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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많이 읽힌, 아니, 제일 많이 팔린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 꼭 그의 저서라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가긴 했다. 원제는 The case against perfection.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강화 (enhancement) 란 용어가 나오는데 근육, 기억, 키, 성감별, 주로 이 네가지 분야를 향상시키기 위해 유전 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은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가. 반대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이 책의 1장의 내용이다. 저자는 뚜렷하게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찬성자들의 의견과 반대자들의 의견을 골고루 소개하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2장생체공학적 운동 선수에서는 경기 성적의 향상을 위해 생체공학적 시도를 하는 운동선수들은 정당한가의 문제, 3장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 즉 자기가 원하는 자녀를 얻기 위해 계획된 정자 혹은 난자를 공여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정당할까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부모가 원하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그럼 정당할까 묻고 있다. 4장 우생학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특성을 가진 인간들에게는 자손을 낳을 기회를 박탈하고 우수한 형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출산을 장려하는 등 우생학에 근거를 둔 여러가지 시도들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요즘 여러 철학자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자유주의 우생학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5장 정복과 선물에서는 생명이 존귀한 것은 우리가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을 계획하고 조작하다 보면 인간의 겸손함은 줄어들 것이고 대신 생명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하나 원하는 대로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책임감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견을 하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담고 있다. 이것이 왜 에필로그로 실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모두를 느낄 수 있었는데 우선 부정적인 측면이라면, 저자는 생명의 윤리에 대해 얼마나 심도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었다. 현재 생명 공학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예로 들자면 이제 줄기 세포, 유전자 치료 등의 기술은 누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것이 아니다. 차라리 구체적이고 철저한 규칙 조항을 만들어 '함부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옳지, 배아도 생명이다 아니다 같은, 아무리 싸워도 해결이 나지 않을 문제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 앞으로 질병 치료나 예방은 줄기 세포나 유전자 치료로 갈 수 밖에 없는지 정치철학자인 그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군데서 과학과 비과학이 혼동되면서 비교, 비유되는 것이 보였다. 자녀를 유전 공학적으로 디자인하여 맞춤 아이를 생산해내는 것과, 부모가 자녀를 부모가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나 운동 등을 과도하게 시키는 것. 이것이 서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이렇게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론은 어디로 갈까. 
모순인 것 같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긍정적인 측면이 바로 그런 점이기도 하다. 비록 부적절해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 말이다.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이런 저런 사례들을 제시하고, 또 일어날지 모르는 사례들을 제시해주는 것, 그것 나름의 의의는 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이 책 전체에서 저자의 입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생명의 윤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지적 유희'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말이나 논리의 향연에 적합한 주제도 아니다. 과학적 지식과 근거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거기서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색변화 띠를 본 적이 있는가? 정확히 어느 지점까지가 흰색이고 어느 지점부터 검은 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그것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검은 색에 가까와 갈 수록 흰색에서는 멀어지고 흰색에 가까와져 갈수록 검은 색에서는 멀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을 이용하던지 질병 치료 목적이 아닌, 강화, 취향, 효율성 등의 목적으로 인간이 생명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만큼 생명에 대한 존엄성, 존귀함은 감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옳고 그르고, 정당하고 부당하고의 문제로 기준을 삼자면 끝이 없을 문제. 현실적이고 당장 적용 가능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깨알같은 항목이 아주 아주 많은 그런 가이드 라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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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2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질려버렸는데 말이죠.
님이 이렇게 가뿐히 요약해주시니...읽어볼 욕심이 생기는 걸요~

저도 생명에 관한 건, 지적유희여서는 안된다고 봐요.
많은 생각의 꺼리들을 제공해 주시는 페이퍼네요.
안 되겠어요, 저 읽어봐야 겠어요~^^

hnine 2010-12-23 13:02   좋아요 0 | URL
별 세개, 점수 후한 hnine이 겨우 별 세개!
번역, 더 좋을 수 있었음.

