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의 임상실험 뒤에는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고약하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생일을 축하하는날 '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글제목이라니... 핑계를 대자면 그건 아침부터 세상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트랙백) 오늘 출근을 해서 그런건 아니다....
'콘스탄틴 가드너'가 제약회사의 음모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이번에 알았지만 이와 비슷하게 기업들의 음모를 다룬 이야기(영화)들은 몇 개 알고 있었다. 광물자원에 관한 이야기인 '블러드 다이아몬드'나, 담배에 관한 이야기인 '인사이더', 환경문제에 관한 '에린 브로코비치' 등등.. 영화라고는 하지만 모두 실화이거나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그 무게를 가볍게 볼 수 없고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밝혀진 제약회사의 경우는 공공연한 것이기도 하다.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으로 사용되고 폐기되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티의 지진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살아있다는게 뭔지 깨닫기도 전에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끊이지 않는 비참함에 빠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내 자식이 신의 선물이자 잠시 부모에게 맡겨놓은 귀한 생명이라는 말씀이 공허하게 여겨졌다. 허무하게 죽어나간 저 아이들은 내 아이와 무엇이 다른가? 그때 신은 어디계셨나? 혹시 그들의 그런 운명이 신의 뜻이라면 과연 귀중한 한 생명을 이용해서 드러내야했던 그 고귀한 뜻은 무엇이었나?
전부는 아니지만 인간 탐욕의 결과를 신에게 뒤집어 씌우는 건 어쩌면 부당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죽은 그 아이들은 질문할 권리가 있다. '나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었나'라고 말이다. 쓰다보니 이런 질문도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해봐야 선물, 교통체증, 모텔, 데이트, 싼타 이런 이야기만 난무하니 말이다. 신과 인간은 이미 서로를 잊었는지도 모른다. 될대로 되라... 뭐 이런..
당장 초등학생들 밥먹이는 일조차 한 사람의 정치적 야망때문에 흔들리는 나라에서 과분한(?) 걱정아닌가 싶다. 하늘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
"너나 잘 하세요!"
누가 '가난은 불편한것일 뿐이다'라고 했다는데, 나는 '모르는 소리'라고 응수한다. 가난은 자존감도 죽이고 친구관계도 죽이고 가족관계도 죽이고 자신의 생명도 죽일수 있는 문제다. 단지 불편한것 뿐이면 그건 가난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