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오후 2시 -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 이야기
김미경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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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를 읽고난 소감이 괜찮았던지라 그녀가 교장으로 있는 sunjooschool.com에 고정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  김 미경의 단행본이 나왔다고 할 때 조금은 기대를 했다. 그녀 역시 짧지 않는 세월 한국에서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인데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고 2005년에 미국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열 여섯 된 딸을 혼자 키우며 살고 있다. 아마 책 표지의 '두 번째 삶 이야기'라는 말은 그녀의 이런 이력을 뜻하는 것 같다. 뉴욕의 브루클린이란 낯선 땅에 사는, 올 해 나이 쉰의 그녀의 인생은 하루로 친다면 오후 2시쯤 되지 않을까 해서 붙친 제목이란다. 내가 나고 자란 땅이 아닌 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며 그 동안의 자기 생활 방식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 ('나 지금 뉴욕에서 철학한다'), 사춘기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이야기 ('나 지금 뉴욕에서 엄마한다'), 뉴욕 생활 즐기기 ('나 지금 뉴욕에서 논다'), 그리고 영어 이야기 약간 ('나 지금 뉴욕에서 영어한다'), 이 책은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다.
사진이 군데 군데 들어가있고 저자의 글발이 있어서 읽기는 금방 읽힌다. 하지만 그 글발이 김 선주의 그 글발과는 다르다. 읽으면서 느낌도 많이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왜 김 선주의 책을 읽으면서의 공감이 이 책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터라 어쩔 수 없이 여기에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겠다. 김 선주의 책은 글에 충실하다. 사진이 약간 첨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글을 넘어서지 않는다. 한 꼭지마다 해야할 말들을 넘치지 않게, 분명하게 하고 있다. 빈 지면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사진이 비교적 많다. 그것도 모두 칼라 사진들. 빈 지면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페이지는 빨리 넘어가지만 그만큼 마음 속에 채워지는 것이 많지는 않다. 김 선주의 문체에 비해 이 책 저자의 문체에서는 과장이 느껴진다. 쓰다보면 자기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과장된 표현을 쓰는 수가 있겠지만 그게 지나치면 금방 표가 나며 글의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과장된 표현이 눈에 많이 띄었고 생각의 비약이 있었다. 또 하나, 글의 소재가 다르다. 김 선주의 책은 사회 현상, 정치 현실, 변해가는 세태 등을 소재로 삼은 반면 이 책은 그저 일상이 주 소재이다보니 뉴욕이란 곳에서 몇 년 살다보면 이 정도는 쉽게 나올 수 있는 소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감히 드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많다. 뉴요커들의 일상, 갤러리 순례라는 새로운 취미, 뉴욕의 크리스마스, 고등학교 올라가는 딸과 친구처럼 나누는 키스와 섹스 얘기, 뒤늦게 대학에서 예술 비즈니스 코스 과정에 들어가게 된 얘기,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 식으로 지극히 가볍게 '이야기'하고 휙 지나간다.
책의 뒤표지에는 만화가 박재동과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추천사가 올라있다. 그들이 칭찬하는 만큼 매혹적인 글이라는 인상을 받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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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2-2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보셨군요, 이책.
그러게 말이죠...인터넷에서 볼 때랑 종이책으로 볼 때랑 느낌이 이렇게 틀려지기도 하더군요.
특히, 글의 중량감에 있어서 말이지요~^^

hnine 2010-12-28 09:43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글은 기교만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책으로 낼때에는 특별히 사람들을 향해 자기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 뚜렷한 의견이 있어야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구드른 멥스 글 <할아버지는 내 친구> 
  
언젠가 신문 광고를 보고 쥬디스 윌슨의<엄마 돌보기>와 함께 내가 아이에게 사주었던 책이다. 아이만 읽고 나는 못읽어봤길래 어제 아이에게 두 권 중 어떤 것 부터 읽어볼까 물었더니 이 책부터 읽어보란다.
친할아버지도 아니고 연금을 받으며 혼자 살아가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천진난만 소녀 수지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와 꼬마는 왜 서로 끌리는 것일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이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이 되는 것 같아 정말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른으로 성장해가면서 한꺼풀씩 뒤집어 써온 가식과 허영을 다시 하나 하나 벗어 던지게 되는 시기일까? 노년의 시기란 말이다. 할아버지는 아이 앞에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체면을 앞세우지 않고, 어떤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에서  아이와 할아버지는 누가 누구인지 거의 구분이 안가게 묘사되어 있다. 아이가 할아버지 같고 할아버지가 아이 같은.
구드른 멥스는 독일에서 태어난 연극 배우 출신의 작가로서 수상 경력도 화려한데, 이 책에서 그는 교훈을 앞세우려 하지 않고 아이들이 읽으며 웃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재미있게 썼다. 그에게는 그것이 더 우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읽는 아이들도 아마 그 편을 더 좋아할 것이다. 