(소심해서 이렇게 밖에 말 못합니다요...ㅋㅋ)

마녀고양이 2010-12-2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이 책은 안 읽었지만 비슷한 맥락을 읽으며 생각해본 주제입니다.
저는 생명 윤리의 측면 뿐 아니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서도 생각했었습니다.
유전자란 수천만년 동안 진화해 온 것이고,
그만큼 시행착오를 거쳐 살아남고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 1만년도 안 되는 인류의 지성으로
인위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는 자체가
얼마나 오만하고 안이하고 멍청한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해야 합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라, 열변을... ^^. 나인 언니 메리 크리스마스!

hnine 2010-12-24 11:4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주어진 유전자를 내려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시대라니, 엄청난 발전이지요. 인간의 모든 사고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이미 우리가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그야말로 다른 기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데서 그치지 않을테니 경계를 해야겠지요. 저는 이런 기술을 반대하지만은 않아요.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미 이런 혜택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이런 기술보다 이 기술을 잘 조절하고 다룰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그에 못미칠까 그게 두렵다고 해야겠지요.
마녀고양이님, 코알라표 케잌과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실거예요~ ^^

2010-12-2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12-2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세개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번역이라든지, 구성이라든지 왠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기대어 판매해보려 급조한 느낌이 있더라구요.

hnine 2010-12-24 22:59   좋아요 0 | URL
saint님, 번역이 저도 참...맘에 안들었습니다.
saint님께서 별 세개 적당하다고 하시니 저는 점수를 아주 잘못 매긴건 아니라고 안심하겠습니다~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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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사, 스포츠. 나의 취약 분야이다. 더 생각하면 더 많겠지만 얼른 떠오르는 것만 그렇다는 것이다. 책 제목을 그냥 '철학의 즐거움'이라고 했으면 아마 더 접근하기 어려웠겠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라고 제목을 정하고 기획한 의도는 알겠다. 스물 한 사람의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뽑고, 그에 어울리는 시를 뽑았다고 한다. 스물 한명의 시인은 박노해, 기형도, 김남주, 강은교, 박정대, 유하, 원재훈, 황동규, 김수영, 도종환, 김춘수, 최두석, 최영미, 최영란, 오규원, 한하운, 정현종, 이상, 황지우, 박찬일, 김준태. 대부분 알고 있는 시인이다. 스물 한명의 철학자는 네그리, 비트겐슈타인, 아렌트, 알튀세르, 바타이유, 벤야민, 레비나스, 니체, 푸코, 가라타니 고진, 하이데거, 들뢰즈, 사르트르, 아도르노, 데리다, 아감벤, 메를로 퐁티, 리오타르, 바디우, 호네트, 박동환. 이름만 겨우 들어봤거나 이름도 처음 듣는다. (철학자 아감벤의 이름은 모르고 봤으면 무슨 약 이름인줄 알뻔).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읽었다. 철학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열심히 설명하려고 애쓰는 저자의 노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중의 힘을 얘기한 네그리, 말로 표현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한 비트겐슈타인은 그래도 알고 있던 사람. 명료한 사유, 명료한 언어 등 명료성을 강조한 사람이다. 여성 철학자 아렌트는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사유하지 않고 사는 삶의 오류를 유대인 학살자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아내를 교살하고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철학자 알튀세르, 그가 말한 우발성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무작위성 (randomness)와 같은 맥락일까? 에로티즘을 말하는 철학자도 있다. 바로 바타이유. 그는 금기와 인간의 욕망에는 역사성과 사회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했다. 벤야민, 오랜만에 아는 이름이다 하며 읽었다. 인간의 소비 욕망을 타고 생겨난 자본주의, 그것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유명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연구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타자 없이 나도 없다고 한 레비나스, 기억보다 망각의 위대함을 얘기한 니체,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 권력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의식하지 않는 사이 개인의 삶 속 도처에 작용한다고 한 푸코를 읽으며 미시정치학이라는 말을 알았다. 나와 타자는 어떻게 다른가. 다른 언어 체계, 다른 사유 체계에 의해 나와 타자는 구분되고,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을 뛰어 넘을 때 관계가 형성된다고 한 가라타니 고진. 이름은 친숙하나 확실하게 아는 것이 없는 하이데거. 역시나 어렵다. 어둠 속에 촛불로서 드러나는 것에 비유하여, 존재 자체는 밝혀져 드러내어 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이 촛불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들뢰즈의 '리좀'을 알았고, 현대 철학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프랑스, 프랑스 현대 철학의 중심에 있는 사르트르 역시 '타자'에 대해  말했구나. 아도르노의 해체론은 아우슈비츠라는 비극을 안고 탄생했다. 내가 들뢰즈와 혼동하는 데리다는 '나의 죽음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발언하는 데 구조적으로 필수적이다.'라는 문장으로 기억해야지. 약 이름으로 착각할 뻔 한 아감벤의 생명 정치 사상은 아무렇게나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의 '호모 사케르'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육체가 있고 정신이 있다고 말한 메를로 퐁티, 모더니즘의 의미를 새로 깨우치게 해준 리오타르. 새로움이 지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일 수 없으므로 어떤 작품도 부단히 새로워야만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사랑의 철학적 해석은 바디우, 타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얘기한 호네트는 정신현상학이라는 어려운 분야의 철학자인데 타자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인정 '투쟁'이라고 까지 얘기했다. 인간이 물질화 되어 가는 '물화'에 상대적인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의 철학자 박 동환. 우리 나라 철학자임에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중국 철학을 따라 하고, 이후엔 서양 철학을 따라간 것 처럼 보이는 한국 철학이지만 한국은 한국 나름의 제3의 논리가 있다고 했다.
소화가 되기 전에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집어 넣은 것 같아 지금 소화 불량의 느낌이지만, 이렇게라도 철학자들을 만난게 어디냐 싶다. 저자도 말했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물 한명의 철학자 모두를 다 좋아할 수는 없으며 바람직하지만도 않다고.
책 제목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지만 읽는 동안 나의 느낌은 철학적 시 읽기의 어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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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10 11:49   좋아요 0 | URL
엇! 언제 닉네임 철자 바꾸셨어요? 왜요? ^^

