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이미 뜨거운 것들>

 

다른 책은 한번 다 읽고 또 읽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시집은 그렇지 않다. 한번 쭉 읽어보는 것은 맛보기일뿐, 멀리 두지 않고 생각날때마다, 손이 갈때마다 펴서 읽고 또 읽는다.

 

지금까지 최영미의 책은 에세이든 시집이든 다 구입하여 읽어오고 있는지라 이 시집도 나온 것을 알자 바로 구입부터 했다.

 

 그녀때문에 알게 된 화가 Rothko. 이 시집의 표지를 보니 그 화가의 작품 '검정 위의 빨강' 혹은 '빨강 위의 검정'이 떠오른다. 그녀의 첫 시집 제목이 아직까지 표지에 저렇게 따라다니는구나. 그게 벌써 몇년 전인데.

 

새삼 그녀의 시들이 설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 자체가 긴 편이 아니고 연과 줄도 짧지만 읽을 때의 느낌이 산문 같기 때문인가보다.

 

이전 시집의 제목이 <돼지에게>인데, 여기엔  <돼지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있다. 읽어보니 전작에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돼지'가 누구를 의미하냐고 한참 말들이 많았었지.

 

 

 

 

 

 

추상 (秋想)

 

 

 

 

나쁜 자식,

위선자,

벗겨도 살점 하나 묻어나지 않을 껍데기들.

 

 

그들을 싸잡아 욕한 뒤에

단풍을 보았다

 

 

울긋불긋 물든

그들은 하나의 색이

아니었다.

한꺼번에 물들지도 않았다

 

 

진실은 순색(純色)이 아니다

 

 

 

그럴까? 진실은 순색이 아닐까?

 

 

그녀 시에 대해 말할때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많이 언급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보다는 인간에 대한 기대, 위선에 대한 실망, 고립과 고독, 지난 날 열정에 대한 회상, 아쉬움 등도 그 못지 않게 진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다. 읽는 사람 마음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오해

 

 

 

 

술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 시가 쉽다고

 

 

 

노란 시월이 밀려온다고, 빗대어 쓰면

몰라도 뜻을 묻지 않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을

밥벌레들이 기어들어가는 순대에 비유하면

직장인들을 모욕했다며 분개하고

 

 

 

나도 모르는 말들을 주절주절 갖다 붙이면

그들은 내 시가 심오하다고......

 

 

 

이전의 시집을 읽을 때와 같은 깊이로 마음 속에 담박에 박히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시집을 아직 다 읽지 않았다. 첫 페이지지부터 마지막 페이지, 해설까지 다 읽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직 다 읽은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송찬호 <저녁별>

 

 동시집 출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근래 문학동네에서도 동시집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으며 이 책도 그중 하나이다.

시로 등단한 송찬호 시인의 첫 동시집인데, 첫 동시집이라지만 마치 동시를 오래 써온 것 같은 시들이 아주 알차게 담겨있다. 동화를 쓰는 동안엔 동화의 세계에 흠뻑 빠지기 위해 일부러 소설도 읽지 않는다는 어떤 동화작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어른과 아이 마음을 넘나들며 잘 쓸 수 있는 사람도 있나보다. 좋겠다.

 

 

 

 

 

 

 

저녁별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동시라면 그저 쉬운 소재, 쉬운 말로 쓴, 단순한 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것만으로 시가 되지 않는다. 시인의 새로운 '발견'에서 비롯되어야, 상투적이지 않은, 시다운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시집 뒤에 해설을 쓴 이 안 시인은 이것을 이 시집에서 가장 빼어난 시로 뽑았다. (참고로, 이 안 시인의 해설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해설도 동시처럼 아기자기, 재미나게 썼다. 특히 시 <호박벌>에 대한 해석은 슬쯕 송찬호 시인에 대한 관심을 이 안 시인으로 돌리게까지 만든다.)

 

 

제비꽃

 

 

 

 

 

 

보랏빛 제비꽃한테 놀러 갔다

꽃이 나비보다도 작아

쪼그리고 앉아 바라만 보았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까

제비꽃이 하품을 해서

심심해진 나도 그냥 집에 돌아왔다

 

 

연꽃

 

 

 

 

우리 동네 연못

활짝 핀 연쫓 아래

둥근 연잎에

개구리가

앉아 있다

 

 

 

개구리가

연꽃을

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는 시인의 상상만으로 지어낼 수 있는 시가 아니다. 시인은 아마 이런 광경을 한참 들여다 보았으리라. 그리고 개구리가 연꽃을 들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순간이 왔을 것이다. 시인의 발견이다.

