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평소에 신간을 찾아 재빠르게 읽는 편도 아니고 김영하 작가의 팬도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요즘 즐겨 듣는 문학 관련 팟캐스트에 얼마전에 뭔가 뻘쭘한 짓을 하고는 상품으로 이 책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 팟캐스트를 즐겨 듣긴 하지만 그냥 듣고 참고만 할뿐 소개되는 책을 따라서 구입하는 일도 내겐 별로 없다. 소개는 소개일뿐 내가 읽으면 다른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나는 내가 직접 고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창래 작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자기도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때가 온다고. 그러니까,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다른 사람의 책을 더 많이 읽게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되려는 결심 이전에 일종의 독서 편력기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며 한가지 더 알아낸 것은, 그냥 다른 사람의 전작으로서 읽고 그친 것이 아니라 그의 경우, 읽은 소설에 대한 자기식의 반응으로써 소설을 쓰게 되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책을 읽다보면 거기서 김영하 식의 다른 스토리가 연상되어 새로운 소설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모저모로 다른 사람의 책을 많이 읽어본다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책의 뒤에 보면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되어 있다. 대부분 원고가 있기는 했지만 강연이나 인터뷰 자료들을 가지고 이 책이 엮여졌는데, 그럴 경우 그 강연이나 인터뷰 자료들은 소유권이 작가에게 있는 게 맞는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주최측에 있는 경우도 있지 않나 이런 곁다리 생각까지 해가면서.

어느 강연과 인터뷰였는지 책 뒤에 한꺼번에 목록으로 나오는데, 어느 글이 어느 인터뷰 혹은 강연 자료라는 것은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래 출처를 찾아보기에 편할 것 같지 않다. 각 꼭지글에 바로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나 강연이라는 것이 어떤 물음, 주제에 대해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답하는 행위인데 김영하는 그때마다 적절한 비유와 인용을 참 잘 하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머리 속에 그것를 가능하게 하는 풍부한 지식 창고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을 나는 아직도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나름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 중에서도 웬지 어얼리 어댑터 느낌이 나는 작가들의 글에 선뜻 손이 안가는 내 성향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가 그렇고 박민규가 그렇다. 그래서 이 책속에서 그가 자기 작품들의 배경이나 쓰기까지의 경로에 대해 말할 때 나는 그 작품에 촛점을 두고 들었다기 보다 그것을 말하는 김영하라는 사람에 촛점을 둘 수 밖에 없었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사람인가? 그가 특별하다면 그가 가진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로서는 그의 소신과 주관을 들고 싶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결정이 잣대가 아니라 최소한 자기의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그것에 의의를 두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판단되느냐에 가치를 두는 요즘 아니던가?

10년 후에 하고 싶은 일, 20년 후에 하고 싶은 일, 그걸 '지금' 하면서 살기 위해선 그만한 소신과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일단 돈부터 벌어 놓고, 남보기 그럴듯한 직장 부터 잡아 놓고, 집부터 마련하고, 자식부터 낳아 키워 놓고, 등등 하면서, 자기의 실체를 덮어놓고 껍데기로 살지 않으려면, 그만큼 포기하고 놓아야 한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한다. 남이 하는 것은 다 구색맞춰 하면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하려고 하니 겉도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 점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는 특별한 사람 맞는 것 같다.

 

그는 말하고 나는 들었다. 나도 내 목소리로 '나'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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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06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의 멋진 글 잘 읽고 반성도 했어요 ㅋㅡㅋ, 저는 팟캐스트나 이웃님들 글보고 평소에 관심 없던 책 덥썩 사는 경우가 많고 계중엔 제 관심사가 되서 좋기도 한데 또 계중엔 괜히 샀네 라는 후회를 하기도해서 저두 확고한 의지를 갖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즐거운 월요일, 한 주 되시길 바랄께요^~^

hnine 2015-04-06 08:40   좋아요 0 | URL
덥썩 사는 편이 아니라서 쟁여놓고 안읽는 책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이것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결코 어얼리 어댑터는 못된다는 것이지요. 뒷북만 치는 경향이 있어요 ㅠㅠ 그래도 그게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요. 해피북님은 10년 후 무엇을 하고 있기를 바라실까요. 김영하 작가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던데 저는 그렇게 딱 떠오르는게 없더라고요.
닉네임에 `해피`가 들어가니 좋은데요. 자꾸 불러보고 싶어져요. 해피북님도 해피한 한 주 되세요.

