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화요일에 갈까?"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특별휴가가 있을거야."

이번에는 아내한테 말했다.

"그럼 월요일에 있군요."

"응."

"이번엔 누군데요?"

"누군가야." (51쪽)

아내는 남편에게 왜 물었을까. 이번엔 누구냐고.

주인공 남자의 직업은 형무소 간수. 사형 집행이 있은 다음날 집행관에겐 특별 휴가가 주어진다.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덧붙였다.

"형태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이지. 아무리 우수한 기계라도 많이 만들다 보면, 반드시 불량품이 나오지 않는가.  그 불량품을 어떻게 하겠어? 버릴 수밖에 없지. 사람도 이렇게 많이 있다 보면 마찬가지라고. 불량품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거지." (68쪽)

1966년, 스무살 갓 넘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소설가라는 이름을 처음 달아준 작품인 <여름의 흐름>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잘릴 것 같아 썼다는 소설이다. 이 작품이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고 이어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의 영예까지 안겨주었으니, 이후의 어떤 작품보다 의미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무소 간수의 심리가, 제한된 대사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낚시라는 취미를 도입하여 집행과정과 낚시를 대비시킨 묘사가 눈에 띄었고, 이것은 남자의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설정에서도 마찬가지 효과를 주고 있다. 신참 간수를 등장시켜 차츰 적응해가는 기성 간수와 신참간수의 갈등을 대비시켰다. 중편 정도의 분량 속에 강렬한 인상을 주기 충분하게 마무리하였다.

또 한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좁은 방의 영혼>

병원 2인실에 입원한 주인공은 생명의 기한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침대에 누워 머리속으로 공간이동, 시간이동을 하여 다른 상황 속에 살아보는 것이다. 좁은 방의 영혼이 시간을 버텨내는 방법이다. 평소에 말 시키기 좋아하고 참견하기 좋아하여 주인공이 귀찮아하던 옆침대의 남자가 생의 마지막을 끔찍하게 맞이하는 것을 옆에서 다 지켜본 주인공은 다시 시작된 다음날 아침을 무심하고 공허하게 맞으며 일상을 시작한다.

뒤에는 단편소설 네 편이 실려있다.

<만월의 시> 이 사람의 작품엔 '달'이 참 자주 등장한다. 실험적이고, 문장력과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긴 하지만, 읽는 사람보다는 쓰는 사람에게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일 듯. 좀 지루했다.

다음 작품 <바다> 역시 소설이라고 하기보다 한편의 에세이의 느낌을 준 이유는 이야기의 구성때문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들다리를 건너다>를 읽기도 전에 '흔들다리라니, 무엇을 상징한다고 끌어다붙여도 다 말이 되겠군, 인생'을 포함해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문장이 늘어지는 느낌, 반복과 군더더기의 느낌도 들었다.

'달에 울다'라는 소설에서 달과 함께 중요한 소재로 도입되었던 새가 제목부터 나오는 <한낮의 피리새>가 마지막 단편이다.

이 작가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혼자이다. 외롭다. 그것이 작품의 소재이면서 주제이다. 인물이 혼자이다보니 달, 새, 개, 나무, 숲, 환상속의 기사 등을 주인공의 의식 속으로 끌어들인다. 간혹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출중으로 설정해놓는다. 그의 인터뷰 제목 '고독과의 대치'는 그의 이런 성향을 짧지만 잘 표현해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과 대치로 이어지는 생이란 참, 말만으로도 쓸쓸하고 외롭다. 고독에 항복하고 사는 것보다 덜 외로울까?

