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 (Penguin Classics Deluxe Edition) (Paperback, 50, Anniversary)
Steinbeck, John / Penguin Group USA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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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을 내리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던 차에 scott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소설 아닌 에세이 형식이니 저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담뿍 채워주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서 읽기 시작했다.

50개나 되는 주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거대국가 미국. 그곳 태생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모든 주를 다 가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서 한참 지나, 변화를 찾아 좀이 쑤시던 어느 날 저자는 떠냐야할 이유를 한보따리 만들어 미국 대륙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나를 데려가는 것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트럭을 개조하여 요즘 말하는 오토캠핑 기능을 갖춘 차로 주문제작하고 로시난테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작가 아니랄까봐 떠나는 짐 속에는 읽을 거리, 쓸 거리를 잔뜩 챙기고 사람은 동반하지 않고 애견인 프렌치 푸들 찰리만 동반하여 직접 운전, 집이 있는 뉴욕을 출발하여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난다.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탐구와 재확인을 해본다는 취지이다. 

이때가 1960년 6월. 떠나려던 차에 태풍 Donna를 만나 잠시 지체하였다가, 롱 아일랜드 주에서 시작하여 메인 주로, 일단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부로 향하는 경로를 택한다. 여행 일정중에 의외로 호감을 가지고 빠져들게 된 곳이 '몬태나' 주라면 가장 불호감인 주는 '텍사스'. 넓은 땅, 넓은 농장을 소유한 부자들이 특히 많은 주이지만 그 당시까지도 흑백 차별이 심하고 사람들 머리 속에 뿌리 박혀 있는 보수적 사고 방식에 치를 떤다. 며칠 머문 곳, 잠시 머물고 지난 곳, 모두 합쳐서 거의 40개 주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지나간 곳을 모두 이 책에 포함시킨 것은 아니었다. 

여행 가이드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여행기가 그렇듯이 이 한권을 읽은 소득은 미국의 어느 주가 어떻구나 하는 것보다 존 스타인벡이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좀 더 알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기독교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가정에서 나고 자랐고, 커서도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지켜가면서도 (방문하는 주 마다 일요일엔 그 지역 예배에 참여한다),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고 방식에 매이지 않으려는 자유인 기질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기피하기 시작하는 것들에 대해 그는 양을 위해 (오래 살기 위해) 질을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호탕하게 말하기도 한다 (In my own life I am not willing to trade quality for quantity. -p.14). 60이 다 된 나이에 장거리 여행을 떠난 것도 그런 명분이다. 

여행자로서 그 지역 주민들이 하는 말을 엿듣기 가장 좋은 장소는 술집과 교회 (23쪽)라고 한 재치, 자기 얼굴에 대한 묘사를 해놓은 부분 - My face has not ignored the passage of time, but recorded it with scars, lines, furrows, and erosions. (28쪽) - 은 마치 여행중 만난 어느 지층 지대를 묘사하는 듯, 여행자다운 표현이었다.

메인 (Maine)주에 위치한 Deer Isle을 여행하면서는 친구들이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곳은 기대하지 않는 척 하면서 방문해보면 역시 후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동부의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메인 주 사람들의 과묵한 성격을 식당에서 종업원과 손님 사이의 딱 한마디씩 오고가는 대화를 인용하여 묘사해놓은 곳도 재미있었다. 

사냥에 대한 생각, 정치에 대한 생각, 도시화에 대한 생각 등, 저자의 생각과 주의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는 완전 보수파도, 완전 개혁파도 아닌,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는 쪽으로 보인다. 여행하는 타입면에서도 그는 꼼꼼히 지도에 체크하고 줄 그으며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즉흥적이고 기분파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작가라는 성격상 비판적, 회의적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의 기사내용을 현실의 거울로 신뢰하지 않는다.- 56쪽)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여행하면서 계속 이게 맞는 길인가, 이게 맞는 일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쓰고있다.

On the long journey doubts were often my companions. (55쪽)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저자는 결론처럼 말한다. 미국은 오랜 역사에 고픈 나라이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기념할만한 사건이나 인물들을 의식적으로 부각시키려고 하는 경향을 방문하는 지역마다 느겼다고. 그럼으로써 역사에 대한 의심을 현실의 기록으로써 보상하려고 한다는 지적에서는 작가의 예리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It does makes for suspicion of history as a record of reality. -p.59)

저자가 이 여행기를 쓸때가 1960년대인데 그 당시 벌써 RV차량을 가지고 다니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할 수 있었다는 점, 더우기 그가 여행하며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예 mobile dweller로서의 삶을 주거 방식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은 놀라울 뿐이다.

