지 모르겠어요.
프레이야님도 약기피증 있으시구나 ^^ 저도 비타민 한 알도 안 먹어요. 임신때 철분약도 결국 출산때까지 다 못 먹고 남기고 말았어요, 매일 잊어버려서 ㅋㅋ
저는 체력이 딸린다 싶을 때 땀 흘릴 정도의 운동을 하고 나면 오히려 기력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2012-07-1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8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3학년 2학기가 훌쩍 지나가고 4학년이 되었다. 그 해는 무슨 이유인지 따로 반 편성이 되지 않고 3학년 반 그대로 다음 학년 같은 반으로 올라가게 되어 우리 반 아이들 모두 함께 4학년 같은 반, 같은 담임선생님 밑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3학년 때의 할머니 선생님 대신 4학년 담임선생님은 교대를 갓 졸업하신 여자 선생님이었다. 화장기도 없는 앳된 모습은 선생님이라기보다 언니 같고 누나 같아서 이제부터 시작되는 4학년에는 어떤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두배, 세배로 부풀게 하였다. 의례적으로 학년 초에 행해지는 가정환경 조사서가 돌고, 학급 임원 선출이 있고, 나는 또 반장이 되었다. 아마 3학년 때 임원을 해봤던 경험, 그리고 눈에 띄는 개성은 없으나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던 나의 무난한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이 반장인 나보다 그녀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어떤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기분으로 느껴져 오는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는 어떤 한 순간의 횟수가 늘어가고,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보다 그녀를 더 챙기는 듯 했고 더 아낄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자매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가끔 수업 끝나고 남으라고 하는 사람은 반장인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남아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본 적은 없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그러나 드러나지 않고 있던 열등감이 드디어 표면화 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학급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던 관심 이상의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선생님과 각별한 사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 나는 화가 나기도 했고 동시에 침울해져갔다.

 

여름 방학을 맞았고 나는 그녀와 여전히 가깝게 지냈다. 부모님께서 모두 일하러 나가시는 것은 우리 집과 같았으나 동생들, 할머니,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있었던 우리 집과 달리 그녀 집은 우리들 세상이었으니까. 함께 방학 숙제도 하고 책도 읽었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이 더 있을 때면 그녀는 마당에 나가 수영을 하자고 했다. 마당이 수영장이 되는 것이다. 그녀가 수영장이라고 하면 물 한 방울 없는 마당이 그 순간부터 수영장이 되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서 그런 재주를 배웠단 말인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학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그런 재주를.

그날도 놀다보니 끼니 때가 지난지도 몰랐다.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가자.”

놀던 자리에서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 계현이를 나는 무슨 소리인가 해서 쳐다보았다. 중국집 놀이를 하자는건가?

놀이가 아니었다. 지갑을 챙기더니 계현이는 나를 데리고 시장 통에 있는 허름한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옆으로 드르륵 미는 문. 유리문엔 빨간 글씨로 짜장면, 짬뽕, 탕수육 이라고, 메뉴가 쓰여 있었다. 이런 중국집에 와보는 것도 처음이고, 어른 없이 이렇게 뭘 먹으러 식당에 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간짜장을 시켜서 먹었고, 애들끼리 왔다고 이상하게 보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이는 나와 달리 계현이는 마치 자기 집 방에서 먹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짜장면을 먹었다.

그 다음 들른 곳은 더 어이가 없었다. 그 건물 2층의 다방이었으니까. 요즘 말하는 아저씨 다방 같은 곳인데, 거침없이 들어가 앉더니 생각할 것도 없이 쌍화차를 먹겠다는 것이다. 쥬스나 우유, 코코아도 아니고, 이름도 이상한 쌍화차를, 나도 따라 시켰다. 그 순간엔 그냥 따라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래서 짜장면 먹고 나면 우리 아빠는 꼭 여기 들러서 쌍화차 마셔.”

과연 그녀 말대로 그곳에 여러 번 와보았는지, 계산할 때보니 다방 주인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도대체가 이 세상에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 같았다.

