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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
캐서린 호우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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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을 보고 이것 또 뱀파이어 류의 내용이 아닐까 지레짐작하고 조금 우려했었다. 개인적으로 뱀파이어 등장하는 책을 별로 재미있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주인공인 코니 굿윈의 박사 과정 자격 시험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하버드 대학 역사 전공생인 코니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코니의 엄마처럼 역시 혼자 사시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 댁이 세일럼의 어느 숲 속에 버려져 있는 것을 코니의 엄마는 다시 수리해서 처분하고 싶어하고, 그 일을 코니에게 부탁한다. 주소를 들고 헤매다가 숲 속의 덤불 속에서 겨우 찾아낸 오래 된 외할머니의 집은 온갖 약초들이 무성하고 집 안 역시 알 수 없는 라벨이 붙어 있는 유리병들,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처분을 하려면 집도 손을 봐야하고 박사 논문 자료 조사도 할겸 코니는 여름 방학을 전기도 안들어오고 전화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이 집에서 지내기로 한다. 집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코니는 외할머니가 살던 때보다 더 옛날인 17세기의 성경, 오래 된 열쇠, 알 수 없는 이름이 적힌 양피지 등을 집 안 구석구석에서 발견하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물론,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서 마침 논문 자료 수집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집에서 발견된 물건들을 단서로 그것들과 얽힌 시대적 사건을 조사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hysick book of Deliverence Dane (딜리버런스 데인의 마법책)>. 여기서 Deliverence Dane (딜리버런스 데인)는 외할머니 집에서 찾아낸 오래된 양피지에 적혀 있던 이름인데 코니는 조사 끝에 이것이 17세기에 실존하던 인물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녀가 그당시 마녀 사냥에서 '마녀'라는 죄를 뒤집어 쓰고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가 어떤 생을 살았었고, 외할머니가 살던 이 집은 그녀와 어떤 관계가 있기에 그녀의 이름이 적힌 양피지가 남아 있는지를 하나 하나 밝혀 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어릴 때 동화책에서나 보고 잊고 있던 '마녀', '마법', '주술' 이란 말들을 오랜 만에 아이들 책이 아닌 소설의 소재로 다시 만나게 되고 더구나 소설 속의 코니는 저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여 더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저자 캐서린 호우 역시 마녀로 몰려 처형을 당한 조상을 두고 있고 자신이 박사 논문 자료 수집중에 이 책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소설 중간에 저자의 생각인 듯 마녀 사냥, 주술 등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드러나있기도 하다. '마녀 사냥은 사회 불안이 투여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133쪽)'  라든지, '주술에 걸렸다'는 문헌 상의 기록은 문자 그대로 누군가가 주술을 행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기물 이외의 것이 원인이 된 질병을 가리키는 말로서 흔한 질병이 아닌 독극물 중독,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가 작용했다기보다는 외적 요인에 의해 생긴 병을 가리킨다는 설명 (520쪽) 등등. 
의료 행위와 마법을 써서 치료하는 행위 사이의 구분을 확실히 하지 못하던 시대, 그래서 약초를 써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행위가 마녀의 행위로 오인받던 시대, 실제 역사상에 있던 그 시대의 흔적을 글의 소재로 삼았고, 소설의 말미로 가면서 주인공 코니가 살고 있는 1990년대에도 여전히 마법이 통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저자는 우리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들에 대해 다시 의문 부호를 던져 주며 그 가능성을 완전히 묻어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술을 다른 식으로 해석했듯이 마법도 17세기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여전히 우리들 삶에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5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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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3-1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500쪽이라고요? 엄청나네요^^

hnine 2010-03-18 17:17   좋아요 0 | URL
그런데 금방 읽혀요 ^^

2010-03-18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3-19 06:2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래 빵은 저는 맛을 못봐서 정말 맛있는지 모르겠어요. 먹은 사람들도 아무 의견 없었고요. 맛있다는 말 좀 해주면 좋으련만~ ^^

하늘바람 2010-03-2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니 책 제목이 참 호기심 만땅인 책같아요.

hnine 2010-03-23 13:14   좋아요 0 | URL
아주 재미있게 썼더라고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면서 그것의 의미를 재해석해나가는 전개 방식도 참 좋았고요.
 