붉은돼지 2015-04-0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뭐 특별한 이유없이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뭐랄까 조금 날리는 느낌이랄까 뭐 물론 제 개인적인 취향이죠..) 읽은 거라고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말고는 없는데요.. 요즘 알라딘에 계속 올라오고 있고 평도 좋은 거 같아서 한번 읽어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편견이나 선입견 이런 걸 가지면 안되는데 .....인간이란 게 다 제나름의 취향이랄까 성향이랄까 그런게 또 있으니 쉽게 잘 안될 때도 있는것 같아요 ~~

hnine 2015-04-06 15:28   좋아요 0 | URL
저도 붉은돼지님 말씀 듣고 보니 김영하 이름으로 따로 나온 소설은 아니지만 무슨문학상 수상집으로 들어가있는 단편인지 한편을 읽은 것 같기도 해요. 요즘 알라딘에 리뷰 올라오는 것만 봐도 이 책 인기가 대단하지요. 저는 낭만서점이라는 팟캐스트 듣다가 선물로 받았기에 읽어보게 되었어요. 인터뷰나 강연 모음집이라서 그런지 책은 쉽게 읽히고 내용도 지루하지도 않아요. 그가 지루하게 말을 할리가 없지요 ^^ 한번 읽어볼만 합니다.

2015-04-06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6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4-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하는 지금까지 서너 권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왠지 만만해 보이는 게 있어요.
그 만만함이 그의 작품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도 만들죠.ㅎㅎ

그런데 이 책은 좀 읽고 싶긴해요.
전 작가들의 글 쓰기에 관한 얘기가 흥미롭더라구요.
김연수도 제가 별로 안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그의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 줬죠.
이 책도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잘 읽었습니다.^^

hnine 2015-04-06 15:39   좋아요 0 | URL
으악, 전 김영하가 만만하게 보인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는 선진적인 사람, 작품보다 어딘가 좀 고리타분하고 가라앉아 보이는 그런 작품이나 작가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김영하도 생각보다는 고리타분한 면도 있더군요. 한달에 한두번 밖에 외출을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쓰는게 전부래요. 그게 좋다는군요. 여행도 별로 즐기지 않고요.
김연수의 소설은 예전에 서평단 하면서 한번 읽어보고 제대로 실망을 한터라 그 이후엔 다시 시도를 안해보고 있지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만 해요. stella님도 물론! ^^

파란놀 2015-04-0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아름답게 hnine 님 목소리로 말을 한다고 느껴요.

hnine 2015-04-06 18:0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럴려고 노력은 하는데 늘 그렇지는 않을거라 생각되네요.
 
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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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엄연한 장편 소설이다. 나 역시 제목이 재미있어서 더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는 저자 김 옥숙이라는 이름도 낯설다. 1968년생. 작가 자신이 남편과 함께 식당을 경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현장감이 있겠다는 기대, 사람들의 이러구 저러구 삶이 실제로 진행되는 현장에서 길어올려진 이야기일테니 나의 축 처진 삶도 기운 내기를 바라는 기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이다.

