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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많이 읽힌, 아니, 제일 많이 팔린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 꼭 그의 저서라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가긴 했다. 원제는 The case against perfection.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강화 (enhancement) 란 용어가 나오는데 근육, 기억, 키, 성감별, 주로 이 네가지 분야를 향상시키기 위해 유전 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은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가. 반대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이 책의 1장의 내용이다. 저자는 뚜렷하게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찬성자들의 의견과 반대자들의 의견을 골고루 소개하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2장의 생체공학적 운동 선수에서는 경기 성적의 향상을 위해 생체공학적 시도를 하는 운동선수들은 정당한가의 문제, 3장은 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 즉 자기가 원하는 자녀를 얻기 위해 계획된 정자 혹은 난자를 공여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정당할까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부모가 원하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그럼 정당할까 묻고 있다. 4장 우생학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특성을 가진 인간들에게는 자손을 낳을 기회를 박탈하고 우수한 형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출산을 장려하는 등 우생학에 근거를 둔 여러가지 시도들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요즘 여러 철학자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자유주의 우생학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5장 정복과 선물에서는 생명이 존귀한 것은 우리가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을 계획하고 조작하다 보면 인간의 겸손함은 줄어들 것이고 대신 생명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하나 원하는 대로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책임감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견을 하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담고 있다. 이것이 왜 에필로그로 실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모두를 느낄 수 있었는데 우선 부정적인 측면이라면, 저자는 생명의 윤리에 대해 얼마나 심도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었다. 현재 생명 공학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예로 들자면 이제 줄기 세포, 유전자 치료 등의 기술은 누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것이 아니다. 차라리 구체적이고 철저한 규칙 조항을 만들어 '함부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옳지, 배아도 생명이다 아니다 같은, 아무리 싸워도 해결이 나지 않을 문제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 앞으로 질병 치료나 예방은 줄기 세포나 유전자 치료로 갈 수 밖에 없는지 정치철학자인 그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군데서 과학과 비과학이 혼동되면서 비교, 비유되는 것이 보였다. 자녀를 유전 공학적으로 디자인하여 맞춤 아이를 생산해내는 것과, 부모가 자녀를 부모가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나 운동 등을 과도하게 시키는 것. 이것이 서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이렇게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론은 어디로 갈까.
모순인 것 같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긍정적인 측면이 바로 그런 점이기도 하다. 비록 부적절해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 말이다.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이런 저런 사례들을 제시하고, 또 일어날지 모르는 사례들을 제시해주는 것, 그것 나름의 의의는 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이 책 전체에서 저자의 입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생명의 윤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지적 유희'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말이나 논리의 향연에 적합한 주제도 아니다. 과학적 지식과 근거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거기서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색변화 띠를 본 적이 있는가? 정확히 어느 지점까지가 흰색이고 어느 지점부터 검은 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그것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검은 색에 가까와 갈 수록 흰색에서는 멀어지고 흰색에 가까와져 갈수록 검은 색에서는 멀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을 이용하던지 질병 치료 목적이 아닌, 강화, 취향, 효율성 등의 목적으로 인간이 생명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만큼 생명에 대한 존엄성, 존귀함은 감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옳고 그르고, 정당하고 부당하고의 문제로 기준을 삼자면 끝이 없을 문제. 현실적이고 당장 적용 가능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깨알같은 항목이 아주 아주 많은 그런 가이드 라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