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아노 친답시고 책도 잘 안 읽고

외출도 더 잘 안하고 있다.

지금 치고 있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레슨해주시는 선생님은 앞에서부터 번호대로 순서따라 칠 필요없이

발췌해서 칠 것을 권하셨으나

건방지게도 이 학생은 거부했다.

저는 어차피 이 책 한권 다 칠 계획이고, 

순서대로 치는게 나중에 순서를 기억하는데도 낫지 않겠냐면서.


나이 많은 학생의 말대꾸에 선생님은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나는 왜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치고 싶다고 했을까.

책까지 미리 사놓고 이 곡을 쳤으면 한다고 말을 꺼냈을때 선생님은 입으로는 좋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아니 무슨?' 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게 무슨 기계음도 아니고 뭐지? 하면서 시작하는 곡, 

깊이 들어가보기 전에는 그 맛과 멋을 알 수 없는 곡을 쳐보고 싶었나?


실제로 그렇더라. 악보가 손에 완전히 익기 전까지 전혀 모르겠던 선율이 며칠을 두고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면 여기 저기서 되풀이 되는 것이 드러나고 비로소 작곡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눈으로 귀로 손으로 느껴져오기 시작한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 않을 것임을 아시고도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레슨을 그만 두지 않도록 하신 어머니께 이제서야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 인생의 전반부를 이성적이고 명확해야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일하며 보냈으니

내 인생 후반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음악) 을 알아가며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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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4-24 0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인님 응원합니다!!

hnine 2025-04-24 08:09   좋아요 3 | URL
인생 후반부라고 쓰고 나니, 제가 써놓고도 ‘내가 벌써?‘ 했지 뭡니까 . ^^
응원까지 해주시니 쑥스럽네요.
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과연 끝까지 제가 다 칠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시작은 했지말입니다.

페크pek0501 2025-04-28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버린 것을 후회할 때가 있어요. 빠져 들 때 실컷 즐기십시오.
저는 피아노에 한참 빠져 들 때 그 당시 유행하던, 그러니까 라디오 같은 데서 많이 들려오는 음악의 악보를 사러 다녔어요.
악보를 사 와서 악보대로 피아노를 치면 내가 들었던 그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결혼 전의 일입니다.ㅋ

hnine 2025-04-28 10:44   좋아요 2 | URL
피아노를 버리셨군요, 덩치도 큰 걸 어찌 버리셨는지...
저도 지금 있는 피아노 새로 구입하면서 예전 피아노 처분해야했는데, 말도 안되는 헐값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차라리 피아노 원하는 사람에게 그냥 줄걸 그랬다고 후회했어요.
요즘은 피아노 악보 구입하려 다니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에서 웬만한 것은 다운받을 수 있답니다. 저는 종이책을 선호하긴 하지만요.
다시 배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페크pek0501 2025-04-30 10:27   좋아요 1 | URL
피아노를 버리는 값으로 오히려 10만원을 냈어요. 두 사람이 와서 가져갔어요. ㅋㅋ
지금 피아노를 치려면 부담스러운 게 이웃에 들리는 것 때문에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건 소리가 안 나는데 말이죠. 아파트에 살다 보니 그런 게 불편하더라고요. 친정에 살 땐 단톡주택이라 괜찮았어요.
피아노보단 그림을- 연필 스케치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답니다. 그런데 시간 부족, 체력 부족이네요.

hnine 2025-04-30 11:54   좋아요 1 | URL
어머, 10만원이나 내고 버리셨다니...가져간 사람들 수지 맞았네요.
저도 피아노를 새로 구입한 이유가 silent piano로 바꾸느라고요. 아파트라서 낮에라도 피아노를 치기가 그렇더라고요.

파란놀 2025-06-2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큰아이는 피아노 건반을 누를 적마다
손끝부터 퍼지는 가락이 온몸을 울리는 결이
빛으로 피어난다고 말씀하셔요.

아름다이 작곡을 남긴 옛사람은
오늘 우리가 누릴
빛으로 이룬 소리를
찬찬히 맞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하고 돌아보곤 해요.

hnine 2025-06-21 16:26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피아노를 치는군요. 음악이 좋다고 느껴도 때로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사름벼리는 남다르네요. 맞아요. 손끝을 움직여 내는 소리가 온몸을 울리고 이전에 없었던 것이 새로 만들어져 피어나는 느낌이요. 사름벼리는 빛으로 피어난다고 했군요. 음악을 받아들이는 사름벼리의 방식도, 사름벼리가 한말을 흘려듣지 않으시고 마음에 담아두신 아버지도, 참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