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니 뭐니, 춥다고 해서 잔뜩 껴입고 나갔더니 하나도 안추웠다.

오후 1시에 집을 나서 서울갔다가 돌아온 시간이 밤11시.

숙제 잔뜩 떠안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는지 달도 한번 안쳐다보고 걸어왔구나.

오고 가는 버스에서 잠을 자서 그런가, 잠이 손톱만큼도 안온다. 내일도 아침 일찍 나서야 하는데.

모르는 사이에 KBS 1FM에 새로운 주말프로그램이 생긴 것을 보고 다시듣기로 들으며, 오전에 답신을 못한 이메일을 보고 있다.

달력에 일정표를 적으면서 머리속으로는 해남 미황사에 가보고 싶다는, 꼭 가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봄기운이 확 돌기 전, 아직 쌀쌀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진다. 달력에 적고 있던 할일들 만큼 마음이 바빠진다.

그래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하지 않고 밥벌이의 고마움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잠 안 오는 밤이 그닥 괴롭지 않다.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어제 아는 분이 인용해주신 말씀을 오늘 일기의 제목으로 적어본다.

 

 

 

 

 

 

 

 

 

 

 

 

 

 

 

 

 

 

 

 

 

 

 

 

 

 

 

 

 

 

 

 

 

 

 

소리가 없으면 잠들기 어렵다.

아래의 것은 그래서 주문한 시낭송 CD 인데 파란대문 표지 그림부터 마음에 들었다.

사랑,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봐야할 것도 못보는 힘!

오늘 배송되어 온다고 하니 오늘 밤부터 시를 들으며 잘 수 있겠다.

위의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은 일할 때 들으며 하려고 샀다. 워낙 생각이 흩어지기 쉬운 짧은 집중력의 소유자를 위한, 한 자리에 오래 붙들어 매어놓기용.

이건 내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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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2-03-13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 학기 시작이구나.
긴장을 해서 더 잠이 안오는건 아니었을까?
11시에 집에 오면 피곤하겠다.
잘 먹고 ,틈나는대로 쉬고~~
아프지 말고 ~~~~
어제 서진이 엄마랑 통화했어. 너 편한 시간에 한번 보자고...
아무래도 방학이 편하겠지??

hnine 2012-03-13 14:3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이 내 적성에 딱 이라서 불만없이 잘 하고 있는데 꼼꼼한 것 같으면서 허당이고 덜렁거리는게 또 나 아니겠니? ㅋㅋ 실수 연발이란다.
종혜는 시험 잘 봤는지 모르겠네...

무스탕 2012-03-13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봄을 만나시거들랑 제게도 들르라고 꼭 전해주세요 ^^

hnine 2012-03-14 19:26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에게 먼저 갈 것 같은데요? ^^

프레이야 2012-03-1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봄이 왔나요? 정말요? ^^

hnine 2012-03-14 19:27   좋아요 0 | URL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로다...ㅠㅠ
왔다고 해야하나요, 아니라고 해야하나요? 애매~ 하지요.

프레이야 2012-03-15 07:58   좋아요 0 | URL
히힛, 이거도 애정남이 정해주면 좋겠어요.ㅎㅎ

비로그인 2012-03-1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도, 오늘도 무척이나 춥던걸요?
위의 댓글을 보니 hnine님도 새학기를 맞으셨나봐요.
음, 자제분 새학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아무튼 모짜르트 음악과 시낭송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한다면 썩 마음이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네요 :)

hnine 2012-03-14 19:28   좋아요 0 | URL
제 아이도 새학기이고 뭐, 저도 새학기입니다, 학생은 아니지만요 ^^
오랜만에 뵈어요. 이 봄에 저도 저렇게 (말없는 수다쟁이님 이미지 사진이요)빨간 립스틱 한번 발라볼까...별 생각 다하고 있습니다 ㅋㅋ

하늘바람 2012-03-1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서울다녀가셨네요.
말만 들어도 반가워요
안추우셨다니 다행이에요

hnine 2012-03-14 19:30   좋아요 0 | URL
서울은 한달에 두어번, 어떤 때는 서너번도 가요. 집에 자석을 붙여놓고 왔는지 일 마치자 마자 후다닥 내려오긴 하지만요 ^^

2012-03-15 0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5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3-1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숙제 떠안으신거 축하드립니다, 이거 축하드릴 일 맞죠?
밥벌이의 고마움, 아, 저는 아직도 내내 돈을 축내는 빈대랍니다.
엄청 바쁜데 말이죠, 너무 찔려요.. ^^

