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준비에브 브리작 지음, 최윤정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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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Petite>. 이 작가의 이름으로 검색해보면, 어린이 책 들이 주로 나타난다. 이 책 역시 청소년 성장 소설로 볼수도 있겠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열다섯 나이에 성장을 멈추기로 작정하고,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만 먹기로 한다. 결국은 거식증이란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나, 그 치료도 거부한채 자기가 세운  성역 안에서 굳게 굳게 자기를 지키려는 소녀 누크. 배고픔은 오히려 그녀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말미에 우연히 알게 된 어느 할아버지와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그리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조금씩 그 자의식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는 실마리를 던져 주는데...

성장통이란 우리가 흔히 아는 방식으로 올수도 있고,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올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장통이란 꼭 십대에서 이십대 초에 온다는 우스꽝스런 편견은 버려야 함도 말하고 싶다. 특히 요즘처럼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스스로'보다는 '시키는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선, 이러한 성장통은 아주 늦게,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올수도 있음을. 어떠한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초기엔 '일종의 정신병'이라고만 알려져 있던 거식증. 작가는 이십년 전의 그 경험을 조금은 익살스럽게, 과장도 해가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목적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재미로만 읽기엔 이십년 후의 지금 우리들은 아마도 조금씩 나름대로의 소소한 일종의 정신병을 지니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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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9-2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성장소설이군요. 그것도 자전적

hnine 2006-09-22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하늘바람님. 우리는 왜 성장소설에 관심을 갖는 걸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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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발표된 박 민규의 열 편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읽는 동안, 그 누구의 글에서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느낌의 연속이었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의도적으로 가벼워 보이게 쓰는 기술, 그러면서도 메시지 전달을 확실히 하는 이런 기술은 작가의 타고난 개성인가 노력인가.

 

다릴 뻗고 고갤 젖히고, 그래서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보며 나는 말했다. 형, 지구는 진짜 돌고 있어요, 그러냐? 이렇게 지구가 도는 게 느껴질 땐 말이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가? 그러니까×××정말 우주에서××× 행성 위에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왜 고작 이 따위로 사는걸까? 라고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86쪽)

 

뭐랄까,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매우 이상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좌뇌와 우뇌를 잇는 운하, 같은 것이 열리지 않아 아프리카 대륙, 정도를 돌아야 하는 배들처럼 뇌세포들이 어수선해진 느낌이었다 (헤드락 248쪽)

 

이런 표현들, 그는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어떤 경험을 해야 했던가. 한가지 글 소재를 가지고 끝까지 가는 타입이 아니라, 계속 연계된 이야기를 끌어 들이는 작법 (作法)도 눈에 뜨인다.

제일 좋았던 단편은 처음에 실린 <카스테라>. 불합리하고 타협할 수 없는 대상들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냉장고속에 감금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냉장고가 포화될 무렵 그것들은 서로 결합하여 한 조각의 포슬포슬한 카스텔라로 탄생한다는 얘기. 카스테라가 상징하는 것을 긍정적인 의미로 봐야 할지, 아니면 부정적인,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결과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 2005년, 여기 저기서 박 민규 라는 이름이 들리고 보이던 이유를 알겠다. 이런 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주목을 받을만한 작가, 그리고 소설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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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9-2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이 사람 글은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hnine 2006-09-2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외국 작가들 중에 비슷한 분위기의 작가가 있는지요? 저는 외국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서요.

해리포터7 2006-09-2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이 작가의 글, 생각, 참 신기하죠?ㅎㅎㅎ 전 홀딱 반했답니다.

hnine 2006-09-2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예, 반할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던데요 ^ ^

가넷 2006-09-2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것만 보구 이 작가의 다른 장편은 아직 보지 않았는데, 상당히 구미가 당기더라구요. 읽는 재미가 있어요. ㅎㅎ;;

hnine 2006-09-23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ro님, 저도 이 책이 처음이었어요. 저도 조만간 다른 소설들도 한 권 한 권 읽어볼 생각입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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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영의 글을 읽노라면 어쩔수 없이 이 작가의 개인사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개인적 체험이 여기 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산문집을 읽을때이면.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라는 제목은 책 속에도 인용된 압둘 와합 알바야티의 '비엔나에서 온 까씨다들' 이라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

혼자 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어떤 때일까. 기대하던 대상과 더 이상 교통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시덥잖은 얘기나마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았을 때,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이 결과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함을 알고 있을 때...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계속되진 않는다. 혼자인 상태로 그리 오래 버텨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혼자임을 벗어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용서, 사랑, 상처, 외로움, 방황, 자유, 감정, 슬픔. 공지영 글의 키워드.

그녀는 이제 자유로울까. '혼자'임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을까.

