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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사라지자 모레가 황홀해졌다...

2007년 8월 22일자 중앙일보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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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에서

                                   
                                          유   안 진

 

단 내 차오르는 불볕 아래 서면
             숨이 가빠 숨이 가빠 혼절할 수 밖에 없고

     별빛 꽂히는 밤 바닷가에 나아오면
           마녀의 펄럭이는 옷자락에 매어달린 채

왕자 얼굴 한번 엿보기 위하여
 벙어리가 되어버린 인어아가씨

그녀의 어리석음이
부러워서 나는 운다

                                   --------------------------------------------------

대학교 때 유 안진이라는 시인을 참 좋아했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면서
종이에 시인의 이름을 자꾸 자꾸 써 보곤 했다
한글로, 그리고 한문으로까지, 
유. 안. 진. 柳. 岸. 津...
그리고 소리내어 읽어 보고는.
시인의 이름에서
시인의 시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오늘 누렇게 바랜 한권의 노트를 찾아 내어
먼지를 탁탁! 털고 펼쳐 보았다.
검은 색 만년필로
한 페이지에 한 편씩
좋아하는 시를 적어 놓은.
쓰면서 행복했던 기억
나의 재산은 바로 이런 것
...

 

(한 편 더...)


용 기

 

                             유    안 진

 

장마철 무너져 내리는
사태비탈에서도

쐐기풀 한 포기가
몸을 털고 일어선다

저 용기 저 기백을 보고
마음 고쳐먹는다 

                                       --------------------------------------------

역시 이 시도
마지막 연이 포인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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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2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단아하고 참 좋네요. 좋은 시 읽고 갑니다. 'ㅁ'/

hnine 2007-07-22 04:59   좋아요 0 | URL
twinpix님, '단아'하다고 표현해주셨군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근하는 손들

                                         주 선미

잠 덜 깬 버스 한 대가
잠 덜 깬 사람들 앞에
눈치도 없이 다가와 덜커덩 멈춘다
해와 교대할 시간만 기다리는
출근길 새벽달이 지쳐 보인다

사람들이 다투어 올라타고
다투어 자리를 찾은 손들이
동그란 수갑에 벌서듯 매달린다

돋은 핏줄이 손등마다 얽히고
이를 악물고 있는 손톱들은
새벽달처럼 새하얗게 질려
잠 덜 깬 몸들을 매달고 있다

매달린 몸 뒤틀려도
생활의 중심을 찾아
삶의 무게를 한 손에 쥐고 있는
땀 젖은 손이 저리다

------------------------------------

 쪽지에 적혀 수첩 표지 안쪽에 언제부터인가 끼워져 있는 시인데
어디서 보고 적어 놓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기분으로 베껴 적었을지는 짐작이 가지만...
오늘 아침에도 일터를 향해 나갈 사람들, 혹은 이미 향하고 있는 사람들.
생활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
뭔가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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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7-1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쏘는 듯한 느낌, 씁쓸한 느낌..
에휴 어렵다.

hnine 2007-07-13 17:52   좋아요 0 | URL
덜 깬 잠 기운 속에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기도 하겠지만, 저렇게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고...세상은 그런가봅니다.
 

내가 나의 감옥이다

                                          

                                                      유 안 진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 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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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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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7-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가는 시네요...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린 남의 눈을 걱정하며 살죠. 그래서 정작 중요한 나는 사라지고, 남의 눈이 내 눈인양 그렇게 속으며 사나봐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네요..좋은 시 고맙습니다 ^^

hnine 2007-07-09 21:08   좋아요 0 | URL
fallin님, 그걸 깨우치는데 저도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네요. 공감해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

                                                            

                                                                   유   안 진

어린이는
어른 아닌 어른의 아버지
하느님 나라의 입국 비자를 가진 완벽한 자격자
따라서 어른이 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는데
어른이야말로 어린이가 되어야 할
어린이의 아들인데도

힘만 센 어른들은 어린이의 완전함을 구기고 때묻히며
자유로운 어린이를 틀 속에 쑤셔박아 찌부러뜨리며,
어린이는 미성년자라고,
미성년라를 성년자로 키우는 일이 어른의 사명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며 들며
행복한 어린이를 불행한 어른으로 퇴행시키려 들며
어른의 아버지에게 어린이의 아들을 닮으라고 윽박지르는
교육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거꾸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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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집에 실린 시인데, 예전에 읽은 아래 책도 생각이 났다.

 

 

 

 

 

내가 과연 무슨 자격으로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인지,
화내고 야단치는 동안 내가 아이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반성, 또 반성
시인도 아마 그런 마음으로 쓴 시가 아닐까 하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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