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빵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냥 평범한 식빵.

집밥이 아니라 집빵.

내맘대로 두께를 조절할 수 있으니 두툼하게 잘랐다.

식구들에게는 사과잼을 내주었다. 너무 맛이 없는 사과 구제 차원에서 만들어놓았던 잼.

나는 그냥 먹는다. 빵만. 오로지 빵만.

그 안에도 충분한 맛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가하면 이렇게 달다구리 케잌류가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이런 달다구리는 식사 대용이 아니라 후식용으로 더 어울리지만,

그런거 상관없다. 기분이 문제이지.

늘 설탕, 우유 섞어 커피 마시는 내가, 유일하게 블랙으로 커피를 마시는 때는 이런 빵을 먹을때.

 

 

 

두 종류의 빵.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고, 굽는 동안 냄새도 완전 다르다.

 

식빵은 발효빵이기 때문에 발효 시간을 포함시키면 보통 3-4시간 걸리고, 케잌류는 1시간 정도면 만들수 있다.

식빵 구울때 냄새, 아늑하고 차분하고 안정된 냄새.

책으로 치자면 읽고 또 읽어 천천히 감동이 오는 시집, 세계 명작, 고전.

피아노곡으로 치자면 하농, 체르니, 바하 인벤션, 평균율.

 

 

케잌 구울때 냄새, 달콤하고 잠자던 감각이 열리고 흥분시키는 냄새.

책으로 치자면 반전 뛰어난 소설, 흥미진진 여행기, 추리소설.

피아노곡으로 치자면 멘델스죤, 쇼팽, 리스트.

 

 

먹기만 할때 모르던 기분을 만드는 동안 느낀다.

 

 

 

 

 

 

벌써 2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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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2-0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과 클래식이야기로 책 써도 대박?ㅎ
어제 친구가 맛있는 빵집 데려가서 밤식빵이랑 다른 종류 2개 사줬는데 부드러우면서 쫀득하더라구요.
집빵 같았다는... 전 빵순이ㅎ

hnine 2015-02-01 09:26   좋아요 0 | URL
부드러우면서도 쫀득이라...무슨 빵이었을까요?
만들 수 있는 빵의 종류가 많으면 여러 가지 기분을 느낄 수 있을텐데 만들 수 있는게 두어가지 정도 밖에 되지 않네요.
밤식빵도 많이들 좋아하는 빵인데 이름엔 `식빵`이란 말이 들어가지만 밤을 설탕이나 시럽에 조려서 넣기 때문에 식빵보다 훨씬 달달하지요. 저희 집에도 얼마전에 밤이 많이 있어서 다 어떻게 먹나 했었는데 밤식빵을 떠올렸으면서도 밤 조리기가 귀찮아서 안했어요 ^^

세실 2015-02-0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올리려고 했는데 댓글에 사진은 올라가지 않네요.
빵 속에 콩떡처럼 들어가 있어요.
밤도 듬뿍^^

hnine 2015-02-01 10:33   좋아요 0 | URL
아이쿠, 제가 공연히 세실님 번거롭게 해드렸나봐요, 사진까지 올려주려 하셨다니.
콩은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도 맛있고 영양도 좋아요.
밤까지 들어갔다니 맛있었겠어요.
검은 콩, 완두콩 넣어서 찰떡 만들어본 적 있는데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이야기네요. 몇년 전엔 찹쌀가루에 콩과 견과류를 넣어 속은 떡처럼 쫄깃하게, 겉은 바삭하게 굽는게 아주 유행하기도 했었지요.

2015-02-0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1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2-0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운드 케잌 같아요. 예전에 파운드 케잌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너무 달아서 잘 안 먹고 저는 마늘빵을 좋아하죠.
마늘과 버터와 하니가 적절히 녹아든 맛. 커피와 같이 먹으면 그 맛이란...!
빵맛을 피아노 곡과 비교를 하시다니 굉장한 심미안이신데요?.^^

hnine 2015-02-01 20:48   좋아요 0 | URL
파운드 케잌이라는 이름의 유래 아시지요? 설탕과 밀가루와 버터가 1 파운드씩 들어간다는...그러니 얼마나 달겠어요 ㅋㅋ
마늘빵 맛있지요. 어떻게 빵과 마늘을 조합할 생각을 해내었는지 모르겠어요.
위의 두 종류의 빵 맛이 너무 다르니까 저절로 비교를 해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림에 대해 잘 알았다면 그림으로 비유를 해보았을것이고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다면 꼭 맞는 단어로 표현을 했을텐데 그러질 못하니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비교를 해보았어요 ^^