 

마루야마 겐지 책으로 읽은 세번째 책인데 아직은 <달에 울다>를 넘어서는 것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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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16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세 번째 작품을 읽으신다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작품도 읽으시겠군요.
차근차근 즐겁게 누리셔요~

hnine 2013-12-16 12:29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그러겠지요 ^^

꼼쥐 2013-12-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리뷰를 보니 관심이 가는 작가네요.

hnine 2013-12-17 16:23   좋아요 0 | URL
지금 막 <그리고 산이 울렸다> 리뷰 올리신 것 읽고 왔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거든요.
꼼쥐님도 마루야마 겐지의 책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자를 썰어넣고 설탕 부은 후 할 일은 숙성될때까지 기다리는 일

 

 

밀가루, 소금, 설탕, 우유, 계란, 이스트 섞고 나서 해야할 일은 1.5배 정도 부풀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다

 

 

씨를 뿌리고 잎이 나기까지 해야할 일, 역시 기다리는 일

 

 

배추와 속을 버무려 용기에 차곡차곡 담고 또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지 않고 되는 일이란게

 

 

있었던가?

 

 

세상을 잘 살아가는 비법이란게 혹시 있다면

 

 

그건 아마 기다리기를 잘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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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0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동안 즐거운 마음 되어
hnine 님한테 찾아올 아름다운 냄새와 빛과 무늬 한껏 누리셔요~

hnine 2013-12-10 21: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늘바람 2013-12-10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글에 용기 얻어 다시금기다리기를 해봅니다 저에대한 기대 시간이 흐르니 자꾸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hnine 2013-12-10 21:29   좋아요 0 | URL
포기라기 보다는 때로는 놓아주는 것도 꼭 나쁘지만 않은 것 같아요.
놓는 것도 아니면서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조바심 내는 것, 저에겐 그게 더 중증이랍니다 ^^

2013-12-10 0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12-10 21:34   좋아요 0 | URL
학교다닐 때는 남자 친구로부터의 연락도 기다려봤고, 그러다 실망하고 (^^), 실험할 땐 결과가 잘 나오기를 기다리고, 졸업을 기다리고, 시험본 후 결과를 기다리고, 아이가 자라길 기다리고...기다릴 일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한 계속되는것 같지요? 밥이 뜸들길 기다리고, 주전자에 물 올리고 끓기를 기다리고요.
그런데 갈수록 즉각적인 결과, 효과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저도 그렇지만 사회가 그렇게 부추키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카프카가 그랬대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조바심내는거라고요.
다시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기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3-12-1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아침부터 또 좋은 말씀에 기분 좋아져요. 이번주에 고흥유자로 유자차 만들었는데 아주 맛나네요. 향도 참 좋고 노오란 색깔에 마음도 환해지고. 감기조심 하시고 건강한 겨울 나세요^^

hnine 2013-12-13 00: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만드셨군요, 유자차! 전 손이 작아서 많이는 못하고 딱 열개만 가지고 만들었는데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요. 추위 많이 타고 과일 잘 안먹는 남편도 타주고, 고기 잴때도 쓰고, 고르곤졸라 피자 만들어서 (이건 아직 한번도 안해봤지만^^) 꿀 대신 유자청 발라서도 먹어보고, 만들면서 혼자 즐거운 상상을 했답니다.

프레이야 2013-12-12 23:40   좋아요 0 | URL
호호~ 잘하셨어요^^
유자청 올린 카나페도 최고!
화이트와인이랑요.

hnine 2013-12-14 06:51   좋아요 0 | URL
아하, 또 하나 아이디어 얻어갑니다. 유자청 올린 카나페! ^^

울보 2013-12-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
정말 마음속에 확 와닿는 말이네요,
기다림,
저도 그 기다림을 배워야 겠어요., 배워서 될일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도전해보려고요,,

hnine 2013-12-10 21:40   좋아요 0 | URL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기다림'이라는 말이 또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지요 ^^
잘 안되니까 자꾸 노력할 밖에요. 노력하면 조금은 달라지더라고요.
경험상, 늦어서 손해보는 것 보다, 조바심내고 불안해해서 손해보는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경험으로 배웠으니 실천을 하면 되는데 제가 성질이 무척 급한 편이라서요. 저에게 해주는 말이었답니다.