서부로 넘어오니 그당시 벌써 Do-it-yourself 라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더라는 것도 마치 요즘 얘기 같았다. 한국의 소나무숲과는 다른 느낌의 California, Redwood숲속. 그곳에서는 성당과 같은 고요함과 정적이 있다고 했다. 

여행하는 동안의 기록도 재미있지만 여행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친숙한 길로 접어들때의 느낌을 묘사한 마지막 부분도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생각나게해준다.

여행후 느낌을 그는 한마디로 a barrel of worm 이라고 표현했다 (153쪽). 여러 종류의 벌레를 채집하여 모아놓은 통. 복잡하고 다양한 느낌과 생각이 한데 모여 있어 정리와 분류가 요구되는 상태라는 의미이겠다.

미국은 출신이 다른 여러 민족이 모여 이룬 나라인 것은 맞지만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상 빠르게 '미국화 (americanize)'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어디 출신이라는 것보다 더 두드러지고 의미있어보인다고 마무리하며 마쳤다. 

내가 읽은 그의 소설들은 두툼한 분량이었는데 반해 이 책은 가뿐하게 읽을 수 있어 그것도 미덕이었다. 작가답게 재치있고 재미있게 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해가며 읽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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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08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의 방대한 관심사와 해박한 지식, 그 인연으로 제가 에이치나인님의 리뷰를 읽고^^ 참 신기하네요.

가뿐하게 읽으셨다하니, 저처럼 영어가 부담되는 독자로서는 내지에 지도나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은지 궁금하네요^^

hnine 2021-07-08 13:30   좋아요 3 | URL
저도 scott님 아니었으면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을거예요.
저는 얄라알라북사랑님 서재에서 공연이나 전시 정보 많이 얻어오곤 했었어요. 그런 쪽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끄덕끄덕하면서요.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가뿐하게 읽었다고 한 것은 이전에 읽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들이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 그에 비교된다는 뜻이랍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저도 부담되지요. 내지에 지도나 일러스트레이션 전혀 없어요. 위에 올린 겉 표지 그림이 전부랍니다.

얄라알라 2021-07-0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1학년 때 말 그대로 다 읽고 나니 새벽을 맞게 했던 책이 바로 [분노의 포도]였어요. 정작, 저자에 대해서는 이름 이상 알지 못했고 더 알려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미국 여행기를 통해 저자를 알아가면 다음번 [분노의 포도]읽을 때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1-07-0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공연장 전시회 다니는 게 제 일상의 일부였는데 코로나 이후 뚝 끊겼네요....^^:; 공연예술계 계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나가고들 있을지...

scott 2021-07-08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펭귄 특별판 데클 엣지로 갖고 있는데 에이치 나인님 책이 더 예쁘네요
지도!

스타인벡의 따스한 시선과 유머가 인상 깊은 여행기죠
찰리!와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미국인들은 구경하기 위해 여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기 위해 여행 한다고 ^ㅅ^

hnine 2021-07-09 03:47   좋아요 2 | URL
자기가 속한 사회나 국가, 민족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가 참 어려운 법인데, 작가는 처음부터 그것을 인정하고 염두에 두면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가 쓰는 여행기면 자칫 너무 진지하거나 개인적인 감상문 같거나, 그렇게 흐르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유쾌하고 재미있었어요.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페크pek0501 2021-07-14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고 보니 나인 님은 대단한 능력자!이십니다. 외국어로 읽는 독서는 어떤 느낌일지...
예전 우리 애가 영어 공부를 하던 시절에 생각도 영어로 해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네요.

hnine 2021-07-17 05:32   좋아요 0 | URL
여행기나 자서전 같은 책은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정도이지 저에게도 외국어는 장벽인걸요. 높디 높은 장벽.
그래도 읽어보고 싶은 욕심에 능력을 잠시 잊고 도전해보는거랍니다.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옆에 없을때라도 그 음식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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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7-03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엇, 저 구절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것 같은데 아닌가...?
암튼 그럴 때가 있긴 하죠. 뭔가를 먹으면 누가 있으면 잘 먹을텐데하잖아요.
참, 아드님은 군대 훈련 잘 받고 있나요?
평소 잘 먹는 음식하시면 아드님 생각 많이 나시겠어요.

