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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저자의 의도는 이해가 되면서도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라는 말이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저자의 이름은 최근 글 잘쓰는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 귀에 익었다. 1971년생. 올해 한국 나이 42세. 사회학을 전공하고 문화학과 박사과정 수료하였으며 현재 그의 말대로라면 주로 '비주류'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우선 주류, 비주류 대학이란 구분이 과연 있기는 한가? 예전의 내 생각은 우리 나라 처럼 작은 나라에서 4년제 대학들 사이에 차이가 나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가끔 번뜩이는 능력을 가진, 출중한 인물이 가끔 존재하지만 그건 개인에 따른 차이라고 보는 편이 맞지 학교에 따른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더이상 학생이 아닌 입장에서, 요즘의 대학생들을 좀 접하다보니,주류, 비주류로 나누든, 일류, 이류로 나누든 아무튼 학교들 사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니는 학생들 조차도 소위 비주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벌써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적어도 신입생때에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억눌림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동안 누리지 못하던 것을 맘껏 누리고 싶어하는 기대감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많았다. 해보기도 전에, 뭔가를 계획하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그들의 능력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이미 등급이 매겨진 양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볼때 참 마음이 아팠다. 저자의 말대로 정말 '너희가 잘못 산게 아니야' 라는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축 처진 어깨를 볼때 인문학자로서 저자는 오죽했으랴.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구절을 정리해본다.
우리가 절망하고 극단적으로 목숨까지 버리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 '고립'되었을 때이다. 고립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절망이란 내 삶을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상태이다. 그래서 '응원'이 희망이 된다. 언젠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희망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이 의미가 있고 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내 수고를 누군가 응원해줄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이 힘으로 우리는 삶을 견딜 수 있다. (14쪽)
열정과 창의성은 생산의 기관차이자 자본의 새로운 땔감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라",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자본주의는 이제 사람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와 다름없는 값으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덫이 되었다. (42쪽)
희망이나 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제일 공감한 것 중의 하나이다. 언젠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기대'이지 '희망'이 아니라는 생각. 기존 체계가 문제 없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교묘하게 강요되는 '긍정신학','긍정산업' 처럼 꿈과 희망이라는 말이 이제는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 내가 비뚤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이제 우리에게 삶은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과정이 되었다.(17쪽)
향유하는 삶은 꼭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유행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나도 가져야 제대로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소비'의 삶을 너도 나도 쫓고 있다.
법은 권력의 편이다. 인권 운동은 법과 맞서 싸우는 운동이었고 법에 의지해서 우리의 것을 얻을 수는 없다. (172쪽)
자랑스런 법치국가에 살면서 이것을 깨닫기 까지 전혀 의심해본 적도 없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발을 딛고 서있는 것인지.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체제다. 질적으로 아무리 다른 대상도 '돈'을 통해서 매개되고 교환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의 실체는 '폭력'이라는 말이 나온다. 모든 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양적인 것으로 환산하기 때문이다. 돈의 이러한 힘 앞에서는 무엇도 자유로울 수 없다. 돈 앞에서는 사랑이고 명예고 소용이 없다. 그것들마저도 다 값어치가 매겨진다. 단 하나, 절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 아니 환산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인격'이다. (187쪽)
그래야한다는 것이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언어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대한 증언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사회에 대한 증언이라고 생각한다. (203쪽)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사회때문이라는 것을 증언하자는, 이 책의 제목의 의미가 드러나는 구절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것은 잘못된 희망, 강요된 희망에 관한 부분이었다.
희망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 실망하지 않겠다는 각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희망이 없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희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다. (246쪽)
우리는 절대 실망하면 안되므로, 실망하고 포기하여 이 사회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반대하거나 지장을 주면 안되므로 희망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파국임을 부정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자. 그리고서 파국과의 과감한 단절, 그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희망이다. (258쪽)
이것은 파국이 아니라고, 곧 성공으로 가기위한 과정일뿐이라고 '기대'로 현재를 이어갈 것이 아니라, 잘못되어감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다른 미래를 만들 생각을 해나가는 것이 희망이라는 얘기다.
강의나 강연 끝에 항상 받는 질문이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 라고 한다. 그러면 저자는 대안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단다. 억지 대안을 마련하여 공식처럼 대답하는 것은 잘못된 기대로 모든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늘 생각을 깨워놓고 있으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우리의 아지트가 형성될때 다른 미래를 만들어나갈 힘이 형성된다고 한다. 결국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저자가 '아지트'라고 표현한 공동체이다. 물론 그 시작은 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개인들이지만.
기대와 희망, 힘과 용기, 경험과 체험, 분노와 격노, 공감과 동감, 이런 말들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말놀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듣던 대로 유려한 글솜씨 때문에 오히려 진정성이 가려진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기에, 섣부른 결말로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을 마무리하려했다면 아마 그런 인상을 더 굳혔을 것이다.
책을 덮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잘못된 사회를 만든 것은, 이렇게 돌아가도록 둔것은 우리의 잘못,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