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써보라는 지인들의 권유에 시인은 시 속에 소설을 뭉뚱그려 품어보겠다고 했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어려운 단어들의 조합 대신 이야기가 흐른다. 다른 시집들을 읽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줄에서 시간을 잡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땐 갸우뚱 대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대목을 다시 읽어보느라 시간을 잡고 있게 된다.

이번에 나온 그의 산문집, 이번엔 산문에서 시가 보인다. 시인들이 쓴 산문집이라는 것을 처음 읽는게 아닌데 이런 산문집은 처음이다. 어느 페이지랄 것 없이 그저 주욱 베껴써보고 싶다. 눈으로 읽어내리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문학의 문자도 모르는 나이지만 감히 '문학성'있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고도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화려한 감동이 아니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대단히 멋진 문구가 아니다. 그저 '아!'하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탄성 정도의, 무채색 감동이다.

 

시인들에게 시란 대체 무엇일까. 책을 받고 아무데나 펼쳐본 곳이 하필 이곳이었다 (200쪽).

 

쓰는 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다.

시는, 온몸으로 줍는거다.

 

 

 

그 마음 하나로

감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다.

바닥을 친 땡감의 상처, 그 진물에 펜을 찍었다

홍시 너머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사랑의 주소는 자주 바뀌었으나,

사랑의 본적은 늘 같은 자리였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두줄은 없어도, 아니, 없었으면 더 좋을 것 같으나, 아무튼 그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써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를 지어냄으로써 그것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받아 모시고, 온몸으로 줍는다는 그 마음.

시인은 우주의 아주 잡스럽고 비밀스런 곳까지 다가가서 살림을 차리는 연애주의자이자 바람둥이라고 하고(223쪽), 설렘과 그늘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228쪽).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설레는 일이 있고, 남이 보지 못하는 (우주의 잡스럽고 비밀스런 곳까지) 그늘을 볼 줄 알고 그것에 마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첫 페이지부터 벌써 푹 빠져 버려 다른 일을 놓아버렸다. 어머니 얘기, 고향 얘기, 이 책에서만 보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말이다. 시인이 뒤에서 따로 얘기하지만 그는 어여쁘다, 곱다, 슬프다, 기분 좋다 등의 말을 쓰지 않고, 한 치 건너 다른 얘기를 하면서 그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었다. 시의 원천인 어머니. 시인이 무엇에 대하여 한 말씀만 해달라고 하면 "너 시 쓸라고 그러지. 얘는 인자 쓸 것 되게 없나보네." 그러신단다. 그런거 아니라고 했더니 "웃기지 말어. 네가 쓰는 시라는 거 거짐 내 얘기 받아 적은 거라고, 먼젓번에 왔던 글 쓴다는 네 선배가 그러드라. 너 그러니께 이 어미헌티 잘혀. 글삯 받으면 어미한티도 한몫 떼주고 말이여." (17쪽)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는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같은 고향이셨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목소리, 그 사투리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샘가 도랑에 뜨거운 물을 버리면서 "훠어이 훠어이, 얼른 비켜라. 뜨건 물 나가신다."라고 말씀하시며 양팔을 흔드셨다는 시인의 할머니는 또 어떤가. 도랑 속 작은 생명들이 다칠까봐 헛손질로 위험 경고를 하신 것이란다. 말로 떠들고, 글로 난체하는 환경보호, 자연사랑이 이에 비길까.

책의 뒷부분에 가면 시를 짓는 것에 대한 저자의 낮으면서 힘있는 목소리가 따로 작은 제목으로 표시내지도 않고 실려 있다.

좋은 시인은 뼈로 가고자 합니다. 단도직입을 건너 단순무식으로 갑니다. 나쁜 시인은 살로, 옷으로, 장식으로 가고자합니다... 복잡한 치장으로, 요란한 유식으로 갑니다. (248쪽)

시만 그럴까. 어줍잖은 글 한줄 쓰면서 우리는 얼마나 치장과 포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시나 이야기를 지을 때 요구되는 상상력이라는 것도 불현듯 어느 곳에서 해괴망측하게 왕림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252쪽) 내가 바라보고 겪어온 모든 시간 속에, 모든 상처 속에 시는 살아 있는 것이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서시>라는 제목의 이 시 속 '마을', '흠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내 몸이 너무 성하다라고 하는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본다. 그래서 시인은 흠집 많은 사람을 보면 기가 죽는다고 한다. 꽃다운 상처, 그건 싹수없는 용 문신과는 격이 다른 것이라고.