페크pek0501 2015-02-0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을 잘 감상하며 내려오니...
벌써 2월입니다...

hnine 2015-02-02 16:43   좋아요 0 | URL
네, 벌써 2월이네요. 1월은 좀 긴장 되고 지난 해의 습관에서 아직 못벗어나 불안정한 느낌이 있는데 2월은 점차 안정되어 가는 달인것 같아요 그러다가 3월이 되면 또 웬지 들뜨는 느낌, 봄이라서 그럴까요?
저는 올해 시작이 그랬던 것 처럼 2월이 되도록 울적하고 가라앉은 기분의 계속이어요. 뭐, 일년중 350일쯤은 그런 저이니까 새삼스러울것도 없지만요 ^^

nama 2015-02-0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이면 생협에서 사온 쌀식빵과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드레싱한 샐러드를 아침으로 먹는데 그럴때마다 빵을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거든요. 탐스런(?) 빵에 곁들인 음악 얘기라...멋져요.

hnine 2015-02-04 05:12   좋아요 0 | URL
건강식이네요, 쌀식빵과 오일드레싱 샐러드.
빵은 가끔 만들면 재미있지요. 먹는 시간 대비 걸리는 시간이 길지만 만드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좋고요. 그래서 저도 가끔, 아주 가끔만 만들어요 ^^
빵은 다 만들어져서 입으로 들어갈 때보다 사실 저렇게 오븐에서 꺼낸 후 슬라이스 할때가 제일 기분이 좋답니다.

Nussbaum 2015-02-06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못볼것을 봤습니다.

2월 첫 주 매우 바쁘게 보내다가 이제 오늘밤부터 주말까지 뭘 좀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너무 맛있어 보입니다. ㅠㅠ
빵은 내일 사러 가기로 하고 오늘은 늦었으니, 코코아라도 한 잔 타야겠습니다.

어느새 2월도 지나가고 있네요 ~~

hnine 2015-02-06 22:17   좋아요 0 | URL
하하, Nussbaum님. 내일이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으니 맛있는 빵 내일은 드시기 바랄께요.
빵 중에 Nussbaum님 닉네임과 같은 돌림자 들어가는 빵 있어요. 바움쿠헨 (Baumcuchen이던가? 정확한 철자는 모르겠네요 독일어인데)~ ^^ 나무결 무늬가 들어있는 케잌이지요.
코코아도 좋지요. 코코아라는 이름 조차 오랜만에 들어봐요.
 

 

 

 

 

 

 

 

 

 

 

 

 

 

 

 

 

 

 

 

 

 

 

 

 

 

 

 

 

 

 

 

 

 

 

 

 

 

 

 

 

 

 

 

쉽게 끝이라고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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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1-28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저 때의 카네이션 한 송이가 아직도 멀쩡해요. 불사의 카네이션인가 루스커스 같은 그린 종류는 한달도 두달도 너끈히 볼 수 있는 그린이겠네요. still 고요하고 보드랍습니다.

hnine 2015-01-29 05:45   좋아요 0 | URL
전 카네이션이 저렇게 오래가는지 몰랐어요.
잘 마른 얘네들은 제가 길이길이 간직하려고요.

서니데이 2015-01-28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은 마른 것처럼 보이는데, 잎과 줄기 부분은 파란 색 그대로 있어서인지, 생화와는 또다른 느낌이 있어요. 지금도 참 예뻐요.^^

hnine 2015-01-29 05:47   좋아요 1 | URL
꽃은 활짝 피었을때 그때의 모습이 절정이고 시들기 시작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시들어가는 과정, 또 말라가는 과정도 하루 하루 같은 날이 없더라고요. 제2라운드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다른 느낌으로 다른 즐거움을 주더라고요.

수이 2015-01-28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_ 이 꽃_ 이리 섣부르게 말하면 안되는건데_ hnine님 같아요.

hnine 2015-01-29 05:49   좋아요 0 | URL
꽃을 좋아하다보면 좀 닮아갈까요? 그리되면 좋겠어요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요 ^^

2015-01-28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1-29 05:54   좋아요 0 | URL
맺는 포인트가 언제가 될지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최소한 제가 생각하던 그 시기, 즉 시들기 시작하는 시점이 꽃의 끝이 아니더라고요.
수분이 다 빠져나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겠다 생각이 들고, 언제가 끝인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해요.