책머리에서 그는 전부터 동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즈음 나온 어떤 좋은 동시집을 보고 자극을 받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를 움직이게 한 그 동시집은 무엇일까? 그것도 궁금해진다.

 

김미희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

 

'청소년시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이다. 과연 청소년, 그리고 부모가 읽어서 공감할 내용들이 많다. 빗댐과 사회 풍자가 보인다.

 

 

 

 

 

 

 

 

 

 

 

 

신기술

 

 

 

 

새로 지어진 학교 건물

창문을 닫자

어찌나 방음이 잘되는지

새들

노랫소리를 멈췄다

푸르른 날갯짓도 멈췄다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있는 중이다.

 

 

쉬는 시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동윤이는 알까기

유리는 엎드려 자기

강우는공책 가득 그림 그리기

지수는 음악 들으며 몸 흔들기

모두 모두 즐겁다

자기주도학습이 시작된다

창의력이 맘껏 발휘되는 시간이다

 

 

수업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에 비로소 학습이 시작된다니, 누구를 위한 수업이란 말이냐고 한숨이라도 쉬어야 할까. 획일화되고 개인이 꿈이 반영되지 않은 교육 현실에 대한 빗댐이다.

 

 

다 다른 색깔의 시. 세상을 보는 다양한 눈.

 

오늘 아침엔 예전에 읽었던 유영금의 <봄날 불지르다>라는 시집을 다시 읽었다.

그건 또 다른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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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3-05-10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엔 시집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인데요, 이 페이퍼에 몇 편 함께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이전엔 처음 보는 책, 처음 듣는 이름이었겠지만, 다음엔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것처럼 기억나면 좋겠네요.(그렇더라도 겨우 이름 정도일테죠.^^)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13-05-10 19:38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시와 친해질 기회가 앞으로 올지도 몰라요. 일부러 시집을 사서 읽지 않아도 어느 순간 어디에선가 마음에 콕 박히는 시를 딱 마주치게 되는거지요. 사랑에 빠질 때 처럼요 ^^

박세웅 2013-06-1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밥벌레들이 기어들어가는 순대... 최영미 시인의 시였군요^^

hnine 2013-06-12 18:08   좋아요 0 | URL
세웅님, 최영미 시인의 시 좋아하시는군요. 저도요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려한 말솜씨로 듣는 사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소에 말이 없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길지도 않은 한마디를 탁 던지는데 그것이 오랫 동안 잊혀질 것 같지 않은, 마음을 울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시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최초로 외우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자신있게 외우고 있는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중학교1학년 국어 시간. 중학생이라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 새학년 봄, 국어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 중에 어떻게 이 유명한 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냐며 흥분하시고 다음 시간까지 조사해서 다 외워오라고 하셨다. 그러시며 잠깐 읊어주신 그 시의 몇 구절이 그때 마음에 콕 들어온 것이다. 이후로 지금까지 좋은 시 찾아 읽고 노트에 베껴 놓고 또 누군가에게 적어보내기도 하고,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시를 내 친구 삼고 있다.

언젠가 저자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TV에서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귀뚜라미'하면 바로 귀뚤귀뚤, '바람'하면 바로 '살랑살랑'을 떠올려서는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과 경험, 성찰, 나만이 볼 수 있는 방식, 이런게 들어가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싯구', '시어'라고 하는, 평소에 잘 안쓰더라도 멋이 풍겨나는 말들, 그리고 리듬, 운율이 갖춰지면 시가 되는 줄 알고 있던 나는 그날 또 모르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하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81쪽)  다른 사람이 규정지어 놓은 범위에서 벗어나 내가 새로 한 세상을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란 '자유 세계'의 산물이구나.

감정을 쏟아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감정을 묘사하는데 저지르기 쉬운 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과장이다. 혼자 외로운 척, 나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감상(感傷)이다. 이 세상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말고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말라고. 세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 하니 말고 기이한 시어를 주워와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느끼하다고. (43쪽)

한줄을 쓰기 전에 백줄을 읽어라,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라는 말), 묘사는 관찰로부터, 체험을 재구성하라 (체험을 그대로 옮겨놓는게 아니라),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형용사를 멀리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개념적인 언어를 해체하라 등, 이 책 속의 소제목들이 곧 이 책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인용된 시에서 온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시인의 <묵화(墨畵> 라는 시 전문이다. 여섯 줄 짧은 시, 그리고 쉼표로 맺고 있지만 더 길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은가?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쉼표로 맺음으로써 할머니와 소의 상처와 그 둘 사이의 적막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89쪽) 저 제목은 또 얼마나 은근히 시의 느낌을 더해주는지.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고 시인이 되었을까. 다음은 이 책에 인용된 이덕무 시인의 시집 서문이다.