미숫가루보다도 잘 풀어지는 정신, 결의를 놓치면 언제나 흩어져버리는 게 마음이라서, 좋은 게 좋다고 느끼는 순간, 타락의 수챗구멍에 처박히고 마니까, 시인은 감히 외친다. 모나게 살자!

모나게 살자

샘이 솟는 곳

차고 맑은 모래처럼

 

 

모서리마다

빛나는 작은 칼날

찬물로 세수를 하며

 

 

서리 매운 새벽

샘이 솟는 곳

차고 맑은 모래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칫 풀어지고 노곤해지려는 정신에 일침을 가하는 듯했다. 냉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서리 매운 새벽의 차고 맑은 모래를 감싸는 샘물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는다는 말도 잊지 않으면서.

 

시를 포함하여, 자신이 이루려는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보여주는 다음의 시도 한번 쓰윽 읽고 넘어가기에는 아깝다.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시를 쓰면서 되뇌는 문장은 "새가 난다" 인데, "어떤 새가, 어찌어찌 난다"라고 수식을 달지 않도록 다잡는다고 한다. "무엇 같은, 어떤 빛깔의 새가, 뭣 같은 몸짓으로, 어찌어찌 난다"라고 덕지덕지 휘황한 금박장식을 달지 않도록 펜 끝을 세운다고. 즉 시의 퇴고는 첨(添)이 아니라 삭(削)이어야 한다고.

 

"물끄러미. 단번에 쏘아보고 마는 눈빛이 아니라, 거두지 않겠다는 마음의 눈빛,물끄러미,

단숨에 내닫는 길이 아니라 구부러져 가더라도 끝까지,

엄살과 과장과 감상적 포즈를 배척하고,

이미 다 보여준 밋밋한 마무리가 아니라

치고 올라가는 기법으로 꿰어 차 올리는 결말"

 

이것은 내나름대로 다섯 줄로 요약한, 저자가 말한 ' 작법'인데 '인생 작법'이라고 이름 붙쳐도 좋겠다. 아니, 이것도 다 엄살과 과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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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4-3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아주 괜찮은가 봅니다.
시 속에 소설을 뭉뚱그리고, 시 작법인데 인생 작법이라!
딱 저에게 맞는 책 같습니다. 기억하고 있겠슴다.^^

hnine 2012-04-30 13:38   좋아요 0 | URL
인생작법이란 말은 제가 붙인 소감인데 아무튼 stella님께도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앞 부분엔 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지,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뒷부부엔 슬을 쓴다는 것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들어가있고요.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다는 주의가 일단 마음에 들었답니다.

비로그인 2012-04-3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군요! 저한테도 꼭 맞는 책 같은데요? 히히~
시는 온몸으로 줍는 것이라... 뭐든지 간에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면 안 되나봐요. 얼마 전에 끝난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심사위원이 참가자들한테 그런 얘기를 곧잘 하더라구요. 노래를 컨트롤 하려고 하지 말고, 노래가 자기를 컨트롤하게 만들어야 한다고요.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뭘 먹을까... 고민고민 ( '')..

hnine 2012-04-30 13:39   좋아요 0 | URL
넵, 꼭 읽어보십시오~
점심때 고민하는 것은 저도 그렇답니다. 그나마 제일 잘 먹는게 점심이라서, 이것 저것 골고루 빠지지 않게 먹느라고 고민이랍니다 ㅋㅋ

파란놀 2012-04-3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그냥 "새가 난다"고만 말해요.
그러다가 가끔, 살을 붙이기도 하는데,
아이가 말을 차근차근 배우며 어버이 말투를 따라
새가 하늘을 난다느니, 저 산 너머로 난다느니 하고
말하기도 해요.

hnine 2012-05-01 06:25   좋아요 0 | URL
아이들처럼 말에 살을 붙여서 느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여야 하는데 어른이 된 우리들은 그 이상의 목적으로 살을 붙이는 것 같아요.

보내주신 사진책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책꽂이에 꽂아놓지 않고 가족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오고 가며 수시로 보려 합니다.

반딧불이 2012-05-0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뜰한 마음이 묻어나는 글, 혼자만 들을 수 있는 탄성을 지르며 잘 읽었습니다. 읽고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요.

hnine 2012-05-02 07:40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는 동안의 저의 느낌이 반딧불이님에게도 전달되었다면 저도 기쁩니다. 더구나 미소가 번지셨다면.
꽤 훈훈한 책이랍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핵심은 놓치지 않더군요.
반딧불이님의 오늘 하루도 그런 날 되셨으면 합니다.

