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잘때마다 쇠약해진다.

그들은 실컷 먹고 마시는데도, 오히려 살아갈 힘을 잃어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누군가를 몰아붙여 숨통을 끊어놓을 터무니없는 힘조차 없다.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도, 살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건이, 야에코가 아버지를 잃었던 그날에 일어났던 일이 가슴속에서 아직도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30년에 이르는 그 긴 꼬리도 이제 곧 끊어질 것이다. (102쪽)

다른 리뷰를 읽어보니 이 소설의 첫문장이 많이 인용되어 있기에 다른 문장을 골라보았다.

마루야마 겐지. 최근 에세이를 통해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된후, 아무래도 그 책 한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읽어보게 된 소설이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셨듯이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니, 첫 문장 들어가기 전 제목부터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달에 울다' 라니, 무슨 뜻일까?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중편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한 쪽을 넘지 않는 단락. 그림 같은 묘사.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 누군가의 깊고 낮은 울음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작가의 피와 살이 글자 속에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두 편의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외톨이이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거나 세상으로부터 등돌림을 당했다. 그래도 세상과 이어져있는 어떤 끈 하나를 잡고 구도의 길을 가듯이 생을 이어간다. <달에 울다>의 주인공에게 그 끈이 야에코였다면 <조롱을 높이 매달고>의 남자에게 그것은 조롱 속의 피리새였을까? 자의식의 대변으로 등장하는 법사와 무사, 다른 이와의 대화보다는 또다른 자기에게 말을 건네고 대답을 듣는 모습.

이 소설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인물들, 다른 세상, 다른 방식의 삶을 구경하게 된다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우리,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모르던 우리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는 생각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올 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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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12-07 18:26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등단작이라고 하는 소설을 오늘 배송받아서 읽을 참입니다.
그동안 제가 읽어본 몇권 안되는 일본 소설과 참 달랐어요. 일본 소설 읽을 때 저의 문제점 하나가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책에는 등장 인물이 많지 않아서 그 점을 피해갈 수 있었고요 ^^
<물의 가족>에도 야에코가 나오나요? 이 책도 보관함에 넣어두었답니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이 꽤 많더라고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숲노래 2013-12-08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의 각오>라는 책도 쓰고,
무엇보다, 저는 마루야마 겐지 작품으로 <산 자의 길>이 재미있었어요.
이 사람이 왜 시골에서 곁님이랑 둘이 살고, 아이를 안 낳으며,
머리를 박박 밀고...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솔솔 잘 풀어냈어요.
그런데, <산 자의 길>은 절판이 되었군요. 흠...

hnine 2013-12-08 06:59   좋아요 0 | URL
예, 한권 한권 찾아 읽어가려고요.
절판된 책은 도서관에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늘바람 2013-12-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읽은 최고라고 하시니 저도 올해가기전에 빨리 봐야겠어요

hnine 2013-12-08 13:41   좋아요 0 | URL
제가 올해 읽은 중 최고라고 했을 뿐 올해 나온 책도 아니랍니다. 시간 나실때 한번 읽어보세요.

2013-12-11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12-11 10:16   좋아요 0 | URL
궁금했는데 들러주셨네요. 반가와요.
제가 일본 소설을 잘 못 읽는데 이 책은 그 징크스를 무너뜨렸습니다. 지금도 저자의 다른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내용이 무겁긴 하지만 충분히 읽어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지만 아무것도 기다릴게 없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그게 더 끔찍하지 않나 싶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