마녀고양이 2010-12-10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언니가, 철학에 취약하다 하시면,
언니의 리뷰를 읽으며 멀미를 하는 저는...... ㅠㅠㅠ

그런데 말이죠, 이것도 공부랑 똑같네요. 어렵지만
한번은 봐야 할건데 말이죠, 철학이란거.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거 같은데. ^^

좋은 주말되셔요, 나인 언니.

hnine 2010-12-11 05:35   좋아요 0 | URL
여렵긴 했는데 철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는 순간엔 맛있기도 했어요 사실. 철학이 사람의 내면으로만 파고 드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타자'에 의해 정의되어 지고 특징이 형성된다는 것이 현대 철학의 큰 주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현대 철학자들 이름들을 발음하기가 영 불편한데에는 프랑스 철학이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감 잡았고요.
어려우면서도 필요성은 느끼고, 괜찮았습니다. ^^

섬사이 2010-12-10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에 시를 짝지어 놓다니!!
그런 경지는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들어설 수 있는 건지.
전 감히 꿈꾸기조차 어려운 경지인 것 같아요.
철학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긴 한데,
너무 까칠한 구석이 있어서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워요. ㅠ.ㅠ

hnine 2010-12-11 05:3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철학을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기획한 책이 아닐까 해요. 그럼에도 쉽지 않았지만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요즘도 윤리라는 과목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처음 배워보고 그 이후로는 교양 과목으로조차 배워본 적이 없으니...어려운게 당연한거죠? ^^
 
