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왕이 살던 궁, 조선 시대 양반들이 살던 멋진 한옥 등을 소개한 책들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서민들, 혹은 그나마 서민층에도 끼지 못하던 사람들이 살던 주거 형태를 소개한 책은 많지 않다. 그렇게 이 책에 실린 집들은 멋이나 풍류 대신 헐벗음과 한 (恨)이 느껴지는 그런 집들이다.
직접 발품 팔아 우리 땅을 돌아다니며, 기록이 될만한 사진들을 찍고 그에 대한 글을 칼럼 형식으로 쓰는 일을 해오던 저자는 지난 20여년에 걸쳐 여러 월간지와 사외보에 실었던 글과 사진 들 중 평소 관심이 있던 가난한 이들의 살림집이라는 주제에 대한 것들을 모아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한 두해가 아닌 20여년에 걸친 노고의 댓가로 탄생된 책임에도 책의 표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진들이나 글의 느낌이 참 소박하고 조용했다.  

1.외주물집
외주물집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처음 들어보았다. 한마디로 '노변가옥', 즉 마당이 없고 길 밖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보잘 것 없는 집을 말한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사는 군락에 함께 집을 짓고 살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길 가까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가족 구성원의 생활 모습이 외부에서 한꺼번에 쉽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집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능도 보장되지 않은 취약한 형태의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서 살다가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외부 이주를 고려중인 이들이거나, 아니면 장애를 안고 있는 가구가 정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는데 유랑으로 가는 직전 단계라고 볼수 있다고 한다. 

2.외딴집
외주물집과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떨어져 나와, 즉 전통적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 돌투성이 황무지에 가까운 곳이나 짠물 스미는 갯가, 날짐승 천지인 산간으로 들어가 지어진 외딴 가옥 형태를 말한다. 도회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가혹한' 외로움이 느껴졌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 속우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궁핍한 살림이 바깥 고을과의 관계 맺기를 어렵게 하고, 이것이 해마다 되풀이 되면서 결국 회복 불가능한 고립감으로 굳어져가는 일생을 보내고 있는 노부부의 집. 가난도 서러운데 가혹한 외로움과 회복 불가능한 고립감이라니. 

3. 독가촌
전통 마을과 터무니 없는 거리를 두고 지어진 소수 군락을 말한다. 마을을 이루기에는 몹시 춥고 척박한 곳에 덩그러니 지어진 이런 집들은 대개 과거 화전민으로 살던 이들의 집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비 침투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던 시절, 화전에 대한 정리 사업이 공포되고, 산골짜기에 흩어져 있던 외딴집들이 본격 소탕되면서 독가촌으로 집단화 되었다고 한다. 논에 쌀농사를 짓는 것은 꿈결로나 들리는 말이고 옥수수나 감자, 콩 따위의 밭농사를 지어 먹는 생활에 쌀뜨물도 예사로 안보인다는 사람들. 저자가 1996년에 찾아간 전북 장수의 한 독가촌 사람들은 그곳을 뜰 수 없다는 체념이 짙은 분위기임에도 낯선 객에게 베푸는 인심이 남달랐다고.

4. 분교
세계에서 그 유래가 드물다는 우리 나라의 분교.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배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지막 희망의 상징일까. 깊은 산간이나 섬 지역까지 이렇게 낱낱이 기초교육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가 독보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본능에 가까운 배움의 욕구로 세워진 분교는 본교로부터 일체의 운영지침을 내려 받아 가르침과 동시에 산간 벽지 감시 예찰 기능이 보태졌고 '가정 방문'이란 그것의 대표적인 예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감시 하고 예찰하는 것이 강조되던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 전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더. 

5. 간이역
많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누가 들고 나는지 숨길 수가 없다는 간이역. 그런 만큼 소설이나 드라마의 사연처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서려 있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린애나 처녀들이 아예 밭에서 일하던 채로 열차를 타러 오기도 했고 아버지에게 이르지 말아달라고 역무원에게 사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분교와 마찬가지로 간이역 역시 일정한 관찰 보고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치안과 행정력이 곳곳에 미치지 못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하던 시절에는 그만큼 주민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고 지금처럼 자동차 여행이 발달하지 않았고 철도가 주요 이동 수단이었던 시대였던 만큼 여행자에 대한 유입과 동태에 대한 관찰이 수월할 수 있는 곳으로 간이역이 제격임은 당연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 

