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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발표된 박 민규의 열 편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읽는 동안, 그 누구의 글에서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느낌의 연속이었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의도적으로 가벼워 보이게 쓰는 기술, 그러면서도 메시지 전달을 확실히 하는 이런 기술은 작가의 타고난 개성인가 노력인가.
다릴 뻗고 고갤 젖히고, 그래서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보며 나는 말했다. 형, 지구는 진짜 돌고 있어요, 그러냐? 이렇게 지구가 도는 게 느껴질 땐 말이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가? 그러니까×××정말 우주에서××× 행성 위에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왜 고작 이 따위로 사는걸까? 라고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86쪽)
뭐랄까,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매우 이상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좌뇌와 우뇌를 잇는 운하, 같은 것이 열리지 않아 아프리카 대륙, 정도를 돌아야 하는 배들처럼 뇌세포들이 어수선해진 느낌이었다 (헤드락 248쪽)
이런 표현들, 그는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어떤 경험을 해야 했던가. 한가지 글 소재를 가지고 끝까지 가는 타입이 아니라, 계속 연계된 이야기를 끌어 들이는 작법 (作法)도 눈에 뜨인다.
제일 좋았던 단편은 처음에 실린 <카스테라>. 불합리하고 타협할 수 없는 대상들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냉장고속에 감금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냉장고가 포화될 무렵 그것들은 서로 결합하여 한 조각의 포슬포슬한 카스텔라로 탄생한다는 얘기. 카스테라가 상징하는 것을 긍정적인 의미로 봐야 할지, 아니면 부정적인,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결과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 2005년, 여기 저기서 ‘박 민규’ 라는 이름이 들리고 보이던 이유를 알겠다. 이런 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주목을 받을만한 작가, 그리고 소설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