 


임 정진 글 <일자무식 멍멍이>

가끔 임 정진 작가의 홈페이지에 놀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좋게 작가의 최근작인 이 책의 사인본을 받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은 흔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대상이 아이들이 아니라 개이다. 우울증이 있는 개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이 개를 위해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는 것도 독특하다.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 실제로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아이는 그런 도서관이 어디 있느냐면서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평소에 읽기에 자신이 없는 아이 영후가 개에게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는데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개는 열심히 듣고 영후는 점차 책 읽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간다.
독특한 발상인데 비하여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게 흘러간다는 점, 제목이 내용에서 조금 비껴가지 않았나 하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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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2-2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는 내 친구에 더 호감이 가네요. hnine님, 혹시 위 상품 두 개 다 알라딘 상품 넣기로 집어넣은 거예요? 최근에 이렇게 페이퍼에 등록된 상품들이 첫번째 상품만 링크가 바로가기 안 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알라딘에 신고했는데 오류 없다고, 작성자가 잘못한 것 같다고 대답이 돌아왔거든요. 이런 현상을 지금 네 번째 발견했는데 오류같은데 말입니다. 상품넣기를 하는데 첫번째는 그림만 링크하고 그 다음 상품부터는 상품을 넣고... 이렇게는 안 하잖아요. 없는 상품이라면 모를까...;;;;

hnine 2010-12-26 11:00   좋아요 0 | URL
어라! 정말 그렇네요? 첫번째 상품도 당연히 알라딘 상품 넣기 한건데 링크가 안되네요!

무스탕 2010-12-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자무식 멍멍이는 제목이 정말 재미있네요 ^^

근데 정말 오류 맞네요. 알라딘에선 다시한번 검토해 봐야겠어요.

hnine 2010-12-26 20:25   좋아요 0 | URL
일자무식 아닌 멍멍이도 있는지...^^
위의 상품 넣기는 다시 했더니 되는데 왜 한번에 안되는지 오류는 오류네요.
 
아벨라 그리고 로사 그리고...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9
벌리 도허티 지음, 고수미 옮김 / 대교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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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구성이다. 각각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두개의 스토리가 하나로 만나는 결말. 그 한 스토리는 영국의 열세살 소녀 로사, 또 하나의 스토리는 탄자니아 출신의 아홉 살 소녀 아벨라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잘 크고 있던 아벨라는 아버지에 이어 엄마도 에이즈로 잃고 어린 동생도 잃는다. 죽어가는 엄마에게 약이라도 써보게 하기 위해 아홉 살 소녀의 몸으로 엄마를 부축하여 먼거리 버스 여행을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병원에도 약이 없다는 것이 아프리카 빈민국가의 현실이다. 그렇게 엄마를 잃고 위장 결혼하여 영국에 이민가고 싶어하는 삼촌의 계략에 말려 강제로 할머니와 헤어져 아무도 없는 영국에 떨어진 아벨라의 인생은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다. '이제 나에게 행복이란 없다'고 확신해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은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비하면 영국의 셰필드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로사는 행복하다. 책의 중간 쯤에 가서야 알게 되지만 로사의 엄마는 백인, 하지만 로사는 흑인 아버지를 둔 혼혈이다. 탄자니아 출신 아버지가 영국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 혼자서 로사를 키우지만 로사의 엄마는 긍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품성을 지닌 사람이어서 언제나 남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가 로사에게 입양을 하고 싶어하는 엄마의 생각을 꺼내는데, 처음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반대하던 로사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여 간다. 책의 300여 쪽이 거의 다 넘어갈 무렵에 영국의 소녀 로사와 탄자니아의 소녀 아벨라가 만나게 되기 까지 그 여정이 짧지 않다. 하지만 허술하지 않고 짜임새 있게 작가가 이야기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어 읽기에 수월했고 흥미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실제로 작가는 이 책을 위해 탄자니아로 날라 가서 그 곳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조사했다고 한다. 실제 그 곳 출신의 아이를 모델로 하여 이야기 구상을 하게 되었다니 이 책이 어색한데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몇 년 전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어설프게 들렸기 때문일까? 듣는 그 누구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마음 어느 한 켠에 쭉 밀어놓고 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고개를 들으며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랑과 보호 속에서 커야할 아이들이 사랑과 보호가 아니라 무방비와 무관심, 애정의 결핍 속에 방치 되어, 그렇게 절망과 결핍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좋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에이즈에 걸려서도 약 한번 못써보고 죽어가는 상황, 그렇게 부모를 모두 잃은 아홉 살 어린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국가. 왜 이 세계는 이렇게도 불공평한 것인지, 새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작가는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리라. 뉴스가 아닌 스토리로 우리가 모르는 삶을 세상에 알리고 관심을 돌리게 하고 싶었으리라.
불공평, 불균등, 무지와 이기심, 이런 것들이 우위를 다 차지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가. 로사의 엄마 같이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도 버티고 있음을 자꾸 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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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처음엔  