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 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 한 청춘의 막차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 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 올린다. (74쪽)

 

시 역시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 쓰는 과정은 자기의 감각과 사유가 자유로이 이루어지기까지 한바탕 격투를 치루는 것이라면서, 이 싸움의 과정은 몰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역시 몰입은 글쓰기에서도 중요한 바탕이면서 기술이기 때문에 시는 온전하게 몰입할 때 온다고 (27쪽).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끔 끄적거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 공감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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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3-05-09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말하는 내용처럼 글을 쓰면 시가 아니라 다른 글이라도 좋을 것같습니다. 쉽지 않아서 문제겠죠.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쓰고 싶어요.
아침이라 간단히 쓸게요.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13-05-09 17:48   좋아요 0 | URL
보통 시인은 타고난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만큼 감성이 뛰어나고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타고난 시인이란 없다,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라고 했더군요. 그런데 타고나는게 아주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타고난 것만 가지고는 안되고 그 위에 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에 인용된 시들도 참 좋더군요.
여긴 지금 비가 부슬부슬 옵니다. 가방이 무거워 우산을 안가지고 나갔다가 비를 좀 맞고 들어왔답니다 ^^

Jeanne_Hebuterne 2013-05-1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더 페이퍼나 리뷰를 쓰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욕심이 많아지고 의욕이 앞서곤 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꼭 급체한 것 마냥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hinine님의 이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다음에 페이퍼나 리뷰, 또는 모든 글을 쓸 때 이 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이런 좋은 글을 써주셔서.

hnine 2013-05-10 19:47   좋아요 0 | URL
무슨 일을 할 때 욕심과 의욕이 안 생겨도 문제이지만, 너무 앞서가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그건 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단계인 것 같고요.
책이든, 옷이든, 화장품이든, 저는 공간을 차지하는 뭔가 자꾸 쌓여가는 것이 싫어서 읽고 난 책도 바로 중고책으로 처리해버리는게 다반사인데, 이 책은 당분간 좀 가지고 있으려고요.
횡설수설 글을 읽어주셨으니 제가 고맙지요.

2013-05-17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7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의학 교수로서의 저자 이름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의 글은 처음 읽어본다.

30대까지만 해도 이런 제목은 한번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인생을 뭐 재미로 사나?' 이러면서 오히려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인생은 지금 당장 재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자기만의 확실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희생해가면서라도 나만의 목표가 나의 중심이 되는 것,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그런게 삶의 방향키가 될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40대가 되면서,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 꼭 가벼운 삶, 미래를 내다볼줄 모르는 삶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 전에 정년 퇴직을 한 저자가 78세의 나이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걸까. 모르긴 몰라도 그는 생명의 유한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순간 부족해진다 (107쪽).

늘 부족함을 마음에 담고 사는 한, 재미있게 살기 어렵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순간부터 나의 목표는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일이 되고 그것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잊는다.

보통 '긍정'이라 하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한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 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나에게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진정한 긍정의 고수는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한다 (149쪽).

나 역시 '긍정'이라고 하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사람 중의 하나. 바보가 아닌다음에야 어떻게 모든 걸 생각없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나이가 나이라서 그런지 저자는 현재 일곱 가지나 되는 지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병을 달고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동안 자기 관리를 제대로 잘 못했다는 자책으로 우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 들어가며 병드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더구나 열심히 산 결과로 생기는 병을 어쩌겠냐면서 병은 훈장이 아니듯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증거는 더더욱 아니며 그냥 같이 가야할 삶의 조건이 추가되었을 뿐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병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른다. 어디 병에 대해서만 그렇겠는가?