The Drama of the Gifted Child: The Search for the True Self (Paperback, 3)
앨리스 밀러 지음 / Basic Books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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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 그리고 '거짓의 사람들' 이후로, 읽는 동안 이렇게 오싹하며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사연의 댓글을 통해서였다. 너무나 말을 안듣는 아이에게 결국 매질을 한 어떤 엄마가 잠든 아이를 보며 죄책감과 후회의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어떤 분이 댓글에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며 소개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일종의 육아, 교육에 관한 책이려니 했고 제목 중의 gifted child라는 단어로 보아 재능있는 아이를 키우는 방법 쯤 되나 짐작했는데 읽어 보니 둘 다 틀렸다. 육아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소제목 'The search for the true self' 에서 알수 있듯이 억눌렸던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gifted child란 재능을 타고난 아이라는 뜻으로 쓰인게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모 마음에 들도록 자신을 조정하는데 성공한 아이를 말한다. 그럼 여기서 갖게 되는 의문은 우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우리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기를 억눌렸는가 하는 것이다. 답은 바로 부모, 특히 대부분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엄마에 의해서이다. 그것은 아주 아기일때부터 무의식중에 행해졌기 때문에 엄마도, 아이도 모르고 있다가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대개 자기의 자식을 갖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잘못 대우받은 것을 부모가 아닌 자기의 자식을 통해 보상받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아이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그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고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한 행동을 하여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win love 혹은 survive love라고 표현을 했다. 아주 어릴 때의 그런 노력은 각인이 되어 성인이 되어가면서도 자기의 분노를, 욕구를, 슬픔을, 억울함을 제때 표현 못하고 계속 마음 속에 억누른 채 있다가 드디어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약하고 무력한 존재가 생겼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 대상에게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이상한 형태로 풀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약하고 무력한 존재'란 물론 자기의 자식을 말한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하지? 나와 같은 희생자를 또 만들지 않으려면, 평생을 그 응어리 풀어내는 일에 소모하며 그늘에서 살지 않으려면? 이 책이 쓰여진 의도는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The search for the true self. 자기 내면 속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를 들여다보고 그 상처를 계속 숨기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대면하고 직시하여 사실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억눌린 분노를 체험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에 대한 우상화를 깨고 나오라 한다. 그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를 대상으로 할 일도 아니고, 제일 취약한 존재인 자기 자식을 상대로 할일은 더구나 아니며, 혼자서 치러야 할 고통스런 과정이다. 그럼으로써 그 강박과 억압의 고리를 끊고 나와야 한다. 우리가 진실을 대면할 의지가 있을 때 우리는 바로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win love), 또는 사랑을 벌기 위해 (earn love) 진짜 자기 (true self)를 포기하고 가짜 자기 (false self)인 채로 살면서 마음 속에 우울과 공허함을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울 (depression)의 반대말은 유쾌, 명랑함 (gaiety)이 아니라 생명력, 활기 (vitality)라고 한다. 즉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을 그 상태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어릴 때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되는 상대와 직접 대면하여 어떤 식으로든 터뜨리고 대화를 하고 이해를 시키고 이해를 받고, 뭐 이런 식의 해결책을 이 책에서 제시했더라면 아마 읽으면서 많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 졸병 주제에 용기를 내어 적장에게 대들어 싸워보라고 부추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권하는 것은 inner dialogue, 즉 자기 내면과의 대화이다. 그만큼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자기가 자신의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첫 발걸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변칙적인 미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희생양을 바꿔서 늘 존재하며 희석되지 않는다. 약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영혼에 독이 되고 눈을 가리며 기억과 정신을 먹어치운다. 동정심과 통찰력을 말살시킨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으로 지어진 집은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며 인간의 삶을 가차없이 파괴시킨다. 그 집의 주인이 아닌, 그의 자녀의 삶을. (115, 116쪽에서 발췌)

 어릴 때의 상처로부터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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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0-12-0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만 봐서는 내용이 저런 내용일지는 감이 안왔단다.

hnine 2010-12-07 13:25   좋아요 0 | URL
엄마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일, 더구나 그것이 '사랑'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데에는 오싹하지 않을 수 없었어. 자식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사랑을 쏟는다는 것도.

2010-12-07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7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8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08 18:2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0-12-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섬뜩하고 솔깃한걸요.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를...이 구절에 무한 감동 먹었어요.

hnine 2010-12-07 21:48   좋아요 0 | URL
감정을 억제하고 쓰느라고 썼는데, 읽는 동안 아주 푹 빠져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이 책, 아마 저를 움직인 책 몇권 뽑으라면 거기에 분명히 들어갈 책이어요.