<유모아극장>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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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 대해 고정화된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게 숨이 갑갑할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다. ...무겁고 딱딱한 주제를 다룬 소설을 쓰는데 그런 소설이 발표되고 나면 독자들로부터 내가 항상 세상과 인생의 문제로 고뇌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참을 수 없이 싫은 생각이 든다. ...그런 내용의 편지를 독자로부터 받으면 나 자신이 위선자라는 기분이 들고 정신위생상으로도 좋지 않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이런저런 형태로 나 자신이 경박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애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265쪽)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경위란다.
표지를 보고서 만화책인가 하고 들춰 보았다. 표지 그림도 그렇고 '유모아극장'이라는 제목 글씨마저도 어릴 때 만화집에서 보던 만화책 제목 글씨체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그림은 없었으되 내용은 만화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다.
12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술하기 어려운 부위를 의사들이 자신들의 몸을 축소시켜 비행선 같은 작은 물체를 타고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직접 수술한다는 <마이크로 결사대>는 이 책이 쓰여진 1969년에, 1990년대 쯤이면 가능해질 수술법이라고 작가가 가정하고 쓴 내용이다. 이 소설이 그렇게 오래 전에 쓰여졌다는 것을 모르고 읽기 시작한 나는 1990년대를 미래로 가정하는 부분에서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1990년으로부터 2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의사가 직접 몸속으로 들어가서 하는 수술은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여자들의 사소한 경쟁 심리를 그린 <여자들의 결투>에서는 옆집 아줌마 때문에 운전을 배우고, 옆집 아줌마 때문에 차를 사는 아줌마들 인물 묘사를 그럴듯 하게 그려놓고 있다. 성이 다르다면 동물과 인간도 서로 끌릴 수 있다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이야기도 '유모아' 극장의 참신한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비슷한 외모때문에 혼자 간 여행지에서 유명 연예인으로 오해를 받고 나중엔 아예 그 사람으로 행세하는 <여행지에서 창피는 괜찮아>, 화류병에 걸린 개 이야기 <동물들>, 우리 아버지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놀라움과 결국 이해를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우리 아버지>, 학창 시절의 버릇이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 없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창회>의 씁쓸한 결말. 12개의 에피소드가 당신을 웃겨 주려고 이 책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1969년에 쓰여진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12개 에피소드 중 어떤 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는 점, 그러니까 저자는 최소한 참신한 소재로 코믹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고, 덧붙여 이 책만 읽어가지고는 저자가 그동안 주로 심각하고 무거운 책만 써왔다는 것을 전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위에 밝힌 그의 집필 의도 역시 성공적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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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3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0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3-1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엔도 슈사쿠라면 '침묵'을 쓴 분인데...
기독교 신앙에 흔들릴 때마다 많은 도움이 되었던, 내게 최고의 종교서적으로 꼽히는 책이죠.

hnine 2010-03-13 17:3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이 저자를 아시는군요. 저는 이 책이 처음이었어요. 말씀하신대로 기독교 관련 책을 많이 내신 분이시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신 분이시더라고요. 이 책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쓰여진 책일거라 생각되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

순오기 2010-03-17 18:44   좋아요 0 | URL
저는 침묵만 읽어서 다른 책은 잘 몰라요.
추천하시니 기회되면 볼게요.^^

hnine 2010-03-17 21:20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겠다면 제가 보내드릴려고요 ^^

순오기 2010-03-18 23:20   좋아요 0 | URL
어머~ 제가 책선물 받고도 못 읽은 책이 엄청 많아서 덥석 손내밀기가 부끄러운데... 침묵도 다시 보고 6년째 방학(아니 휴교수준)을 개학해야겠고...
집에 있는 책은 언제든 볼 수 있다 생각하니 미루나 봐요. 그러면서 도서관에서 열나게 빌려오는 건 뭔 심보인지.ㅋㅋㅋ
이상하게 집에 있는 책은 그림책조차도 리뷰를 안 쓰고, 도서실 책은 반납해야 되니까 날새서라도 읽고 리뷰 쓰고...내가 생각해도 내가 웃겨요.^^