6. 차부집
기차는 철로가 있는 제한된 지역을 다닐 뿐이었다면 더 구석구석까지 사람들을 실어 오고 실어다 주는 교통 수단으로 버스가 있었다. 간이 버스 정류장이라 할 수 있을 차부집은 그렇게 들고 나는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고 떠남을 계획하는 아픈 맘들을 수렴해내던 훌륭한 조절자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손글씨로 적혀 있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는 차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살림집 아낙. 하루 네번 읍내와 마을을 잇는 버스가 있다고 알려주는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 같았다는 그 풍경이 그려지는 듯 하다. 지금은 화려한 고속 도로, 휴게소, 버스 터미널에 가려 존재감이 흐려 가고 있지만 차부가 생겨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가 뚫리면서였고, 신작로는 그 당시 신문물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한 곳에 정착하면 좀처럼 이동하는 법이 없던 농경 문화권의 우리 나라의 관습이 무너지고 새로운 근대 질서가 물밀듯 밀려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던, 그런 역사의 한 과정을 겪어낸 그곳이 지금은 차부집인지 외부인이 보면 표시조차 나지 않는 쓰러져 가는 한 점방에 불과한 흔적화되어 가고 있으니 과연 몇년 후이면 역사 속의 한 장소로 사라지고 말지 모르겠다. 

7. 여인숙
여관과 여인숙은 처음 생겨날 때 모두 나라에서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여관'이 공무 집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이었다면 본디 '원'에서 시작했다는 여인숙은 그것보다 하급 숙박 시설이었다고 한다. 즉 더 서민적인 숙박 업소라는 뜻이다. 여행중 잠시 머무는 곳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살던 곳을 떠나 이동한 이들에게 초기 정착을 위한 임시 거처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위생이나 시설은 뒷전일 수 밖에 없었다는 곳. 역시 지금은 점차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곳이다. 

8. 막살이집
외주물집으로도 불릴 수 있지만 길가가 아니라 길 위에 집을 지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주거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막살이집이다. '막 살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한 평도 채 안되는 방에 반 평 정도 되는 부엌이 딸려 있는 1999년 인천에서 찍은 막살이집 사진 속에서 푸른 셔츠를 입은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빈 리어커를 끌고 있다. 집인지 창고인지 금방 구분이 안되는, 아니 형태로 보면 영락없는 박스의 형태이다. 흔히 '판자집'이라고 부르던 집이 바로 이 막살이집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곳에서도 사람들은 끼니를 지어 먹고 잠을 자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만 해도 흔했던 이런 막살이집들이 자유당 정부의 정착지 사업과 군사정부의 미관화 사업등으로 철거 이주 사업의 바람을 맞게 되고 새로운 정착촌 건설이 시도되지만 워낙 생계 형태가 행상, 노점, 막노동인 그들이 그 새로운 건설 바람에 쉽게 편승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생계 수단 박탈, 가족 해체, 사회적 격리라는, 막살이집 시절보다 더한 시련를 겪어 나가야 했던 것이다.

막살이촌을 찾아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다. 재개발이 이뤄지고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막살이촌은 새로운 현대식 가옥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살던 이들이 어디로 갔건, 일단 새집이 들어서고 길이 뚫린 것을 두고 잘살게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낙담하여 기약 없이 길거리로 나선 이도 있었고, 속절없이 병에 걸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까지 그 양상은 자못 슬프기까지 한 것이었다. (279쪽)

9. 미관 주택
내가 초등학생일 때에만 해도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동사무소에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는 새마을 운동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는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시절을 살았다는 것이 우습기만 한데, 이런 새마을 운동의 바람을 타고 생겨난 것이 '미관 주택'이고, 노래 가사보다 더 웃긴 것은, 반드시 '서구풍의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창문은 고속 도로에서 시속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주택의 창문이 시원스레 보일 정도로 커야 하며, 주택의 방향에 관계없이 무조건 고속 도로나 철도변을 정면으로 하여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이라기 보다 보이기 위해 지어진 집. 우리는 무엇을 그리 서둘러 보이려 했던 것일까. 누구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희극은 이렇게 우리 삶 속에 있었다. 