프레이야 2012-05-0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유~~ 나인님^^
이정록시인의 시 참 좋아서 이 책도 급호감, 담아갑니다.
님의 글은 이시인처럼 대개 절제되고 탄력있어 제가 너무 좋아해요.
이 페이퍼에는 시인에 대한, 글에 대한, 작법에 대한 애정이 담뿍 느껴져 더더 좋아요.

hnine 2012-05-02 07:42   좋아요 0 | URL
'절제' 라는 것에 제가 좀 집착하는 것도 같아요. 장황하고 화려한 것보다 간결하고 절제된 것에 마음이 더 끌리더군요.
프레이야님 올리신 이 시인의 시집에 대한 글도 읽었습니다. 제 마음 속의 시인 리스트에 한명 더 보탰답니다 ^^

2012-05-05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5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백목련과 자목련, 두 종류만 알고 있다가 얼마나 다양한 종류, 크기, 색깔의 목련이 있는지 보고 온 날.

동백꽃 핀 것 보고 싶어 남녘 어느 먼 곳 마을만 떠올리다가, 저날 수목원 가는 길에, 마을길에, 집 앞에, 동네 어귀에, 얼마나 동백이 많이 피어있던지. 발견할때마다 나도 모르게 '와!' 소리를 내었다.

미술책 그림같은 마을들.

 

저 수목원에 가면 그곳에 있는 나무와 꽃도 꽃이지만 그곳을 평생 가꾸고 일군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생각에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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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2-04-2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덕분에 꽃구경 잘했다~~
벚꽃이 지고 나니, 여의도는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어.
올해는 봄이 더디게 온다 싶었는데, 때가 되서 꽃이 피고 지고....
마지막 사진은 시에프 같아~~

hnine 2012-04-27 17:34   좋아요 0 | URL
우리 아파트 입구엔 이제 라일락이 만발이다. 철쭉 정도 키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라일락이더라구.
저날도 비오고 바람 불고, 그래서 모두 겨울 파카를 입고 갔었지.

카스피 2012-04-2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멋진곳이네요.어디인가요?

hnine 2012-04-27 20:46   좋아요 0 | URL
충청남도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이랍니다.
저희 집, 대전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가야하지요.

하늘바람 2012-04-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천리포 수목원
넘 가고 싶네요
저 의자 넘 앉고 싶고요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hnine 2012-04-28 08:18   좋아요 0 | URL
저는 봄과 여름에 다녀왔는데, 가을, 겨울에도 가보려고 해요. 분명히 다른 모습, 다른 느낌을 주겠지요? 저기 가려면 천리포, 만리포 바다를 지나야한답니다. 그래서 갈 때는 꼭 바다에 먼저 들르게 돼요. 그것도 좋지요.

프레이야 2012-04-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리포수목원이군요. 가보고 싶어요. 태안바다까지 보이는 군요.
그 수목원을 일군 사람에 대한 이야기 설핏 본 것 같아요.
우와~ 전 수선화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노란, 수선화~~
말로가 부른 '동백아가씨' 생각이 불쑥 나는 건 또 뭐지 ^^
암튼 사진으로만 봐도 좋아요.^^

hnine 2012-04-28 08:22   좋아요 0 | URL
밀러라는 분인데 수목원 만드는 일에 푹 빠져서 한국에 귀화해 결혼도 안하고 가족도 없이 평생 수목원 일만 하다가 돌아가셨고 수목원 한곳에 수목장으로 묻히셨다고 해요. 제 사촌오빠가 예전에 저 수목원에서 한동안 일하셨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름이 익숙한 수목원이기도 해요.
'동백아가씨'라면 저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밖에 모르는데 ㅋㅋ (말로가 부른 것은 완전 새로운 노래인지, 아니면 새로운 버전인지 찾아봐야겠어요)

파란놀 2012-04-2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목원을 썩 안 좋아하는데,
오늘 hnine 님 사진을 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수목원에는 나무 둘레에 '잡풀'이라 하는
여느 들풀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제가 안 좋아하는구나 싶어요.

나무만 휑뎅그렁하게 있다면
나무도 심심하며 쓸쓸하고
힘들겠구나 싶어요.

온갖 들풀이 자라는 흙땅은
아주 폭신폭신 보드랍기에
나무한테도 참 좋다고 새삼 느껴요..

hnine 2012-04-28 20:34   좋아요 0 | URL
그럼요, 자연스럽게 어울려 피고 자라는 모습이 제일이지요.