마녀고양이 2010-12-0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언니, 이 책 이군요?
원서지만, 한번 사서 도전해야겠어요. 저 너무 솔깃해요.

누구나 그런지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반성을 할 수 밖에 없는게...
제일 잘 해주는 사람이나 만만한 사람, 무엇인가 자극하는 사람에게
투사를 해서 억누른게 분출되는거 같아요. 결국 제일 기대어야 할 부분,
비비적대야 할 엄마에게 못 했던 것들이 나오는거죠.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말씀
백번........... 공감합니다.

hnine 2010-12-08 12:00   좋아요 0 | URL
백번 공감하신다니 저도 백번 추천드리겠습니다.
원서이지만 읽기 어렵지 않아요. 그리 두껍지도 않고요. 찾아보니 번역본도 나와있더군요. 어느 쪽이든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시장미 2010-12-08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다행히 번역본이 나와있군요? 원서만 있는 줄 알고 식겁했습니다.

상처란 것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어오는 것.
그래서 전 예전부터 상처 많은 사람들을 품으려는 시도에서
늘 실패를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제가 정말 품고 싶었던 것은..
제 자신이더군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품을 수 있으려면..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그 상처까지 품어야한다는 것..
깨달은지 꽤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쉽지 않은일인 것 같아요.
삶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나봅니다.

오랜만에 와서 좋은 책을 소개받게 되었네요. 감사해요. :)

hnine 2010-12-09 04:48   좋아요 0 | URL
상처 많은 사람들을 품으려는 시도...가시장미님 그 말씀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지가 않네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빨리 알아보고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건 왜 그런 것일까, 저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에게는, 좋다는 말보다 뭐랄까, 깨우침을 주는 책이었어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2010-12-09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09 23: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언제까지 상처가 아프다고 징징대며 살수는 없지요. 상처를 인정하고 바로 보고 달래고 얼러주어야지요. 누가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서도 아니고, 나 자신과 대면해야 할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러지 못할 때 그 피해가 내가 아닌 내 아이에게 돌아간다는 말이 참 섬찟했어요.

2015-11-07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11-08 07:16   좋아요 0 | URL
댓글 주신 덕분에 저도 오랜 만에 이 책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스캇 펙의 대표작 세권 읽으면서 저도 오싹했었지요. 그런데 그 오싹함을 다른 사람의 저서 여기 저기에서 또 만나게 되더군요.
말씀하신 제목으로 이 책 번역본이 나와있나보네요. 스캇 펙의 책 보다도 두껍지 않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권해드려요.
 
