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

내 주위에 없었다

 

두리번 거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전히 나는

그 긴 벤치에 그대로였다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무엇이 변했느냐고...

---류시화 '물안개' 全文---

 


꼿꼿이 쳐들고 온 머리부터를 모래톱에 처박고

온 몸을 양파껍질처럼 말면서 곤두박질치고

울부짖는 그대

멀고 먼 세상에서 흰 거품 빼어문 채 내내

사랑하고 악다구니 쓰며

줄기차게 살아 온

그 삶을 후회하는가

--- 한 승원 '파도'  全文 ---

( * 사진은 올 봄 거제도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찍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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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1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며칠 마음이 좀 꿀꿀하였는데 시와 사진 보며 시원해지옵니다.^^

hnine 2006-10-13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저도 요즘 저 바다 보러 다시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랑하고 악다구니 쓰며 줄기차게 살아봅시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기행 산문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들의 매력에 요즘 흠씬 빠져 있다. 동화집도 낸 동화 작가이기도 하면서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이기도 한 곽 재구의 우리 나라 바닷가를 찾아 다니며 쓴 기행문이다.

구룡포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화진', 군산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선유도', 충무 바다를 거쳐 가는 동화 마을과 지세포란 이름의 갯마을, 군산에서 배타고 가는 '어청도', 동해바다 정자항, 지심도, 어란 포구, 구시포, 사계포, 화포, 등등. 귀에 그리 익지 않은 포구들을 찾아가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 사는 모습을, 시는 아니지만 (시의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시와 다름 없는 언어로서 그려준다. 고요하고 무심해 보이기만 하는 바다를 말해주고, 엄연한 생존의 몸부림이 있는 주민들의 삶을 말해준다.

책 장이 몇 장 넘어가며 나타나는, 두 페이지 꽉 차게 들어오는 사진들도 좋다. 대부분 포구의 사진들이지만, 활짝 웃고 있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팥죽집 아주머니의 사진도 있고, 떨어진 동백꽃잎들이 낙엽과 어우러져 있는 한적한 길의 사진도 있다.

이 포구에서 저 포구로 방랑하며 작가가 얻은 것은, 느낀 것은 무엇일까.

포구는, 바다는, 그냥 거기 그대로 있다. 가끔 찾아가 그 곁에 머리를 기대고 마음을 기대고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을 제공받는 것 뿐. 뭍에서의 숱한 욕망과 이루지 못한 꿈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시 돌이키고 되씹고 그리고 마음 먹고... 찾아오는 사람들, 잠시 머무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떠나는 사람들을 바다는, 포구는 아무 말 없이 맞고 보낸다.

참 아름다운 글이었다는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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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10-1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그래요

씩씩하니 2006-10-1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구 나서,딱 이 느낌였는대.........

hnine 2006-10-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시인은 정말 타고 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시인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맞서 살아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도 세상이 만만치 않은지라.

씩씩하니님, 이 작가, 젊어서 뭔가 마음고생 내지는 방황을 많이 한 것 같지 않아요? 잘은 모르지만 ^ ^

kleinsusun 2006-10-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글을 읽으니 바다에 가고 싶네요. 바닷가 한적한 마을에 작은 방을 하나 얻어서 뒹굴거리는 상상을 가끔 한답니다.^^

hnine 2006-10-20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봄에 갔던 통영, 거제 앞 바다가 그리워요. 물과 육지가 구불구불 서로 엉겨든 것 같은,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남쪽 바다 푸른 색이 보고 싶어요.
 
기차를 놓치고, 천사를 만났다
백은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리뷰는 이렇게 파아란 색으로 써야 할 것 같다. 꽃그림 작가 백 은하의 독일, 프라하, 바르셀로나, 파리 산타페, 샌프란시스코, 뉴욕 여행기.

 

사진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황 경신의 글을 언뜻 떠올렸었으나, 글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방문하는 지역에 대한 사전 조사나 계획을 철저히 세워 여행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기행문이 있는가 하면, 이 책처럼, 즉흥적이고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의 여정, 경험을 더 좋아한 듯 한 기행문도 있다. 사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풍경 사진 찍는 기술이 수준급. 간간히 삽입되어 있는 꽃잎과 풀잎, 나뭇잎이 섞여들어간 작품들도 좋고, 지루하지 않은 글도 산뜻하다.

 

그녀만의 표현 방식을 옮겨보자.