sangmee 2013-12-1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식도 그런거 같더라.
볶아치는거 보다 기다려 주는게 훨씬 어렵더라.
문제는 나이 들면서 성격은 더 급해진다는거....

hnine 2013-12-10 21:41   좋아요 0 | URL
그치? 우리들에게 기다림의 제1 실천 대상은 멀리 있지 않아 ^^
난 느긋한 남편과 10년 넘게 한집에 살다보니 그 영향인지 쪼금은 느긋해진 것 같기도 해. 그래도 아직 모자라지만.

마녀고양이 2013-12-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어려운 일이 바로 기다리는 일인거 같습니다.
그냥 막연한 불안감, 게으름이 현재 제 무기력을 자초하고 우울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실은 거꾸로일지도 몰라요,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게을러지는건지....

기다림, 실은 그게 인생인데, 잘 기다리는게 너무 어려워요.

hnine 2013-12-10 21:46   좋아요 0 | URL
어렵지요. 저도 사실은 한달 넘게 결과를 기다리던 일이 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완전 정서불안 상태였답니다.
그러다가 결국 결과가 나왔는데, 딱 예상한대로 결과가 나왔어요 (꽝! ㅋㅋ). 요행수를 바라느라 그렇게 불안했었나봐요. 결과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그러는데 꽤 걸리더군요.
한편 생각해보면 뭐가 되어가느라고 조바심내고 우울하고, 그런건지도 모르니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지 않나 싶네요. 느긋하게! 마녀고양이님, 화이팅!

페크pek0501 2013-12-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책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알라딘 책이 배송된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

hnine 2013-12-14 06:45   좋아요 0 | URL
지금쯤 받으셨겠네요?
전 오늘 배추김치 담가보려고 재료 주문해놓고 배송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오기 2013-12-1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취업서류 넣고 다음주 발표를 기다려요~~~~^^
기다리는 걸 잘 하는 일.... 세상을 잘 살아가는 법, 깊게 새겨 봅니다!

hnine 2013-12-14 08:55   좋아요 0 | URL
인재를 알아보는 곳이라면 순오기님을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
잘 기다리는 법 중엔 작은 일로 너무 깊게, 너무 오래 실망하지 않는 법도 포함되는 것 같아요.

하양물감 2013-12-15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기다리며 사는 것. 맞아요. 그렇지만 그냥 기다리는건 아니죠 ^^
준비없이 마냥 기다려서는 안된다는것, 철저한 준비 후에 기다림의 결과를 기대할수있겠죠.

hnine 2013-12-15 13:50   좋아요 0 | URL
저도 쓰고 나서 그 생각 했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안된다는거요. 다시 덧붙여쓰자니 그것도 그렇고 해서 그냥 두었어요. 하양물감님처럼 다 그렇게 알아서 이해하시리라 믿었지요 ^^

같은하늘 2013-12-1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려서 좋은글 담고 갑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해 버린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마음을 전해 볼까봐요...
아래 쓰신 <달에 울다>도 바로 대출신청했어요. ㅎ

hnine 2013-12-18 07:44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오랜만이시네요. 아이들도 많이 컸으리라 생각되는데 지금쯤 아이들과 촘촘한 방학 계획 세우고 있지 않으실까요?
기다리는 것보다 포기하는게 더 쉬울 때가 많지요. 아니, 포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다리는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잘때마다 쇠약해진다.

그들은 실컷 먹고 마시는데도, 오히려 살아갈 힘을 잃어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누군가를 몰아붙여 숨통을 끊어놓을 터무니없는 힘조차 없다.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도, 살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건이, 야에코가 아버지를 잃었던 그날에 일어났던 일이 가슴속에서 아직도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30년에 이르는 그 긴 꼬리도 이제 곧 끊어질 것이다. (102쪽)

다른 리뷰를 읽어보니 이 소설의 첫문장이 많이 인용되어 있기에 다른 문장을 골라보았다.