2010-03-20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0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풍당당개청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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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프로의 남녀는 차별되지 않는다>라는, 카피라이터 최 인아의 책을 떠올렸다. 그 당시 카피라이터는 새로이 떠오르고 있던 직종 중의 하나였고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자는 방송국인지 아니면 신문사 시험 준비에 몇 년을 고군분투하다가 결국은 광고 회사에 취직이 되고, 거기서 겪는 여러 가지 사회 경험과, 20대 여성으로서 결혼, 직장 등의 문제를 자기는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나도 곧 닥칠 일이라 생각이 되어 그랬는지 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여기 또 한 사람의 20대 대한민국 여성이 있다. 언론사 시험 공부에 맹렬히 돌입, 2년 연속 낙방하고 3년의 백수 생활을 거쳐 언론사가 아닌 다른 공사에 취업을 한다.
뻔한 얘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가 적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저자의 글 솜씨가 나름 흡인력이 있기 때문인가, 이 책 역시 재미있게 금방 읽었다.
책의 표지에 나와있듯이 '대한민국 20대 사회 초년병'의 생각이라고 하기엔 나의 20대를 돌이켜 볼때 많이 성숙된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 그녀를 보고 역시 생물학적인 나이에 따라 철이 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취업이 안되고 있는 동안에는 스스로 '백수'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고 괴로와 하고, 막상 취업이 되고 나면 나 자신이 매일 조금씩 소모되는 것만 같은 회의감에 괴로와 하는 우리. 그녀 말에 의하면 쇼펜하우어가 그랬단다.

인간의 감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뇌.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 때 인간은 괴로워한다. 다른 하나는 권태다. 원하던 걸 가지면 인간은 지루해한다.(43쪽)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때는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며 어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갈망하다가도, 막상 어딘가에 소속되고 나면 어떻게 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한다. 과연 인간은 소속을 원하는 것인지, 자유를 원하는 것인지. 그러면서 저자가 던지는 말, '이 세상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건 없다, 그러니 너무 장렬히 고민말고 현재를 즐기면서 살자'이다. 아니, 이십대 사회 초년생이라면서 이런 결론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릴 수 있는것인가? 사십대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을. 
말도 잘하고 고집도 센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은 나 같은 거랑 대화하면 쉽게 진실을 선점해버린다. 징그러울 정도로 탄탄한 논리로 거짓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대화를 하고 나면 심신이 지친다. 언어같은 매개체 없이 진심이 직접 진심과 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나,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74쪽)

이렇게 자신의 어리숙한 면을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성격도 작용하겠지만 그녀의 숙련된 글 쓰기 기술에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취직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쏟아붓는 그 시간과 노력을, 자기만의 뭔가를 구축해보는데 투자해보면 취직이라는 결과물 대신 다른 어떤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안될까? 결국 어딘가 소속되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의 부족을 대신하려는 발버둥일까?
결혼을 하여 처음으로 설을 쇠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같은 경험을 해도 이렇게 명쾌하게 언어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책의 제목과 표지가 조금 달랐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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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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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왕이 살던 궁, 조선 시대 양반들이 살던 멋진 한옥 등을 소개한 책들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서민들, 혹은 그나마 서민층에도 끼지 못하던 사람들이 살던 주거 형태를 소개한 책은 많지 않다. 그렇게 이 책에 실린 집들은 멋이나 풍류 대신 헐벗음과 한 (恨)이 느껴지는 그런 집들이다.
직접 발품 팔아 우리 땅을 돌아다니며, 기록이 될만한 사진들을 찍고 그에 대한 글을 칼럼 형식으로 쓰는 일을 해오던 저자는 지난 20여년에 걸쳐 여러 월간지와 사외보에 실었던 글과 사진 들 중 평소 관심이 있던 가난한 이들의 살림집이라는 주제에 대한 것들을 모아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한 두해가 아닌 20여년에 걸친 노고의 댓가로 탄생된 책임에도 책의 표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진들이나 글의 느낌이 참 소박하고 조용했다.  

1.외주물집
외주물집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처음 들어보았다. 한마디로 '노변가옥', 즉 마당이 없고 길 밖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보잘 것 없는 집을 말한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사는 군락에 함께 집을 짓고 살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길 가까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가족 구성원의 생활 모습이 외부에서 한꺼번에 쉽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집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능도 보장되지 않은 취약한 형태의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서 살다가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외부 이주를 고려중인 이들이거나, 아니면 장애를 안고 있는 가구가 정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는데 유랑으로 가는 직전 단계라고 볼수 있다고 한다. 