희망찬샘 2012-04-2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네요. 사진으로만 봐도 이렇게 좋은데 실제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hnine 2012-04-30 10:52   좋아요 0 | URL
실제로 가서 보면 훨씬 좋지요. 저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인데 앞으로 몇번을 더 갈지 모르겠어요.

Jeanne_Hebuterne 2012-05-0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쑥 얼굴을 내밉니다.
목련은 늘 모든 걸 불사르는 것 같다고, 화르륵 피었다가 어느 순간 허망하게 한순간에 져버린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서요.

hnine 2012-05-02 07:47   좋아요 0 | URL
Jude님...이 아니라, Jeanne님 (뒷부분은 어떻게 읽는지 몰라요 ㅠㅠ)
목련은 나이에 따라 달리 보이는 꽃 중 하나인것 같더군요.
20대, 밤에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는 목련을 보면 탄성, 숭배,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어요. 낮에 보아도 그 기품은 다른 꽃들이 따라갈 수 없어보였고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네요. 너무 크고, 드러내고, 활짝 피었다가 일순간 다 떨어지고 마는 모습이, 예전과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키질 않아요.
제가 더 살아보고 그 느낌이 또 어떻게 달라질까, 이런 호기심이 나이 먹는 것을 견디게 해줍니다.
 

 

 

 

 

 

 

 

 

 

 

 

 

 

 

 

 

 

 

 

 

 

 

 

 

 

 

 

 

 

 

 

 

 

지난 토요일, 알라딘 문화초대석 행사로 아이 데리고 창덕궁엘 다녀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00만부 발간 기념으로 창비 측에서 마련한 자리인데 유홍준 저자와 1박2일의 나영석 PD가 함께 했다.

창덕궁엘 가본적이 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일반인에게 상시 공개하지 않는 후원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아침부터 아이 데리고, 고속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가는 길은 비가 와도 흥이 났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왔다. 창덕궁에 도착하자 더 오는 것 같았다 (사진을 잘 보면 빗줄기가 보임). 신발 속으로 빗물이 다 들어왔고 바지 아랫단은 비에 젖고 흙탕물이 튀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나는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비 오는 날 고궁이나 박물관, 미술관 가는 것은 좋아하는지라 별 불만없이 아이 데리고 2시간을 질퍽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입구인 돈화문 앞에 100여명이 모였다. 비 때문에 신선원전 처마밑 툇마루에 앉아 유홍준님의 설명을 들었고 나영석 PD, 그리고 창덕궁 관리소장님의 인삿말씀을 들었다. 창비 측에서 마련해준 따뜻한 매실차로 몸을 좀 녹이고.

 

조선시대 왕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이원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규모면에서 더 크고 공식적인 경복궁은 임진왜란에 불타서 대원군때 중건될때까지 왕들은 창덕궁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가 앉아서 설명을 들은 신선원전은 원래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신 곳인데 현재 이 안에는 초상화가 없다. 6,25 한국전쟁때 부산 용두산에 이전시켜 놓았다가 다 타버렸기 때문. 안타까운 일이다.

 

옥류천, 부용정 등이 있는 후원을 구비구비 돌아다니는 맛.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꽃 구경, 후원 구경이 얼마나 더 흥이 났을까.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여러 개의 정자 모양이 다 다르다고 하는데.

 

인정전 옆의 회랑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헤어졌다.

 

나 : "다린아,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 중국의 정원에 비해 우리 나라 정원은 다른 나라에서 그대로 흉내내서 만들어놓기가 어려운 이유가 뭐라고 했지?"

다린 : "우리 나라 정원은 주위의 자연과 함께 어울려있어야 하기 때문이래요."

 

그래, 그것만 알아도 좋다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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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4-2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넘 멋졌네요
다린이랑 나중엔 둘이서만 가셔도 넘 좋으실 것 같아요

hnine 2012-04-27 16:49   좋아요 0 | URL
안국역에 내리면 갈 곳이 너무 많은거있죠~ ^^
서울은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참 편해요.

상미 2012-04-2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서 고궁을 갔구나.
좋은 시간이었겠다.
안국역에서 쭉 올라가서 있는 병규네 학교가 창덕궁 담벼락과 맞닿아 있어.
운동장에서 보면 고궁의 지붕들이 보이고 멋지단다.

hnine 2012-04-27 17:41   좋아요 0 | URL
안내표지판에서 학교 이름 봤어. 명당 자리에 있구나.
날씨가 좋았으면 북촌마을도 가보고, 다린이가 가보고 싶어하는 홍대 입구의 찰리 브라운 카페도 가보는건데 (사실은 내가 더 ^^) 좀 아쉬웠지.