마루야마 겐지. 최근 에세이를 통해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된후, 아무래도 그 책 한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읽어보게 된 소설이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셨듯이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니, 첫 문장 들어가기 전 제목부터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달에 울다' 라니, 무슨 뜻일까?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중편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한 쪽을 넘지 않는 단락. 그림 같은 묘사.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 누군가의 깊고 낮은 울음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작가의 피와 살이 글자 속에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두 편의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외톨이이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거나 세상으로부터 등돌림을 당했다. 그래도 세상과 이어져있는 어떤 끈 하나를 잡고 구도의 길을 가듯이 생을 이어간다. <달에 울다>의 주인공에게 그 끈이 야에코였다면 <조롱을 높이 매달고>의 남자에게 그것은 조롱 속의 피리새였을까? 자의식의 대변으로 등장하는 법사와 무사, 다른 이와의 대화보다는 또다른 자기에게 말을 건네고 대답을 듣는 모습.

이 소설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인물들, 다른 세상, 다른 방식의 삶을 구경하게 된다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우리,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모르던 우리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는 생각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올 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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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12-07 18:26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등단작이라고 하는 소설을 오늘 배송받아서 읽을 참입니다.
그동안 제가 읽어본 몇권 안되는 일본 소설과 참 달랐어요. 일본 소설 읽을 때 저의 문제점 하나가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책에는 등장 인물이 많지 않아서 그 점을 피해갈 수 있었고요 ^^
<물의 가족>에도 야에코가 나오나요? 이 책도 보관함에 넣어두었답니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이 꽤 많더라고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파란놀 2013-12-08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의 각오>라는 책도 쓰고,
무엇보다, 저는 마루야마 겐지 작품으로 <산 자의 길>이 재미있었어요.
이 사람이 왜 시골에서 곁님이랑 둘이 살고, 아이를 안 낳으며,
머리를 박박 밀고...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솔솔 잘 풀어냈어요.
그런데, <산 자의 길>은 절판이 되었군요. 흠...

hnine 2013-12-08 06:59   좋아요 0 | URL
예, 한권 한권 찾아 읽어가려고요.
절판된 책은 도서관에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늘바람 2013-12-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읽은 최고라고 하시니 저도 올해가기전에 빨리 봐야겠어요

hnine 2013-12-08 13:41   좋아요 0 | URL
제가 올해 읽은 중 최고라고 했을 뿐 올해 나온 책도 아니랍니다. 시간 나실때 한번 읽어보세요.

2013-12-11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12-11 10:16   좋아요 0 | URL
궁금했는데 들러주셨네요. 반가와요.
제가 일본 소설을 잘 못 읽는데 이 책은 그 징크스를 무너뜨렸습니다. 지금도 저자의 다른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내용이 무겁긴 하지만 충분히 읽어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지만 아무것도 기다릴게 없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그게 더 끔찍하지 않나 싶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거죠? ^^
 
인격적 우주와 인간 에너지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지음, 이문희 옮김 / 분도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 이맘때, 평소에 한번 만나보고 싶던 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을 만난 자리에서, 샤르뎅 신부의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저자의 이름을 메모해놓고 1년여만에 읽게 된 책이다.

 

제목부터 얼른 의미가 와닿지 않더니 한권 끝까지 다 읽도록 이해하기 어려움은 계속 되었다.