Tuck Everlasting (Paperback) - 『트리갭의 샘물』원서
나탈리 배비트 지음 / Square Fish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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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uck Everlasting> 의 'Tuck'은 영원히 죽지 않는 책 속의 인물의 이름이다.
먹으면 그 순간 부터 더 이상 나이도 들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샘물이 있는 곳. 그 곳은 어린 소녀 Winnie네 집안 소유인 숲 속에 있지만 누구도 그 샘물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이 어린 소녀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다. 80년 전 어느 날 그 샘물을 마시고 나이가 멈춰 버린 Tuck 가족은 Winnie로 하여금 그 샘물의 존재를 비밀로 해야하는 이유를 이해시키기 위해 하룻 밤 그들이 집으로 Winnie를 데려온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Tuck 아저씨로부터 들은 Winnie는 처음엔 부인하지만 점차 이들의 친절한 태도와 진실한 품성에 동화되어 이해할 뿐 아니라 이들 가족에 친밀감이 형성되기까지 한다. 이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침입자의 방문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박하게 진행되어 가고, Winnie를 보호하기 위해 Tuck 아저씨의 부인 Mae는 일을 저지르고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절정에 달한다. Tuck아저씨와 Mae아주머니의 열일곱살 난 아들 Jesse는 Winnie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어 둘이 미래에 대한 약속을 주고 받는 대목이 우리 언어가 아님에도 그 풋풋한 분위기가 충분히 전해져 옴을 느꼈다.
샘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결과를 눈으로 보고난 Winnie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자기도 그 샘물을 마시고 영원히 죽지 않는 특권을 누리기를 택했을까? 읽으면서 과연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무척 궁금했다. Winnie의 이런 선택 앞에서 이미 경험을 하고 있는 Tuck 가족들은 무어라고 조언을 해주었을 거라고 예상하는지. (혹시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이 이 리뷰를 읽는 경우를 생각해서 다 털어놓지 않기로 한다.)
Tuck 아저씨가 Winnie에게 샘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히 철학적이다. 돌고 돌아 자기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다시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그것이 삶의 이치라고. 아무 변화 없이,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 자체가 죽음이나 마찬가지인거라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커다란 바퀴의 일부가 되어 돌고 도는 것, 그것이 정상적인 삶인데 자기 가족들은 지금 그 바퀴에서 떨어져 나와있고 할수만 있다면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슬프게 말하는 Tuck 아저씨.
"Winnie야. 이미 벌어지고 난 후, 지나고 난 후에야 알게되는 것들이 있단다. 트리갭의 샘물이 있는 곳을 사람들이 다 알았다고 해보자. 너나 할 것 없이 다 몰려들어 그 샘물을 마시겠지? 그러면 어린 아이는 계속 어린 아이로 있게 될 것이고 노인네들은 계속 노인네로 영원히 살게 될 거야. 저 길가의 바위와 아무것도 다를게 없지. '영원히'. 너 그 '영원히'란 말을 이해할 수 있겠니? 알았을 땐 이미 늦지." (63, 64쪽 일부를 옮김)
이 작가가 참 대단한 진리를 이야기 속에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전율이 일었다. 이 소녀 Winnie의 묘비명이 소개되는 이 책의 마지막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도 처연한지.
책 표지를 보면 얼굴은 안보이는 아이가 두꺼비를 손에 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오면 그림의 의미를 알게 된다. 

우리 나라에는 <트리갭의 샘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있어 제목은 귀에 익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의미가 무겁고 읽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1001 Children's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grow up> 이라는 책에도 12+ 로 분류가 되어 이 책이 소개 되어 있었다.  

영어도 그리 어렵지 않고, 페이지도 빨리 넘어가게 스토리가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니, 모두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신 분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혹시 나에게도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 현재를 즐기며 열심히 사는 것이 더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자신에게 말해주겠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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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1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1 0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0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네요~


순오기 2010-12-0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리갭의 샘물로 읽었어요.
영원히 산다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걸,우리는 알지요.^^

hnine 2010-12-01 21:5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순오기님 리뷰 읽어보고 왔지요.
영원히 산다는 게 결코 좋은게 아니라는 걸,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지어 보여줄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참 부러웠어요.
 
Gregor Mendel: The Friar Who Grew Peas (Hardcover)
Cheryl Bardoe / Harry N Abrams Inc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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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을 키운 수도사 그레고르 멘델' 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생명 복제 시대를 사는 현대에, 그 모든 기술의 초석을 마련한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나와있는 것이 있길래 주문해서 장장 열흘 넘게 기다린 끝에 받은 책이다.

멘델이 실험 재료로 사용한 완두콩 식물의 그림이 책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어디에나 있다.

'멘델은 평생 동안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
하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늘 집안 사정을 걱정해야만 했다. 열두살에 간신히 학비만 받아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입학했고 그나마 열여섯살부터는 자기가 벌어 공부를 해야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을 알아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당시 수사가 되면 성직자로서의 임무 외에도 배움의 기회도 제공받는다는 것을 알고 수사가 된 멘델. 그의 재능과 열성을 알아본 주교는 그를 비엔나 대학에서 공부할수 있도록 해준다. 거기서 여러 유명한 교수들로부터 자연과학 전반에 걸친 지식을 갖추고 돌아온 멘델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평소에 궁금해했던 실험을 시작한다. 수도원의 한 귀퉁이 정원에서.

