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 그리고 '거짓의 사람들' 이후로, 읽는 동안 이렇게 오싹하며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사연의 댓글을 통해서였다. 너무나 말을 안듣는 아이에게 결국 매질을 한 어떤 엄마가 잠든 아이를 보며 죄책감과 후회의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어떤 분이 댓글에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며 소개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일종의 육아, 교육에 관한 책이려니 했고 제목 중의 gifted child라는 단어로 보아 재능있는 아이를 키우는 방법 쯤 되나 짐작했는데 읽어 보니 둘 다 틀렸다. 육아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소제목 'The search for the true self' 에서 알수 있듯이 억눌렸던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gifted child란 재능을 타고난 아이라는 뜻으로 쓰인게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모 마음에 들도록 자신을 조정하는데 성공한 아이를 말한다. 그럼 여기서 갖게 되는 의문은 우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우리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기를 억눌렸는가 하는 것이다. 답은 바로 부모, 특히 대부분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엄마에 의해서이다. 그것은 아주 아기일때부터 무의식중에 행해졌기 때문에 엄마도, 아이도 모르고 있다가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대개 자기의 자식을 갖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잘못 대우받은 것을 부모가 아닌 자기의 자식을 통해 보상받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아이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그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고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한 행동을 하여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win love 혹은 survive love라고 표현을 했다. 아주 어릴 때의 그런 노력은 각인이 되어 성인이 되어가면서도 자기의 분노를, 욕구를, 슬픔을, 억울함을 제때 표현 못하고 계속 마음 속에 억누른 채 있다가 드디어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약하고 무력한 존재가 생겼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 대상에게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이상한 형태로 풀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약하고 무력한 존재'란 물론 자기의 자식을 말한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하지? 나와 같은 희생자를 또 만들지 않으려면, 평생을 그 응어리 풀어내는 일에 소모하며 그늘에서 살지 않으려면? 이 책이 쓰여진 의도는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The search for the true self. 자기 내면 속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를 들여다보고 그 상처를 계속 숨기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대면하고 직시하여 사실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억눌린 분노를 체험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에 대한 우상화를 깨고 나오라 한다. 그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를 대상으로 할 일도 아니고, 제일 취약한 존재인 자기 자식을 상대로 할일은 더구나 아니며, 혼자서 치러야 할 고통스런 과정이다. 그럼으로써 그 강박과 억압의 고리를 끊고 나와야 한다. 우리가 진실을 대면할 의지가 있을 때 우리는 바로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win love), 또는 사랑을 벌기 위해 (earn love) 진짜 자기 (true self)를 포기하고 가짜 자기 (false self)인 채로 살면서 마음 속에 우울과 공허함을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울 (depression)의 반대말은 유쾌, 명랑함 (gaiety)이 아니라 생명력, 활기 (vitality)라고 한다. 즉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을 그 상태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어릴 때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되는 상대와 직접 대면하여 어떤 식으로든 터뜨리고 대화를 하고 이해를 시키고 이해를 받고, 뭐 이런 식의 해결책을 이 책에서 제시했더라면 아마 읽으면서 많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 졸병 주제에 용기를 내어 적장에게 대들어 싸워보라고 부추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권하는 것은 inner dialogue, 즉 자기 내면과의 대화이다. 그만큼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자기가 자신의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첫 발걸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변칙적인 미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희생양을 바꿔서 늘 존재하며 희석되지 않는다. 약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영혼에 독이 되고 눈을 가리며 기억과 정신을 먹어치운다. 동정심과 통찰력을 말살시킨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으로 지어진 집은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며 인간의 삶을 가차없이 파괴시킨다. 그 집의 주인이 아닌, 그의 자녀의 삶을. (115, 116쪽에서 발췌)
어릴 때의 상처로부터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