카스피 2012-04-27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과의 대화가 넘 정겨우시네요^^

hnine 2012-04-27 20:46   좋아요 0 | URL
ㅋㅋ 딸 아니고 사내녀석이랍니다.

프레이야 2012-04-27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덕궁 나들이 잘 하셨네요.^^
지난 토요일 그곳에도 비가 많이 왔었군요.
여기도 하루종일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어요.
다린이도 무척 좋아했겠어요.

hnine 2012-04-28 08:25   좋아요 0 | URL
비 엄청 왔어요. 그날 전국적으로 하루 종일 비온다고 예보에 나왔었지요. 많이들 안 올줄 알았다고 주최측에서 그러시더군요.
다린이는 속으로 좀 힘들었을거예요. 사실 우리 나라 역사가 담긴 곳을 직접 눈으로 보여준다는 저혼자 꿍꿍이로 데려간 거였는데 원래 관심있어 하던 것도 아니면서 비 맞으며 돌아다니려니 아주 재미있지야 않았겠지요 ^^

파란놀 2012-04-28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궁궐은 숲을 옆에 마련하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숲'은 아니고
'따로 가꾸어 만드는 숲'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베끼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아요 ^^;;;

다만, 중국이나 일본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와 다른 대목이라면,
궁궐이나 둘레에 건물만 세우지 않고,
반드시 숲을 가꾸어 만들었다는 대목이에요.
왜냐하면, 임금님이 머리를 쉬고 몸을 추스르려면
숲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오늘날 도시에서는 숲이 없지요...

hnine 2012-04-28 08:28   좋아요 0 | URL
임금님이 머리를 쉬고 몸을 추스르려면 숲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는 것 부터 저는 한국 궁 옆에 있는 정원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자연과 어울리는 정원이란 자연스럽게 발생된 숲의 의미가 아니라 공식이나 틀이 없이, 그때 그 옆의 주위 환경과 어울리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말하지요.

파란놀 2012-04-29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한국 궁궐에 있는 숲(정원)은 '주위 환경과 어울리게' 만들지는 않았어요 ^^;;;
이는, 한국 궁궐 숲(정원)을 연구한 한국-일본 학자와 사진가와 건축가들이 잘 밝혔으니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하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 본다면,
언제나 '임금님 머리 쉴 곳'이라는 테두리에서만 가꾸었어요.

곧, 궁월에서 나와 하느작하느작 걸어다니며 머리를 쉰다고 할까요.
꼭 이만큼만 하기에 좋도록 만들었어요.
더도 덜도 아니랍니다..
'비원'이라는 곳을 헤아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을까요...

궁궐에서 만든 숲(정원)을 둘러싼 높다란 돌담 바깥에는
높은 신하들 사는 기와집이 있었을는지 모르나,
이런저런 기와집보다는 가난한 백성들 풀집(초가)이 많이 있었어요.

백성들은 숲을 누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임금님만 숲(정원)을 누렸지요...
시골사람이라면 으레 숲을 누렸겠지만,
서울(한양)에서 궁궐 둘레 백성들은
숲이고 풀이고 거의 못 누렸다고 할까요...
백성들은 임금님 숲(정원)을 만드는 노역자로 끌려와서
잔뜩 일만 해야 했어요...

(나쁜 뜻으로 적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 역사가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hnine 2012-04-29 10:25   좋아요 0 | URL
잘 알겠습니다. (아참, 저기가 바로 그 '비원'입니다.)

희망찬샘 2012-04-2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경복궁에 다녀 왔는데 (하나도 본 건 없어요.) 정말 사람이 많아 깜짝 놀라고만 왔지요. 기회가 된다면 서울 고궁 답사를 한 번 해 보고 싶네요. 그저 놀고 싶은 아이들 데리고 공부 시키려는 마음으로 무장할까봐 염려스럽긴 하지만요.

hnine 2012-04-30 10:56   좋아요 0 | URL
희망찬샘님, 정곡을 찌르셨네요. 공부시키려는 마음으로 미리 무장하는 엄마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 부터 해야하는데,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고...어렵더군요.
경복궁은 창덕궁 설명하면서도 비교가 자주 되더라고요. 규모면으로도 그렇고, 조선의 대표적인 궁은 경복궁이지만 왕들이 창덕궁에 더 애착을 가졌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더 흥미있을 것 같아요.
 