저자인 샤르뎅은 1881년 프랑스 출생으로 30세에 신부가 되기까지 신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공부했다. 지질학과 고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에 파견되어 20년 이상 연구에 몰두, 베이징원인 화석을 발굴하기도 했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전 속에 함축된 인간의 의미에 대해 알고자 하였고 과학적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과학과 종교라는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주제이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과 종교는 각자 그 영역을 따로 갖는다고만 생각하고 있는데 종교란 과학과 달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종교 안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자연과학자이면서 종교인이기도 한 샤르뎅은 과연 이 두 분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그래서 우주의 미래를 예시하는 차원까지 끌어올려 종교와 과학 두 진영 어디로부터도 내몰리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학계로부터 예언자적 신학자로 추앙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바로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한 문장 한 문장이 무척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고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정신과 물질의 공존과 대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복수성과 단일성, 이것은 모든 물리학과 철학과 종교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는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인격화의 흐름에서 보면 복수성과 단일성에는 대립점이 없다. 다면 양면이 있을 뿐이다. 운동하는 실재에 두 방향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신과 물질은 각각 고정시켜서 실현 불가능한 추상적 개념 형태로 상징화할 때 상호 모순된다. 순수 복수성과 순수 단일성은 사물과 본성처럼 서로 뗄려야 뗄 수 없고 어느 것 하나도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 하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와의 종합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신도 (神마저도) 다수의 결합 없는 구성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정신과 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이 되는 물질이 있을 뿐이다. 세계에는 정신과 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물질이 있다. (18-19쪽)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본질적으로는 어느 것 하나도 다른 하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의존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읽은 것 같다. 정신과 물질, 따로 보지 않고 서로 연계된 개념으로 보아 '정신-물질' 이라고 표시하였다.

 

사람들이 쉽게 혼동하는데 정신적 사랑과 우정은 전혀 다르다. 얘욕이나 정신적 사랑은 본성상 다른 존재를 배제하거나 접근하는 존재의 수를 제한하며 양면성을 보인다. 우정은 구조적으로 다수에 공개되어 있고, 이 다수는 증가한다. (51쪽)

정신적 사랑과 우정의 차이는 대상의 수의 차이!

 

인간 에너지라는 것은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증가된 우주 에너지의 실제 증가분을 말한다.

'인간화된 에너지'의 기본 상태는 육체 에너지, 제어된 에너지, 정신화된 에너지라는 세 형태다.

1. 육체 에너지는 지상의 완만한 생물학적 진화로 우리살과 신경에 점차 축적되고 조화를 이루게 된 놀라운 '자연 기계'인 육체 안에 있다.

2. 제어된 에너지는 인간의 지체가 주변의 물리적 힘을 교묘하게 지배하여 '인공적 기계'의 도움으로 얻은 에너지다.

3. 정신화된 에너지는 우리의 자유로운 활동 안에 있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에너지는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사물들과 반성적이고 열정적으로 관계 맺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다.

이 세 형태의 에너지는 각기 별개의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 사이에 경계를 설정하기란 어렵다. 베르그송의 지적대로,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구별도 관습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

육체에 생기를 주는 힘은 어디서 오며 세계 전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75-77쪽)

쪼개고 구분하여 더 개념이 명확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환원주의), 그래서 많은 학문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갈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근래 '통합', '통섭' 등의 말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 아닌지.

 

인격 보존의 법칙

인격 보존의 법칙은 우주 안에서 정신의 상승은 비가역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의식의 새로운 정상은 한 번 도달하면 다시 내려오는 법이 없다. 생명이 물질에서 나왔으므로 우주는 '생명을 없앨 수' 없다. 사고도 생명에서 나오므로 '비인간화'할 수 없다. 전체로 보아 의식은 진전하되 후퇴할 수는 없다. (139쪽)

다른 것보다 우선 '생명이 물질에서 나왔으므로'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신학자로서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니. 정신과 물질을 따로 보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열심히 읽었으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위의 별점 세개는 엉터리다. 별점 표시를 안하면 리뷰로 등록이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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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6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7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7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런 연서, 이런 고백.

참 오랜만에 읽어본다.

 

 

 

 

전부 당신 같아서 붐비는 빛 한 올도 허투루 받을 수 없습니다.

천지사방 당신이니 암만 발버둥쳐도 나는 당신한테 머뭅니다.