결정적인 사건은 겨우 엽서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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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1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엽서 한 장, 기대되어요.

hnine 2012-07-14 08:18   좋아요 0 | URL
네, '나'는 받지 못하고 박계현만 받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의 엽서랍니다 ^^

책읽는나무 2012-07-1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잖습니까! 나인님!
드라마도 한 번에 쭈욱 몰아서 보면 드라마 정말 재밌더라구요.헌데 글도 한 번에 상,하권을 쭉 몰아서 읽어야 푹 빠질 수 있어 좋아요.
음~ 나인님의 시나리오도 쭈욱 1회부터 한꺼번에 읽으니 좀이 쑤시네요.ㅠ
다음편 빨리 읽고 싶어서 말입니다.

읽으면서 저 또한 어릴적 친구를 떠올렸습니다.제친구는 2학년때 전학을 왔어요.
그친구는 부산에서 전학을 왔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더 좁고 작은 동네여서 부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서울과 같은 느낌의 대도시나 마찬가지였죠.^^
내친구도 부자였고(아버지가 공장 사장님이셨으니까요.) 예뻤고,재주도 많았고,항상 자신감에 넘쳤고,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고(특히 중학교 올라가선 목을 매는 남자들도 많았어요.)
가장 부러웠던 것은 부모님 두 분이 배우뺨칠만큼 미남,미녀이신데다 서울사람이어서 말투도 나긋나긋하면서 참 교양있으신 분이셨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어요.ㅋㅋ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버스에서 내려 친구집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정말 잘생기신 친구 아버지를 만났는데 친구는 얼른 달려가 아빠와 함께 입을 맞추던 모습이 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암튼..그친구와 단짝인 제가 참 많이 자랑스럽기도 했었지만 줄곧 열등감도 느끼게 해준 친구였다죠?^^ 그친구가 내내 떠올랐네요.그친구는 중학교때 타도시로 전학을 다시 갔는데 그동안 성장하면서 몇 번씩 만날때면 항상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더라구요.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둥,파티를 나가야 한다는둥,살사댄스를 배우고 있다는둥...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친구라는 괴리감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더군요.
지금은 그친구는 미국가서 전문직 일을 하고 있다네요.아직 결혼도 안하고 말입니다.ㅎㅎ
혹시나 도움이 되실까 싶어 주절주절 제친구 얘기를 읊어봅니다.^^::

암튼..그친구가 갑자기 떠올라 더욱더 몰입되는 소설이네요.
정말 엽서에는 뭐라고 씌어 있었을까요?

hnine 2012-07-14 15:05   좋아요 0 | URL
책읽는 나무님, 첫회부터 읽어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렇게 기억 한자락까지 풀어 보여주시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 기억 속에는 여럿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가봐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도,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어떤 부분을 움직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요.
저는 이 이야기의 시작만 제 경험일뿐, 허구가 더 많아요. 어떤 결말이 될지 기다려주세요 ^^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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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까 4, 50대가 인생의 전성기였어. 바쁘고 힘든 만큼 성취한 것도 제일 많고. 그러니 너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하도록 해. 나중을 위해 미루지 말고.'

지난 주 친정에 갔을 때 올해 일흔 넷 되신 엄마께서 하신 말씀이다. '돌이켜보면'이라고 하신 것은 그 당시엔 모르고 지났다는 뜻일거다.

우리 엄마 연세 정도는 아니지만 나보다 오래 살고, 알고 보니 개인적으로 힘들게 고비를 넘어온 인생 선배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늘 이런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다.

 

열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다.

열번? 백번도 아니고 열번? 실패의 규모를 따지지 않더라도 열번 정도 실패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실패하는 매번 절망하고 바닥까지 내려가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허우적거린다. 그럴 때는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 갖혀 그것만 볼게 아니라 멀게, 인생의 종착역을 그려본다. 아무리 좋은 길만 달려왔어도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도중에 부딪히는 장애때문에 인생 다 산 것 처럼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마음 속의 모든 화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자기를 일으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즉 방법을 남에게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나에게서 찾으라는 말이다.

 

척박한 땅에서 핀 꽃이 더 향기가 짙다.

여성의 역사는 통증의 역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 자체가 통증을 유발하는구나. 남자와 여자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면서,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여성보다 쾌감을 더 느낀다는 말을 인용하였다. 반면 여자는 문제 해결 자체보다도 남에게 문제를 털어놓고 공유할 때 스트레스가 해결된다는 것.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여자들 있을까?

 

물은 1도만 모자라도 끓지 않는다.