2.외딴집
외주물집과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떨어져 나와, 즉 전통적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 돌투성이 황무지에 가까운 곳이나 짠물 스미는 갯가, 날짐승 천지인 산간으로 들어가 지어진 외딴 가옥 형태를 말한다. 도회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가혹한' 외로움이 느껴졌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 속우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궁핍한 살림이 바깥 고을과의 관계 맺기를 어렵게 하고, 이것이 해마다 되풀이 되면서 결국 회복 불가능한 고립감으로 굳어져가는 일생을 보내고 있는 노부부의 집. 가난도 서러운데 가혹한 외로움과 회복 불가능한 고립감이라니. 

3. 독가촌
전통 마을과 터무니 없는 거리를 두고 지어진 소수 군락을 말한다. 마을을 이루기에는 몹시 춥고 척박한 곳에 덩그러니 지어진 이런 집들은 대개 과거 화전민으로 살던 이들의 집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비 침투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던 시절, 화전에 대한 정리 사업이 공포되고, 산골짜기에 흩어져 있던 외딴집들이 본격 소탕되면서 독가촌으로 집단화 되었다고 한다. 논에 쌀농사를 짓는 것은 꿈결로나 들리는 말이고 옥수수나 감자, 콩 따위의 밭농사를 지어 먹는 생활에 쌀뜨물도 예사로 안보인다는 사람들. 저자가 1996년에 찾아간 전북 장수의 한 독가촌 사람들은 그곳을 뜰 수 없다는 체념이 짙은 분위기임에도 낯선 객에게 베푸는 인심이 남달랐다고.

4. 분교
세계에서 그 유래가 드물다는 우리 나라의 분교.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배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지막 희망의 상징일까. 깊은 산간이나 섬 지역까지 이렇게 낱낱이 기초교육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가 독보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본능에 가까운 배움의 욕구로 세워진 분교는 본교로부터 일체의 운영지침을 내려 받아 가르침과 동시에 산간 벽지 감시 예찰 기능이 보태졌고 '가정 방문'이란 그것의 대표적인 예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감시 하고 예찰하는 것이 강조되던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 전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더. 

5. 간이역
많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누가 들고 나는지 숨길 수가 없다는 간이역. 그런 만큼 소설이나 드라마의 사연처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서려 있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린애나 처녀들이 아예 밭에서 일하던 채로 열차를 타러 오기도 했고 아버지에게 이르지 말아달라고 역무원에게 사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분교와 마찬가지로 간이역 역시 일정한 관찰 보고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치안과 행정력이 곳곳에 미치지 못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하던 시절에는 그만큼 주민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고 지금처럼 자동차 여행이 발달하지 않았고 철도가 주요 이동 수단이었던 시대였던 만큼 여행자에 대한 유입과 동태에 대한 관찰이 수월할 수 있는 곳으로 간이역이 제격임은 당연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 

6. 차부집
기차는 철로가 있는 제한된 지역을 다닐 뿐이었다면 더 구석구석까지 사람들을 실어 오고 실어다 주는 교통 수단으로 버스가 있었다. 간이 버스 정류장이라 할 수 있을 차부집은 그렇게 들고 나는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고 떠남을 계획하는 아픈 맘들을 수렴해내던 훌륭한 조절자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손글씨로 적혀 있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는 차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살림집 아낙. 하루 네번 읍내와 마을을 잇는 버스가 있다고 알려주는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 같았다는 그 풍경이 그려지는 듯 하다. 지금은 화려한 고속 도로, 휴게소, 버스 터미널에 가려 존재감이 흐려 가고 있지만 차부가 생겨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가 뚫리면서였고, 신작로는 그 당시 신문물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한 곳에 정착하면 좀처럼 이동하는 법이 없던 농경 문화권의 우리 나라의 관습이 무너지고 새로운 근대 질서가 물밀듯 밀려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던, 그런 역사의 한 과정을 겪어낸 그곳이 지금은 차부집인지 외부인이 보면 표시조차 나지 않는 쓰러져 가는 한 점방에 불과한 흔적화되어 가고 있으니 과연 몇년 후이면 역사 속의 한 장소로 사라지고 말지 모르겠다. 