...이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사회의 중년으로서 내 아이들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살아 있으면 감정은 마치 절망처럼 우리를 속이던 시간들을 다시 걷어가고, 기어이 그러고야 만다고. 그러면 다시 눈부신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고, 그 후 다시 먹구름이 끼고, 소낙비 난데없이 쏟아지고 그러고는 결국 또 해 비친다고. 그러니 부디 소중한 생을, 이 우주를 다 준대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지금 이 시간을, 그 시간의 주인인 그대를 제발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J, 비가 그치고 해가 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 하늘에 먹구름 다시 끼겠지요. 그러나 J, 영원한 것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살아 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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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어떤 내용이라고 전혀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소설, 박 민규의 '카스테라'.  번뜩이는 재기가 보이고 유쾌한 구석도 있으나, 결론은 비애감이다.

그가 말한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멀리 유스타키오관까지 퍼져 나가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 아니지만, 오늘 오후에 구운 카스테라는 그래도 먹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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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9-1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직접 구우셨다고요?
세상에 너무 맛나겠어요

hnine 2006-09-1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맛은 뭐 그럭 저럭 나더라구요.

비자림 2006-09-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 카스테라까지! 놀라워용^^
밑의 배경그림도 보게 되네요.

hnine 2006-09-1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모처럼 성공했어요 ^ ^ 밑의 그림은 식탁 유리 밑에 깔아 놓은 다린이 그림이어요. 좋은 주말 되세요.

세실 2006-09-1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님도 역시 훌륭한 주부셨군요. 흑....
아 카스테라 참 좋아하는데.

hnine 2006-09-16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박 민규의 '카스테라'를 읽고는 어찌 이런 제목에 이런 글이! 하고서 감탄했습니다. 훌륭한 주부는요 뭘...

씩씩하니 2006-09-1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세상에 이걸 진짜,구우신거에요..
꼬랑지..........푸~욱~
전,,그냥,,인스턴트 가루 사서,,쿠키만,,실쩍 구워봤는대..
그나저나,,저 카스테라 넘 좋아하는데................꼴깍~~~

hnine 2006-09-1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저나마 카스테라 비슷하게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고 저 혼자 다 처치해야했던지 흑 흑...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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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읽지 않았더라면 제목만 보고는 스스로 고르지는 않았을 책. 2005년에 출판된 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책 속의 언어들은 고답적이고, 민속적이랄까, '우리 것 스러움'이 담뿍 묻어나는 어체였다. 남도 사투리속에 녹아 있는 삶의 고단한 여정과 동시에 해학, 애환 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첫 페이지의 저자 소개를 자꾸만 다시 들춰보게 만들었다.

'부용각' 이라는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기생집의 구성원들, 부엌어멈 타박네로부터 대표 기생격인 오마담, 춤기생, 기둥서방, 집사, 간판 기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판소리 이야기로 풀어내는 듯한 느낌으로 엮어갔다. 그 어느 누구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으며, 어느 한 구석 아름답지 않은 인생이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져서 어떤 일생을 보내는가 하는 이야기처럼 소설에 있어서 흔하지만 기막힌 주제가 또 있겠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의 어린 영준이 엄마로부터 떨어지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로 뒤엉킨다.

... 두 여자는 가지 않겠다고 뻗대는 영준이를 끌다시피 해서 부용각을 나섰다. 엄마! 엄마! 엄마! 양손을 붙들린 채 끌려가던 영준이가 뒤를 돌아보며 엄마, 하고 울부짖을 때마다 영준이와 눈이 마주친 기생들은 바닥에 푹푹 주저 앉았다 ...이 지붕, 이 마루, 이 기둥.....영준이 넌 기억할 것이다. 부영각의 안뜰과 바깥뜰에서 철마다 피고 지던 꽃들을, 별채와 뒤채의 낮은 꽃담을, 안중문과 바깥대문의 당당한 위용을...저 깊은 곳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날 왈칵 밀고 올라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게 우리네 추억이고 기억이지 않더냐...널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내가 죽고 오마담이 죽고 미스 민이 죽더라도 또다른 미스 민이 부용각에 남아 널 맞이할 것이다. 영준이 네가 생전에 오지 못한다면 너의 아이 너의 손자, 너의 증손자가 찾아오는 그날까지 부용각은 무너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건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적어도 폐허에 한줌 재로 변해 부용각을 돌아보는 너의 발길 쓸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시름없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부용각의 안뜰로 구물구물 풀어지고 타박네의 옴팡눈엔 살금 눈물이 돈다. "니가 날 닮았으면 호랭이지 고양이가 되지는 않았을 꺼이다. 호랭이 새끼는 누가 뭐래도 호랭이가 아니더냐, 암만." ...

사람마다 태어나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걷게 되는 길은 사람의 수 만큼의 길이다. 누가 어느 누구의 삶을 가볍게 말할 수 있으랴, 자기가 걸어보지 못한 그 길에 대해.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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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1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면 정말 눈물 나지요?
기생들의 끈끈한 동료애도 참 좋았어요.^^

hnine 2006-09-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좋은 소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씩씩하니 2006-09-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님 리뷰 읽으니..읽고싶어져요...
요즘 각 분야를 초월한 우리 것에....울 기관의 관심이 총 집중되어 있는데....

hnine 2006-09-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리뷰도 읽어보시면 아마 더 하실거예요.
거기 나오는 타박네 역할로 저는 탤런트 김지영을 추천하겠어요 (김지영 아실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