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아주머니 (2)

 

 

 

"나 편지 좀 몇자 써줄수 있을라나?"

가끔 아주머니의 부탁에

뭐든 읽고 쓰는걸 좋아했던 나는

얼른 종이랑 볼펜을 들고 왔다

잘 있는가,

난 동상 덕에 잘 있네,

일전에 어쩌구...

두줄 쓰고

"거기꺼정 한번 읽어줘봐"

또 두어줄 쓰고

"뭐라고 썼나 한번 읽어봐"

 

편지 봉투를 쓰는데

받는 사람 이름이 김힝노라신다

이름이 이상하여

알고 보니 김형노

우리 집에 계셨던 8년 동안

참 여러번 써드렸는데

편지 받는 대상은 몇명 되지 않았지만

답장을 받으시는지 그것도 알수 없었지만

정성껏 꼭꼭 눌러 써드렸는데

 

이젠 그럴 일도 없고

내가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도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주소가 없는 곳에 계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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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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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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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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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0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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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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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0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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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0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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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아주머니 (1)


 

자꾸 웃음을 지어내고 있는 것이 어색해보였다

한밤중

아빠가 모시고 온 처음 보는 아주머니

큰 보따리는 아빠가 대신 들고 계셨고

이미 잠자리에 들어있다 불려나온 나와 동생들은

공손히 인사부터 해야했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고

할머니보다는 젊어보이는

김명화 아주머니

그날 밤 그렇게 우리집에 처음 오던 날

날 보면서도 웃고

동생들을 보면서도 계속 웃던 아주머니

온지 몇달만에 나가버리던 언니들, 이모들보다

이 아주머니는 웬지 다를 것 같았다

자던 눈 비비고 나왔다가

아주머니 웃음을 분석하느라

열한 살 계집아이는

어느 새 눈이 땡글거렸다

이날 아주머니의 그 헤픈 웃음은

눈물 대신 흘린 웃음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떠나온 고향

두고온 막내 아들

잠시라도 잊고 싶어 만들어내던

정말 힘든 웃음이었다는 걸

 

 

 

 

 

 

 

눈물 대신 흘리는 웃음

더 이상 퍼올릴 웃음이 없을 땐 결국

울기도 하셨지

그때도 눈물은 흘렸을지언정

표정은 웃고 있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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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꽃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3
정연철 지음 / 비룡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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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거의 안읽고 있다시피 했는데 이 책 소개글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창작블로그에 올렸던 호두나무 어쩌구 하는 나의 글과 어딘가 공통 부분이 있어보여서였다. 내가 쓴 이야기야 뭐 특별한 서사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같은 아마츄어 말고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정연철이라는 이름은 푸른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주병국 주방장>이었던가? 그 작품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이 이해와 화해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와 주인공 기범이 사이의 갈등이 큰 축을 이루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음주 습관과 가정 내 폭력이 아버지로 대물림 되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점점 커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결국 집을 탈출하는 주인공. 대학 입시 날, 주인공은 시험장 대신 고향집으로 향한다.

작가의 유년 기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이 작가의 말을 통해 분명해진다. 아마도 이렇게 작품으로 세상에 내어놓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엉킨 앙금 같은 경험을 이렇게 정리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십여년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쓸때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을텐데 자기의 경험이 소설로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할까. 경험은 작품의 모티브 제공의 수준에서 그쳐야지 작품 전체를 끌고 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즉, 경험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험 이상의 어떤 창작물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더구나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작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독자들은 많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면 작가는 좀 더 특별한 사건이나 서사를 입혀야 했을 것이다.