 

시 한 편 받아 적고

담배 한 가치 피워 물었다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

십 년 혼자 산 방구석 책 더미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책을 밀고 들여다보니

원고지 위로 돌아다니던

병이 헤벌쭉 웃고 있었다

실없이 왜 웃냐 물었더니

내 등골 뭐 더 파먹을 거 없나 궁리하는

질통의 수작이 야비해 웃었다나

맞는 말이다, 더러운 정까지 들고 만

질통의 야비함에 나도 자주 웃는다

웃음을 술에 섞어 마시면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

술 고파하는 병을 앉혀 놓고

서창을 기웃거리는 봄빛도 불러들여

질펀한 낮술이나 나눠야겠다

두주불사되어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인간적인

병에게 오랜만에 술주정을 해야겠다

사나운 주사를 번번이 받아냈지만

남은 정 다 떨어지면

내 방구석에서 서둘러 이사 갈 것이다

 

< 유영금 '퇴치법' 전문>

 

 

 

 

 

 

 

 

 

 

 

 

 

 

 

 

 

 

 

 

봄이 시작되기 전에 사놓은 시집

 

죽음의 문턱을 몇번이나 넘었다는 시인의 표정과 목소리는

아직도 투쟁중이었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외롭고 질긴 사투가 느껴져

읽는 내내 뜨끔거렸다.

섬뜩한 시어 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시인의 질긴 의지를 발견한 후엔

더 읽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오늘

무슨 마음이 들어 다시 이 시집을 꺼내들었다

봄이 가기 전에 마저 훑어봐야 했나

봄이 곧 가버릴 것 같아서였나

 

 

 

 

 

짐승 같은 통증아,

 

땅거미 지는 쑥밭에 앉아 아편 한 대 피워 봐

 

까마귀 누이가 따르는 독주 한 잔 받아 봐

 

취하거든 저녁달의 살을 깎아

토악질 나는 시를 써 봐

 

< '처방전' 전문 >

 

 

숲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고혹스럽게 부드럽게

휘감아오는 누가 있어 돌아보니

하늘가 수런거리는 햇살이더군

귓부리를 물고 속삭였지

 

하늘 귀퉁이 한 뼘 내줘, 죽도록 필게

 

<'나도 꽃으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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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4-2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하거든 저녁달의 살을 깎아
토악질 나는 시를 써 봐.

딱 이러고 싶은 저녁이에요, 나인님^^

hnine 2012-04-24 22:14   좋아요 0 | URL
음...내일 프레이야님 서재에 또 한편의 시가 올라오는건가요? ^^

2012-04-25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4-25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나아질 수 있도록
좋은 햇살 바람 소리 누리는 곳으로
삶터를 옮겨
좋은 삶 이어가는 시인이 되시기를 빌어요 (시집 글쓴이한테)

hnine 2012-04-25 06:57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사시는 것 같지는 않아요.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해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까지, 몸도 마음도 많이 고통을 당하셨더라고요.
지금은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하고 계신다는데 저 시집이 2007년에 나왔고 이후 작품은 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달사르 2012-04-2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짠해지네요. 아파하는 느낌이 있는데도 (독자에게) 담담하게 전달되는 걸로 봐서 시인의 고운 심성이 짐작됩니다.

..

친구에게 선물해주고픈 시집이네요.

hnine 2012-04-25 15:41   좋아요 0 | URL
전 이 시인을 TV에서 봤는데요, 인상은 문정희 시인과 비슷했어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랄까. 오히려 단단해지고 강인해보였답니다. 그렇겠지요.

이 시집을 주고 싶은 친구가 있으신가봐요 ^^
봄이라면 봄이라서, 가을이라면 가을이라서...시는 늘 마음에 위안을 줘요.

글샘 2012-04-2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인갑다... 사람들이 시집을 읽고픈 걸 보면요...

하늘 귀퉁이 한 뼘 내줘, 죽도록 필게

이 구절 읽으면서 괜히 미안해 지네요. 열심히 안 사는 게...

hnine 2012-04-25 20:29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네요, 요즘 서재에 시집 리뷰나 페이퍼가 많이 올라와요.
읽는 사람마다 마음에 꽂히는(!)구절이 다를 수 있겠지만 또 어떤 부분은 똑같이 와닿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한 귀퉁이만 내어줘도 죽도록 필텐데 하는 시인의 소망과 안타까움, 절실함이 그대로 느껴지지요.

