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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에 이어 세번 째 읽는 김 애란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앞의 두 권에 비해 이 책은 우선 표지 그림에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작가에 대한 인상이 풍겨 나오는 것 같아 자꾸 더 쳐다보게 되었다.
이 세상엔 참으로 많은 소설가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만 해도 여러 명이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그리고 삶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의 방식이 나와 코드가 맞는다든가 혹은 제일 마음에 든다든가 하는 식의 사고 방식에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유로와졌다. 작가의 수 만큼이나 다른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뿐.
많은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삶의 어두운 바닥, 그곳에서 조차 부여 안고 안간힘 치는 삶을 '이것 보라'고 글로 보여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삶은 아이러니 덩어리라는 결론을 떡 하니 보여주는 작가도 있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의 양면성을 보여주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서리치면서도 재미를 느끼게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고......어찌 다 나열할 수 있으랴. 김 애란이란 작가를 말하기 위해서 꺼낸 이야기이다. 내가 보는 김 애란,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의 세 작품을 읽고서 드는 생각은, 이 세상을, 삶을, 끝까지 두근두근하는 애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눈물과 비탄을 보여줄 망정, 그래도 그 눈물을 훔치며 씨익 웃는, 이 작품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 한 아름과 같은 마음이 최소한 작가의 어느 한켠에 들어 있을 것 같은 작가.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 역시 눈두덩이 뜨뜻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결국 얼굴엔 엷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것이고,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것이고, 바닷속의 모래까지 녹일 것이라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럴 것이라고 춤을 추며 노래하고 있는 한 아름의 모습을 내 머릿속에 넣어두고서 수시로 떠올리며 웃음짓고 싶었다. 모든 연애의 시작엔 반드시 음악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대단한 한 아름과 어쩌면 함께 팔짝팔짝 뛰며 노래하고 춤을 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글이란 게 그걸 꼭 안아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보다 '잘' 실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그런 마음으로 작가는 글을 지어내고 그리고 쓰고 있구나 짐작하게 한 구절이다.
사실 이 책 곳곳에는 읽다가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구절이 꽤 자주 나온다. 김 애란 작가의 그런 유머 코드에 대해 예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은 정말 사람을 꼭 웃기고 말 사람이구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아들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서른 네살 아버지, 아름이와 어떻게 보면 제일 대화가 잘 통했던 장씨 할아버지라는 캐릭터, "뭐야, 뭔데 그리 예쁘게 웃어?" 라고 예쁘게 물을 줄 아는 역시 서른 네살 엄마, 대답을 이리 저리 피하다가 결국 "엄마는 야한 사진 볼 때 웃어요?" 라고 능청을 떠는 아름이. 하지만 '아름이 좀 봐라, 아픈데도 얼마나 성실하고 의젓하냐'고, 반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에 상처를 받으며, 다른 친구들에게 격려가 되는 것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 내가 왜 아파야 하나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남겨질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는, 그런 속 깊은 아이이기도 하다.
얼굴 모르는 소녀 서하와 주고 받은 메일들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섬세하고 아릿하다. 도라지꽃 처럼 생겼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한밤중 문을 열면 아주 센 물소리를 가진 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내 가까이서 무언가 그렇게 성실하고 활달하게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는 구절, 새벽 녘에 엄마가 황토 쌀독에서 쌀을 푸고 독 뚜껑 닫는 소리가 들릴 때, 처음 보는 예쁜 단어를 볼 때 살고 싶어진다는 구절.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로 시작하는 위의 상자 속의 말도 아름이가 서하에게 보낸 편지 중의 한 구절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을 읽으면서는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
책을 뒤집어 표지의 그림과 제목을 다시 한번 보고,
'그래, 잘 들어보면,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도 내 심장은 이렇게 두근두근 뛰고 있는 걸. 이 세상에 아직도 모르고 신기한, 재미있는 일들에 대한 기대로 두근두근 뛰고 있는데 내 머리가 그걸 몰라주고 있었군 그래.'
이런 생각을 하고서야 비로소 엷으나마 미소를 지으며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책 중에 서하와 아름이가 주고 받는 노래가 두 곡 나오는데 하나는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OST인 Glide라는 곡이고, 다른 한 곡은 antifreeze라는 곡이다.
antifreeze. 얼어붙지 않게.
김 애란 작가의 작픔 속에 흐르는 기운을 그렇게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