일요일에 추워서 죽을뻔 했답니다, 여의도에서 일이 있었는데, 바람이... ㅠㅠ
꽃샘 추위, 이름은 이쁘지만 위력은 대단하더라구요....

hnine 2012-03-16 19:47   좋아요 0 | URL
늘상 하고 있던 일이어요. 가끔 회의차 서울로 제가 가는 것 뿐이지요. 어디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예전에 다니던 직장 그만 두고 나서 한동안 저도 이것 저것 참 많이 해보았어요. 그동안 얼마나 해보고 싶은 것이 많던지요. 그중 한가지는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축내는 빈대라고 하지 마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세요~
아직은 아침과 저녁엔 추워요. 옷 입기 참 애매한 때이지요.

같은하늘 2012-03-19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는듯 하더니 다시 추워졌어요.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딱인데요.
여러가지 일 하시면서 바쁘게 사시는 분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hnine 2012-03-19 05:13   좋아요 0 | URL
제가 아직 봄 느낄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고만고만한 아이들 내 손에 키우면서 바쁘지 않은 엄마들 없으실거예요. 같은하늘님도 그러시고요^^
제 아이는 이제 5학년이니 점점 제가 잔소리를 줄여나가는 훈련을 시작할까 합니다.
 
<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톨스토이와 행복한 하루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씀.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고뇌가 많았고,

말년에는 도덕과 금욕을 강조했던 인간.

평생 삶의 지침이 될만한 글을 모아서 자신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책.

언젠가 한번 빠져들어보고 싶은 작가중의 한 사람, 톨스토이.

<인생독본>이라는 초간본 제목도 나쁘지 않다.

 

 

 

 

 

 

고독의 권유

- 장석주 씀

 

 

정년퇴직하고 아이도 집을 떠나고 나면 시골에 들어가 포도농사를 짓고 싶다는 남편.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그때까지의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각자 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과 너무 동떨어진 속에서 수십년 빠져 살다보면 인간은 슬그머니 자연으로 마음이 향하게 되어있나보다.

조촐하게 살려는 마음만 있다면 도시이든 시골이든 그것이 문제이랴. 시골에서도 도시의 아파트보다 더 눈에 번쩍 띄는 멋드러진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 어디서 사는가보다 무슨 마음으로 사는가가 문제이다.

시인답게 제목이 근사하군. 고독의 권유라.

 

 

 

 

 

이번 신간평가단 마지막 책 추천이라는데, 생각해보니 별 기대도 안 했지만 한번도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된 적이 없다. 나, 소심한 A형. 선정 안된 것이 불만이라기보다, 나의 선정 기준에는 무엇이 문제가 있나, 그것부터 떠올린다.

 

이번에 올리는 저 두권은, 적어도 저 톨스토이의 책은 선정 안되더라도 내가 구입해서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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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으면
내 마음에 뽑힌 좋은 책이에요.

hnine 2012-03-11 16:59   좋아요 0 | URL
이번에 신간평가단으로 받은 책들이 그닥 제 취향이 아니라서 지금 하기 싫은 숙제를 앞에 두고 있는 심정이랍니다. 이런 기회에 골고루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할텐데요.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stella.K 2012-03-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그닥 주목할만한 신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두 권이 있었네요. ㅎ 저도 되기를 빌어봅니다.^^

hnine 2012-03-11 17:01   좋아요 0 | URL
신간평가단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책 선정에 반영이 되기는 되는 것이겠지요?
가끔 궁금했어요.
톨스토이에 대해 최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한번 덤벼보리라 벼르기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ㅋㅋ

2012-03-12 0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2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3-13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A형이지만 소심하지 않다니까요~ ㅋㅋ
나는 매번 내가 추천한 책이 하나씩 들어갔고, 딱 한 번만 빠졌는데 그 다음달 내가 추천한 책에서 2권이 다 됐으니까 평균 1권씩 된거죠.^^
톨스토이 행복한 하루는 00공원에서 보내줬는데, 대전으로 장거리 대출됐어요.

