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아노 친답시고 책도 잘 안 읽고
외출도 더 잘 안하고 있다.
지금 치고 있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레슨해주시는 선생님은 앞에서부터 번호대로 순서따라 칠 필요없이
발췌해서 칠 것을 권하셨으나
건방지게도 이 학생은 거부했다.
저는 어차피 이 책 한권 다 칠 계획이고,
순서대로 치는게 나중에 순서를 기억하는데도 낫지 않겠냐면서.
나이 많은 학생의 말대꾸에 선생님은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나는 왜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치고 싶다고 했을까.
책까지 미리 사놓고 이 곡을 쳤으면 한다고 말을 꺼냈을때 선생님은 입으로는 좋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아니 무슨?' 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게 무슨 기계음도 아니고 뭐지? 하면서 시작하는 곡,
깊이 들어가보기 전에는 그 맛과 멋을 알 수 없는 곡을 쳐보고 싶었나?
실제로 그렇더라. 악보가 손에 완전히 익기 전까지 전혀 모르겠던 선율이 며칠을 두고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면 여기 저기서 되풀이 되는 것이 드러나고 비로소 작곡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눈으로 귀로 손으로 느껴져오기 시작한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 않을 것임을 아시고도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레슨을 그만 두지 않도록 하신 어머니께 이제서야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 인생의 전반부를 이성적이고 명확해야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일하며 보냈으니
내 인생 후반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음악) 을 알아가며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