 

                                                  이 안 

 

대추나무도 처음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꽃도 시원찮고 열매도 볼 게 없었다 
 

암탉도 처음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횃대에도 못 오르고 알도 작게만 낳았다 


모두들 처음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조금씩 시원찮고 조금씩 서투르지만 


어느새 대추나무는 내 키보다 키가 크고
암탉은 일곱 식구 거느린 힘 센 어미닭이 되었다 

 

 

 

 

좋은 동시란 이런 시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시인의 분명한 목소리가 들리는 시
느낌이 전해져 오는 시  

아이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던 며칠 전 어느 날. 듣고 있자니 계속 틀리는 부분이 있길래 그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쳐보라고 했다. 몇번 치더니 같은 걸 계속하는 것이 짜증이 난다고 투덜거렸다.
"다린아, 생각 안나? 다린이 그렇게 해서 걸음마도 배웠고 말도 배웠는데?"
그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사실 어른인 우리도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잘 안되는 것에 대해 짜증내고 투덜거리긴 마찬가지이다. 한술 더 떠서 난 안될거라느니 (얼마나 해보았다고), 괜한 짓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느니, 내가 왜 이걸 시작했냐느니 (그걸 누구에게 묻는건지), 오히려 아이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더 붙쳐 투덜거린다. 
오늘도 시를 읽으며 배우고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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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시 잡지를 정기 구독하다
    from 내 인생은 진행중 2011-08-22 01:01 
          오리 박 성우 엄마가 예쁜겨울 옷을 사왔다 오리털 파카라고 했다 입어보니까 정말 따뜻했다 근데 오리야, 미안해 춥지?
 
 
담쟁이 2010-12-2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과 선배의 시라서 급반가움이..ㅋㅋ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hnine 2010-12-24 23:01   좋아요 0 | URL
가슴뭉클님 어떤 과 출신인지 급궁금~~ ^^
혹시 '가슴뭉클과' 아니신지...
조만간 이 시인의 시집이 또 제 손안으로 들어올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2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너무 이뻐요. 이 시를 어딘가 저장해 두고 싶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조금 해보고 안 되면 능력이 없어서 결코 못 할거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다시 해보면 능력이 조금 늘어있는거예요.
요즘은 지겨워도 한걸음씩 나아가자 라고 다짐해요. 그래도
짜증은..........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큭큭.

행복한 연말 되셔염~

hnine 2010-12-25 18:13   좋아요 0 | URL
어제 읽은 어린이책 <일자무식 멍멍이> 중에 소개된 시랍니다.
동시는 어쨌든 희망을 심어주는 내용이 많아서 좋아요.

어느날 다시 해보면 능력이 조금 늘어있더라는 말씀이 새롭게 와닿네요~ ^^
그러기 까지 지겹고 짜증나는 단계를 잘 견뎌낸 선물인가봐요.

비로그인 2010-12-25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hnine님. 여유 있는 토요일의 저녁 보내고 있으신지요?
누군가에겐 더 특별한 날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 특별함을 좀 더 생각하는 저녁으로 다가오네요.