hnine 2012-03-13 16:58   좋아요 0 | URL
하하...혈액형과 상관없이 스스로 나는 소심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역시 순오기님이십니다.
저야 워낙 별 기대안하고 추천도서를 고르긴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추천이라고 해서 생각해보니 그동안 한번도 선택된적이 없구나 알게된 것이지요. 이런 기회에 신간을 한번 찬찬히 둘러볼수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지요. 매번 추천한 책이 선정되었다니 대단하십니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저자의 의도는 이해가 되면서도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라는 말이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저자의 이름은 최근 글 잘쓰는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 귀에 익었다. 1971년생. 올해 한국 나이 42세. 사회학을 전공하고 문화학과 박사과정 수료하였으며 현재 그의 말대로라면 주로 '비주류'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우선 주류, 비주류 대학이란 구분이 과연 있기는 한가? 예전의 내 생각은 우리 나라 처럼 작은 나라에서 4년제 대학들 사이에 차이가 나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가끔 번뜩이는 능력을 가진, 출중한 인물이 가끔 존재하지만 그건 개인에 따른 차이라고 보는 편이 맞지 학교에 따른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더이상 학생이 아닌 입장에서, 요즘의 대학생들을 좀 접하다보니,주류, 비주류로 나누든, 일류, 이류로 나누든 아무튼 학교들 사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니는 학생들 조차도 소위 비주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벌써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적어도 신입생때에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억눌림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동안 누리지 못하던 것을 맘껏 누리고 싶어하는 기대감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많았다. 해보기도 전에, 뭔가를 계획하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그들의 능력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이미 등급이 매겨진 양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볼때 참 마음이 아팠다. 저자의 말대로 정말 '너희가 잘못 산게 아니야' 라는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축 처진 어깨를 볼때 인문학자로서 저자는 오죽했으랴.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구절을 정리해본다.

우리가 절망하고 극단적으로 목숨까지 버리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 '고립'되었을 때이다. 고립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절망이란 내 삶을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상태이다. 그래서 '응원'이 희망이 된다. 언젠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희망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이 의미가 있고 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내 수고를 누군가 응원해줄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이 힘으로 우리는 삶을 견딜 수 있다. (14쪽)

열정과 창의성은 생산의 기관차이자 자본의 새로운 땔감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라",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자본주의는 이제 사람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와 다름없는 값으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덫이 되었다. (42쪽)

희망이나 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제일 공감한 것 중의 하나이다. 언젠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기대'이지 '희망'이 아니라는  생각. 기존 체계가 문제 없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교묘하게 강요되는 '긍정신학','긍정산업' 처럼 꿈과 희망이라는 말이 이제는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 내가 비뚤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이제 우리에게 삶은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과정이 되었다.(17쪽)

향유하는 삶은 꼭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유행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나도 가져야 제대로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소비'의 삶을 너도 나도 쫓고 있다.

법은 권력의 편이다. 인권 운동은 법과 맞서 싸우는 운동이었고 법에 의지해서 우리의 것을 얻을 수는 없다. (172쪽)

자랑스런 법치국가에 살면서 이것을 깨닫기 까지 전혀 의심해본 적도 없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발을 딛고 서있는 것인지.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체제다. 질적으로 아무리 다른 대상도 '돈'을 통해서 매개되고 교환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의 실체는 '폭력'이라는 말이 나온다. 모든 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양적인 것으로 환산하기 때문이다. 돈의 이러한 힘 앞에서는 무엇도 자유로울 수 없다. 돈 앞에서는 사랑이고 명예고 소용이 없다. 그것들마저도 다 값어치가 매겨진다. 단 하나, 절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 아니 환산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인격'이다. (187쪽)

그래야한다는 것이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언어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대한 증언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사회에 대한 증언이라고 생각한다. (203쪽)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사회때문이라는 것을 증언하자는, 이 책의 제목의 의미가 드러나는 구절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것은 잘못된 희망, 강요된 희망에 관한 부분이었다.

희망에 대한 강박 바로 이 실망하지 않겠다는 각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희망이 없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희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다. (246쪽)

우리는 절대 실망하면 안되므로, 실망하고 포기하여 이 사회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반대하거나 지장을 주면 안되므로 희망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파국임을 부정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자. 그리고서 파국과의 과감한 단절, 그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희망이다. (258쪽)

이것은 파국이 아니라고, 곧 성공으로 가기위한 과정일뿐이라고 '기대'로 현재를 이어갈 것이 아니라, 잘못되어감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다른 미래를 만들 생각을 해나가는 것이 희망이라는 얘기다.

강의나 강연 끝에 항상 받는 질문이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 라고 한다. 그러면 저자는 대안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단다. 억지 대안을 마련하여 공식처럼 대답하는 것은 잘못된 기대로 모든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늘 생각을 깨워놓고 있으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우리의 아지트가 형성될때 다른 미래를 만들어나갈 힘이 형성된다고 한다. 결국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저자가 '아지트'라고 표현한 공동체이다. 물론 그 시작은 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개인들이지만.