노년기는 이제 더이상 그저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는 시기가 아니다. 노년기가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만큼 노인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100세까지 사는걸 좋아할게 아니라, 그때까지 '심심하지 않게' 사는 것을 생각해봐야 하고 그건 젊을 때부터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좋다. 코미디언 이자 만담가였던 장소팔씨가 죽음 직전에 아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내가 왜 죽는 줄 아냐? 심심해서 죽는다. 너도 한번 늙어 봐. 늙으면 진짜 할 일도 없고 심심해 죽겠다, 그래서 세상을 뜨는 거야."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냥 우스개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 역시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며 컸던 이유로 커서까지 어머니로부터 과잉 보호에 가까운 울타리 속에 자라야 했고 그게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구속으로 커지게 되자 수년에 걸쳐 거기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어머니 앞에서 직접 '어머니로부터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아마 그렇게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 스스로 많이 성숙해졌을 것이며 의학 중에서도 정신과를 택하게 된 것은 그런 자신의 상처 치유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은 부모에게서 받은 마음속의 크고 작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것에서 완성되는 것 (189쪽).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들과 의논하여 그들의 요청 내지는 동의 하에 3층집에서 3대, 열 세명의 가족이 함께 사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전할 말이 있을 때 이메일을 이용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고, 자식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이 세상을 뜬 후에 제사를 지내지 말것을 미리 자식들에게 일러놓은 것, 지금도 전화, 핸드폰, 자동차 없이 살고 있는 것, 사회학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정년 퇴직후 작은 연구소를 차리고 둘이 함께 전공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 즉 '가족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집필, 상담 일을 하고 있어서 지금도 매일 9시면 아내와 함께 연구소로 가는 생활. 내가 알고 있는 다소 무표정하고 근엄해보이는 저자의 모습을 떠올릴때 언뜻 연관이 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관조적이고 담담하게 쓰여진 글이다. 책 소개에서 보듯이 이 책을 저자가 직접 쓰지는 않았고 다른 분이 엮었다고 하여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런 류의 책들 중 상당수는 이렇게 엮은이를 따로 공개하지 않고 직접 쓴 것 처럼 나오고 있겠지 생각하니 오히려 솔직한 것 같아 아쉬움이 좀 가신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데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더 가지고 싶고, 더 있어보이고 싶은 욕심을 좀 덜어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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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3-05-03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hnine 2013-05-04 06:35   좋아요 0 | URL
nama님,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3-05-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아침에 특히 나인님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충만해져요. 고마워요. 나이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갖가지 심신의 변화조짐과 생의 기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다시한번 깨닫게 되네요. 진정한 긍정의 힘, 이 또한 해석의 문제와 관련 있는 거 같아요. 부모자식 간의 거리도 국이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들었어요. 저자는 현명하게 사는군요. 고 장소팔씨의 재미있는 말도 웃지만은 못할 이야기네요. 나인님, 오늘도 마음 환한 날 보내자구요~~^^

hnine 2013-05-04 06:47   좋아요 0 | URL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 쉽지 않지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책으로만 읽으면 뭐하냐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책을 읽으며 많이 배우고 다짐하고 생각의 방향을 잡고, 그러네요. 약발(!)이 떨어질만 하면 또 읽고, 또 읽고 해요 ^^
어제밤엔 비도 조금 뿌리고 바람도 많이 불던데 오늘 날씨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정말 몇 시간 뒤를 예측할 수 없는 날씨라서요.
좋은 날 되세요.

서니데이 2013-05-0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때문에 이 책, 눈이 가더라구요. 은퇴 후에 사이버 대학에 다니면서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살면서도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켜가면서 잘 지내는 것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을 저자와 그 집안의 특별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와 같이 긍정적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되겠지만, 살아가는데 있어선 꼭 필요할 듯 합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어려움 없이 살 수는 없을테니까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아침에 읽으니, 오늘도 좋은 하루 될 것 같아요.
또 뵙겠습니다.