조촐하고 간단한 저녁 먹으면서 들렸다가 시도 읽고 갑니다 ㅎ
잔잔한 웃음이 피어오르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좀 몸은 괜찮아지셨는지..건강하셔야 하는데..

hnine 2010-12-26 07:03   좋아요 0 | URL
제 몸은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전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것 보다 시어머님 기일 하루 전이라는게 더 신경이 쓰이는 맏며느리인지라 오전에 몇가지 음식 준비 해놓고 나머지는 내일, 혹은 잠 안오면 오늘 밤 하려고 맘 먹고 지금은 널널합니다.
몸 건강이 최고니라, 다른 불평 삼키거라, 그런 가르침을 새기라고 아팠었나봅니다. 웃고, 울고, 화내고, 토라지고, 속상해하고, 이런거 다 몸이 그만 하고 정신이 살아있으니 가능한 거니까요.
바람결님, 건강하세요 ^^
(11, 10, 9,...,0, -1, -2, -3... 이렇게 계속 갈 수 있는 거예요, 그치요?)
 

<임상실험에 얽힌 거대 제약사의 속내 위키리크스, 화이자의 임상실험 소송 무마 문건 폭로>  

- 2010년 12월 16일(목) Science Times 에서 퍼옴 -


위키리크스(WikiLeaks)의 기밀문건 공개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미국 화이자의 임상실험이 도마에 올랐다. 화이자가 나이지리아에서 수행한 임상실험 사고에 따른 소송비용을 줄이려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현지 법무장관 마이클 아온도아카의 뒤를 캤으며 이에 대한 정보를 압박용으로 언론에 넘겼다는 것이다.


▲ 비밀문서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 대표 줄리안 어센지는 최근 영국에서 체포됐다  ⓒWikiLeaks

지난 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국무부 전문을 인용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화이자는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주에서 뇌막염이 창궐하던 1996년 신약 트로반의 임상실험을 위해 아동 200명을 임상실험했다.

100명에게는 트로반을 나머지 100명에게는 미국 내 최고의 수막염 치료제로 알려진 또 다른 항생제를 투약했다. 임상실험 결과 트로반 투약 환자 가운데 5명, 다른 항생제 가운데 6명 등 모두 11명이 사망했다.

위키리크스의 조작? 거대 제약사의 실체 폭로?

이후 화이자가 어린 환자들에게 실험용약을 투약하면서 환자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고, 트로반이 유럽에서 성인들에게 투약은 허용됐지만 간중독의 우려 때문에 사용허가가 취소된 의약품이라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카노주와 나이지리아 당국은 화이자에 60억 달러가 넘는 배상금을 요구했으며 화이자의 막후 술수로 결국 카노주는 7천5백만 달러에 화이자와 합의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건이 조작된 것일까, 아니면 화이자의 추악한 뒷거래가 대중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일까. 거대 제약회사가 개발도상국에서 행하는 임상실험에 대한 갖가지 의혹은 기실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너무 가난해서 무엇이든 선뜻 서명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로 넘치는 개발도상국가에서 임상실험을 한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됐다.

영국 정보부 MI6 출신인 존 르 카레는 소설 ‘콘스탄트 가드너(Constant Gardener)’에서 신약 임상실험을 둘러싼 제약회사의 추악한 음모를 파헤쳤다. 아프리카 케냐 주재 영국 외교관 저스틴 퀘일의 아내 테사 퀘일은 북구 케냐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외교 특권을 가지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나가던 저스틴은 결국 사건이 영국과 케냐 정부의 주장처럼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 정부 고위관리와 다국적 제약회사의 음모가 개입돼있음을 알게 된다. 테사는 사망하기 전 제약회사 쓰라비의 음모를 추적하던 중이었다.

저널리스트 소니아 샤, 뉴 잉글랜드 저널 어브 메디슨의 전 편집장 마르시아 안젤은 각각 저서 ‘몸 사냥꾼’과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떨었나’에서 임상실험의 그늘에 대해 집중 조명해 큰 반향을 불렀다.

▲ 제약회사의 추악한 임상실험 뒷거래를 담은 콘스탄트 가드너는 2006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미국에서 신약이 시판되려면 그 안정성과 효과를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입증하도록 돼있다. 입증과정은 일련의 임상실험을 요구한다. 임상실험을 크게 3단계로 구성된다. 임상 1상은 건강한 지원자 몇 명에게 약을 투여해 안전한 투여량을 결정하고 대사과정과 부작용에 대해 연구한다.

