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억척스럽게 비가 왔다. 일요일 오후. 언제나 그렇듯이 기분이 꾸리꾸리했다. 거기다 비까지 오다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일요일 저녁 8시 30분 부터 스르륵 잠이 오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눈이 감겼다. 눈을 떠보니 밤 10시였다.
와이프는 규진이 방에서 규진이 잠을 재우고 있었다. 문득문득 규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규진이도 날씨가 그래서 그런지 자꾸 보채는듯 하다. 눈을 뜬 김에 좀 일이나 하고 잘까 잠시 고민했다. 누워서...천장을 보며...그러나 이내 그냥 자기로 했다. 눈을 감았다. 제길, 잠이 오질 않는다. 제길... 가장 기분 나쁜 순간이다. 자기 싫을 때는 기어이 눈은 감기고 잘 수 있을때는 기어이 눈이 떠진다. 눈 뜬 장님처럼 거실에서 밍기적밍기적 거리고 있는데, 규진이 방에서 와이프가 나온다. 주방으로 가더니 달그락달그락 거린다. 설거지 하나보다. 아 눈 뜬 장님 모냥으로 있을바에야 설거지나 할껄? 살짝 후회한다.
노래나 듣자. mp3를 꺼내 말러 3번을 듣는다. 고클래식에서 다운 받은 Bruno Maderna의 1973년 앨범. 처음에 들을때는 상당히 거칠면서도 유려한 느낌이었는데, 기분이 그래서 그런가 누워서 들은 느낌은 '지루'했다. 심지어 그 좋은 마지막 6악장마저도...
지루하다. 지루하다,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다 새벽 새찬 빗소리와 규진이의 우는 소리에 잠깐 깼다. 베란다 밖을 내다 보니 비가 무지하게 오더라. 출근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살짝 잠이 오지 않기는 했지만, 귀찮은 듯 다시 눈을 감았다. 비는 역시 내리고 있었다. 자고 있는 와이프한테 애기해 차를 가지고 간다 애기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나가려하니 규진이가 깨 거실로 나왔다. 배가 고팠는지 나는 본체만체 하고 엄마따라 주방으로 간다. 말을 들어보니 '슝아슝아'한다. 복숭아 달라는 소리같다.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하면 시간이 짧아 아주 여유있는 반면, 책을 읽는 시간이 없어져 내심 아쉬운 마음이 크다. 난 버스가 좋다. 단, 버스에서 라디오 트는 기사분들은 정말 싫다. 정말...매번 기사분들에게 라디오 소리 줄여달라고 애기하는 것도 힘들다. 정말.
아침 7시 17분 학교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손을 씻는다. 물을 한잔 먹는다. 자리에 앉는다. 손에 로션을 바른다. 출근하면 매번 하는 짓이다. 특이한거라고는 손에 로션 바르는 것. 이상하게 사무실에 들어오면 손이 건조하다는 느낌이다. 찝찝한 기분도 들고. 기말고사 주관식 점수를 입력하고 1교시 2교시 수업을 연달아 한 후 컴퓨터를 조금한다. 그러다 화장실에 간다. 응가...ㅋㅋ 핸드폰을 꺼내 기사를 본다. 그 중 시사in 기사를 보게됐다. 김진숙씨의 <소금꽃나무> 특별판을 후마니타스에서 1500부 인쇄했다는 소식. 그것도 일반 정가의 절반 정도로 냈다는 소식.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후마니타스 좋은 출판사다.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7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이. 김진숙. 난 이 사람을 잘 모른다. 그저 <소금꽃나무>의 저자라는거. 과거 그의 노동운동 경험을 담아 쓴 책이 <소금꽃나무>라는거. '소금꽃'이라는게 노동자들의 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정도. 정말 하잘것 없는 것들 뿐이다. 어찌보면 이 정도도 많이 알고 있는 축에 속할지도.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리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은 187일째 크레인 위에 있다. 무엇을 위해서 그럴까... 하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어떤 추상적인 거시적 담론에 의해서든 이 사람의 정신을 표현해낼 수 없다는 걸. 특히나, 정치한다는 사람들의 언사로는. 얼마 전 김선우 작가와의 만난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희망버스' 애기를 처음 들었다. 그러나 난 그 버스에 타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거 같아, 내심 맘이 쓰리다.
오마이뉴스_ 권오성
화장실 일 보며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희망버스'. 아, 1500부 중 한권은 내가 사야겠다. 그래서 사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찾아 보았다. 역시 절판은 아니다. 어찌보면 1500부 정말 얼마 안되는 양인데... 비도 오고 기분도 꾸리해서. 주문하는 김에 찜해두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주문한다.