hnine 2013-05-04 07:18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댓글 읽으니, 저자가 70대 나이에 사이버 대학에 등록해서 다닌다는 얘기를 제가 리뷰쓰면서 빠뜨렸네요 ^^ 배워서 한가지를 더 안다는 것보다 배우는 동안의 활기, 생기, 이런 것들이 노년엔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죽을 고비 넘기면서 컸던 어린 시절덕분에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지만 그것이 곧 저자에게 큰 굴레가 되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오랜 시간을 그것을 극복하는데 보내야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 저자의 자식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짓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실 2013-05-0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선물받아 놓고는 잊고 있었네요. 요즘 책만 읽으면 잠이 와서....ㅎㅎ
긍정은.....어떤 일이 발생했을때 좋은쪽으로 해석하는거죠.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좋은 책,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hnine 2013-05-04 07:24   좋아요 0 | URL
이 책 선물해주신 분도 아마 저 같이 느끼셨을까요? 가지고 계시다니 한번 읽어보세요. 책 표지도 예쁘지요? 저는 아주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답니다. 자기의 생각과 완전 반대인 책들도 읽어야 생각의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데, 일단 자기와 코드가 같은 책을 읽을 때의 만족감도 필요하니까요.
저자가 말하는 긍정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때 좋은 쪽 나쁜 쪽 모두, 있는 그대로 수긍하고 그 일이 좋은 쪽으로 진행되도록 해결책을 찾는 마음의 자세라지요. 제게는 마치 어떤 도인의 경지를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노력하면 안될것도 없을 것 같아요.
이 책 읽으신 후 세실님의 리뷰도 궁금합니다. ^^

2013-05-0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9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각의 노화를 멈춰라 - 생각이 젊어지는 생각 습관
와다 히데키 지음, 하현성 옮김 / 행복포럼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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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 수술도 아무나 하지 않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눈 뿐 아니라 얼굴 여기저기, 몸 여기 저기 성형 수술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고 노화를 멈추고 싶은 마음때문이라면 외모뿐 아니라 뇌의 노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성형수술에 대해 요즘의 추세는 좀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에 이 책의 제목은 담박에 내 관심을 끌었다. 생각의 노화, 즉 뇌의 노화 현상에 대해서 저자는 무슨 말을 해놓았을까.

뇌도 우리 몸의 일부이니 당연히 노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노화에 비해 사람들은 얼른 눈으로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 갈수록 몇 초 만에 눈으로 확인되는 것에 가치를 두고 그것으로 판단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뇌의 노화는 주로 뇌의 앞쪽, 즉 전두엽의 노화를 의미한다. 측두엽과 후두엽에 비해 전두엽은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합하여 창의적인 활동을 하도록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생각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의욕과 정보 제어 능력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다. 우리가 주로 IQ로 측정하는 뇌의 기능은 뇌의 다른 부분, 즉 측두엽과 두정엽 관련된 편인데, 뇌가 노화된다고 할때 제일 먼저 노화가 일어나는 곳은 IQ로 측정이 안되는 전두엽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두엽의 노화는 40대부터 시작된다고 하고 개인차가 크다. 따라서, 호적상 나이가 젊고 외모가 젊다고 해서 발상이 더 참신하다거나 전두엽이 더 젊다고 볼 수 없으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만큼 노화된 전두엽을 가지고 있고 생각이 진부하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실수가 적고 빠르며,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형이 요구되던 공업화 사회에서 이제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고 생각해내는 능력을 가진 인간형, 즉 문제 해결형 보다 문제 발견형 인간이 오히려 더 요구되는 지식 사회로 변화되어 왔기 때문에 전두엽의 노화 정도는 진정한 젊음의 척도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뇌가 노화되어가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변화를 싫어하고 전례 답습쪽을 택한다. 갈수록 포용적이기보다는 더 완고해진다. 단정지어야만 성이 차는 인지 퇴행 현상을 보인다. 생각이 타인과 같아야 안심한다. 생각과 감정의 억제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이 방법 외에는 다 틀린다는 등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한다. 자동사고와 반사적인 확신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은 젊은 사람들한테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말했다시피 뇌의 노화는 젊은 나이에도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고, 나이가 들었어도 평소의 생활 방식과 훈련 정도에 따라 더 젊은 상태로 유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두엽의 노화, 즉 생각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변화를 즐기는 일상 생활에 유념한다. 불평보다는 대책을 생각한다. 비평 습관은 최고의 생각 트레이닝이다. 양자택일 논의나 한가지 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럴지도 몰라'는 생각의 폭을 단번에 넓혀준다. '바로가기'식 사고를 하지 않는다. 최신 미디어도 일단 사용해보고 경험해본다. 계속 사용할지 안할지는 그 다음 문제. 자기의 주장과 반대되는 책을 읽는다. 나이 들수록 기존 가치관에서 벗어나라.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는 것이 맞다. '지금까지 어떻게 했나' 보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까'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힘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에 옮기는 힘'이다. 인간관계는 전두엽에 최고의 자극제이다.