임상 2상은 해당 질병 환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다양한 용량을 투여하여 그 효과를 약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그룹(대조군, 보통은 위약을 투약한다)과 비교하는 단계이다.

임상 3상은 2상보다 훨씬 많은 환자(많게는 수만 명에 이른다)를 대상으로 약의 안정성과 효과를 평가하고 환자 집단 간 비교를 정밀히 하는 단계이다. 3상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임상실험을 끝마치면 FDA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임상실험 피험자 구하기 ‘하늘에 별따기’, 제약회사 개도국 ‘눈독’

미국에서는 임상실험을 수행할 임상실험 피험자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과 서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임상실험 진행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950년대만 해도 미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임상실험 지원자로 나섰다. 조너스 솔크 박사의 소아마비 백신 실험을 위해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을 피보험자로 앞다퉈 내보냈다. 하지만 FDA 승인 이후 이 백신이 220명의 아이들을 소아마비에 감염시키면서 대중의 임상실험에 대한 신뢰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부 지원으로 진행된 ‘터스키기 매독연구’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대중의 환멸은 극에 달했다.

이는 1932년부터 72년까지 40여년 동안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에서 실시된 생체실험이다. 당시 매독 연구를 진행 중이던 미 공중보건국은 터스키기 지역 흑인들을 대상으로 치료하지 않은 매독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했고, 이러한 사실이 폭로되자 1973년 실험은 중단됐다.

이후 인건비 인상, 윤리적 논란, 임상실험용 약을 대체할 기존 시장제품 등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미국에서는 임상실험 대상자를 찾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돼버렸다. 이에 임상실험을 빨리 진행해 신약을 시판하려는 제약회사의 안달은 급기야 임상실험 전문 외주업체의 탄생을 불러왔다.

▲ 터스키기 매독 인체실험은 미국인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라고 불리는 이들 회사들은 오직 임상실험만을 계획하고 수행한다.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 의학지’의 전 편집자 마르시아 엔젤은 이에 대해 “심지어 대학의 연구논문까지 임상실험에 유리하게 조작하는 일도 마다 않는다”고 폭로했다.

CRO들이 눈을 돌린 임상실험 대상국이 바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이다. 세계적인 CRO회사인 퀜타이즈 트랜스내셔널(Quintiles Transnational)은 웹사이트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극히 기본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만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임상 실험은 연구 참가자들에게 보다 정교한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한다”라고 게재한 바 있다.

이는 “개도국의 환자들은 의약품에 접근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실험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임상 실험에 제공되는 공짜 약들을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이면 된다”는 논리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화이자는 지난 2003년 인도에 전 세계적 임상 허브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뒤이어 GSK, 아스트라제네카 등 메이저 제약회사들도 비슷한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환자들이 아무도 해를 입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약이 넘치는 선진국과 약에 굶주린 빈국들 사이의 불균형을 이용하는 제약회사가 본질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개도국에서 진행되는 모든 임상실험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몸 사냥꾼(거대 제약회사의 추악한 얼굴)’의 저자 소니아 샤는 “오히려 임상실험이 가난한 국가의 열악한 환자들의 처우를 악화시키기까지 한다”고 경고했다. 와포자충이라는 기생충 치료약인 니타족사나이드의 임상실험은 한 예가 될 수 있다.

임상실험은 개도국, 신약 수혜는 선진국 불평등 야기

GSK의 전신인 스미스클라인 비첨의 장 프라수아 로시뇰 박사는 지난 1993년 니타족사나이드라는 기생충약을 개발했다. 스미스클라인에서 퇴직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로시뇰 박사는 신약의 임상실험을 아프리카의 잠비아에서 수행했다.

문제는 임상실험만 잠비아에서 수행됐을 뿐 잠비아의 아이들은 단 한 순간도 신약혜택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잠비아는 니타족사나이드의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으며 임상실험을 수행한 해당병원은 임상실험 후 5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약을 공급받지 못했다.

연간 1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 가운데 ‘삶의 질 향상 의약품’이란 것이 있다. 질병을 고치는 약이 아니라 일종의 정상적인 사람의 기분을 더 좋게 만드는 약이다.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속 쓰림 치료제 잔탁이 그런 의약품에 해당한다.
 
