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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의학 교수로서의 저자 이름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의 글은 처음 읽어본다.
30대까지만 해도 이런 제목은 한번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인생을 뭐 재미로 사나?' 이러면서 오히려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인생은 지금 당장 재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자기만의 확실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희생해가면서라도 나만의 목표가 나의 중심이 되는 것,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그런게 삶의 방향키가 될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40대가 되면서,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 꼭 가벼운 삶, 미래를 내다볼줄 모르는 삶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 전에 정년 퇴직을 한 저자가 78세의 나이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걸까. 모르긴 몰라도 그는 생명의 유한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순간 부족해진다 (107쪽).
늘 부족함을 마음에 담고 사는 한, 재미있게 살기 어렵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순간부터 나의 목표는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일이 되고 그것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잊는다.
보통 '긍정'이라 하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한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 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나에게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진정한 긍정의 고수는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한다 (149쪽).
나 역시 '긍정'이라고 하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사람 중의 하나. 바보가 아닌다음에야 어떻게 모든 걸 생각없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나이가 나이라서 그런지 저자는 현재 일곱 가지나 되는 지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병을 달고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동안 자기 관리를 제대로 잘 못했다는 자책으로 우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 들어가며 병드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더구나 열심히 산 결과로 생기는 병을 어쩌겠냐면서 병은 훈장이 아니듯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증거는 더더욱 아니며 그냥 같이 가야할 삶의 조건이 추가되었을 뿐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병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른다. 어디 병에 대해서만 그렇겠는가?
노년기는 이제 더이상 그저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는 시기가 아니다. 노년기가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만큼 노인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100세까지 사는걸 좋아할게 아니라, 그때까지 '심심하지 않게' 사는 것을 생각해봐야 하고 그건 젊을 때부터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좋다. 코미디언 이자 만담가였던 장소팔씨가 죽음 직전에 아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내가 왜 죽는 줄 아냐? 심심해서 죽는다. 너도 한번 늙어 봐. 늙으면 진짜 할 일도 없고 심심해 죽겠다, 그래서 세상을 뜨는 거야."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냥 우스개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 역시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며 컸던 이유로 커서까지 어머니로부터 과잉 보호에 가까운 울타리 속에 자라야 했고 그게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구속으로 커지게 되자 수년에 걸쳐 거기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어머니 앞에서 직접 '어머니로부터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아마 그렇게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 스스로 많이 성숙해졌을 것이며 의학 중에서도 정신과를 택하게 된 것은 그런 자신의 상처 치유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은 부모에게서 받은 마음속의 크고 작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것에서 완성되는 것 (189쪽).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들과 의논하여 그들의 요청 내지는 동의 하에 3층집에서 3대, 열 세명의 가족이 함께 사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전할 말이 있을 때 이메일을 이용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고, 자식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이 세상을 뜬 후에 제사를 지내지 말것을 미리 자식들에게 일러놓은 것, 지금도 전화, 핸드폰, 자동차 없이 살고 있는 것, 사회학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정년 퇴직후 작은 연구소를 차리고 둘이 함께 전공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 즉 '가족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집필, 상담 일을 하고 있어서 지금도 매일 9시면 아내와 함께 연구소로 가는 생활. 내가 알고 있는 다소 무표정하고 근엄해보이는 저자의 모습을 떠올릴때 언뜻 연관이 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관조적이고 담담하게 쓰여진 글이다. 책 소개에서 보듯이 이 책을 저자가 직접 쓰지는 않았고 다른 분이 엮었다고 하여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런 류의 책들 중 상당수는 이렇게 엮은이를 따로 공개하지 않고 직접 쓴 것 처럼 나오고 있겠지 생각하니 오히려 솔직한 것 같아 아쉬움이 좀 가신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데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더 가지고 싶고, 더 있어보이고 싶은 욕심을 좀 덜어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