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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화요일에 갈까?"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특별휴가가 있을거야."
이번에는 아내한테 말했다.
"그럼 월요일에 있군요."
"응."
"이번엔 누군데요?"
"누군가야." (51쪽)
아내는 남편에게 왜 물었을까. 이번엔 누구냐고.
주인공 남자의 직업은 형무소 간수. 사형 집행이 있은 다음날 집행관에겐 특별 휴가가 주어진다.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덧붙였다.
"형태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이지. 아무리 우수한 기계라도 많이 만들다 보면, 반드시 불량품이 나오지 않는가. 그 불량품을 어떻게 하겠어? 버릴 수밖에 없지. 사람도 이렇게 많이 있다 보면 마찬가지라고. 불량품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거지." (68쪽)
1966년, 스무살 갓 넘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소설가라는 이름을 처음 달아준 작품인 <여름의 흐름>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잘릴 것 같아 썼다는 소설이다. 이 작품이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고 이어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의 영예까지 안겨주었으니, 이후의 어떤 작품보다 의미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무소 간수의 심리가, 제한된 대사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낚시라는 취미를 도입하여 집행과정과 낚시를 대비시킨 묘사가 눈에 띄었고, 이것은 남자의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설정에서도 마찬가지 효과를 주고 있다. 신참 간수를 등장시켜 차츰 적응해가는 기성 간수와 신참간수의 갈등을 대비시켰다. 중편 정도의 분량 속에 강렬한 인상을 주기 충분하게 마무리하였다.
또 한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좁은 방의 영혼>
병원 2인실에 입원한 주인공은 생명의 기한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침대에 누워 머리속으로 공간이동, 시간이동을 하여 다른 상황 속에 살아보는 것이다. 좁은 방의 영혼이 시간을 버텨내는 방법이다. 평소에 말 시키기 좋아하고 참견하기 좋아하여 주인공이 귀찮아하던 옆침대의 남자가 생의 마지막을 끔찍하게 맞이하는 것을 옆에서 다 지켜본 주인공은 다시 시작된 다음날 아침을 무심하고 공허하게 맞으며 일상을 시작한다.
뒤에는 단편소설 네 편이 실려있다.
<만월의 시> 이 사람의 작품엔 '달'이 참 자주 등장한다. 실험적이고, 문장력과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긴 하지만, 읽는 사람보다는 쓰는 사람에게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일 듯. 좀 지루했다.
다음 작품 <바다> 역시 소설이라고 하기보다 한편의 에세이의 느낌을 준 이유는 이야기의 구성때문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들다리를 건너다>를 읽기도 전에 '흔들다리라니, 무엇을 상징한다고 끌어다붙여도 다 말이 되겠군, 인생'을 포함해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문장이 늘어지는 느낌, 반복과 군더더기의 느낌도 들었다.
'달에 울다'라는 소설에서 달과 함께 중요한 소재로 도입되었던 새가 제목부터 나오는 <한낮의 피리새>가 마지막 단편이다.
이 작가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혼자이다. 외롭다. 그것이 작품의 소재이면서 주제이다. 인물이 혼자이다보니 달, 새, 개, 나무, 숲, 환상속의 기사 등을 주인공의 의식 속으로 끌어들인다. 간혹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출중으로 설정해놓는다. 그의 인터뷰 제목 '고독과의 대치'는 그의 이런 성향을 짧지만 잘 표현해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과 대치로 이어지는 생이란 참, 말만으로도 쓸쓸하고 외롭다. 고독에 항복하고 사는 것보다 덜 외로울까?
마루야마 겐지 책으로 읽은 세번째 책인데 아직은 <달에 울다>를 넘어서는 것이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