작가의 문장력이나 글을 이끌어가는 솜씨는 기성작가라고 할만큼 되어 보이나 작가만의 개성이나 매력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단맛도 볼 수 없는 건가? 아버지와 가난이라는 떫은 맛도 꾹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내게 단맛을 선물할까? (131쪽)

이처럼 6학년 아이의 일기장 내용 많은 부분이 6학년 답지 않아보였던 것이 그 아이의 개성때문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어른의 입장에서 의미를 담으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여서 아쉬웠고, 그러다가도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선 여섯 살도 아니고 6학년 아이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상황이 우스웠다.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에 오히려 쾌재를 부를 정도로 상처가 깊었던 주인공의 마음이 특별한 계기 없이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돌아서게 된 것도 '마법의 꽃'이라는 말 하나로 처리하기엔 부족해보인다. 작가도 많이 고심하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보지만 아무튼 뭔가 개연성이 빠져있다는 느낌이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작품. 많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억에 남을 감동이 전해지지도 않은 그런 작품.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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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에 무얼 구워본지 오래.

일요일 아침으로 뭘 먹고 싶은지 어제 물으니 요즘은 왜 카스테라를 안 해주냐고 그런다.

우유도 없고 꿀도 없고, 그래서 나중에 해주겠다고 말해놓고선.

 

식구들은 아직 자고 있는 오늘 아침, 창 너머로 봄비 오고 있는 것을 내다보고 있자니

카스테라를 만들고 싶어진다.

아무튼 내마음은 이렇게 예측불허, 종잡을수 없단 말이다.

 

우유 없는 대신 그냥 물, 꿀 없는 대신 유자청으로 대치.

오븐 180도 예열부터 시작!

 

1시간 정도 후에 큰 틀로 하나, 미니 틀로 하나가 나왔다.

 

 

 

 

 

 

 

저렇게 단면을 깨끗하게 하느라 깎아낸 가장자리 조각들, 이건 평소 내 차지인데, 이것까지

한 조각도 남김 없이 남편과 아이가 다 먹었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 제일 기분 좋은 경우이다.

완판을 선포하는 쇼핑호스트라도 된 양.

 

설겆이까지 마치고 들어와 책상에 앉았는데

창 밖을 보니 여전히 봄비가 보슬보슬.

맛은 못봤지만 카스테라 맛도 아마 그렇게 보슬보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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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9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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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3-09 12:29   좋아요 0 | URL
기포빼기를 잘 못했는지 구멍이 송송 보이긴 하지만 제 수준에선 저 정도면 준수하지요.
우유가 안 들어가서 덜 부드럽다는 말에, 한번 째려보니 잠잠해지더군요 ㅋㅋ

nama 2014-03-0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테라하면 떠오르는 옛 일 하나.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식구 중에 누군가 몸이 아파서 밥을 잘 못 먹을 때 카스테라를 사다주시곤 했지요. 심지어 기르던 똥개가 몸이 아파 밥을 굶을 때에도 카스테라를 사다가 조금씩 떼어주시곤 했답니다. 그러면 식구도 똥개도 아픈 게 낫곤 했어요. 그렇게 사 먹던 카스테라를 직접 구우시다니...맛이 궁금합니다.

hnine 2014-03-09 15:43   좋아요 0 | URL
카스테라가 보들보들하기도 하고 평소에 안 먹던 것이니 밥이 잘 안 넘어갈때 오히려 입맛을 부를때가 있어서 어머님께서 그러셨나봐요. 뭐라도 먹이시려고...개에게 카스테라 손으로 떼어먹이시는 모습 상상하니 마음이 찡 하네요. 전 식구들 위해서도 그런 정성으로 만들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달사르 2014-03-0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 잘 하시는 분 보면 되게 존경스러워요. 특히나 저렇게 오븐을 이용해서 빵을 만드시는 거는 더더욱요.
ㅎㅎ 군침 도는 포스팅입니다. ^^

hnine 2014-03-09 15:47   좋아요 0 | URL
잘 하지 못해요. 저 혼자 살던 때가 3년 넘게 있었는데 그동안 밥을 직접 해먹은게 열번도 안 되었을 정도니까요. 제가 책임질 식구들이 생기니까 달라지더군요.
카스테라는 계량만 정확하게 하면 발효 같은 과정도 필요없고 재료도 간단한, 아주 간단한 빵이랍니다.
맛있어 보인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파는 것과 직접 만드는 것 사이 맛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빵이 또 카스테라이지요.

