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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평점 :
철학, 역사, 스포츠. 나의 취약 분야이다. 더 생각하면 더 많겠지만 얼른 떠오르는 것만 그렇다는 것이다. 책 제목을 그냥 '철학의 즐거움'이라고 했으면 아마 더 접근하기 어려웠겠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라고 제목을 정하고 기획한 의도는 알겠다. 스물 한 사람의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뽑고, 그에 어울리는 시를 뽑았다고 한다. 스물 한명의 시인은 박노해, 기형도, 김남주, 강은교, 박정대, 유하, 원재훈, 황동규, 김수영, 도종환, 김춘수, 최두석, 최영미, 최영란, 오규원, 한하운, 정현종, 이상, 황지우, 박찬일, 김준태. 대부분 알고 있는 시인이다. 스물 한명의 철학자는 네그리, 비트겐슈타인, 아렌트, 알튀세르, 바타이유, 벤야민, 레비나스, 니체, 푸코, 가라타니 고진, 하이데거, 들뢰즈, 사르트르, 아도르노, 데리다, 아감벤, 메를로 퐁티, 리오타르, 바디우, 호네트, 박동환. 이름만 겨우 들어봤거나 이름도 처음 듣는다. (철학자 아감벤의 이름은 모르고 봤으면 무슨 약 이름인줄 알뻔).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읽었다. 철학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열심히 설명하려고 애쓰는 저자의 노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중의 힘을 얘기한 네그리, 말로 표현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한 비트겐슈타인은 그래도 알고 있던 사람. 명료한 사유, 명료한 언어 등 명료성을 강조한 사람이다. 여성 철학자 아렌트는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사유하지 않고 사는 삶의 오류를 유대인 학살자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아내를 교살하고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철학자 알튀세르, 그가 말한 우발성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무작위성 (randomness)와 같은 맥락일까? 에로티즘을 말하는 철학자도 있다. 바로 바타이유. 그는 금기와 인간의 욕망에는 역사성과 사회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했다. 벤야민, 오랜만에 아는 이름이다 하며 읽었다. 인간의 소비 욕망을 타고 생겨난 자본주의, 그것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유명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연구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타자 없이 나도 없다고 한 레비나스, 기억보다 망각의 위대함을 얘기한 니체,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 권력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의식하지 않는 사이 개인의 삶 속 도처에 작용한다고 한 푸코를 읽으며 미시정치학이라는 말을 알았다. 나와 타자는 어떻게 다른가. 다른 언어 체계, 다른 사유 체계에 의해 나와 타자는 구분되고,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을 뛰어 넘을 때 관계가 형성된다고 한 가라타니 고진. 이름은 친숙하나 확실하게 아는 것이 없는 하이데거. 역시나 어렵다. 어둠 속에 촛불로서 드러나는 것에 비유하여, 존재 자체는 밝혀져 드러내어 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이 촛불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들뢰즈의 '리좀'을 알았고, 현대 철학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프랑스, 프랑스 현대 철학의 중심에 있는 사르트르 역시 '타자'에 대해 말했구나. 아도르노의 해체론은 아우슈비츠라는 비극을 안고 탄생했다. 내가 들뢰즈와 혼동하는 데리다는 '나의 죽음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발언하는 데 구조적으로 필수적이다.'라는 문장으로 기억해야지. 약 이름으로 착각할 뻔 한 아감벤의 생명 정치 사상은 아무렇게나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의 '호모 사케르'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육체가 있고 정신이 있다고 말한 메를로 퐁티, 모더니즘의 의미를 새로 깨우치게 해준 리오타르. 새로움이 지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일 수 없으므로 어떤 작품도 부단히 새로워야만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사랑의 철학적 해석은 바디우, 타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얘기한 호네트는 정신현상학이라는 어려운 분야의 철학자인데 타자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인정 '투쟁'이라고 까지 얘기했다. 인간이 물질화 되어 가는 '물화'에 상대적인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의 철학자 박 동환. 우리 나라 철학자임에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중국 철학을 따라 하고, 이후엔 서양 철학을 따라간 것 처럼 보이는 한국 철학이지만 한국은 한국 나름의 제3의 논리가 있다고 했다.
소화가 되기 전에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집어 넣은 것 같아 지금 소화 불량의 느낌이지만, 이렇게라도 철학자들을 만난게 어디냐 싶다. 저자도 말했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물 한명의 철학자 모두를 다 좋아할 수는 없으며 바람직하지만도 않다고.
책 제목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지만 읽는 동안 나의 느낌은 철학적 시 읽기의 어려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