nama 2015-01-29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 정물화에서 말하는 vanitas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이네요. 인생무상, 허무함이 느껴지면서 약간은 퇴폐적인 아름다움에 섬뜩해지기도 해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어디까지나 제 감상입니다.

hnine 2015-01-30 00:07   좋아요 0 | URL
저 이렇게 단어 하나씩 알아가는거 좋아해요. vanitas라는 말을 오늘 처음 알게되었네요.
nama님의 이 댓글이 제 사진보다 몇배 더 멋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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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1-2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알라딘에서 예쁜 꽃 사진 올려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이름은 잘 모르지만, 예뻐서 사진을 크게 하고 보았어요. 뒤의 사과와 함께 있으니 정물화 같은 느낌도 들었구요.
hnine님, 편안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hnine 2015-01-27 22:03   좋아요 1 | URL
예, 오늘 알라딘에 꽃 사진 많이 올라오기에 저는 며칠 있다가 올릴까 하다가 그냥 올렸네요.
꽃은 살아있는 정물이지요.
서니데이님도 따뜻하고 편한 밤 보내세요.

수이 2015-01-2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_ 심장 어택 당했어요.

hnine 2015-01-27 22:08   좋아요 0 | URL
꽃이 오른 쪽으로 약간 기우뚱 하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생각하는 꽃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냥 받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수고 밖에 한게 없지만, 저 꽃이 누군가에게 키워져서 꽃 피고 또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제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단계와 수고를 거쳤을까요.
예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이드 2015-01-2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물화 같은 느낌이에요. 생화도 드라이 플라워도 모두 다요. 그러고보면 hnine님께는 늘 그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말이죠. 저는 뭘 봐도 늘 꽃만 보여서 hnine님 사진들 보니 그런 분위기가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정물화 같은 느낌이다. 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란디전 보고 오셨다고 하니, 제가 무슨말 하고 싶은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hnine 2015-01-29 16:22   좋아요 1 | URL
다른 사물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꽃이 정물이 될때는 활짝 피어 있을 때와 다른 느낌과 생각을 주어요. 조용히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것들이 건네는 얘기를 듣는 것은 그걸 듣고 있는 당시 제 마음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직 생생할때의 생화는 아름답다는 느낌 때문에 다른 생각까지 할 여유가 없는 반면 말라가는 꽃을 보면서는 이 생각 저 생각 참 많이 하게 되어요. 전에 모르던 즐거움이고 기쁨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네가 바라는게 뭐지? 대체 네가 바라는 게 뭐냐고?"

그가 반복해서 자신에게 물었다.

"바라는 것?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이라는 자신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에 살던 것처럼 행복하고 기쁘게."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데? 네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았다고?"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그는 행복했던 지난 삶에서 최고로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지난 삶에서 가장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그 당시에 만족스럽게 여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한 인생의 다른 모든 순간들이 그랬다. 그 시절, 어렸을 적에는 그것이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만 가지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정말로 행복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행복을 느꼈던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잘못 산 것은 아닐까?' 그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살았을 뿐인데 어떻게 잘못 살 수가 있지?' (129-130쪽)

 

육체의 고통은 심해져가고 죽음이 점점 다가옴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반 일리치가 영혼의 소리와 대화하는 부분이다.

톨스토이가 거의 60세가 되어 쓴 이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제목에서와 같이 죽음을 전제로 하고 시작한다.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기정 사실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여러분.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군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특별히 다른 서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된다. 그 어떤 인간에게도 죽음만큼 심각한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남을 해친 일도 없고 그 당시 당연히 해야할 일들을 하면서 살았는데도 그 순간을 되돌이켜 생각할때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삶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도 언젠가 죽음을 앞에 두고 이반 일리치와 비슷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게 될텐데, 그 장면은 바로 이 소설의 이 장면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순수하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아주 어린 시절, 특별히 내일을 계획하고 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을 때를 지나면 좀처럼 다시 맞기 힘드는 것인지. 설사 그 이후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맞더라도 죽음 앞에선 그게 진정 행복한 순간, 되돌리고 싶은 순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에는 두편의 짧은 글이 더 실려있다. 공통점은 모두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죽음>에서는 제목과 같이 두 사람의 죽음과 한 그루 나무의 죽음을 내용으로 한다. 죽음 하면 사람이나 동물의 죽음만 떠올리는 독자들이라면 다 읽고 제목이 왜 세죽음인지 놓칠 수도 있다. 또 한편의 짧은 글 <습격>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처벌받지 않는 현장,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지구 어느 편에서는 계속되고 있는 전쟁. 실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계속되는가보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

 