 

주름없는, V라인 얼굴로 80세 노화된 전두엽으로 살기보다, 주름 많고, 우리 나라 얼굴형도 아닌 V라인 아니더라도, 팽팽한 사고력과 젊은 뇌 나이를 가지고 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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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4-3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생각의 노화를 늦추기 위한 방법, 잘 읽었어요.
자기 주장과 반대되는 책 읽기, 변화, 행동 옮기기, 인간관계.
특히, '그럴지도 몰라' 의 중요성. 긍정적인 의심이 필요하군요.^^
오늘아침 제게 꼭 필요한 리뷰를 읽게 되어 고마워요.
나인님, 이곳은 어제 내리던 봄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요.
힘들지 않고 섭섭하지 않고 좋은 생각으로 하루 보내요, 우리^^

hnine 2013-05-03 08:0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여기도 오늘은 아주 날씨가 짱짱하네요.
저 요즘 이런 책들이 왜그렇게 눈에 들어오는지요. 지금은 무슨 책 읽고있냐면요, 에~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ㅋㅋ 돌이켜보니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재미있게 살았다 싶은때가 없는거예요. 10대, 20대, 30대...다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재미는 뒷전으로 하고 산것 같아서요. 40대 후반 들어서면서 '내가 싫은 일은 안한다, 차라리 욕심을 덜어낼지언정.' 이렇게 생각이 많이 바뀌어가는데 다행이라 생각된답니다.
마지막 줄 말씀이 마음에 콕 박히는걸 보니 제가 켕기는게 있는 모양입니다.
고마와요.

Jeanne_Hebuterne 2013-04-3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리세이의 노래 가사 중 '시간은 흘러 당신은 나이 많은 돼지가 되었지요. 하지만 당신의 마음을 들뜨게 하던 그 노래들을 잊으셨나요' 라는 대목이 두려워지는 순간.
차라리 돼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으나 여간해서는 사람은 한 번에 돼지로 변신한다기 보다는 차츰차츰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hnine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습니다.

hnine 2013-04-30 12:51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댓글 보고 처음 듣는 가수 이름이지만 you tube가서 마구 검색질했답니다. 덕분에 Morrisey 노래 실컷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가사가 나오는 노래는 못찾았어요 ㅠㅠ
옛날에 TV에서 <제시카의 추리극장>이라는 외화시리즈가 있었는데요, 거기 나오는 제시카처럼 나이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외국 사람치고 약간 오지랍이긴 하지만 (^^) 나이들어서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게 좋아보였던 모양이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제시카보다 젊은 나이에도 그렇지 못한데 더 나이들어서 그렇게 될까 싶네요.

Jeanne_Hebuterne 2013-04-30 18:20   좋아요 0 | URL
The passing of time
And all of it's crimes
Is making me sad again
The passing of time
And all of it's sickening crimes
Is making me sad again
But don't forget the songs
That made you cry
And the songs that saved your life
Yes, you're older now
And you're a clever swine
But they were the only ones who ever stood by you

-rubber ring


바로 저 대목이었습니다. 모리세이와 쟈니 마의 스미스.


저에게도 나이들어서의 롤모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목표하셨다는 점 자체가 hnine님에게는 가까워지고 있음을 뜻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함께.

hnine 2013-04-30 19:16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가사 안적어주셨더라면 노래 들었어도 못알아들었을겁니다. 영국의 저 북쪽 어디 억양이라는 것 밖에 ㅠㅠ
최영미의 <돼지에게>라는 시도 생각나고, swine이 진짜 의미하는건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나고...노래 하나 가지고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달려드네요.

잘잘라 2013-04-3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완전 공감합니다!!!
남자의 뇌, 여자의 뇌, 생각하는 뇌, 일하는 뇌, 춤추는 뇌, 느끼는 뇌, 책 읽는 뇌, ...(모두 책 제목이예요.) 별별 뇌가 다 있는데 그 모든 뇌가 결국 나이 드는 뇌라는 공통점이 있었네요. 명심하고 젊은 뇌 나이로 살도록, '지금까지 어떻게 했나 보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를 더 많이 생각하겠습니다.

hnine 2013-04-30 19:16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도 이런 쪽에 관심있으실 것 같아요.
저 이 책에서 제일 반가왔던 구절이 있는데요, 콜레스테롤이 세로토닌의 작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우울증을 막는데 한 역할 한다고 하네요. 의사가 하는 말이니 맞겠지요? 저의 골칫거리중 하나거든요, 콜레스테롤이요 (저 이 수치가 무지 높아요 ㅠㅠ)