활활 타오르는 욕망과 그것이 실현되고 있는 지글거리는 땅. 세상에서 제일 빨갛고 큰 사과. 그래서 나는 아직 뉴욕이 좋다. 여기저기 베어 물어도 맛이 다른 커다란 사과, 여전히 맛을 알 수 없는 사과, 오늘도 와사삭, 한 입 베어 물러 나간다 (P192).

몇 시간이고 앉아서 가지런히 쌓여 있는 아트북을 빨대로 마시듯 했다 (P233).

 

사진으로 표현된 풍경화를 감상하는 느낌이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랄까. 방문한 독일의 미술관 두 곳에 대한 글을 다 읽고서도, 여기가 독일 어느 지방에 있다고 했지 하며 다시 페이지를 되돌려 한참 찾아야 할 지언정, 천국의 하늘을 가진 도시라고 격찬을 한 산타페가 미국의 어느 주에 있는 산타페를 말하는 건지 아직도 나를 헷갈리게 할 지언정 (산타페라는 지명은 멕시코에도 있고, 미국에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도 별 네 개를 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 삽입된 그림과 사진들을 위해 작가가 쏟은 정성이 보통이 아님을 알겠기에. 그리고 작가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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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0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트북을 빨대로 마시듯 했다
가 눈에 들어오네요.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책 만나셨네요!
hnine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저도 잘 지내다 왔어요.^^

hnine 2006-10-0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돌아오셨군요.
집에 있는 저야 오늘 내일 별 다를바 없지만, 출근해야 하시는 분들, 내일 아침 다시 힘내서 일터로 향하셔야겠어요.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김기찬 사진, 황인숙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마음이 시려우세요?

이 책을 한번 펼쳐봐요.

언젠가 본 적 있는 그 골목, 언젠가 마주친 적 있는 그 얼굴들이 나를 보고 웃어요.

표지라도 보세요, 어린애들의 웃음을 보세요.

손가락으로 브이자도, 별다른 폼을 잡지도 못하고, 그저 입을 크게 벌리고, 햇빛을 눈부셔 하며 웃는 이 아이들을 좀 보세요.

리어커로 이사짐을 나르면서도 웃는 사람들의 표정,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고단한 얼굴도 봐주세요.  집의 지붕을 손보고 있는 아저씨의 심각한 모습 뒤로 고층 건물들이 배경으로 보이네요.

힘든 살림이지만 이들은 행복해보인다 라든지, 평화로워 보인다 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보고 읽고 마음 속에 뭔가가 차오르는 것을 조용히 느끼고 갈래요.

때로 '사진'이라는 것이 글로도 다 전달되지 않는 비정형, 무한대의 메시지 전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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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Photo 2006-10-06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 '사진'이라는 것이 글로도 다 전달되지 않는 비정형, 무한대의 메시지 전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 절대 공감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보내주신 이 책, 보고 또 보고 하며 음미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버릇 고쳐주는 부모습관 8가지
요한나 그라프 지음, 이홍경 옮김 / 글담출판 / 2006년 5월
절판


먼저 이해하라. 그러면 이해 받게 된다.
이 순서는 거꾸로 될 수 없다! 자신이 처한 바로 지금 이 순간 제일 먼저 아이의 감정에 집중하고 아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아이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면 아이의 분노는 점차 가라앉는다. 그런 후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기 시작하며 해결책을 찾을 생각을 하게 된다.-130쪽

깊게 숨을 쉬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을 정리하기 --> 아이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기 --> 햐결책을 찾은 것을 함께 기뻐하기-137쪽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멋진 옷도, 신기한 장난감도 아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원만하게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때론 갈등하고 때론 반목하며 지내는 것이 부부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부부는 아이를 기르는 데 한 팀이 되어야 한다. 서로 돕고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부부는 헤어지더라도 부모는 남기 때문이며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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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10-0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잘 안되지 뭐에요...ㅎㅎ
그래서 늘 엉망진창 엄마에요...
건강하고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hnine 2006-10-0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이거 순조롭게 잘 되는 엄마, 이 세상에 몇 안될걸요 ^ ^

비자림 2006-10-0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7쪽의 말들이 가슴을 콕콕 찌르네요.
찜해 두었다 읽어야겠어요.^^

hnine 2006-10-0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제가 이 책에서 제일 명심하고 싶은 말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