2014-03-09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0 0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4-03-1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에 읽어본 알라딘 최고 글 셋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라딘에 글 많이 올라오지만, hnine 님 글 같은 최고는 넘 드물어요.
글 읽고 저도 정말 흡족해지는 거 있죠.
와, 남편 분하고 아드님 최고 좋겠다~
아아 부럽다 부러워~~
저도 옛날에 빵틀에다가 빵 많이 만들어 먹었다는~^^
hnine 서재에서 풍겨나오는 카스테라 향에
옛날 추억에 빠져듭니다.
정말 감사하네요. ^^*

hnine 2014-03-10 05:18   좋아요 0 | URL
qualia님 칭찬에 카스테라를 매일이라도 굽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니지, 너무 자주 굽는것보다 오랜만에 구워주니 식구들이 더 맛있게 먹더라고요^^
달걀, 밀가루, 설탕이 따로 있을 땐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것이, 함께 섞어 구우면 그렇게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의 무엇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재미있지요.
앞에 댓글 주신 분들도 그렇고 qualia님께서도 그렇고, 카스테라에는 그냥 입으로만 먹을 수 없는 추억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qualia님 빵 많이 만들어드신 경력자라니, 갑자기 위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는데요? 고수 앞에 내어놓기 부끄러운 실력 아닌가 해서요. 언제 qualia님의 빵 얘기도 좀 들려주세요.

아무개 2014-03-1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외갓집에서 얹혀 살때
외할머니가 전기 프라이판에 해주시던 노랗고 두툼한 카스테라가 생각나네요.
30년전 그 옛날...강원도 원주 촌할머니가 그런거 만드는걸 어떻게 아셨는지.
역시나 카스테라는 추억을 부르는군요. ^^


hnine 2014-03-10 13:50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남편과 그 얘기 했네요. 옛날에 오븐 없던 시절에 카스테라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을까 에 대해서요. 그때는 먹기만 했지 만드는 방법을 눈여겨보지 못했고, 물어볼 분들은 이제 안계시니 말입니다. 아무개님은 만드는 과정을 보셨군요. 전기프라이판에... 요즘도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달걀 휘젓기는 손으로 하셨겠지요? 그거 손 무지 아픈데...
카스테라에 얽힌 추억담 듣는 것도 재미있어요 ^^

하늘바람 2014-03-1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넘 맛나보여요 저도 함 도전해볼까봐요

hnine 2014-03-10 13:50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아이들 먹이기에 특히 좋아요. 해보세요. 재료도 간단하고요.

여울 2014-03-1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슬


보슬보슬


보슬보슬....참 좋은 말입니다. 봄에도 입에도...그리고 마음에도

hnine 2014-03-10 13:51   좋아요 0 | URL
보슬빵이라고 부를까요 이제부터? ^^
봄인데 전 왜 여전히 스웨터를 두르고 지내는지...노화의 현상이려니 합니다 ㅠㅠ

세실 2014-03-10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유가 없어도, 꿀이 없어도 카스테라 가능하구나......
나가사키에 직접 가서 먹어본 카스테라, 참 맛있던데요. 왠지 나인님 카스테라도 비슷한 맛 일듯^^

hnine 2014-03-10 13:56   좋아요 0 | URL
박력분이 아니라 강력분으로 만들어 질감은 좀 거친듯 하면서도 더 폭신하게 만드는게 나가사키 카스테라라고 하더군요 (지금 막 검색해본 결과 ^^). 저는 그냥 집에 있는게 박력분이면 박력분으로, 중력분이면 중력분으로, 강력분이면 강력분으로. 그때 그때 가진 재료가지고 만들어요. 어제는 중력분으로 만들었지요. 설탕이 들어가니 꿀은 단맛보다는 달걀 특유의 냄새 잡는 목적으로 넣어주는 것 같아요. 우유도 두 숟가락 양만 들어가도 되어서 가볍게 무시해버렸지요. 카스테라의 미국 버젼이 스폰지 케잌이라네요. 이것도 방금 검색하다가 알았어요.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카스테라와 스폰지 케잌이 도대체 뭐가 다를까 하고요.