hnine 2021-07-04 03:48   좋아요 2 | URL
저는 라디오에서 듣고 쓴 것은 아니지만 많이들 하는 말이긴 하지요.
저는 음식을 볼때 그걸 좋아하는 사람 생각을 자주 떠올리는 편인데, 막상 나랑 가까운 사람이면서도 그 사람이 무얼 좋아했던가 생각 안 나는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얼마전에 엄마 생신때 떡을 보내드렸더니, 외할머니 생각이 나신다면서 엄마가 우시더라고요. 외할머니는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 생각이 안나신대요. 부모의 챙김을 받는게 우선이지 자식 입장에서 내 엄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즐기시는지 마음 써서 살피는 경우는 드문거죠.
저도 마찬가지일거예요.
제 아들은 잘 있대요. 말로만 듣던, 비무장지대에서 졸음 참아가며 보초서는 근무 서고있어요. ^^
안부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07-04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옆에 없을때라도 그 음악과 영화를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인데 !

에이치 나이님 아드님 생각 많이 나시는 것 같습니다
역쉬, 울 어머니들은 음식을 보면 자식 생각을 !

hnine 2021-07-04 03:51   좋아요 2 | URL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공유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어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지 그 음악과 영화를 보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시죠?? ^^
사실 아들 생각은 음식 아니어도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하고 있고 (^^), 저 날은 부모님 생각이 났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좋아하는 음식 알아도 해드릴수도 없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음식은 알고 있지만 자주 가뵙지도 못하고 있고.
 













꽃다발의 일부.











그 중의 또 일부.


편지지 삼아 편지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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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29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편지지 삼아 편지쓰고 싶은 사진요. 정갈하고 동글동글한 글씨로 써내려가고 싶은....
하지만 현실은 삐뚤빼뚤 초딩 글씨라는....ㅠ.ㅠ

hnine 2021-06-29 11:49   좋아요 1 | URL
아래 사진 배경은 꽃다발을 싼 포장지예요.
여백이 생기니까 편지지 같은 느낌이 나나봐요.
삐뚤빼뚤 글씨가 더 개성있고 멋진걸요. 요즘 새로나오는 서체에도 그런 디자인 많잖아요.
그리고 천재는 악필이래요 ^^

scott 2021-06-29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꽃사진 컬러 프린트로 출력해서
액자에 넣고 싶네요
에이치 나인님은 편지지 생각을 하셨다니
낭만적이쉼 ^ㅅ^

hnine 2021-06-29 12:07   좋아요 0 | URL
일단 제 전화기 바탕배경으로 깔아놓았습니다~ ^^
제가 편지 쓰는걸 좀 좋아하는데 요즘은 쓸 일이 없어서 아쉬워요.
 
암 병동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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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병동이 닮았다고 하면 목적이 엄연히 다른데 어째서 닮았다고 하냐고 반문할수도 있을 것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 사는 방법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더 잘 알게 되었다.

중학교때 겨울방학 숙제로 읽어야 하는 책 중에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가 있었다. 먼저 읽은 동생이 말하길, "언니, 이 책 한권이 하루동안의 얘기야." 라는 것이다. 숙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끝까지 읽긴 읽었지만 중학생인 내게 그 책은 지루하기만 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다. 

<암병동>은 두번째 읽는 솔제니친의 작품이다.  

암울하기만 한 제목. 이것도 결국 암 병동이라는 특정 공간의 얘기가 아닌, 그 이상의 세상을 빗대어 쓴 작품 아닐까, 내멋대로 추측까지 하며 두권의 두툼한 책을 펼쳐들었다. 

그 옛날 읽었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보다 훨씬 길지만 더 빨리 읽은 것 같다.

1918년 솔제니친이 태어났을때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을 막 겪고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후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어 가던 혼란한 시기였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인텔리였으나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 어머니 혼자 그를 키워야했다. 어머니 역시 문학, 예술, 외국어에 한 사람이었지만 혼자 부양해야했던 가족은 내내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솔제니친은 원래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전공외에 문학 등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문학공부를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갈 생각도 하였던 솔제니친은 전쟁의 발발로 공부 대신 독일과의 전투에 참가하였고 형무소 생활,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하였으며 수용소 병원에서 악성종양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의 전작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도 그렇지만 이 소설 <암병동> 역시 자신의 이런 경험들을 모티프로 하여 태어난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어둡고 혼란스런 시절, 암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안고 모여든 환자들은 공통적이면서 모두 다르다. 입원하는 날까지도 자기는 암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 병원에서의 치료와 별개로 온갖 정보를 찾아 암을 알고 고쳐보겠다는 사람, 방사선 치료의 폐해를 의사에게 따져묻는 사람, 가망없는 상태라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목표하는 학업과 진로를 위해 빨리 치료받고 병동을 나가기만을 기다리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한 젊은 환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병동에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가지고 각자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환자들만 등장인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암병동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인력, 즉 의사, 간호사, 환자의 가족, 병원의 청소부까지, 암병동 자체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중 대장 격의 의사 한사람도 나중에 위암 진단을 받아 의사에서 환자의 신분이 되기도 한다.

