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답다 사계절 1318 문고 14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박상률. 시인이자 소설가.

언제이던가, 먼저 읽은 그의 소설 <밥이 끓는 시간>은 제목만큼이나 아련하고 애틋했다. 그의 다른 작품도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보아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밥이 끓는 시간>과 함께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알려져 있는 <봄바람>이나 이 책 <나는 아름답다>가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읽어본 <나는 아름답다>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2000년에 처음 나왔는데 내용은 주로 작가의 성장기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담박에 느껴질 정도로 옛날 시대 배경이 느껴졌다.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 그의 문장력, 그리고 과장이나 흥분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작가 특유의 방식이 나름대로 개성을 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책 한권이 끝나갈때까지 그 이상의 어떤 소설적 요소가 한번 제대로 드러나주길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습작생도 아니고 그 정도 되는 중견 소설가도 여기서 머무르고 말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태생 열 여덟살 선우.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도시로 나와 하숙을 하며 학교에 다닌다. 고된 농사일과 집안 일로 여유없는 생활이긴 하지만 늘 강인하기만 한 줄 알았던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도시 생활에도 적응을 못하는 선우는 어디에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겉도는 생활을 한다. 이 세상에 내 의지로 되는 일은 없고, 결국 세상 돌아가는 것에 그저 나를 내맡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 소통의 부족,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선우를 꽉 채우고 있는 상태. 혼자 있을 때가 많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이런 선우에게 하숙집 주인 딸 홍미는 관심을 넘어선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유혹의 시도를 하고,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이 학교에 안 찾아오신다는 이유로 선우를 대놓고 차별한다. 열여덟살 선우가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현실이다.

선우가 유일하게 키우고 있는, 시인이 되고 싶은 꿈, 여선생님이 별로 안계신 남자 고등학교에서 미혼인 여자 미술 선생님에 대한 동경, 미술 선생님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등.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이 책에만 나오는 새로운 이야기란 없다. 그점이 아쉽다. 자기의 경험을 쭉 나열해놓은 느낌을 주는 글이란 초보 단계의 습작생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상 아닌가 했는데, 이 작가의 작품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줄이야. 아 참, 선우와 서로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던 수현이란 여학생이 몸이 약하여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나는 대목도 나온다.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들어갈 만한 것들은 다 들어간 셈이라고 할까?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야기를 짓는데는 자기 경험 한 자락을 시작으로 할 때가 많다지만 그것은 '시발자'의 역할에서 충분하다. 작품 전체가 그것에 끌려가면 안 될 것 같다. 수필이냐 소설이냐 가르는 하나의 요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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