흔히 2%가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거의 근접했으나 약간의 차이로 완성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고 또 경험하는가. 겨우 2%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그 2%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이상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

아무렴.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외모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주얼'이 중요하다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지나치게 중요시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내면에서 뿜어나오는 향기 아닐까? 가족은 상처이면서 자존심이라는 것, 그래서 그 가족을 상처의 원천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래서 어머니라는 이름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다고 했다.

 

행복은 여자가 창조하는 신화다.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행복은 기성품이 아니라 스스로 맞춰 입는 옷 같은 것. 움직이는 나룻배. 내쪽으로 밀려 와줄 때를 기다리지 말고 내 손으로, 내 쪽으로 끌어당기면 어떨까.

 

여자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결혼은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한 것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 그 단계보다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나서, 그 결혼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과정, 노력, 그것을 '프로젝트'라고 지칭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정한 원리 원칙에 따라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준해서 일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말라.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인간의 성격에 새로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열린 마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변화에 대한 준비. 이런 것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게다.

 

마음속 자궁으로 남자를 품으라.

여기에 속해 있는 작은 제목들만 보아도 대번에 무슨 뜻인지 전달이 된다. 즉, 말을 참아서 담쌓지 말자, 남자는 70세가 넘어도 어린아이다, 그리고 멋있는 아들을 만들려면 남편부터 멋있게 만들라. 내가 제일 겁나는 말은 마지막 말이다. 결국 자식은 부모를 보고 큰다는 것이다. 남편을 포기하고 아들을 멋있는 사람으로 키우기를 기대하지 말라는것. 혹시 아들 앞에서 남편을 깎아내리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여 자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

매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때문에 나는 나의 새벽 시간을 스스로 골든 타임이라고 여기고 있다. 비록 아침이 오고 저녁으로 갈수록 기분은 다시 저조해지지만 매일 새벽 눈을 뜰때의 그 새로 태어난 기분은 하루를 지탱해주는 약발이다. 매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건 마음 먹는다고 억지로 되지 않는다. 누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려서도 안된다. 돈보다 가슴뛰는 일을 찾아서, 하루에 한 시간 그것에 투자할 대상을 만드는 것이다.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제목도 참 잘 정했다. 내가 주저 앉아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잘 될리가 있겠는가. 자기 인생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더 이상 연민을 가지고만 대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대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구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배부른 고민인가 해서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고, 나이 먹느라 그런가 여기려니 더 나이드신 분도 계신데 건방진 것 같지만, 요즘 나는 사는게 무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딜 바라보고 살아야 하나, 이런 답 없는 물음에 골똘히 빠질때가 많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저렇게 열심히 매달리는 일이 과연 다른 것을 포기할 만큼 대단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 열심히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면 왜 한번 뿐인 인생을 저렇게 살까 생각이 드니, 내가 함정을 파고 내가 빠져 허우적 거리는 꼴이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매달려야 할만한 일이라는게 있을까 싶은거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뭔가 나를 일으킬만한 일들이 없을까 오히려 눈을 더 크게 뜨기도 한다.

책 표지의 여인이 그런 나를 봐주는 것 같았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저자였는데, 그가 하는 말들이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가 그동안 견뎌낸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난 소감은,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는 거. 그걸 실천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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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13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륜이란 말이 그냥 오는 게 아니더라는 걸 실감해요.
인생선배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참 감탄스럽더라구요.

마음의 자궁으로 남자를 품으라. 말을 참아 담 쌓지 마라!!!
이 말 새기고 갑니다, 나인님.^^

hnine 2012-07-14 08:1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신달자님의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셨군요.
짧지도 않은 시간을 어찌 그리 사셨나 싶더라고요.
연륜이란 말에는 자기가 직접 녹아들어 있어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보다 나이 든 사람의 말은 뭐든 경청하게 되네요.

파란놀 2012-07-1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가요.
생각이 없든 생각이 있든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가겠지요.

hnine 님도 hnine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길에서
가장 좋은 하루를 누리리라 믿어요

hnine 2012-07-15 07:04   좋아요 0 | URL
스스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도 살다보니 하나의 고비가 되기도 하네요. 가장 사랑하는 길에서 산다기 보다, 가장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길에서 사는, 저 같은 사람도 있나봐요.

댈러웨이 2012-07-1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제목도 그 제목이지만, <여자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도 정말 좋은데요.
그러니까, 저는, 웃어야 하는 거군요. ^^

hnine 2012-07-15 07:07   좋아요 0 | URL
굳이 여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라고 해도 되겠지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어색해서 그런지 웃음이 오히려 헤프게 잘 나오는 편인데, 그래서 저를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정작 저는 세상을 향해 웃음을 지어본 일이 있었나 싶네요.
 