이러한 약들의 임상실험이 만약 개발도상국에서 합법적인 절차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들 약들은 대부분 개도국의 환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약들이다. 그들은 말라리아, 에이즈, 각종 풍토병 등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 절실한 것이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약이 절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이즈 치료제 등 치명적 질병에 대한 임상실험도 개도국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임상실험이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부유한 서구인을 위한 가난한 개도국의 임상실험이 옳은 것인지, 임상실험의 열매는 과연 누구에게로 가는 것인지 한 번쯤 곱씹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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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from 창백한 푸른 점의 책여행 2010-12-25 11:28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고약하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생일을 축하하는날 '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글제목이라니...  핑계를 대자면 그건 아침부터 세상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트랙백의 글)  오늘 출근을 해서 그런건 아니다.... '콘스탄틴 가드너'가 제약회사의 음모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이번에 알았지만 이와 비슷하게 기업들의 음모를 다룬 이야기(영화)들은 몇
 
 
꿈꾸는섬 2010-12-24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임상실험만 잠비아에서 수행됐을 뿐 잠비아의 아이들은 단 한 순간도 신약혜택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정말 화가나네요.ㅠㅠ

hnine 2010-12-24 09:51   좋아요 1 | URL
제약사에서 임상실험을 잠비아에서 수행한 것은 그 나라 아이들에게 신약혜택을 주자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의도였으니까요.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렇게 점점 무감각해져가는게 아닌가 싶어 올려봤습니다.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자신들이 그렇게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임상실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가난때문에 어차피 제대로 치료도 못받을 바에야 실험대상이 되어 혹시라도 병이 나을 수 있다면 하는 실낫같은 희망때문이지요.

마녀고양이 2010-12-24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뉴스 읽었습니다.
임상 실험이란게 필요악이란게 문제입니다.
동물 실험도 마찬가지로 불쌍하죠.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위령제를 했더군요.

이 뉴스를 보면서 그림자 정부라는 책이 생각나더군요. 마루타두요.
그리고 구제역 동물 살처분을 보면서, 인간의 죄악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hnine 2010-12-24 12:12   좋아요 1 | URL
임상실험은 없을 수가 없지요. 동물 실험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해요. 하지만 위의 제약사가 취한 방법은 엄연한 기만 행위라고 봐요. 같은 인간이면서 한 쪽에선 부당한 방법으로 이윤을 챙기고 다른 한 쪽은 자기 목숨을 저당잡히며 이용당한다니요.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저렇게 임상실험을 하는 기업이 다른 무엇인들 눈속임 못할까 싶네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도 인간의 생명도, 모두 '물질적인 부' 아래에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섬사이 2010-12-24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음모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간다는 느낌에 우울해져요.
가끔 이제 세상이 그만 발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생명을 끔찍한 고통으로 몰고 가는 질병에 대한 연구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 뒤에도 저런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는 거라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불법적,비양심적으로 행해지는 임상실험도 문제지만
임상실험 하고에 대한 소송비용을 줄이려고
법무장관에 뒤를 캐서 뒷거래하는 그 놀라운 처세술도 혀를 차게 만드네요.

아무튼, 일단은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hnine님

hnine 2010-12-24 11:34   좋아요 1 | URL
음모로 가득찬 세상, 맞아요.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음모로만 가득차지는 않았다는 믿음때문일까요. 음모를 파헤치려는 사람도 있고,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저런 제약사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문득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 중 우리도 모르게 저런 희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누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든 그것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최소한 불법적, 비양심적이진 않아야지요.
섬사이님, 아무튼, 일단은, 메리크리스마스! 그 말씀에 웃습니다. 섬사이님도 가족들과 좋은 시간 되세요~

2010-12-2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24 11:39   좋아요 1 | URL
여기도 오늘 무척 추워요. 코가 쨍, 정신도 쨍! 하는 느낌입니다. 든든하게 입고 출근하셨나요?
저는 며칠 호되게 아팠다가 어제부터 회복이 되어 오늘은 이제 살만하다! 상태로까지 돌아왔습니다.
님 서재 들락거리며 덕분에 제가 그나마 생각의 폭을 넓혀보려 시도해볼 수 있었던 한 해였어요.
'같이 소통하고 많이 웃을 수 있는' 이 말씀이 왜 이렇게 와닿는지... 저는 늘 여기 있습니다. 내년에도 우리 함께 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