2013-05-01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5-01 12:4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관심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어렵지 않게 써있어서 금방 읽습니다. 제목처럼 뇌의 노화를 완전히 멈추게 할수는 없지만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분명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얼굴, 체형등의 노화만큼 사람들이 뇌의 노화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면 좋을텐데, 금방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네꼬 2013-05-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두엽 후두엽 나오는 데서부터 눈이 @_@ 이렇게 됐어요. (노화 상당 진행..ㅠㅠ)
"나와 의견이 반대되는 책을 읽는다"는 대책 멋지네요. 읽으면서 화 내는 건 괜찮은 거죠?
좀 다른 얘기지만 저는 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심하게 들 때
기탄수학 4단계 꺼내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해봐요. 나 바보 아니야, 하고 확신하고 싶어서요. 세자릿수와 두자릿수 계산이 제일 어려운 수준인 그런 문제집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틀린다는 거. 그것도 같은 문제를 또 틀린다는 거. (저는 8에서 6을 빼면 가끔 4가 나와요. 왜죠?)

노력하겠습니다.

hnine 2013-05-02 17:47   좋아요 0 | URL
나와 의견이 반대되는 책을 좀처럼 읽게 되지가 않더라고요. 고르는 책들이란 결국 나와 코드가 맞는 책들이니, 이미 알고 있고 믿고 있던 것에 대한 동감, 확신만 더해줄뿐이지요.
저는 머리가 원래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나빠지면 클나요 ㅠㅠ 요즘 자주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 좀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나쁜 기억이나 추억도 이렇게 깜빡깜빡 잊어버린다면 좋겠지요?
기탄수학 4단계 ㅋㅋ 틀려도 절망스럽지 않은, 좀 더 높은 단계를 차라리 풀어보면 어떨까요? 8에서 6을 빼면 4 나오는거는, 8, 6, 4, 2, 이런 식의 수열을 떠올리기 때문 아닐까요? 자연스럽게 8, 6, 나왔으니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4 라고 쓰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래만에 아이 어렸을 때 찍어놓은 비디오를 보았다.

2001년, 아이 낳고 딱 4주 쉰후 나는 일터로 복귀한 상태였고, 아이는 이웃집에 맡겨놓고 다녔었는데 아이를 돌봐주시던 분이 둘째를 임신하시는 바람에 우리 아이 봐주는 일을 못하시게 되자 남편이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보아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집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가족기숙사. 우리집은 1층이었다. 처음엔 1층이라 좀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냥 살기로 했다. 아이 데리고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아 그건 편하겠다 싶기도 했고.

그때 찍은 비디오를 지금 유심히 보니 예전에 지나쳤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집 바로 앞의 흙 마당에서 노는데 신발은 물론 신지 않았고 아직 못 걸을 때라 무릎으로 온 마당을 헤짚고 기어다닌다. 기어다니면서 흙을 쥐어 만져보고, 모래 있는 곳까지 기어가서 모래를 쥐어 보고, 물론 입에도 넣어보고 (남편이 얼른 쫓아와 이것만은 못하게 한다), 나무를 손으로 만져보고, 이게 뭔가 고개를 쳐들어 보고, 솔방울을 보더니 집어서 이리 저리 보더니 던져 버린다.

잔디를 손에 한웅큼 쥐어서 뽑으려고 한다. 큰 돌, 작은 돌, 이리 저리 만져본다. 땡볕이라 아이 머리와 얼굴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지만 아이는 열심히 기어다닌다. 의자를 발견하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낑낑대며 그 위에 올라가려 애쓴다. 아마 아이가 그러다 떨어질까봐 남편은 옆에서 눈을 안떼고 바라보고 있었으리라. 마침내 의자 위로 올라간 아이는 아무리 아기지만 나름대로 성취감이라는걸 느꼈을까?

그 당시 아이의 일상이다. 마루 문 하나 열고 나가면 바로 이런 너른 마당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이건 우리 집 마당이 아니라 기숙사 여러 동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마치 우리집 정원인양 맘껏 누린 셈이다. 10분 정도 되는 이 대목을 보는 동안, 아이는 참 여러가지를 스스로 배우고 경험해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옆에서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그냥 아이를 자연에 풀어놓고 아이가 하는대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는 스스로 이것 저것 만져보고 느껴보고 시도해보는 것이다.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잘해주진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스스로 위안삼아본다. 나는 출현하지도 않은 비디오를 보면서.