10. 시민아파트
군사 정부 들어 철거민 집단 이주 정책에 따라 모색된 또 하나의 방안이 바로 1950년대 후반 부터 시작된 시민 아파트 건립이었다. 요즘처럼 내장 공사를 말끔하게 마무리 하여 바로 입주하여 살 수 있게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라 집 형태만 지어 줄테니 당신들이 알아서 문도 달고 부엌도 들이며 난방 공사를 하라는 식으로 지어졌다는 이 아파트가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결국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찬물을 뒤집어 쓴 정부에서는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제대로 구색을 갖춘 아파트를 반포 등지에 짓기 시작한다. 아파트는 반포나 여의도에 지어진 아파트가 우리 나라 아파트의 시작인 줄 알고 있던 나는 그런 시행 착오를 거쳐 아파트가 지금의 일반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아파트의 등장은 신작로와 함께 근대를 끌어가는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던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데 있다. 좌식에서 입식 문화로 변화해가는 계기가 되었고 여태 가려져있던 개인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개인 공간을 중시하는 형태의 주거 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초기 시민아파트의 쪽방과 다름없는 생활은 이렇게 두얼굴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바꿔 놓게 된다. 

11. 문화주택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집장사들이 지은 '문화주택'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겉보기에 양식 가옥의 형태를 갖추면서 우리 전통 가옥의 특징을 아주 버리지는 않은, 우리 체질에 잘 맞춰새로 개조된 형태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는 콘크리트로 하고 빨간 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은 왜기와를 올린, 바로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 바로 이 문화주택에 해당하는 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기억에 그 당시 우리 동네 대부분의 집들이 이런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대문 바로 옆에 변소를 배치하고 그 지붕 위에 장독대가 있다는 설명은 바로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 같아 잠시 옛날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대문 옆에 '초인종'을 단 집을 신식 주택이라고 여기던 때, 문 밖에서 부르면 사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었던 집들. 그런데 이런 문화 주택의 준공 검사에서 중요하게 따졌던 부분 중의 하나가 집안에 방공호의 설치 여부였다니, 그러니까 어딘가에는 지금도 집안에 방공호가 남아 있는 개인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그래서 조금만 더 버티면 손에 잡을 수도 있었던 '현실적 가능주택'이 바로 문화주택이었다는데, 우리의 전통 가옥의 형태와 양식 가옥 구조를 합쳐 놓은,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원형을 잃어버린 집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말한다. 이것 저것 섞었지만 결국 우리 서민들과 함께 했던 문화주택과 같은 주택형이 바로 진정함에 가까운 원형이 아닐까 한다고. '원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잘 지어진 집을 찾아 나서는 대신 이렇게 점차 그 존재가 사라져 가는 집들을 찾아 나선 저자의 마음과, 어떤 집에 대해서든 순기능에 대해서만, 또는 역기능에 대해서만 강조하지 않는, 치우치지 않는 그의 관점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헐벗음으로 빚어진 슬픔과 아픔을 이슬로 내리게 해 가난한 살림집을 밝힌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저자의 말이, 단 두줄이지만 이 책의 의도에 대해 충분한 의미로 전달이 된다.
지금의 집의 형태는 시대를 따라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갈 것인지. 무엇이 그것을 다른 형태로 바뀌어 가게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또, 그동안 집을 크기나 부가 가치 위주로만 생각을 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도 한다. 집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궤적 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함께 집도 달라져 왔고 사연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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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9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9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3-09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사를 앞두고, 낯선 하늘의 새 지붕을 맞이하려는 요즘. 비록, 값싼 지붕일지라도 세심히 살피려 하는 저인데요. 계절을 그리 잘 맞이해주었던 손바닥만한 마당이 있는 곳을 떠나기가 왠지 아쉬워집니다. "원형" 원어로 말하면 "프로토타잎" 일까요?.. 물론 hnine 님께서 언급하신 그 단어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을 갖고 있겠지만요.

집과 사람. 원형.. 많은 생각이 드네요. ^^

hnine 2010-03-10 05:07   좋아요 0 | URL
마당 있는 집, 좋지요.
저는 그래서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이것 저것 화분을 베란다에, 그리고 집 안에 갖다 놓고 만족하고 있지요.
사시는 곳에 정이 많이 드셨나봐요. 아마 새로 이사 가시는 곳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카스피 2010-03-1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이야 제 한몸 가눌곳이면 족하거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는것이 탈이지요^^

hnine 2010-03-10 18:23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안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을 변변한 집 한칸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