카스피 2012-04-2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우울하고 괴로운일로 술을 마시면 금방 대취하지만,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시면 절로 술이 술술 넘어가지요^^

hnine 2012-04-26 07:1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술은 괴로울때보다 즐거울때 마셔야겠네요 ^^
마음이 우울하고 괴로울때는 무엇에 대해서도 취약한가봐요 ㅠㅠ

2012-04-26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0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혁명 - 소중한 여자로서 나를 찾아 떠나는 행복여행
문은식 지음 / 중앙위즈 / 2011년 9월
절판


누구보다 엄마가 행복해야 합니다.-4쪽

'네 인생은 네가 살고 내 인생은 내가 산다.'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결코 열린 마음이나 쿨한 태도가 아니에요. 그것은 아이를 설득하려고 마음이 열린 척하고 쿨한 흉내를 내는 것이죠. 정말 지혜로운 엄마들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고 '너희도 충분히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엄마도 스스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50쪽

우선 나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창조하고 가꿀 수 있는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가장 긍정적인 태도에요. 늘 문제투성이라고 생각하면서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니 애들이 달라지겠어요?-51쪽

행복은 작정하는 그 순간 온다.-74쪽

명상이란 좋은 느낌을 간직하고 편안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긍정적인 기분을 일으키고,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을 키운다면 아주 훌륭한 명상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명상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잠시 짬을 내어 편안한 음악에 몸과 마음을 집중한다든지 향기로운 꽃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명상이다. 또는 호흡을 조절하면서 의식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것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숲 속을 거닐며 몸에 싱그러운 에너지를 느끼는 것도 좋고, 밝은 빛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이미지를 상상해도 많은 도움이 된다. 행복한 모습의 자기 얼굴을 떠올리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100쪽

엄마는 가장 중요한 영적 발전소이기 때문이다. 우선 엄마의 마음이 편안하고 성스러운 기운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엄마는 늘 자기 마음의 평화와 희망, 그리고 영혼의 충만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가족들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109쪽

희생은 어리석은 자의 선택일 뿐. 그동안 우리는 엄마들의 희생은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좀 더 아름다운 가치를 찾아야 한다. 엄마들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두를 거는 것은 그들의 삶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가장 건강한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119쪽

엄마가 하루나 이틀 집을 비운다고 남편이나 아이들이 엉망진창이 될까? 단 며칠이라도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더 깊은 영혼의 체험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가족들은 사치라고 생각할까? 엄마가 식구들만 생각하고 아무런 희망과 꿈도 없이 오직 가족에게 매달려 사는 모습을 그들은 정말 원하고 있을까?
엄마가 가족을 위해 온 인생을 걸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더 많은 교훈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가정을 내던지고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찬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라는 뜻이다.-126쪽

중요한것은 꿈의 완성이 아니라 그 꿈을 간직하고 사느냐, 포기하고 사느냐의 문제이다. 꿈은 여행자의 마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그 과정 자체가 설레고 아름답다.-130쪽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세요-
사랑과 집착의 경계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처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 다르다. 사람들은 사랑과 집착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데 이것을 알아보는 간단한 원칙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만약 사랑해서 행복하다면 그것은 사랑이요, 괴롭다면 그것이 바로 집착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행복만 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은 곧 괴로움이다.
만약 사랑한다면서 힘들고 아프다면 그것은 그속에 집착이 있고 욕망의 뿌리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사랑만 하면 그들 때문에 괴롭고 힘들고 속상하고 상처받고 분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랑은 저리 밀쳐내고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바로 고통과 괴로움, 아픔으로 발전한다.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들을 내 욕심을 채우는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이나 남편, 또는 아이들 할 것 없이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들을 통해 나의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135쪽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엄마는 왜 우리에게만 책임이 있느냐고 항변한다. 내 말은 엄마에게 모든 책임 있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189쪽

그동안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던 남편도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남편, 어느 아빠가 가정을 망치고 아내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겠는가.-190쪽

엄마들은 상담 중에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우리 애가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어요. 쯧쯧쯧."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말한 대로 됩니다."
"어마나!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엄마가 자녀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넌 커서 뭐가 될래!" 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너는 커서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 거야. 엄마가 볼 때는 틀림없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나쁜 말이 있다.
"너, 엄마처럼 살고 싶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엄마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형상화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엄마가 자꾸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닮아간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엄마가 늘 밝게 웃고,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떨까? 그들은 '인생이 아름답다'는 씨앗을 가슴에 심는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영혼의 힘이 생긴다.-210쪽

