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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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40대가 되었으면 수필을 읽어야 할 때라고 누가 그랬다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10대 고등학생일때에도, 20대에도, 수필 읽기를 좋아했다. 지금 40대, 그것도 50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여전히수필을 찾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수필을 찾는 동기는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헤쳐나갈까, 어떻게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갈 수 있었을까, 어떤 유혹을 뿌리쳤고 어떻게 한곳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무엇일까...이런 것들에 대한 힌트를 듣기 위한 것이 이전의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마음 다 내려놓고 그냥 읽는다. 인생 별거 있나, 이렇게 하루를 별 일 없이 잘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사는 것이지, 이런 마음이랄까.

제목의 '처네'라는 말이 일단 반가왔다. 저자의 이름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표지의 저 그림과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은 아이를 저렇게 업어주는 것을 예전만큼 잘 볼 수 없지만 아이를 건사하면서 다른 일을 동시에 하기에 처네만큼 유용한 물품이 또 있을까. 유모차와 달리 다른 일을 보는 동안에도 아이와 몸이 직접 닿아있으므로 아이의 체온과 기척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다. 대신 여름엔 무척 덥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동생이 어렸을 때 할머니를 졸라 저렇게 동생을 등에 업혀달라고 해서는 자랑스럽게 동네 아이들 노는데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했고, 내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해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에게 부탁해서 처네를 보내달라고 해서는 아이를 업고 다녔다.

목성균. 이제는 고인이 된 그는 마흔이 넘어 뒤늦게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이 책에 대한 해설을 뒤에 붙인 평론가가 이렇게 훌륭한 수필집이 인구에 회자되지 못한 것에 비애를 느꼈다고 쓴 것을, 이 책을 다 읽고서 발견하였다. 그는 목성균의 글을 읽으면 슬퍼진다고.

이 리뷰의 제목으로 쓴 '사는게 섭섭할때'는 본문 135쪽의 문장 중에서 인용하였다.

'사는게 섭섭할 때 추수가 끝난 빈 들 복판에 이파리를 다 지우고 서 있는 둥구나무의 의연함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을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읽는 즐거움을 누린다. 특별한 감동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수필이란 어떤 글인지, 어떤 흐름을 가지는지 감이 잡히게 한다. 수필은 발견.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무턱대고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그건 소재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일뿐. 글 한꼭지엔 한가지 주제, 그리고 주제어, 주제 문장이 하나씩 발견됨을 발견한다. 그게 너무 확연히 드러나면 글의 격이 떨어질 것이고, 그것이 갖추어있지 않으면 그저 낙서같은 글의 수준에 머물고 말것이다. 경험한 것을 풀어놓기만 하면 그것은 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주장만 늘어놓으면 연설문 같아 정이 가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가끔 약간의 거짓말을 할때가 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약간의 거짓말이란 어느 정도를 이르냐 하면, 양심에 비춰서 가책을 안느끼는 정도라고 스스로 정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전의 어떤 풍경을 떠올리다가 확실히 그곳에 나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은 되지 않지만 글 속에서 나무가 한 그루 강변에 드리워져 있었다고 쓸때가 있다는 것이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짐을 들고 있었는지 들고 있지 않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고 계셨다고 쓰는 것이 또 다른 예라고 한다.

글 쓰는게 좋아서 마흔 넘어 문학 공부를 시작한 사람.

요즘 같은 세상에 일흔 전에 세상을 떴으니 좋아하는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수필 쓰기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 책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도 고개를 돌려 아이쪽을 살피는 그림 속 어미의 마음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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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3-0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그,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랍시고
이제껏 포대기와 처네가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네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이 그림처럼
늘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업혀서 살았어요.
제가 아이를 처네로 업고 다니는 모습을 본 이웃들은
가끔 기겁(?)을 했지만,
뭐, 어머니만 아이를 업고 다니란 법은 없으니까요~

hnine 2014-03-06 19:39   좋아요 0 | URL
'처네'라는 말을 전 어릴 때 실제로 많이 쓰던 말이라서요.
처네, 참 편리하고 쓸모있는 물건이었어요.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아이를 업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따뜻한걸요.

아무개 2014-03-0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네...처음 본 단어입니다.
포대기와는 또 다른건가 보네요.

일상에서의 반짝이는 발견들의 모음.
좋은 수필집 추천 좀 해주세요.
요새 너무 날선 책만 읽는같아요 ㅡ..ㅡ

hnine 2014-03-06 19:49   좋아요 0 | URL
아, 처음 보시는구나. 전 많이 쓰던 단어이거든요. 할머니께서 충청도가 고향이시라서 충청도 사투리인가 했지요.
수필을 쉽고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는걸 이 책 읽으면서도 깨달았어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걸 끄집어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이 다 쓸 수 있는 글이 안되려면요.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으려고 사놓았는데 제가 보기엔 평론집인데 본인은 서문에서 산문이라고 우기고 있네요 ^^ 톨스토이나 베이컨 수상록도 괜찮았어요. 아, 장석주의 책도 좋아요.

서니데이 2014-03-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네'가 아이를 업는 그림이어서 포대기를 말하는 건가 했는데, 댓글까지 읽다보니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는데 처음 보는 거라서 낯설더라구요.

요즘은 유명인이나 작가들의 에세집도 많이 나와서 읽을 때가 있는데요, 수필이라는 글이 그냥 일상의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글이라고 하셔서, 다음에 읽을 때는 그런 점을 글에서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hnine 2014-03-07 06:15   좋아요 0 | URL
댓글까지 세세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흔하게 쓰던 말이라서 '처네'라는 말이 어떤 분에게는 낯설거라는걸 짐작도 못했네요 ^^
평론, 수필, 때로는 자기개발서, 이 세가지의 구분이 모호한 책들도 많이 나오더군요. 무엇으로 구분되느냐 상관없이 저는 그냥 저에게 도움이 될 것이 있으면 읽는답니다.
소설과 달리 수필은 지어내는 글이라기 보다 경험과 통찰과 사색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울수 있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