많이 배우고 가지진 못했지만 노동 운동에 뜻을 두고 부인, 딸을 둔 가정의 가장으로 열심히 살던 장만호씨. 어느 날 레미콘에 다리가 깔리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을 뻔 하다 살아나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진 후 더 이상 하던 노동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계의 수단으로 돼지갈비집을 시작한다. 식당 경험 전혀 없이 1인분 2,500원, 테이블 스무개가 전부인 돼지갈비집을 공단 가까이에서 시작하여 나중엔 체인점으로까지 확장해가며 승승장구 해가는 이야기,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원래 갖고 있던 노동 운동의 꿈을 접목시켜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비영리재단을 만들려는 시도, 그리고 좌절의 이야기들이 조목조목 잘 엮여서 300쪽 넘는 당당한 장편으로 만들어져 있다.

예상하다시피 술술 읽히는 이야기라서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후딱 읽을 수 있었다. 노동운동 출신 장만호가 돼지갈비집을 성공적으로 일으키기 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까지 양심을 속이는 일 없이 정당하고 정상적인 경로로 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고 해피 엔딩 같지만 어떤 시각에서는 장만호가 그동안 몸과 마음을 쏟아왔던 노동자 인권이니, 노동 운동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 무용하다는 것인가 비판적일 수도 있을 것을, 작가는 이야기의 초심, 그리고 주인공의 초심을 마무리에 잘 연결지음으로써 그런 비판의 여지에서 잘 벗어나고 있다.

이야기도 적당히 재미있고, 구성도 산만한 편 아니고, 문장도 부자연스런데 없이 잘 흘러가는데, 좌절, 일어섬, 성공, 배신 등의 흐름이 새로운 맛과 발견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고 훈훈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쉽다.

이런 소재 소설의 어려움이자 한계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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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네
조용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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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유정 작가가 초대손님으로 나온 그 방송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못 만났을 것이고 조 용호 라는 작가가 누군지도 여전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정 유정 작가가 히말라야 여행을 가면서 배낭 속에 딱 한권의 책을 들고 갔는데 그게 바로 조 용호의 책이었다고.

'조 용호? 누구지? 처음 듣는 이름인데.'

왜 그 사람의 책을 들고 갔느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그녀는,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라고 대답했다. 정 유정 작가 자신이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란 어떤 소설일까?

일곱 편의 짧은 소설이 들어 있는 이 책의 표지.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물결 사진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맞다, 그때 정 유정 작가가 자기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쓸쓸하고 진지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그를 소개했던 것 같다.

모란무늬코끼리향로. 제목에 원래 이렇게 띄어쓰기 없이 되어 있다. 수년 전 배가 침몰한 자리에서 침선 전문 낚싯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남자가 물고기 대신 건져 올린 향로. 모란무늬가 새겨져 있는 코끼리 모양의 향로에 일부만 남아 있는 글귀를 보고 궁금증을 가지게 된 남자는 배가 침몰했던 당시의 신문 기사를 찾아들어가 그 향로의 주인을 찾아내고, 향로에 얽힌 사연과 일부만 남아있는 글귀의 완전한 글귀를 알게 된다.

베인테 아뇨스는 망자를 보내는 이야기.

별이 빛나는 밤에는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가 한국에서 세상을 떠난 한 몽고 남자의 부음과 유해를 전달하러 몽고로 가서 그 미망인을 만나는 이야기.

떠다니네는 혼자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냈던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아내와도 점점 거리가 멀어져서 아내로부터 결국 이혼 제의를 받게 된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혼자 동남아 여행을 훌쩍 떠나온 남자는 맹그로브 씨앗이 바다를 몇 개월이나 떠다니다가 싹을 틔운다는 얘기를 듣고 인간 역시 죽을 때까지 떠다니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생각을 한다.

신천옹. 앨버트로스라고도 하는 이 새 역시 붙박이가 아닌 떠다니는 삶을 상징하고 있다. 이 단편의 끝은 교묘하게 앞의 '베인테 아뇨스'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눈치챘을까?

푸른바다거북과 놀다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동물들도 자살하는 경우가 있음을.

달과 오벨리스크는 현실과 과거, 그리고 상상이 뒤섞여 이국적인 배경과 더불어 운명적인 관계라는 것이 과연 있긴 한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일곱 편의 단편이 어떻게 보면 다 하나로 읽혀질 정도로 비슷한 분위기이다. 중년 남성이 주인공.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삶.