 

 

 

 

 

 

요즘 찍은 사진이다. 농구, 수영, 스케이트, 축구...남자애들은 왜 그렇게 몸 움직이는 일을 좋아하는걸까. 힘들지도 않나?

 

 

 

 

 

이런 개 키우고 싶은게 아이의 꿈이다. 우리 집 강아지 (시쭈)가 들으면 서운할거다.

다른 집에서 이 개를 보고 흥분하여 자기 개인양 데리고 달리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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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4-2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온몸으로 자연을 체험하던 순간이었네요. 어쩐지 경이롭게 보여요.

hnine 2013-04-26 19:14   좋아요 0 | URL
그때는 그냥 생활이고, 대안없는 시간 보내기였는데, 지금 보니 다르게도 보이네요. 그럴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너그럽고 긍정적으로 현실을 보는건데 그랬어요. 부족한것만 마음에 불만으로 담고 보낸게 후회스러워요.

sangmee 2013-04-2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기 때 비디오 보고 뭉클 했지?
지금도 많이 자랐다 싶은데,
앞으로 2~3 년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할걸~

hnine 2013-04-26 21:15   좋아요 0 | URL
엄청난 성장을 해주길 ^^
요즘 you tube에 동영상 만들어 올리는데 취미가 붙었어.

파란놀 2013-04-26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나날 아이가 아주 좋은 터전에서 지냈군요.
이 기운 잘 몸이 기억할 테니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크리라 믿습니다.

hnine 2013-04-26 21:1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가끔 산들보라 노는 모습 보며 제 아이 어릴때를 떠올리곤 한답니다.

2013-04-27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7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4-2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구하는 다린이 모습 멋진걸요~~~
놀이터에서 기어다니며 놀았던 다린이 상상하니 웃음이 납니다. 얼마나 귀여웠을까~~~
그렇게 추억은 살아가는 힘이 되지요^^

hnine 2013-04-27 10:41   좋아요 0 | URL
놀이터가 따로 없었지요. 눈 깜짝할 새에 저만치 가있고, 흙 집어다 입에 집어 넣고, 남의 밭에 들어가고, 못하게 하면 떼 쓰며 울고...ㅋㅋ
아이들 어릴 때 생각하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그렇지요. 규환이도 아기때 활달했을 것 같은데, 보림이는 얌전하고...
추억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거 맞아요. 그런데 추억은 아주 가끔만 떠올리고 싶어요. 제가 나이드는거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서요 ^^

icaru 2013-04-2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사진 너무 좋네요~ 웃음이 저절로 지어지는
근데, 우리 나라가 아닌 것만 같은 풍광이네요~ ㅎㅎ

hnine 2013-04-27 14:19   좋아요 0 | URL
사진은 남편이 찍었답니다. 저는 저 사진에서 개가 정말 멋있어요. 허스키스 라던가.
icaru님을 잠시라도 웃게 해드렸다니 저도 기분 좋아요.
우리 나라가 아닌 것만 같은 풍광이지요? ^^

프레이야 2013-04-27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오랜만에 인사 드려요. 봄날 잘 지내고 계시죠^^ 전 아이들 비디오를 안 찍어뒀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요. 그저 제 기억 속에만 있는데 찍어뒀으면 아이가 지금 커서 자기모습을 보고 좋을 거 같아요. 님의 페이퍼를 보니 다린이가 다감하고 시적인 아이인 게 당연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자라고 있네요. 우리의 아이들 모두 그래야겠죠. 왠지 므흣~

hnine 2013-04-27 17:4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저때 비디오는 커녕 디지털 카메라도 없었어요. 사진 공부하고 있던 남동생이랑 올케가 와서 찍어주었지요. 그때 동생 부부는 아직 아이가 있기 전이었고 다린이를 무척 예뻐했거든요. 지금도 고맙게 생각된답니다.
다린이는 말씀하신 것 처럼 남자아이인데도 무척 감성적이고 눈물도 많고, 남편은 그게 못마땅한 것 같은데 딸 없는 저는 그게 싫지만은 않네요 ^^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요즘 별로 그렇지를 못해서요.

LovePhoto 2013-04-2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시 하루하루의 광경들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한........
손 한 번 뻗으면 다시 그 자리랑 시간에 닿을 것만 같은.....

hnine 2013-04-28 19:17   좋아요 0 | URL
다 네 덕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