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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네
조용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정 유정 작가가 초대손님으로 나온 그 방송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못 만났을 것이고 조 용호 라는 작가가 누군지도 여전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정 유정 작가가 히말라야 여행을 가면서 배낭 속에 딱 한권의 책을 들고 갔는데 그게 바로 조 용호의 책이었다고.
'조 용호? 누구지? 처음 듣는 이름인데.'
왜 그 사람의 책을 들고 갔느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그녀는,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라고 대답했다. 정 유정 작가 자신이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란 어떤 소설일까?
일곱 편의 짧은 소설이 들어 있는 이 책의 표지.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물결 사진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맞다, 그때 정 유정 작가가 자기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쓸쓸하고 진지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그를 소개했던 것 같다.
모란무늬코끼리향로. 제목에 원래 이렇게 띄어쓰기 없이 되어 있다. 수년 전 배가 침몰한 자리에서 침선 전문 낚싯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남자가 물고기 대신 건져 올린 향로. 모란무늬가 새겨져 있는 코끼리 모양의 향로에 일부만 남아 있는 글귀를 보고 궁금증을 가지게 된 남자는 배가 침몰했던 당시의 신문 기사를 찾아들어가 그 향로의 주인을 찾아내고, 향로에 얽힌 사연과 일부만 남아있는 글귀의 완전한 글귀를 알게 된다.
베인테 아뇨스는 망자를 보내는 이야기.
별이 빛나는 밤에는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가 한국에서 세상을 떠난 한 몽고 남자의 부음과 유해를 전달하러 몽고로 가서 그 미망인을 만나는 이야기.
떠다니네는 혼자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냈던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아내와도 점점 거리가 멀어져서 아내로부터 결국 이혼 제의를 받게 된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혼자 동남아 여행을 훌쩍 떠나온 남자는 맹그로브 씨앗이 바다를 몇 개월이나 떠다니다가 싹을 틔운다는 얘기를 듣고 인간 역시 죽을 때까지 떠다니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생각을 한다.
신천옹. 앨버트로스라고도 하는 이 새 역시 붙박이가 아닌 떠다니는 삶을 상징하고 있다. 이 단편의 끝은 교묘하게 앞의 '베인테 아뇨스'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눈치챘을까?
푸른바다거북과 놀다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동물들도 자살하는 경우가 있음을.
달과 오벨리스크는 현실과 과거, 그리고 상상이 뒤섞여 이국적인 배경과 더불어 운명적인 관계라는 것이 과연 있긴 한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일곱 편의 단편이 어떻게 보면 다 하나로 읽혀질 정도로 비슷한 분위기이다. 중년 남성이 주인공.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삶.
과장 없는 문장이고 무척 서정적이다.
이 봄날 어울릴 소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정적인 것이 쓸쓸할 수 밖에 없는 예시를 제대로 느껴보기에 충분한 소설들이다.
무엇보다도, 읽은 후 금방 손과 마음에서 떠날 이야기들이 아닌 듯 하니 그 여운이 남아있는 한, 쓸쓸함과 그리움에 젖어 지낼 각오가 읽기 전에 필요하다고 해둘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완성도 있는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