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가봐야지 찜해놓고 끝내 못가보는 공연이나 전시가 대부분인데, 그동안 칩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어젠 식구들 저녁먹은 설거지 후다닥 해치우고 극장 가서 '명량'을 보고 왔고, 그것도 모자라 오늘은 빗속을 뚫고 서울까지 가서 퓰리처사진전을 보고 왔다.
명량은 원래 지난 주에 남편, 아이와 함께 보러가기로 했었는데 점심 먹자마자 낮잠의 세계에 빠져든 남편, 컴퓨터 앞에서 몇시간째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 아이를 보며 포기해야했다.
퓰리처사진전도 언제 서울 갈일 있을 때 꼭 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전시였다. 그런데 막상 일이 있어 서울 가서 정해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전시까지 둘러보고 올 시간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을 때가 많아 다음에 오지 하며 그냥 돌아오곤 했다.
오늘 아침, 새벽부터 계속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지만 집을 나섰다. 오로지 퓰리처사진전을 보기 위해서, 서울까지,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땐 가능하면 그때 하는게 좋다. 더 적절한 시기가 올때 기다리다가 결국 못하는 수가 많다. 약5분 주저함을 이런 말로 다스리며.
다행히 서울은 흐리기만 할뿐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때로 그 어떤 말보다, 글보다, 더 많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 그 사진에 담긴 우리 사는 세계를 보고 싶었다. 아무리 글로벌 세상이라지만 우리가 사는 동안 볼 수 있고 알게 되는 세상은 극히 일부분이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이지만 그래도 우물 밖 세상이 궁금하다.



전시가 시작되면 사진 금지.
총 전시작 230여점.
오디오를 대여하려고 했더니 40여점 밖에 해설이 담겨있지 않다고 해서 해설은 눈으로 자세히 읽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1940년대 사진부터 시작되는 전시장의 첫 사진은 최초 수장작인 1942년 밀턴 브룩스 (Milton Brooks)의 피켓라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상황이 담겨진 사진이다.
1950년대에는 한국 전쟁 사진으로 수상한 맥스 데스포 (Max Desfor)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안드레아 도리아호의 침몰'이라는 제목이 달린 해리 트라스크의 1957년 사진 옆 해설에는 선원들에 의한 대규모 철수 작전으로 1650명이 살고 51명이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의 세월호 숫자와 비교가 되었다.
윌리엄 비얼의 1958년 작품 '신념과 신뢰 (Faith and confidence)'도 나혼자 뽑은 베스트 중의 하나.
1960년대 사진에는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을 담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고,
1970년대 사진 중, 1970년대 워싱턴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제목으로 매튜 루이스가 찍은 존 윌슨 변호사의 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찍어보고자 하는 매튜 루이스를 앞에 두고도 윌슨 변호사가 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신문만 보고 있자,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져 잡아낸 표정이다. "윌슨씨, 당신은 터프한 걸로 유명합니다."
이 밖에도 흑백대립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백인이 흑인을 구타하는데 도구로 성조기 깃대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한국전쟁을 담은 사진은 옆에 따로 방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데 모두 맥스 데스포의 사진들이다.
전쟁은 어느 나라에서, 어느 민족에게 일어났는지 상관없이 비참하고 우울하다.
이렇게 위기의 현장에서 잡은 사진들이 상을 받게 되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기쁨만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아니었다는 질타를 받게 되고, 결국 양심의 무게에 짓눌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상자도 있지 않은가.
보고 나오는 내 발걸음 역시 보고 싶은 걸 보고 나서의 만족감으로 가볍기만 한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세상은 얼마나 좁은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이런 상태에서 오늘 나의 생각이 꼭 옳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남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더 옳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다른 의견을 설득할 수 있을까.
또 한가지는, 어떤 이에게는 가장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 세상과 작별하는 그 순간,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고 싶은 그 몇초의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이유로 조금만 더 버텨서 뭔가를 얻어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후자를 질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것이 어쩌면 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빗줄기가 커지고 있었다.
사진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내 남동생 생각을 하며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