그래요, 당신 만날 날부터 나는 속수무책입니다.

괜스레 내 자신이 못마땅해지더니 여태껏 한 가지 병을 앓으며 좀체 차도가 없습니다.

지금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곡진하게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이 아끼는 은바퀴 두 개의 안부를 엉뚱하게 묻는 게 전부였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내 바람은 당신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헤픈 봄볕을 한 줌도 자루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되지 않을 일임을 압니다.

그런데도 비워도 비워도 다시 당신이 들어차는 내 속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지천인 저 꽃잎들도 때가 되면 잎을 접을 줄 아는데,

마를 줄도 질 줄도 모르니 나는 어쩐다지요.

차라리, 철없고 씩씩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볕 때문에 눈이 시려 길게 쓰지 못하겠습니다.

각설하고 내 마음 읽으시거든 보리누름에는 걸음해주세요.

난출난출 보리잎 보며 어디쯤에 오시는 줄 알고 가만히 눈감겠습니다.

보리보다 노랗게 내 속 익기 전에 부디 당신이 먼저 와 주세요.

볕이 여간 흔전하지 않습니다.

 

 

 

 

- 김해민, <안부> 전문 -

 

 

 

원래 시집에는 줄바꿈 없이 쓰여져 있는 것을 여기 옮기면서 읽기 편하라고 임의대로 줄바꿈을 하였다.

이 편지의 상대는 사람일수도, 꼭 사람이 아니라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어떤 꿈, 바람일지도.

'처음부터 내 바람은 당신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다, 당신 하나로 다 채워진다는 뜻으로 읽는다.

'헤픈 봄볕을 한 줌도 자루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런 비유,

보리누름, 난출난출, 곡진하게 (이 낱말은 한자이지만), 흔전

이런 말들을 머리 속에 담아놓았다가 마땅한 때 써보고 싶어진다.

 

 

 

 

 

봉오리 터질라치면

득음 못한 팔도의 소리꾼들

선운사 뒷마당에 모여드는데

 

 

소리공부는 뒷전으로

며칠째 무리지어 다니며

빨간 복분자술을 찾는가 싶더니

 

 

오늘 예불 절 새벽 빗속에

더러는 모가지를 꺾으며

고수도 없이

다들 한 소리 얻었단다

 

 

 

 

-김해민, <동백> 전문-

 

 

 

 

시 속에서 제목인 동백이란 말을 한번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 저렇게 표현했다.

 

 

사실 이 시집에는 가슴 멍해지는 시들이 잔뜩.

 

 

 

어느 밤 응석을 부리고 싶었던지 나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외할머니는 낮에 이웃에서

놓고 간 삶은 옥수수 중 하나를 주며 달랬다

뿌리치며 훌쩍거리다 난감한 빛이 역력한 주름

깊은 선량한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그예

울음보를 터뜨렸다

가진 것이라곤 남은 세월뿐인 외할머니

우두커니 앉아 다시 말이 없었다

 

 

 

예순 갑자 다 돌지 못하고

폭설 내리던 어느 새벽녘 버선신은 채

오르골여인과 함께

외할머니 하얀 길 떠나셨다

 

 

 

 

-김해민, <외할머니> 부분 발췌-

 

 

 

 

이렇게.

...

 

 

 

 

 

 

 

 

 

 

 

 

 

 

 

 

 

 

 

 

김해민 <외로울 때는 귀가 더 밝아진다> 2012, 화남의 시집 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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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 2013-12-0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떠한 삶을 살면 저러한 언어를 토해낼 수 있을까... 머리로는 조합할 수 없는, 오로지 가슴에서 솟아 나오는 말들... 새로운 우주를 하나 담아갑니다.
:)

hnine 2013-12-05 11:38   좋아요 0 | URL
Tomek님의 이 댓글도 참 멋진걸요 ^^
시 하나에 새로운 우주...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