-칭찬보다 더 귀한건 믿음-
엄마들은 칭찬을 통해 아이들이 빨리 바뀌어 확실한 효과를 '어서어서' 보고 싶어 한다. 즉 사심을 가지고 칭찬을 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칭찬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장사를 하는 것과 같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 것은 조련사가 진실한 마음을 담아 전달했기 때문이다.
입으로 하는 칭찬보다 우리 아이가 이미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깊은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칭찬을 미끼로 아이와 흥정하고 거래하지 말고, 따뜻하게 격려해줄 사람이 엄마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믿음은 칭찬보다 훨씬 진화한 마음의 상태이다.
엄마가 아이를 완전히 지지하며 믿음직스럽게 바라볼 때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225쪽

"넌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 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은 실제로 노력을 안 한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노력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삶을 변화시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미리 포기하라는 뜻이다. 스스로 자신의 실천 능력을 낮게 생각하게 한다.-235쪽

"쓸데 없는 짓 하고 있네. 어서 들어가서 공부나 해!" 엄마들의 눈에는 공부를 제외하고는 다 쓸데 없는 일로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엄마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거시 가장 쓸데없는 짓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할 정도로 도전했더 '쓸데없는 짓'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고 더 많은 지혜를 얻게 한 소중한 기회였다.
"쓸데없는 짓 하고 있네." 라는 말은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의 싹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쓸데없는 짓'이 앞으로 어떤 기회를 제공하고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엄마 말만 잘 듣고 자란다면 결국 엄마만큼의 인새을 살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대신 "해봐! 한번 해봐. 너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스스로 찾아보자!"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지혜롭게 도전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진다.
아이들이 철이 들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어른처럼 대하라. 스스로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양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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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4-2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한테는 모든 창조 힘이 있는데, 어버이가 미처 못 느끼거나 제대로 안 바라볼 뿐이겠지요. 그리고, 어버이 스스로 아이와 같이 태어나 아이와 같은 나날을 보낸 줄 떠올릴 수 있으면 될 테고요.

hnine 2012-04-23 14:51   좋아요 0 | URL
이땅의 엄마들, 특히 우리 나라의 열성 엄마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책입니다. 자식의 성공을 디자인하고, 관리하고, 확인하는 것이 주업이 되어버리는 엄마들, 그것이 곧 자기의 일이 되어버린 엄마들. 어쩌면 성공 위주의 우리 사회의 제1희생물인지도 모르겠어요.

프레이야 2012-04-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어제도 꽃내음 가득 안고 오셨어요?
나인님 댓글은 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줘요. 고마워요.^^
109쪽의 인용글이 와닿네요. 영적발전소라니! 노력해야겠어요.

hnine 2012-04-23 14:53   좋아요 0 | URL
천리포 수목원은 어제가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에 갔을 때에는 한여름이었고 어제는 그때와 또다른 꽃 구경을 많이 했답니다. 제가 태어나서 그렇게 크고 다양한 목련을 보기는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가는 길에 동백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어있던지. 수목원이 아닌 길가, 담장, 이런 곳에요.
위의 책은 아직도 읽는 중입니다. 읽으면서 정리하고 있어요 ^^

2012-04-23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4-23 15:06   좋아요 0 | URL
그럼요, 늘 '기본'이 더 어려우니까요. 한쪽 극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도가 보통 우리 인간들이 닿을 수 있는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요.
친구들을 만나면 저는 몇마디 입을 열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때가 있어요. 제가 아이를 늦게 나아서 제 친구들 아이 중에는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많은데, 만나자 마자 자식 얘기로 시작해서 자식 얘기로 끝날 때가 많으니까요. 본인의 일상이란 전부 그 자식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고요. 아직 살 날이 많은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것들도 있을 듯 한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거죠.
저자는 그런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쓴 것이 아닐까 해요. 엄마도 인간인데 늘 행복할 수야 없겠지요. 단, 웃음과 눈물이 다 자식에 의해 지어지고 거두어진다면 그건 잘못되었다는 것, 저자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저런 책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종종 읽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참고서예요. 내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주는.
요즘 저도 다 허무하다, 허무해...이러며 사느라 봄도 꽃도 다 슬프게만 보이고 있는 차에, 따끔한 저자의 일침에 정신 좀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시는 글들은 빼놓지 않고 잘 읽고 있으면서 저도 인사도 못 남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