기대와 희망, 힘과 용기, 경험과 체험, 분노와 격노, 공감과 동감, 이런 말들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말놀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듣던 대로 유려한 글솜씨 때문에 오히려 진정성이 가려진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기에, 섣부른 결말로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을 마무리하려했다면 아마 그런 인상을 더 굳혔을 것이다.

책을 덮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잘못된 사회를 만든 것은, 이렇게 돌아가도록 둔것은 우리의 잘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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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대학이 줄세우기가 되면,
아예 대학교에 아무도 안 들어가면 좋으리라 느껴요.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초등학교도.

그저 모두들 집에서 흙을 일구면서
예쁘게만 살아가면 좋겠어요.

hnine 2012-03-09 20:43   좋아요 0 | URL
언젠가 대학의 존재가치가 점점 사라지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많은 학생들이 이미 학교 수업과 별개로 이력서에 올릴 사항들을 갖추기 위한 학원, 시험 등으로 별도의 시간표를 꾸리고 있거든요.
그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때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퍼붓고 있나 생각하면, 휴...
 

-신문을 본다.

제주 해군기지, 탈북자 강제 북송, 단식 투쟁, 어느 연예인의 3.5 캐럿 예물반지, 병원의 과잉진료, 과잉 검사, 굶는 아이들, 살빼야 하는 아이들...

 

-책을 읽는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법을 통해 어떻게 싸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서울의 민변 변호사들을 초대했다....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어떻게 싸울 수 있느냐, 어떤 법을 동원하면 저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느냐, 어떤 법으로 자신들이 보호받을 수 있느냐....... 질문이 이어질수록 법률 조언을 하던 변호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윽고 변호사는 아주 짧지만 명확한 한마디를 주민들에게 전했다.

"법은 권력의 편입니다."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어' 엄기호 씀, 170쪽)

 

-남편과 얘기를 나눈다.

나: "사는게 축복이고 선물이라고? 개나 주라고 해. 사는 건, 살아내는 건 고해 속에 헤엄치는거야. 태어난 것 자체가 고해의 바다에 던져진거라구."  
남편: "불교에서 말하는게 그런거잖아. 그러면서 뭔가를 깨달으면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거니까 잘 해봐~"

나: ......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읽지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러고 살수도 없고 참.

봄도 기다려지지 않는다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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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어쩔때 참 신문이나 책을 보면 더 심란하고 우울할 떄가 있어요 같은 동네 살면 산이나 공원을 산책하면 좋겠다 싶어요. 그냥 아무 말 안하고 걷기만 해도요

hnine 2012-03-08 04:5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어제 저녁에 혼자 동네를 30분쯤 산책하고 들어왔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그대로 잠들고 싶지 않아서요. 집밖에서는 9시가 다 된 시간인데 새로 생긴 맥주집에서는 확성기로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고 쌀쌀한 날씨에 아가씨 둘이 마이크로 맥주집 선전을 하며 춤을 추고 있었어요. 달릴수 있다면 걷기보다 달리고 싶은 밤이었습니다.

파란놀 2012-03-0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도 다 권력 편이에요.

도시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자그마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아주 깊은 두메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신문기자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는
신문에 싣는 일이란 없으니까요.

hnine 2012-03-08 05:02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속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법이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우리가 눈에 불을 키고 맞서야 하는 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으니 다행인가요 불행인가요.
그냥, 허무하다는 생각만 자꾸 커지네요.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 고택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 10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언제부터 한번 가보자 가보자 했던 곳을 어제, 비 뿌리고 바람도 제법 불던 날 다녀왔다.

 

추사 김정희는1786년, 바로 여기서 태어났다. 여섯살 부터 이미 글씨에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녔음을 박제가, 채제공 등에게 인정받았다. 24세에 과거에 급제했고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는데 거기서 지금의 김정희를 있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체의 스승 옹방강을 만난다.

병조 참판, 형조 참판의 벼슬에까지 오르지만 당쟁에 몰려 55세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길에 올라 63세 될때까지 거기에 머무르는데 많이 알려진 '세한도'는 여기서 나온 작품. 제주도 유배가 끝난 후에도 66세에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유배를 거쳐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지내다가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세한도는 현재 개인 소장으로 국보 제 180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의 방에는 중학교 미술 책에서 낯익은 그의 난(蘭)그림 '불이선란'이 걸려 있었다. 그때 미술 책에 조선 시대 다른 문필가들의 난과 비교하여 수록되었던 기억이 난다.