나는 아름답다 사계절 1318 문고 14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박상률. 시인이자 소설가.

언제이던가, 먼저 읽은 그의 소설 <밥이 끓는 시간>은 제목만큼이나 아련하고 애틋했다. 그의 다른 작품도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보아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밥이 끓는 시간>과 함께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알려져 있는 <봄바람>이나 이 책 <나는 아름답다>가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읽어본 <나는 아름답다>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2000년에 처음 나왔는데 내용은 주로 작가의 성장기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담박에 느껴질 정도로 옛날 시대 배경이 느껴졌다.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 그의 문장력, 그리고 과장이나 흥분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작가 특유의 방식이 나름대로 개성을 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책 한권이 끝나갈때까지 그 이상의 어떤 소설적 요소가 한번 제대로 드러나주길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습작생도 아니고 그 정도 되는 중견 소설가도 여기서 머무르고 말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태생 열 여덟살 선우.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도시로 나와 하숙을 하며 학교에 다닌다. 고된 농사일과 집안 일로 여유없는 생활이긴 하지만 늘 강인하기만 한 줄 알았던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도시 생활에도 적응을 못하는 선우는 어디에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겉도는 생활을 한다. 이 세상에 내 의지로 되는 일은 없고, 결국 세상 돌아가는 것에 그저 나를 내맡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 소통의 부족,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선우를 꽉 채우고 있는 상태. 혼자 있을 때가 많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이런 선우에게 하숙집 주인 딸 홍미는 관심을 넘어선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유혹의 시도를 하고,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이 학교에 안 찾아오신다는 이유로 선우를 대놓고 차별한다. 열여덟살 선우가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현실이다.

선우가 유일하게 키우고 있는, 시인이 되고 싶은 꿈, 여선생님이 별로 안계신 남자 고등학교에서 미혼인 여자 미술 선생님에 대한 동경, 미술 선생님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등.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이 책에만 나오는 새로운 이야기란 없다. 그점이 아쉽다. 자기의 경험을 쭉 나열해놓은 느낌을 주는 글이란 초보 단계의 습작생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상 아닌가 했는데, 이 작가의 작품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줄이야. 아 참, 선우와 서로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던 수현이란 여학생이 몸이 약하여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나는 대목도 나온다.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들어갈 만한 것들은 다 들어간 셈이라고 할까?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야기를 짓는데는 자기 경험 한 자락을 시작으로 할 때가 많다지만 그것은 '시발자'의 역할에서 충분하다. 작품 전체가 그것에 끌려가면 안 될 것 같다. 수필이냐 소설이냐 가르는 하나의 요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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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그녀의 무엇이 부러웠을까.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부러웠을까? 지금도 나는 정확히 그 기분을 내 언어의 범위에서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아이한테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느낌?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 그러면서 불안 한 자락이 나를 휩싸오는 것을 느꼈던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 일거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일도 없었다.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쪽을 알아서 택하는 아이였으니 늘 칭찬과 기대를 받았다. 그런 칭찬과 기대는 어느 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나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열 살 갓 넘은 나는 이미 열 살 갓 넘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가 전학 오고 나서 첫 학기는 그래도 내가 일등의 자리를 유지했지만 그녀와 별로 큰 점수 차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녀의 주위엔 늘 친구들이 따랐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힘들이지 않고도 옆에 있는 사람을 재미있게 했다. 일부러 웃기는 말이나 행동을 지어내서가 아니라 그녀는 그녀 자신을 결코 심심하게 두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10분동안  필통 속의 연필이라도 꺼내어 사람을 대신해 놀고는 했다. 연필 사람을 손에 쥔 그녀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즉흥적인 대사가 흘러나왔고 그럴 때 그녀는 무대 위 연극 배우 같았다. 자신의 놀이에 몰입해있는 그녀의 모습은, 경이로왔다.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마포지방법원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계현 검사님과 통화하고 싶은데 구내전화 몇 번으로 걸어야 하나요?”

일단 대표 전화 번호로 건 후 교환원에게 물어보았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곧 통화 연결음 신호가 들려 왔다.

“박계현 검사님 사무실 김OO입니다.”

웬 남자의 음성이다.