과장 없는 문장이고 무척 서정적이다.

이 봄날 어울릴 소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정적인 것이 쓸쓸할 수 밖에 없는 예시를 제대로 느껴보기에 충분한 소설들이다.

무엇보다도, 읽은 후 금방 손과 마음에서 떠날 이야기들이 아닌 듯 하니 그 여운이 남아있는 한, 쓸쓸함과 그리움에 젖어 지낼 각오가 읽기 전에 필요하다고 해둘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완성도 있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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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2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5-04-03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된 책읽기를 못하고 있어...읽고 싶은 마음만 커져요. 님 리뷰도 좋고 정유정 작가가 좋아한다니 보고 싶네요.^^

hnine 2015-04-03 07:2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출퇴근을 하셔야하니 평소에 비해 마음껏 책을 못읽으셔서 책 갈증이 심하시겠지만 저는 출퇴근하지 않고 시간이 있음에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 책을 못읽는 날이 많답니다.
이 소설은 참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정유정 작가가 이 작가를 부러워한 이유가 이해되어요.
언제 시간 나실때 한번 읽어보세요.
바쁘신 틈에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아침인데 저는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비는 오랜만에 땅이 해갈할 수 있는 비라니까 다행이지요.
모쪼록 건강하세요.
 
길 위의 식사 - 2012년 제27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이재무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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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집을 읽고 난 후엔 마이리뷰 카테고리가 아닌 마이페이퍼의 "詩 shop" 카테고리에 느낌을 적고 있었다.

이 책의 경우엔 시집이라고만 할 수 없고 책의 약 삼분의 일 정도가 이 시인의 시에 대한 평론으로 채워있기 때문에, 그리고 평론까지 구석구석 다 읽었기에 마이리뷰에 당당히 쓰기로 한다.

시인의 여러 권의 시집중 어느 것을 사서 읽어볼까 하다가 제일 두툼해보이는 이 책을 골랐다.

이재무 시인은 2012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이 책은 소월시문학상을 받은 시인의 수상작 및 그동안 발표한 시 가운데 가려 뽑은 대표 작품을 모아 엮은 시선집으로 2012년 문학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우선 소월시문학상을 안겨준 시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길 위의 식사>라는 시인데 간결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시이다.

그가 시에서 의미했던 길 위의 식사는 요즘은 오히려 간편하게 먹기 위한 수단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시인으로 하여금 이 시를 쓰도록 한 그 쓸쓸한 마음이 요즘 사람들에겐 그대로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쓸 데 없는 걱정까지 해보았다.

그의 시는 대체로 쓸쓸하고 외롭다. 그 쓸쓸함과 외로움의 끝, 울음은 이미 지나 웃음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워보려는 안간힘 같은 시이다.

 

 

늦여름 밤과 새벽 사이

불면의 방에 찾아온

낯익은 주검들과 나란히 누웠습니다

설움은 창밖 풀벌레 몇이서

실컷 울어주었습니다

아니, 그들이, 사시사철

김장 끝난 텃밭에

남겨진 배추뿌리 같던 생

풀벌레가 춥다 춥다 울었습니다

다 잊은 줄 알고

더는 아니 울 줄 알고

내일만 바라 살았었는데

오늘 까닭 없이 잠 안 오고

그들 또한 불쑥 몸 내밀어

저렇듯 풀벌레가 서럽습니다

아내와 동무 몰래 서럽습니다

 

('풀벌레 울음 2' 전문)

 

잠 안 오는 밤, 불쑥 찾아든 풀벌레에 감정이입이 되었나보다. 풀벌레 우는 소리에 시인 자신의 서러움을 얹어서 함께 울었나보다.

김장 끝난 텃밭에 남겨진 배추뿌리 같은 생이라니. 그런 생이라니.