작품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인 코스토글로토프가 마침내 병원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 백화점, 동물원등을 차례로 방문해보는데, 동물원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종은 달라도 암병동에서의 자기의 모습이었으며, 암병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 제압받으며 살고 있는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다음은 코스토글로토프가 쳇바퀴 돌리고 있는 다람쥐를 보며 하는 생각이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먹이로 유혹하는 것도 아닌데, 다람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저렇게 나무나 높은 가지도 전혀 개의치 않고 쳇바퀴 속에 들어가 돌고 있는 것이다. 헛된 행위와 헛된 운동의 거짓 이념이 다람쥐를 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다람쥐는 분명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살짝 발판에 발을 대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끝없는 놀이인 줄 몰랐을 것이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 후 몇천 번째 돌고 있는 지금은 잘 알면서도 여전히)

쳇바퀴의 막대 발판과 완전히 하나가 된 다람쥐는 심장이 터지도록 온 힘을 다해 돌고 있었다. 그러나 수없이 앞발을 내디뎌도 다람쥐는 한 층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었다. (346쪽)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많은 사람이 했었고 또 하고 있을 생각이다. 결국 허무하고 덧없는 삶이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다면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자기 삶인데 자기가 주체가 될 수 없는 삶. 감옥과 병동의 공통점 아닐까?

암병동에서 퇴원하여 나온 그는 기대했던 환희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며 억지로 삶을 지탱해가는 동물들의 모습만 눈에 보일 뿐. 어떤 동물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감옥과 수용소 생활 11년, 이후 망명생활 20년을 하며 살았던 솔제니친. 그가 몸으로 겪어 쓴 소설, 그가 찾아낸 진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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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6-29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작품도 찜하겠습니다.

hnine 2021-06-29 11:51   좋아요 2 | URL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런 의미에서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는걸로 해야겠습니다.
<암병동>은 암울한 내용이지만 지루하지 않아요. 워낙 여러 유형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나오고, 치료 과정과 방법을 어찌나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표현해놓았던지.
두권짜리이지만 읽으시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예요.

scott 2021-06-29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마어마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던 톨스토이 백작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솔제니친
그의 목소리가 담긴 수용소의 모습 그리고 암병동
작가의 기나긴 투쟁의 모습이라서 더욱 절절하게 다가 오네요

hnine 2021-06-29 12:18   좋아요 2 | URL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데다가 본인이 암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찌나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해놓았던지요. 방사선 폐해에 대한 것, 차가버섯의 효과까지, 성이 이씨인 고려인도 잠깐 나오고요.
스위스로 망명, 미국에서 오랜 칩거 생활 끝에 생의 마지막은 그래도 러시아에 돌아가서 맞았다는군요.

scott 2021-07-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해피 수요일 ^ㅅ^

hnine 2021-07-07 21: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리뷰와 페이퍼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7-07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합니다

hnine 2021-07-07 21:5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도 리뷰와 페이퍼 둘 다 당선되셨죠.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7-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작 넘넘 축하드려요~

hnine 2021-07-08 04:42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그리고 축하해요 초딩님,
우리 함께 축하 주고 받아요~ ^^
 





한 발만 더 뛰면 죽음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달리기는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



살아있다는 말 따위는 믿을 수 없어야 한다

더는 달려 나갈 게 없을 때

세상에 오직 나만 없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세상에 가득해질 때




- 이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달리는 저녁" 이라는 시의 일부 -









적지 않은 나이를 먹으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과연 저렇게 힘든 시기를 

피하지 않고 견뎌본 적이

몇번이나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있기는 있었는지


한 발만 더 뛰면 죽을 것 같을때

살아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을때

더 이상 앞이 안보일때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을때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 거짓말로 들릴때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그때가 달리기를 맘먹어야하는 순간이라고

이 시는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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