무지개모모 2014-03-1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모양이 빵집에서 파는 빵처럼 예뻐요!
만화 <닥터 슬럼프>에서 음식 사진을 넣으면 그대로 음식이 나오는 밥통이
슬럼프 박사 발명품으로 나오는데 지금 저에게 그 물건이 필요합니다ㅠ.ㅠ

hnine 2014-03-10 22:44   좋아요 0 | URL
이렇게 재미있는 댓글이라니요 ^^
그 만화의 닥터 이름이 "슬럼프"라니 맘에 들어요. 제 이름 하고 싶은데 한발 늦었네요 ㅠㅠ
그건 그렇고 전 지금 언젠가 무지개모모님 서재에서 본 케이크가 눈 앞에 어른거려요.

무스탕 2014-03-1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단 집에 오븐이 있다는게 신기;;하고
집에서 그 오븐을 이용해서 빵을 만들어 낸다는게 더 신기하고
그렇게 만든 빵을 한 조각도 못 드셨다는 나인님대신 제가 슬퍼요 ㅠㅠ
맛있는건 꼭 뺏어 먹어야 더 맛있는건데 그걸 못하셨다니.. ㅠㅠ
완판을 외치는 쇼호스트라니, 빵- 터졌어요. ㅎㅎㅎ


hnine 2014-03-10 22:48   좋아요 0 | URL
오븐은 이 아파트에 이사오니 전자렌지겸 오븐이라는 물건이 부엌에 강제로(!) 설치가 되어 있더군요.
식구들이 잘 먹어서 제가 먹을게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 즉 아무도 안 먹어서 제가 만들어놓고 저혼자 며칠에 걸쳐 다 먹어는 경우보다 백배는 더 나아요. 얼마나 비참한지 ㅠㅠ (이런 경험도 많아요).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은 빵은 식빵, 즉 발효빵인데 아직도 자신없답니다.
 
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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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40대가 되었으면 수필을 읽어야 할 때라고 누가 그랬다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10대 고등학생일때에도, 20대에도, 수필 읽기를 좋아했다. 지금 40대, 그것도 50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여전히수필을 찾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수필을 찾는 동기는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헤쳐나갈까, 어떻게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갈 수 있었을까, 어떤 유혹을 뿌리쳤고 어떻게 한곳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무엇일까...이런 것들에 대한 힌트를 듣기 위한 것이 이전의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마음 다 내려놓고 그냥 읽는다. 인생 별거 있나, 이렇게 하루를 별 일 없이 잘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사는 것이지, 이런 마음이랄까.

제목의 '처네'라는 말이 일단 반가왔다. 저자의 이름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표지의 저 그림과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은 아이를 저렇게 업어주는 것을 예전만큼 잘 볼 수 없지만 아이를 건사하면서 다른 일을 동시에 하기에 처네만큼 유용한 물품이 또 있을까. 유모차와 달리 다른 일을 보는 동안에도 아이와 몸이 직접 닿아있으므로 아이의 체온과 기척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다. 대신 여름엔 무척 덥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동생이 어렸을 때 할머니를 졸라 저렇게 동생을 등에 업혀달라고 해서는 자랑스럽게 동네 아이들 노는데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했고, 내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해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에게 부탁해서 처네를 보내달라고 해서는 아이를 업고 다녔다.

목성균. 이제는 고인이 된 그는 마흔이 넘어 뒤늦게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이 책에 대한 해설을 뒤에 붙인 평론가가 이렇게 훌륭한 수필집이 인구에 회자되지 못한 것에 비애를 느꼈다고 쓴 것을, 이 책을 다 읽고서 발견하였다. 그는 목성균의 글을 읽으면 슬퍼진다고.

이 리뷰의 제목으로 쓴 '사는게 섭섭할때'는 본문 135쪽의 문장 중에서 인용하였다.