不二禪蘭. 난과 선이 둘이 아니다, 즉 난과 선은 다르지 않다라는 뜻인가?

 

저 위에 반일정좌반일독서 (半日靜坐半日讀書)라는 것은,

'한나절은 정좌하고 한나절은 책 읽고'

라는 뜻.

추사고택의 초석 위, 기둥마다 쓰여 있던 글 중 하나이다.

추사와 같은 예산 태생이며 그에 대한 연구로도 조예가 깊은 최완수 선생은 그의 글씨체에서는 글자에서 그림의 기운이 흐른다고 설명한다.

청나라 스승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과 혼을 불어넣은 글씨체를 이루어나간 추사. 흉내는 아무리 완벽해봤자 어디까지나 흉내일뿐.

 

추사고택 옆의 추사기념관에서 본 글귀가 돌아가는 발길을, 마음길을 채워주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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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네요.
안 가보았던 것같아요
고즈넉한 여행을 즐기시는 것 같아 부러워요
아직은 태은이가 어려서 고즈넉한 여행이 안되더라고요
세한도는 볼수록 좋은데
눈에 띄는 것은 솔방울이네요.

hnine 2012-03-05 15:55   좋아요 0 | URL
아이가 어릴때 다닌 여행도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각별한 추억이 되더라고요.
제가 좀 더 여력이 있으면 더 많이 다니고 싶어요.
솔방울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저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카메라에 담아왔어요. 소나무가 주위에 참 많더군요.
고즈넉..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곳이었답니다.

2012-03-05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6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6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3-07 12:1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구나.
ㅎㅎ 전 님과 같은 동창모이고 싶어서요^^
하긴 그리고 많이 멀어서 힘드실것도 같고요.

hnine 2012-03-08 05:04   좋아요 0 | URL
아이쿠,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마음이 저는 더 고맙고 힘이 됩니다.

같은하늘 2012-03-0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보여요.
건초위에 놓여진 솔방울도 평소와는 다르게 보이는데요.^^
전 두넘이라 한 번의 외출로도 녹초가 되기에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한 후에야 실천가능해요. ㅎㅎ

hnine 2012-03-06 07:03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 어디 가든지 소나무는 늘 있는 것 같아요. 솔방울이 마른 잔디위에 저렇게 드문 드문 떨어져 있더군요. 저 잔디가 곧 파랗게 되겠지요?
두 사내 아이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 보면 저도 다시 한번 보게 된답니다 ㅋㅋ 남자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끼리 통하는 게 있기 때문이랄까 ^^

sslmo 2012-03-0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 보고 세한도 보고 싶어서 트랙백해 왔는데,
저렇게 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불이선란도 그렇고요.

저 마른 솔방울 하나는 혹 제 투사(投射) 아닐런가요?^^
글도 사진도 수선스럽지 않은 것이, 참 좋네요.

hnine 2012-03-07 05:49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세한도에서 아직 그 멋을 충분히 못찾고 있어요 ㅠㅠ 그의 글씨체를 더 좋아하지요. 불이선란, 저 그림도 위에 썼다시피 조선의 다른 유명문필가들의 난과 함께 비교해놓은 것을 보고 이하응의 난에 더 마음의 끌렸던 사람...ㅋㅋ 저는 추사의 글씨체가 좋아요.
솔방울의 색과 솔방울이 앉아 있는 마른 잔디 색깔이 좋아 찍어보았습니다. 마른 솔방울이 양철나무꾼님이시라면 저는 저 마른 잔디 할까요? ^^

순오기 2012-03-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사고택 다녀왔군요~ 추사백송은 안 보셨나요?
고택에서 옆으로 조금 더 가야 나오는데...
맑은 날이었나요? 사진 속 풍경이 참 맑아 보여요~~~

hnine 2012-03-08 12:43   좋아요 0 | URL
제목에도 썼듯이 흐리고 비도 조금씩 뿌리던 날이었어요.
우리 나라 어딜 가도 그렇지만 소나무가 주위에 참 많더군요.
추사 백송도 보았습니다 ^^

순오기 2012-03-13 07:38   좋아요 0 | URL
앗~ 제목!!
사진이 너무 선명해서 그만 제목 생각은 잊었네요.ㅜㅜ
추사백송은 생존을 위한 처절함이 감지돼 숙연해지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