 

둥글둥글한 돌 하나 꺼내 들여다본다

물속에서는 단색이더니 햇빛에 비추어보니

여러 빛 몸에 두르고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둥글납작한 것이 두루두루 원만한 인상이다

젊은 날 나는 이웃의 선의,

반짝이는 것들을 믿지 않았으며

모난 상에 정이 더 가서 애착을 부리곤 했다

처음부터 둥근 상이 어디 흔턴가

각진 성정 다스려오는 동안

그가 울었을 어둠 속 눈물 헤아려본다

돌 안에는 우리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다

얼마나 많은 물이 그를 다녀갔을까

단단한 돌은 물이 만든 것,

돌을 만나 물이 소리를 내고

물을 만나 돌은 제 설움 크게 울었을 것이다

단호하나 구족한 돌 물속에 도로 내려놓으며

신발끈을 고쳐맨다

 

('물속의 돌' 전문)

 

물 속에서 돌 하나 집어 드는건 누구나 한번 쯤 해보는 일 아닌가.

그런데 이 사람, 물 속에서 돌 하나 집어 들었다가  물끄러미 내려보고,

물끄러미 내려보는데서조차 그치지 못하고 돌과 그 돌이 나온 물의 관계를 생각한다.

돌이 울었을 어둠 속 눈물을 헤아리는 시인의 그 마음을 나는 헤아려본다.

 

내가 생각하는 이재무 시인의 최고의 시는 <엄니>와 <재식이>인데, 이 두 편의 시는 그에게 어떤 상을 안겨주지는 않았지만 그를 지금의 시인의 자리에 있게 한 시가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니>는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통곡의 시이며 <재식이>는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연년생 동생이다.

 

그냥 눈으로 읽는걸로 모자라 연필로 밑줄 그으며 읽고 그걸로도 모자라 시인의 시강좌까지 온라인으로 듣고 있는 중이다.

그의 시들이 대체로 쓸쓸하고 외롭긴 하지만 읽으면서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소매로 눈물을 훔칠 망정 시인은 가던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다는 것,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라는 게 그의 시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윗시의 마지막 줄 처럼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는, 그런 믿음이 절실했던 때라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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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4-02 01:01   좋아요 0 | URL
더는 아니 울 줄 알았다가 다시 울게 되는 거,
더는 아니 웃을 줄 알았다가 다시 웃게 되는 거,
그런게 인생인가봐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허무하고,
기대하지 않던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점에선 버텨볼만하고,
뭐 그런거요.
시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별로 축복할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어요. 결국 시로 풀어내는 것은 마음 속 울음이니까요.

새아의서재 2015-04-02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주한 아침에 너무 근사한 시선물이네요. 잘읽고갑니다.

hnine 2015-04-02 08:33   좋아요 0 | URL
마음에 드시나요? 선물이라 말씀해주시니 쑥스럽고 감사합니다. 좋은 시가 많은데 아쉽지만 두 편만 올렸습니다 좀 덜 알려진 것으로요.

파란놀 2015-04-02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시 한 줄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고맙습니다.

hnine 2015-04-02 08:36   좋아요 0 | URL
이 시인의 시강의를 들어보니 한줄 한줄 다 이유가 있더군요. 시 한줄 한줄을 그냥 들은 풍월로, 많이 들어 익숙하니 그냥 나오는대로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요. 그럴때 시인의 진심이 읽는 사람에게도 통하고 또 마음에 울림을 주는가봐요.

icaru 2015-04-0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발 다시 고쳐 매는 믿음... 저또한 그런 믿음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네요~ ^--^ ;;

남겨진 배추 뿌리 같던 생...

아,, 그래도 과거형이네요..같던...

아예 밭임자가 수확하기를 포기한 김장철 지난 시기에 남겨진 배추들 보다는야...

