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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6월
평점 :
재미있거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는가하면 이 책 처럼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다시 읽게되는 책이 있다. 숙제처럼 남아 있는 책. 그래서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느낌을 정리할 수가 없다. 언젠가 또다시 읽게 될까.
1869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지드는 우리에겐 <좁은 문>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이 책 말고 내가 더 읽은 책으로는 <전원교향악> 정도이다. 고등학교때 나에게 글로, 말로, 이전의 누구와도 다른 공감, 교감을 나누던 분이, 이 책을 꼭 읽어보라는 권유도 아니었고 그저 편지에 단 한줄 이 책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읽어본게 첫번째였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싱크로 시키고 싶어했던 그분이 그렇게 찬탄한 이 책을 처음부터 끝페이지까지 다 읽도록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 것이었다. 좀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봐야겠다 했던게 거의 30년 후인 지금이 될 줄이야. 처음 읽을 때 만큼 오리무중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며 읽지 못했다. 마치 한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몇 사람이 돌아가며 쓴 것 같은 느낌. 작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아는 지식으로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욕망과 본능을 허용하며 살자는 쪽인지, 아니면 신의 존재를 항상 잊지 말고 자기 완성을 추구하며 살자는 쪽인지.
한가지 분명한 건 이 책은 눈으로 들어오는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는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냄새를 맡아가며, 귀로 들어가며, 살갖으로 느껴가며 읽어가야 한다.
평소 그리스신화와 성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데 이 책 제목 <지상의 양식>은 코란의 제2장 23절 "여기 우리가 지상에서 양분을 받은 과일들이 있다"에서 왔다고 한다. 제자인지 후배인지, 아니면 젊은이를 일컬은 익명인지 모르겠지만, 나타니엘이라고 하는 자기보다 어린 젊은이에게 남기는 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대부분의 글이'나타니엘이여' 라는 부름으로 시작한다. 때로는 나타니엘이 아닌 '메날크'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그는 지드 전반기의 사상을 대표하는 그림자 같은 인물이라고 해설에 나와있는데 이것 역시 뚜렷하지 않은 설명이다. 지드 자신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분신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쓴 글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상관있는 것일지.
처음 발표하고 20여년 동안 겨우 5백부 밖에 팔리지 않았고 그 이유를 자가는 이 책이 그 시대의 취미와 얼마나 충돌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고 썼다. 어느 비평가도 이 책을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니.
나의 지인을 그렇게 감동시켰다는 책. 우리 나라에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책. 내게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 책. 책 만큼이나 읽고난 심정도 복잡하다.
우리들이 삶에 흥미를 갖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해야 하였는지 그대는 도저히 모르리라 (16쪽)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기다림은 욕망이기보다는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한갖 마음의 준비여야 할 것 (28쪽)
-욕망이 마음의 준비로 바뀔 무렵이 되어야, 그때서야 기다리는 것이 오던가, 아니면 기다림 자체가 끝이 나는 것 같다.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29쪽)
-이 구절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당시 제일 인상깊은 문장으로 노트에 따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Let every moment renew your vision." 이렇게 기억했는데 번역문과 조금 다르네. 내 기억이 틀릴지도 모른다.
그대의 진리가 어느 다른 사람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그러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겨라. 만약에 내가 그대의 양식을 찾아준다면 그대는 그것을 먹기 위한 시장기를 잃고 말 것이다. 만약에 내가 그대의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그대는 졸음이 달아나서 거기서 잘 수 없게될 것이다.
나의 책을 던져 버려라. 그것은 인생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수천의 태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 자신의 태도를 찾아라.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는 존재를 너 스스로 창조하라. (183쪽)
- 이번에 뽑은 베스트 문장은 바로 이것. 키워드는 "너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