어떤 이들은 기분이 꿀꿀할때 쇼핑을 하거나 폭식을 한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난 좀 나은 편인가. 난 책과 음반을 사는거 같다. 다 평소에 내가 사고싶은 것들이다. 특히 Michael Tilson Thomas의 <Keeping Score - Mahler : Origins and Legacy>는 정말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던 물건이었다. 말러의 음악도 그렇지만 말러의 음악 이전 '말러'에 대해 알수 있는 영상자료이기 때문이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 눈치보며 틀어보았다. 2번째 DVD 먼저. 2009년 교향곡 1번 라이브 실황이다. 토마스 아저씨는 사진으로만 보았지 지휘하는 영상은 처음이었는데, 생김새와 다르게 지휘 동작은 좀 촌스럽다는 인상이다. 그렇지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음색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평소 TV 보는 걸 싫어하는 아내 성격상 살살 눈치보며 보고 있다가, 규진이와 아내와 밥을 먹으면서도 끄지 않고 보고 있는데, 아내가 "이건 누구꺼야"하고 물어본다. 아내의 이 질문은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이다. 아내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낸 부분은 바로 2악장이었다.
바람결님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매번 바람결님의 스케치가 눈에 들어온다. 부러울 따름이다. 나처럼 악필에 그림 못그리는 이들에게는 더군다나.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오늘 아침에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드로잉에 대한 입문서를 스크랩해 놓으셨길래, 어이야 잘됬다. 이거다. 한번 사서 보자 대뜸 주문했다. 이걸 애들 용어로 낚시에 걸렸다고 해야하나. ㅋㅋ
<옛그림 보면 옛생각 난다>도 다른 블로거(갑자기 기억이..)의 소개로 알게된 책이다. 제목만 봐도 딱 이 책이다 하는 'feel'이 오는 책이다. 그리고 이번에 구입한 책중 가장 기대되는 물건은 유성용씨의 <다방기행문>이다. 부제가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이란다. 왜 굳이 '세상 끝'이라고 했는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을듯 하다. 난 아주 이런 소소한 그러면서도 아주 '사적'인 내용들에서 흥미를 느낀다. 책 소개글 중 일부이다.
"전국 다방의 커피 맛은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저자는 그 맛을 되도록 이야기가 있는 어떤 맛으로 느껴보고자 했다. 이 책은 그 의도를 묵묵히 이행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여행기보다도 담담하게, 만나고 스치고 흘러간 것들에 대한 기억을 옮긴다. 그리하여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그대로인 것'들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음반으로는 Wyn Morris와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 기대된다. 어찌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유명지휘자(?)들의 음반과 음원만 들어도 시간이 모자를텐데도 계속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가시지 않는다. 윈 모리스라는 지휘자는 고클래식 사이트에서 알게되었는데, 아직 음반의 내지를 보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겠다. 특이한건 이 전집에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이 베리쿠퍼의 판본으로 있다는 것이다. 이 미완성 교향곡은 1988년 처음으로 나왔는데 이 음반이 최초라고 한다. 시간 날때마다 차근차근 들어봐야 겠다. 그리고 Arte Nova에서 나온 Dennis Russell Davies의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들은 어떻게 하다보니 몇개 구입하게 됐고(물론 가격이 저렴한 이유가 컸다) 그러다 보니 짝을 맞추고 싶은 생각에 하나씩하나씩 구입하고 있다. 그러다 이번에는 8번이다. 안그래도 요즘 브루크너 8번을 새롭게 듣고 있어서이다. 듣는 음반은 첼리비다케의 뮌헨필과 함께한 1993년 EMI 앨범이다. 라뮤지카 7월호에 보니 반트 옹의 신보에 대한 소개글이 있다. 이번 Altus에서 나온 음반은 1990년 11월 3일 도쿄 산토리홀 실황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 구입하기는 힘들듯하다. ㅠ.ㅠ 그런데 소개글을 보면 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첼리비다케의 1993년 EMI 음반을 듣다보면 좀 숨이 막힌다는 생각이 드는 나로서는 어쩌면 반트 옹의 음반이 내 취향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사 중 일부이다. "첼리비다케 실황의 무거운 흐름이 부담스러웠던 이들이라면 작품의 굴곡을 자연스레 넘나들면서 듣는 이를 연중에 몰입케 만드는 반트의 강한 흡인력에 보다 호감을 느낄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첼리비다케의 실황은 Altus 레이블에서 나온 1990년 10월 20일 뮌헨필과 함께한 산토리홀 실황 앨범을 가리킨다.)
찾다보니 카를로스 파이타의 브루크너 8번 앨범도 있다. 파이타의 스타일상 빠를거라 예상은 했지만 찾아보니 런닝타임이 장난 아니다. 74분이다. 반면, 첼리비다케의 런닝타임은 무려 97분이다. 무려 20분 넘게 차이가 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파이타의 앨범도 진짜 한번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