“아, 여보세요? 박계현 검사님, 자리에 계신가요?”

막상 전화를 걸고 나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누구시냐, 무슨 일로 그러시냐는 의례적인 물음에 대충 얼버무리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이러다가 내가 제발 그냥 끊어버리게 되지만 않기를 바라고 있을 때 수화기 저편에서 웬 씩씩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박계현입니다.”

낯선 음성이었다. 하긴 20년도 더 전의 목소리가 그대로이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

“저, 안녕하세요? 저는 김나영이라고 하는데요. 친구를 찾고 있어요. 혹시 3,4학년을 서울 OO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나요? 제가 아는 친구가 맞나 해서 그러는데요.”

“서울 OO 초등학교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만.”

아, 그러고 보니 말투에서 부산 억양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구나. 내가 찾는 그 박계현이 아니었어.’

실망했던가? 아니면 안도의 한숨이었던가. 나는 실례했다는 말로 황급히 전화를 끊고 긴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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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11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으로서 반가움이 ㅎㅎ
그런데 찾던 박계현이 아니군요. 점점 재미있어져요.

hnine 2012-07-11 21:07   좋아요 0 | URL
에궁,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부산 토박이시군요 ^^
지금 생각으로는 박계현을 찾아내는 것으로 마칠까 생각 중이랍니다.

프레이야 2012-07-12 19:35   좋아요 0 | URL
토박이는 아니고 출생지는 서울이에요.
5살적 아빠의 사업 실패로 엄마의 친정 가까이로 이사를 왔다고 해요.
7살에 입학한 초등학교부터 주~욱~ 부산에서 다녔지요. 세상은 넓은데 왜 이리 좁은 구석에서만 살고 있는지 몰라... 흑흑 ㅠ
타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요.ㅎㅎ

hnine 2012-07-12 22:1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대도시로만 다니셨어요 ^^
7살에 입학하셨다니 저보다 학교는 선배시겠어요.
(저도 사실 7살에 입학했다가 엄마께서 보시기에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그만두게 하시고 1년 후 8살에 제대로 입학시키셨대요 ㅋㅋ)
타도시 어디에서 살고 싶으신지...저는 어줍잖게 타도시 몇군데를 다녀봐서 그런지 제가 나고 자란 곳이 제일 편하더라고요.

순오기 2012-07-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초등친구 박계현이 아니었군요. 휴~~~
1.2.3.4회 좌르륵 읽으며 덩달아 마음이 들썩여지네요.^^

hnine 2012-07-12 09:46   좋아요 0 | URL
좌르륵,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예, 주인공 아이가 머리 속으로 그리던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았어요 ^^

2012-07-12 0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2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7-1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시간을 좀 넉넉히 가지고 1편부터 읽어보려 ..오늘밤에 다 읽었습니다.
아.. 읽으면서 저의 초등학교 시절이 문득..
네 .. 정말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요.. 나와는 정말 다른 세상..
전학을 왔는데 어떻게 한달 만에 보는 시험에서 전교 1등을.. ㅠㅠ
게다가 제가 가장 모자라는 체육과 미술 ..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까지 겸비한 ..

그 친구는 지금 무얼할까.. 어느 곳에서.. 하는 생각을 읽는내내 저도 해보았습니다.

박계현 검사가 그 친구가 아니면 .. 그 친구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지...
그걸 떠나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
음.. 슬쩍 그 박계현 친구보다 소설속의 나의 이야기들.. 도 더욱 듣고 싶어집니다.. ^^

hnine 2012-07-13 09:39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런 친구를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분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게 하려면 좀 더 극적이고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야 할텐데...머리가 잘 안돌아가네요 ^^

비로그인 2012-07-14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주인공 소녀가 저랑 무지 닮았어요. 지금도 엄청나게 아쉬워하고 있는 또 다른 삶, 생동감이 넘치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누군가의 영혼. 계현이라는 친구가 제게 그때의 시간을 다시 겪어보게 만드네요. 지금도 그렇고 어떻게 사는게 정말 이 삶을 생생하게 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도 누구 말 어긴 적도 없고, 해야하는 일 게을리 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도 늘 나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요?

hnine 2012-07-15 07:10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늘 나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은 제 경우엔 마흔 정도 넘어서 안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행복을 누려서가 아니라, 우리가 보는 그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걱정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계현이라는 친구도 아마 그랬을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