7. 여인숙
여관과 여인숙은 처음 생겨날 때 모두 나라에서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여관'이 공무 집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이었다면 본디 '원'에서 시작했다는 여인숙은 그것보다 하급 숙박 시설이었다고 한다. 즉 더 서민적인 숙박 업소라는 뜻이다. 여행중 잠시 머무는 곳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살던 곳을 떠나 이동한 이들에게 초기 정착을 위한 임시 거처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위생이나 시설은 뒷전일 수 밖에 없었다는 곳. 역시 지금은 점차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곳이다. 

8. 막살이집
외주물집으로도 불릴 수 있지만 길가가 아니라 길 위에 집을 지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주거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막살이집이다. '막 살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한 평도 채 안되는 방에 반 평 정도 되는 부엌이 딸려 있는 1999년 인천에서 찍은 막살이집 사진 속에서 푸른 셔츠를 입은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빈 리어커를 끌고 있다. 집인지 창고인지 금방 구분이 안되는, 아니 형태로 보면 영락없는 박스의 형태이다. 흔히 '판자집'이라고 부르던 집이 바로 이 막살이집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곳에서도 사람들은 끼니를 지어 먹고 잠을 자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만 해도 흔했던 이런 막살이집들이 자유당 정부의 정착지 사업과 군사정부의 미관화 사업등으로 철거 이주 사업의 바람을 맞게 되고 새로운 정착촌 건설이 시도되지만 워낙 생계 형태가 행상, 노점, 막노동인 그들이 그 새로운 건설 바람에 쉽게 편승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생계 수단 박탈, 가족 해체, 사회적 격리라는, 막살이집 시절보다 더한 시련를 겪어 나가야 했던 것이다.

막살이촌을 찾아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다. 재개발이 이뤄지고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막살이촌은 새로운 현대식 가옥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살던 이들이 어디로 갔건, 일단 새집이 들어서고 길이 뚫린 것을 두고 잘살게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낙담하여 기약 없이 길거리로 나선 이도 있었고, 속절없이 병에 걸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까지 그 양상은 자못 슬프기까지 한 것이었다. (279쪽)

9. 미관 주택
내가 초등학생일 때에만 해도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동사무소에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는 새마을 운동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는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시절을 살았다는 것이 우습기만 한데, 이런 새마을 운동의 바람을 타고 생겨난 것이 '미관 주택'이고, 노래 가사보다 더 웃긴 것은, 반드시 '서구풍의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창문은 고속 도로에서 시속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주택의 창문이 시원스레 보일 정도로 커야 하며, 주택의 방향에 관계없이 무조건 고속 도로나 철도변을 정면으로 하여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이라기 보다 보이기 위해 지어진 집. 우리는 무엇을 그리 서둘러 보이려 했던 것일까. 누구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희극은 이렇게 우리 삶 속에 있었다. 

10. 시민아파트
군사 정부 들어 철거민 집단 이주 정책에 따라 모색된 또 하나의 방안이 바로 1950년대 후반 부터 시작된 시민 아파트 건립이었다. 요즘처럼 내장 공사를 말끔하게 마무리 하여 바로 입주하여 살 수 있게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라 집 형태만 지어 줄테니 당신들이 알아서 문도 달고 부엌도 들이며 난방 공사를 하라는 식으로 지어졌다는 이 아파트가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결국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찬물을 뒤집어 쓴 정부에서는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제대로 구색을 갖춘 아파트를 반포 등지에 짓기 시작한다. 아파트는 반포나 여의도에 지어진 아파트가 우리 나라 아파트의 시작인 줄 알고 있던 나는 그런 시행 착오를 거쳐 아파트가 지금의 일반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아파트의 등장은 신작로와 함께 근대를 끌어가는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던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데 있다. 좌식에서 입식 문화로 변화해가는 계기가 되었고 여태 가려져있던 개인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개인 공간을 중시하는 형태의 주거 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초기 시민아파트의 쪽방과 다름없는 생활은 이렇게 두얼굴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바꿔 놓게 된다. 