'사는게 섭섭할 때 추수가 끝난 빈 들 복판에 이파리를 다 지우고 서 있는 둥구나무의 의연함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을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읽는 즐거움을 누린다. 특별한 감동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수필이란 어떤 글인지, 어떤 흐름을 가지는지 감이 잡히게 한다. 수필은 발견.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무턱대고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그건 소재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일뿐. 글 한꼭지엔 한가지 주제, 그리고 주제어, 주제 문장이 하나씩 발견됨을 발견한다. 그게 너무 확연히 드러나면 글의 격이 떨어질 것이고, 그것이 갖추어있지 않으면 그저 낙서같은 글의 수준에 머물고 말것이다. 경험한 것을 풀어놓기만 하면 그것은 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주장만 늘어놓으면 연설문 같아 정이 가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가끔 약간의 거짓말을 할때가 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약간의 거짓말이란 어느 정도를 이르냐 하면, 양심에 비춰서 가책을 안느끼는 정도라고 스스로 정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전의 어떤 풍경을 떠올리다가 확실히 그곳에 나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은 되지 않지만 글 속에서 나무가 한 그루 강변에 드리워져 있었다고 쓸때가 있다는 것이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짐을 들고 있었는지 들고 있지 않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고 계셨다고 쓰는 것이 또 다른 예라고 한다.

글 쓰는게 좋아서 마흔 넘어 문학 공부를 시작한 사람.

요즘 같은 세상에 일흔 전에 세상을 떴으니 좋아하는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수필 쓰기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 책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도 고개를 돌려 아이쪽을 살피는 그림 속 어미의 마음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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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3-0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그,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랍시고
이제껏 포대기와 처네가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네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이 그림처럼
늘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업혀서 살았어요.
제가 아이를 처네로 업고 다니는 모습을 본 이웃들은
가끔 기겁(?)을 했지만,
뭐, 어머니만 아이를 업고 다니란 법은 없으니까요~

hnine 2014-03-06 19:39   좋아요 0 | URL
'처네'라는 말을 전 어릴 때 실제로 많이 쓰던 말이라서요.
처네, 참 편리하고 쓸모있는 물건이었어요.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아이를 업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따뜻한걸요.

아무개 2014-03-0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네...처음 본 단어입니다.
포대기와는 또 다른건가 보네요.

일상에서의 반짝이는 발견들의 모음.
좋은 수필집 추천 좀 해주세요.
요새 너무 날선 책만 읽는같아요 ㅡ..ㅡ

hnine 2014-03-06 19:49   좋아요 0 | URL
아, 처음 보시는구나. 전 많이 쓰던 단어이거든요. 할머니께서 충청도가 고향이시라서 충청도 사투리인가 했지요.
수필을 쉽고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는걸 이 책 읽으면서도 깨달았어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걸 끄집어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이 다 쓸 수 있는 글이 안되려면요.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으려고 사놓았는데 제가 보기엔 평론집인데 본인은 서문에서 산문이라고 우기고 있네요 ^^ 톨스토이나 베이컨 수상록도 괜찮았어요. 아, 장석주의 책도 좋아요.

서니데이 2014-03-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네'가 아이를 업는 그림이어서 포대기를 말하는 건가 했는데, 댓글까지 읽다보니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는데 처음 보는 거라서 낯설더라구요.

요즘은 유명인이나 작가들의 에세집도 많이 나와서 읽을 때가 있는데요, 수필이라는 글이 그냥 일상의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글이라고 하셔서, 다음에 읽을 때는 그런 점을 글에서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hnine 2014-03-07 06:15   좋아요 0 | URL
댓글까지 세세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흔하게 쓰던 말이라서 '처네'라는 말이 어떤 분에게는 낯설거라는걸 짐작도 못했네요 ^^
평론, 수필, 때로는 자기개발서, 이 세가지의 구분이 모호한 책들도 많이 나오더군요. 무엇으로 구분되느냐 상관없이 저는 그냥 저에게 도움이 될 것이 있으면 읽는답니다.
소설과 달리 수필은 지어내는 글이라기 보다 경험과 통찰과 사색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울수 있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