같은 생각을 하는 저는 어흥...

hnine 2015-04-02 15:05   좋아요 0 | URL
수확되는 배추 보다 남겨진 배추 뿌리에 눈길이 더 가고 더 오래 보게 되는 때가 오더군요 살다보니 ^^
풀벌레 우는 소리에서 시작하여, 남겨진 배추뿌리 같던 생이 서글퍼 그렇게 운다고 생각한 시인의 해석까지의 거리는, 보통의 우리가 흉내내기에 얼마나 먼 거리일까요.
 

 

 

 

 

 

 

 

 

 

 

 

 

 

 

 

바다를 훑고 온 새벽이라고

오늘 새벽

이 음반을 다시 들으며

오늘 새벽에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음반을 언제 샀더라

여기서 산건 아니니 2003년보다는 이전이겠다.

음반 가게 들어가서 샘플로 진열되어 있는 음반 중 하나를 우연히 들어보았는데

마음에 들어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유를 따지고 들때마다, 논리를 이용하려고 할때마다

나는 극도로 비관적이 됩니다.

마음을 이용할때, 믿음을 이용할때- 그래서 인간에 대해 순수한 믿음을 가질때-

그때 나는 희망적이 됩니다.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상황이 일어나서 우리는 불현듯 그 힘에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겁니다"

 

"Each time I reason, each time I try to use logic, I'm extremely pessimistic. When I use my heart, when I use my faith-and I have a stainless faith in mankind-then I become optimistic. A situation will arise that will awaken people and we will suddenly understand that we have to join forces."

- Jacques-Yves Cousteau-

 

 

 

 

바다가 생각날때

바다 냄새가 맡고 싶을 때

마음에 바다를 담고 싶을 때

들어보라고

당신에게 권해주고 싶은

노랫말 없는 연주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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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5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5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5-03-2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에 서서 바닷내음을 맡으면
언제나 맑은 숨결로 되살아나는구나 하고 느끼곤 해요.
바다와 같은 마음이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hnine 2015-03-25 16:04   좋아요 0 | URL
바다는 푸근하기도 하지만 전 한편 무섭기도 해요. 모두 품을 수 있고 모두 삼킬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느껴지게 하나봐요. 그런데 오늘 새벽에 제가 느낀 바다는 푸근하고 의지가 되는 바다였어요.
지난 겨울 순천 가서 바다 끝자락을 조금 본 후로 직접 가보진 못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들은 음악이 저를 바다로 데려다주었습니다.

2015-03-25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3-25 16:07   좋아요 0 | URL
이런 음악들이 어떤 땐 별로 마음에 안들어오다가 또 어떤 땐 이렇게 마음에 쑤욱~ 하고 들어올때가 있으니 그것도 재미있지요.
다른 방에 있던 CD rack을 며칠 전에 제방으로 옮겨다놓았더니 예전에 들었던 CD도 이렇게 찾아듣게 되어요.
youtube에서 들으신 음악은 이 CD에 있는 것들중 어떤 음악이었을까 궁금해요. 음악 좋지요? ^^

세실 2015-03-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편안하면서 신비감을 주네요. 아 좋다......

hnine 2015-03-25 16:09   좋아요 1 | URL
편안하면서 신비감을 준다는 표현이 꼭 맞네요. 바다의 느낌을 준 이유가 그래서인것 같아요. 포용력있고 편안하기도 하지만 그 깊은 속을 알수 없어 신비감을 주기도 하는게 바다니까요.
찾아보았더니 아쉽게도 지금은 이 CD가 품절이네요 ㅠㅠ 누군가에게 선물해도 좋을, 무난한 음악인데 말이어요.

[그장소] 2015-03-26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예쁘게 지어주셨네요 h나인님.

hnine 2015-03-26 06:34   좋아요 1 | URL
음악 덕분이었지요.
오늘 새벽 이름은 `모란무늬코끼리향로`라고 할까요? 어제 읽은 단편 제목인데 특이해서 계속 생각이 나서요 ^^

[그장소] 2015-03-26 08:44   좋아요 0 | URL
음..빗살무늬토기의추억...같은 느낌..? 발음이..그래요.
무늬 만 같은 글자인데..어쩜..그렇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