지난 연말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읽으면서, 함축된 묘사보다 설명적 문장들로 이루어져있는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무슨 자기개발서 같은 느낌도 살짝 느껴질정도로 톨스토이는 그 주제를 혹시 독자가 놓칠까봐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아니면 어떤 주제 전달이 그 작품을 쓰는 유일한 목적이라는 듯이 너무 드러내놓고 강조하는 것이 독자로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개발서는 좀 심했고, 자기성찰서라고 바꿔부른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분명한 주제, 분명한 전달 방식.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고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 것은 여전하다 할지라도 톨스토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점을 넘어서고 남는 거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의 깊은 사유의 흔적이 구절 구절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기가 인생을 통해 경험하고 또 고뇌하고 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며 느낀 것들을 남기기 위해서 그에게 작품속 서사는 그저 수단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이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그 이상의 의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고등학교 3학년 말 겨울방학에 보고난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 못하고 있는데 아마 이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그렇게 되지 않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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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1-2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소설인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책을 꺼내 보았답니다.(그러니 책은 읽어서 뭐하나, 이러면서요.)
저는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두 번째 권으로 읽었네요.

톨스토이는 소설가로선 그렇죠? 인생론을 쓰는 작가로 딱 알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님 덕분에 다시 펼쳐 봐야겠어요. ^^

hnine 2015-01-24 16:25   좋아요 0 | URL
pek님, 다시 읽어보시면 혹시 느낌이 다를지도 모르겠어요. 전 얼마전에 읽은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별점을 세개로 끝냈는데 보시다시피 이 책은 다섯개를 주었어요. 작품 차이라기보다 이제 톨스토이에 대 조금 더 이해해가는 과정이고, 단점이 장점보다 더 먼저, 쉽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일거예요.
톨스토이 자신이 무척 험난하고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인생론>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있어 소설도 어쩌면 다른 형식의 인생론일지도 모르겠어요.
 

 

 

 

 

 

 

 

  

 

창비 시선 297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2009년 초판 발행

 

 

 

 

 

 

 

 

 

 

 

 

 

 

 

 

이 시인을 알게 된 건 어느 분 서재에서 다음 시를 만나고서이다.

 

 

 

봄은 오네

강가에는 한 무리의 철새가 모여 있네

모여 있는 곳으로 봄은 오네

 

 

강물은 반짝이고

흐름은 졸리네

 

 

한 구의 시신(屍身)을 끌고 오네

 

 

나는 열두살

오후 세시

 

 

 

- 입춘 -  전문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살이 어떻고, 새로 싹이 돋는 것을 보고, 이런 뻔한 말 대신 시인은

철새가 모여 있는 것에서,

얼었던 강이 녹아 마침내 반짝거리는 모습, 하지만 아직은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물에서 봄의 기척을 느꼈다.

한 구의 시신을 끌고 온다는 표현은 겨울을 거쳐서만, 겨울을 겪어내고서야 오는 봄의 특성을 나타내었다. 봄이 가진 양면성, 봄이 보여주는 따뜻함 이면의 처절함을 인식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수수께끼 같은 마지막 연. '열두살, 오후 세시'의 의미 때문에라도 이 시를 자꾸 자꾸 읽어보고 있다.

 

 

바로 옆 페이지에 봄에 관한 시가 또 있다.

 

 

 

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 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 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을

땅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슬픔이라고 불러야 하나

 

 

-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 전문

 

 

 

흙을 갈아 엎는 것 조차 시인은 건성으로 하지 못하는구나. 새로 겉으로 올라오는 흙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캄캄한 속으로, 축축한 속으로 들어갈 흙. 함께 묻혀 들어갈 겨울의 기억을 시인은 그냥 보내지 못한다.

 

우리도 곧 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을텐데. 어떤 사람은 무덤덤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새로 오는 봄에 희망을 걸 것이고, 어떤 사람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지 못느낄 만큼 퍽퍽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눈물도 많고 슬픔도 많을 극소수 문제적 인간들만이 이 시인의 마음이 되어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문제적 인간을 만난 기쁨에 몇 자 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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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3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3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3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4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Nussbaum 2015-01-2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에 더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직 차갑지만 봄은 또 그렇게 오고 있겠죠? 곧 이어 차례차례 등장할 hnine님의 꽃사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hnine 2015-01-24 09:14   좋아요 0 | URL
기대해주시는 분을 생각해서 꽃 움직이는 시기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고 잘 찍어보겠습니다.
이 시집의 시들을 떠올리면 꽃을 보며 마음이 축축해질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