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 고택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 10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언제부터 한번 가보자 가보자 했던 곳을 어제, 비 뿌리고 바람도 제법 불던 날 다녀왔다.
추사 김정희는1786년, 바로 여기서 태어났다. 여섯살 부터 이미 글씨에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녔음을 박제가, 채제공 등에게 인정받았다. 24세에 과거에 급제했고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는데 거기서 지금의 김정희를 있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체의 스승 옹방강을 만난다.
병조 참판, 형조 참판의 벼슬에까지 오르지만 당쟁에 몰려 55세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길에 올라 63세 될때까지 거기에 머무르는데 많이 알려진 '세한도'는 여기서 나온 작품. 제주도 유배가 끝난 후에도 66세에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유배를 거쳐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지내다가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세한도는 현재 개인 소장으로 국보 제 180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의 방에는 중학교 미술 책에서 낯익은 그의 난(蘭)그림 '불이선란'이 걸려 있었다. 그때 미술 책에 조선 시대 다른 문필가들의 난과 비교하여 수록되었던 기억이 난다.
不二禪蘭. 난과 선이 둘이 아니다, 즉 난과 선은 다르지 않다라는 뜻인가?
저 위에 반일정좌반일독서 (半日靜坐半日讀書)라는 것은,
'한나절은 정좌하고 한나절은 책 읽고'
라는 뜻.
추사고택의 초석 위, 기둥마다 쓰여 있던 글 중 하나이다.
추사와 같은 예산 태생이며 그에 대한 연구로도 조예가 깊은 최완수 선생은 그의 글씨체에서는 글자에서 그림의 기운이 흐른다고 설명한다.
청나라 스승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과 혼을 불어넣은 글씨체를 이루어나간 추사. 흉내는 아무리 완벽해봤자 어디까지나 흉내일뿐.
추사고택 옆의 추사기념관에서 본 글귀가 돌아가는 발길을, 마음길을 채워주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