11. 문화주택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집장사들이 지은 '문화주택'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겉보기에 양식 가옥의 형태를 갖추면서 우리 전통 가옥의 특징을 아주 버리지는 않은, 우리 체질에 잘 맞춰새로 개조된 형태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는 콘크리트로 하고 빨간 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은 왜기와를 올린, 바로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 바로 이 문화주택에 해당하는 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기억에 그 당시 우리 동네 대부분의 집들이 이런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대문 바로 옆에 변소를 배치하고 그 지붕 위에 장독대가 있다는 설명은 바로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 같아 잠시 옛날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대문 옆에 '초인종'을 단 집을 신식 주택이라고 여기던 때, 문 밖에서 부르면 사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었던 집들. 그런데 이런 문화 주택의 준공 검사에서 중요하게 따졌던 부분 중의 하나가 집안에 방공호의 설치 여부였다니, 그러니까 어딘가에는 지금도 집안에 방공호가 남아 있는 개인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그래서 조금만 더 버티면 손에 잡을 수도 있었던 '현실적 가능주택'이 바로 문화주택이었다는데, 우리의 전통 가옥의 형태와 양식 가옥 구조를 합쳐 놓은,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원형을 잃어버린 집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말한다. 이것 저것 섞었지만 결국 우리 서민들과 함께 했던 문화주택과 같은 주택형이 바로 진정함에 가까운 원형이 아닐까 한다고. '원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잘 지어진 집을 찾아 나서는 대신 이렇게 점차 그 존재가 사라져 가는 집들을 찾아 나선 저자의 마음과, 어떤 집에 대해서든 순기능에 대해서만, 또는 역기능에 대해서만 강조하지 않는, 치우치지 않는 그의 관점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헐벗음으로 빚어진 슬픔과 아픔을 이슬로 내리게 해 가난한 살림집을 밝힌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저자의 말이, 단 두줄이지만 이 책의 의도에 대해 충분한 의미로 전달이 된다.
지금의 집의 형태는 시대를 따라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갈 것인지. 무엇이 그것을 다른 형태로 바뀌어 가게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또, 그동안 집을 크기나 부가 가치 위주로만 생각을 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도 한다. 집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궤적 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함께 집도 달라져 왔고 사연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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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9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9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3-09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사를 앞두고, 낯선 하늘의 새 지붕을 맞이하려는 요즘. 비록, 값싼 지붕일지라도 세심히 살피려 하는 저인데요. 계절을 그리 잘 맞이해주었던 손바닥만한 마당이 있는 곳을 떠나기가 왠지 아쉬워집니다. "원형" 원어로 말하면 "프로토타잎" 일까요?.. 물론 hnine 님께서 언급하신 그 단어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을 갖고 있겠지만요.

집과 사람. 원형.. 많은 생각이 드네요. ^^

hnine 2010-03-10 05:07   좋아요 0 | URL
마당 있는 집, 좋지요.
저는 그래서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이것 저것 화분을 베란다에, 그리고 집 안에 갖다 놓고 만족하고 있지요.
사시는 곳에 정이 많이 드셨나봐요. 아마 새로 이사 가시는 곳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카스피 2010-03-1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이야 제 한몸 가눌곳이면 족하거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는것이 탈이지요^^