그가 선택한 왼두콩 식물은 행운의 식물. 287번의 가루받이 실험으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자그마치 28000그루의 완두콩 식물을 키워 결과를 얻었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떤 방법을 이용하여 임의로 식물의 교배를 실행했는지,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그의 실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식물의 생식 기관 구조. 즉 수술 (stamen)과 암술 (pidstil), 그리고 암술을 따라 내려간 곳에 있는 씨방 속의 egg cell들의 모습이다.

아, 친숙한 이 그림.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볼때는 별 느낌 없이 보던 것이, 멘델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니 감동스럽기 까지 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 단순해보이기만 하는 실험으로 그는 얼마나 대단한 법칙을 알아내었던가.

드디어 유전의 정체와 법칙이 밝혀지는 순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궁금해서 시작한 실험, 7년에 걸쳐 혼자 씨를 뿌리고, 관찰하고, 숫자를 기록하고, 그 속에서 법칙을 발견하여 벅찬 마음으로 그 결과를 학회에 가지고 가서 발표하지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어떤 콩과 식물에 대한 얘기라고 흘려 들은 것이다. 그것이 모든 생물에 적용되는 유전 법칙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멘델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16년이 지나서야 다른 세명의 과학자들에 의해 그의 실험이 재발견되어 인정을 받는다. 위에서 그가 남긴 말대로 그가 발견한 것은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오는 사람을 사이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궁금한 것을 스스로 알아내고 싶은 호기심, 열성, 꾸준함이 그것들을 대신했다. 갈수록 그런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자기 길을 가는 과학자의 모습이 자꾸 사라져 가는 것 같아, 혼자 외로운 길을 걸으며 실험한 결과의 가치를 살아있는 동안 인정 못받고 눈을 감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그에 대한 나의 각별한 관심, 그 이상의 존경심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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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두콩 그림이 꽤 귀엽습니다. hnine님 ^^

마지막 쓰신 글 읽으며 들었던 생각. 오늘 밖에 산책 길거릴 쏘다니다 왔는데, 뭔가 자꾸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더라고요.
조용히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것들.. 이욥.

hnine 2010-11-29 06:35   좋아요 0 | URL
완두콩이 원래 귀엽게 생겼잖아요~ ^^
마지막 부분은 과학자 본래의 지적 호기심보다는 과제 일정에 맞춰, 숙제 하듯이, 예상된 결과를 내놓는데에 집중하는 요즘의 현실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을 보며 아쉬워서 썼습니다.
바람결님 말씀하신 것처럼 변하지 말고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하늘바람 2010-11-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예쁜 과학책이네요

hnine 2010-11-29 20:28   좋아요 0 | URL
과학, 또는 과학자에 대한 책을 저렇게 예쁜 그림책으로 만들 수 있다니, 참 멋지지요~ ^^

순오기 2010-11-2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멋진 책이네요.
실물 완두콩과 완두콩 꽃 사진이 추가되면 금상첨화였을 포토리뷰~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천!
완두콩과 꽃 사진 제게 있는데 보내드릴까요?^^

hnine 2010-11-29 20:30   좋아요 0 | URL
하하...전 별로 부지런하질 못해서 포토리뷰는 잘 못 올리는 편인데 이 책은 그림책이라서 큰 맘 먹고 올렸답니다.
오나두콩과 꽃 사진이 있으시군요. 순오기님 컴퓨터는 보물창고 ^^
이 리뷰 말고 나중에 제가 혹시 그 사진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

프레이야 2010-11-30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밀화가 아주 멋지네요.
오늘의 작가도 오늘의 과학자도 오늘의 예술가도
후대에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당시는 인정받지 못한 위인들이 참 많아요. 멘델로 그렇군요.
나인님이 감정이입된 걸 느껴요. ^^

hnine 2010-11-30 15:28   좋아요 0 | URL
에궁, 들켜버렸네요. 감정을 자제하고 쓰자고 생각했는데~ ^^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고 알고 싶은 것에 집중하여 몰입하는 것, 그것이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해요.
그림도 훌륭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