hnine 2010-03-10 18:23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안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을 변변한 집 한칸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창비아동문고 219
유은실 지음, 권사우 그림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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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선미, 이 금이, 박 기범, 김 중미 등 우리 나라 중견 동화 작가 대열에 이어 차세대 동화 작가로서 주목 받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인 유 은실. 그녀를 동화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고, 실제로 그녀로 하여금 작가의 길을 걷도록 한 어릴 때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책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한번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지는 꽤 되었다. 어쩌다가 이 책보다 그녀의 다른 작품 <겨울 해바라기>를 먼저 읽게 되었고, 기대만큼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 것에 좀 실망도 했었더랬다. 마침내 이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역시 작가의 어느 한 작품을 읽고서 호, 불호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단둘이서 사는 초등학교 4학년 비읍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나머니 그 책의 저자인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열혈 팬이 된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주머니돈을 모아 언젠가 스웨덴으로 린드그렌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것을 꿈꾸기도 하고, 새 책 사는 값을 아끼기 위해 헌책 방에 가서 린드그렌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씩 하나씩 사서 읽고 또 읽는 아이 비읍이는 구김없고 밝은 성격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답게 매우 감성적이기도 하다는 것은 린드그렌 선생님께 쓰는 편지를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헌책방에서 사온 책이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당장 갖다버리라는 엄마에게 화가 나서 집을 뛰쳐 나와서는, 이대로 집에 안들어가면 그게 바로 가출이 되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고, 어린이 다운 상상력이랄까, 그럴 경우에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를 순서대로 번호까지 붙여 가며 상상해보는 재미있는 아이. 부모님이 안 계신채 할머니와 사는 단짝 친구 지혜를 배려하여 깜짝 거짓말로 둘러대는 솜씨나, 단골 헌책방을 지키고 있는 언니에게 '그러게 언니'라고 별명을 붙여 주는 센스 만점의, 사랑스러운 아이 비읍이.
책의 중반부를 넘어 가며 단골 헌책방 언니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글의 깊이와 감동이 더해져 간다. 어린이로서 가지고 있는 환상을 가슴 속의 구슬이라고 비유하며 자라면서 언젠가는 그 구슬들이 하나씩 깨져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거라고 알려 주는 그러게 언니는, 린드그렌의 책을 빠짐없이 모아서 가지고 있는 또 한사람의 린드그렌 열혈 팬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비읍이는 그 언니에게 찾아가고, 당장 만날 수 없는 린드그렌 할머니를 대신해서 비읍이의 얘기를 참견없이 들어주고, 비읍이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주는 언니를 통해 비읍이는 가슴속 구슬이 깨지는 것의 의미를 알아간다.
작가가 이 책을 쓰는 동안에 일어난 일일까? 이 책의 마지막에서 린드그렌 선생님은 아흔 여섯의 나이로 하늘 나라로 가시고, 여행 경비를 모아 스웨덴에 가서 린드그렌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비읍이는 펑펑 울고난 후 깨닫는다. 스웨덴에 가서 린드그렌 선생님을 뵙겠다는 것도 언젠가 깨야할 구슬이었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였구나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글쓴이의 말을 읽는데 이런, '너무 늦게 보낸 팬레터'라는 제목의 이 글 역시 본문 못지 않게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TV에서 '말괄량이 삐삐'를 보고서 그때까지 본적이 없는 기괴하고 유쾌한 삐삐라는 캐릭터에 매료되어, 수년이 지나 서른도 넘긴 나이에 우연히 어느 가게의 비디오 판매대에서 '삐삐 롱스타킹' 비디오를 발견한 순간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당장 구입을 해서는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있다.
린드그렌 선생님은 전세계 얼마나 많은 어린이의 가슴 속에 아직도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아 있을지. 동화를 쓰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런 꿈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을까?
주인공 비읍이가 린드그렌 선생님께 편지의 형식으로 일기 비슷한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은 비벌리 클리얼리의 작품 <헨쇼 선생님께>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한권의 좋은 동화를 읽고 난 느낌은 성인 대상의 소설을 읽고났을 때와 또 다르다. 후자의 경우, 가슴이 묵직해져오는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면, 동화를 읽고 난 후에는 반대로 내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동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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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3-0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유은실 참 좋아하 해요.^^

hnine 2010-03-04 15:09   좋아요 0 | URL
그러실거라 생각했어요 ^^

2010-03-04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03-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어서인지 순수함과 따뜻함이 많이 담겨 있는듯 해요.
그나저나 저는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외국작품인줄 알았다는...
덕분에 유은실작가님을 알게 되었네요.^^

hnine 2010-03-04 19:21   좋아요 0 | URL
이 책 권해드려요. 같은하늘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

꿈꾸는섬 2010-03-0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막 읽고 싶어요. 정말 재밌겠어요. 저도 삐삐롱스타킹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큰조카 사줬는데 그녀석도 정말 좋아해요. 그 책 읽고 우리 조카도 린드그렌 작가의 책을 찾아서 보더라구요. 물론 저는 그렇지 못했지만요. 앙, 너무 보고 싶네요.^^

hnine 2010-03-05 05:48   좋아요 0 | URL
이 책 뒤에 보면 린드그렌의 작품들 리스트가 나오는데 제가 안 읽은 것도 많고 뒤늦게 이 작품이 린드그렌의 작품이었구나 하는 것들도 있고 그랬어요.
가까운 도서관에 아마 이 책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도서관에 앉아 2시간 만에 후다닥 읽었답니다.

2010-03-05 0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3-05 09:47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예전 일 기억나서 그게 몇년 전이더라 거슬러올라가다 깜짝 놀랄 때가 많지. 그간 10년 정도가 훌쩍 가있더라고.

2010-03-06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6 0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2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