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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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과 CD를 구매하며 겸사겸사 같이 구매했다. 아주 귀여운 고무링 팔찌도 선물로 같이 들어있었다. 귀엽기는 하지만 거기에 새겨진 'INDIGNEZ-AOUS(앵디녜뷰)'란 메시지는 무겁다.  

솔직히 책의 내용은 너무 간단하다. 본문의 분량은 p.9-p.4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저자와의 인터뷰, 편집자 후기, 추천사(조국 교수의 글이다), 옮긴이 말이 차지하고 있다. 책의 핵심은 이렇다. 과거 전체주의와 나치즘에 맞서 분열히 일어났던 과거의(어찌보면 현재도 그렇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할아버지(?)께서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만능주의 시대에 대한 일갈이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젊은 것들은 고생을 안해봐서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라는 식의 무책임한 언행을 하는 어른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살아온 삶의 과정 자체가 다르니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런 어른이 없을까? 과거 일제치하에서 분열히 떨쳐 일어나 분노했던 독립투사들이 '스테판 에셀'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독립투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에 대해 이 국가는 너무나도 큰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생각해보니 우리의 20세기 역사는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운 사건이 많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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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거리에 침을 잘 밷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이 뭐라 하면, 그래도 난 화단이나 하수구 같은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침을 밷는다 항변했다. 또는 삼키기 싫은 내 입안의 이 물질을 어떻하냐 밷을 수 밖에 일일이 휴지 가지고 처리할 수도 없지 않느냐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침을 밷지 않는다. 갑자기 도덕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도 아니다. 바로 규진이 때문이다. 이제 두 돌이다. 요즘은 거의 말을 다 한다. 그리고 와이프의 영향때문인지, A,B,C 도 제법한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뭐 벌써부터 교육을 시킨게 아니라, 이 놈아가 언어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이불에 있는 알파벳을 보고 자꾸 뭐냐 물어보고 따라하더니 이제는 제법 혼자서도 A,B,C 한다. 

다 큰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법한 거리를 규진이는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지나가다 바닥에 낙엽이 있으면 줍는다. 그리고 처다보면서 뭐라뭐라 하며 웃는다. 움푹 파인 땅에 돌맹이가 모여 있으면 그 중에 가장 큰 돌맹이를 집는다. 또 강아지가 지나가면 '멍멍..'하고 강아지에게 웃음을 보인다. 땅에 떨어진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며, 손에 들어갈 물건이기도 하다.(심지어는 며칠전 놀이터네 갔다 땅바닥에 있는 뭔가를 줍길래 뭔가 봤더니, 지렁이였다. 죽은. ㅋㅋ)

이런 규진이를 보며 무심코 밷은 나의 침이 어떤 아이의 손에 묻을 수 있다 생각하니, 미안했다. 너무나도...침은 그냥 삼키면 될 듯 하다. 굳이 밷지 않아도...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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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진리인걸요.... ^^

햇빛눈물 2011-08-10 16: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좀 철이 늦게 드는 듯 합니다. 아직 멀었지만요...ㅋㅋ
 

강준만 그는 확실히 'OOO 메이커'다. OOO에 뭐가 들어갈지는 사람마다 다를 듯 하다. 확실한 건 뭔가 사회적 공론화, 문제제기는 확실하게 하고 있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들도 많이 가지고 있고 몇 권 읽어본 나로서는 사실, 그의 놀라운 '다작' 솜씨와 그 다양한 책의 주제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은 후 드는 생각은 '이론'이 보이기 보다, 그의 놀라운 자료 수집 능력과 다독, 끊임없는 열정, 사회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더 크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여튼, 올해 또 하나의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책 한권이 나왔다. 이름도 거시기한  <강남좌파>. 요즘 신간을 잘 체크하지 않아서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은 하나도 읽지 못했지만, 어제 한겨레 신문에 강남좌파와 관련된 흥미로운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난 '강남'에 살지는 않지만, 살짝 '강남좌파'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난 가짜인가? 

#. 현대 한국사회의 어찌보면 '뇌관'을 건드리는 문제작들을 모아봤다. <우충좌돌>만 김진석 교수의 책이고 나머지는 강준만 교수의 책들이다.

         

한겨레신문 2011.7.27  [논쟁] ‘강남좌파’,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최근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저서 <강남좌파>를 펴내면서 “모든 정치인들은 강남좌파”라고 주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강남좌파’라는 용어는 강 교수가 2006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은 이들”이라고 처음으로 정의해 공론화했다. 최근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려면 강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강남좌파는 진보의 외연을 넓히는 존재인지, 기득권의 위선에 불과한 것인지 다양한 분석과 견해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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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상징적 효과에 과도하게 의존     -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강남좌파는 이제 중도좌나
리버럴로 지칭되어야 한다
그 말이 했던 모든 역할은
의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강남좌파’, 이들은 생활은 보수와 비슷하게 하면서 진보적인 의식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이 균열은 여러 가지로 말썽거리였다. 우선, 그들은 정말 의식은 좌파인데 생활만 우파로 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다. 그들의 의식조차 벌써 전통적인 좌파와 다르다. 이들이 자본주의와 돈,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면, 강남좌파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의식과 존재의 불일치라는 관점으로는 그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은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약자를 돕는 일을 했다. 사실 1987년 중산층 시민들이 민주화의 주축으로 등장한 이후, 그들은 점점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진보의 상징적 가치가 높았던 민주화 과정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좋은 역할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그 말은 점점 말썽거리가 된다. 왜? 과거에는 진보적인 가치를 입에 담기만 해도, 그 제스처를 ‘좋게 사줄 수 있는’ 접점이 많았다. 그러나 점점 그 접점들은 사라졌다.

먼저 강남좌파는 우파와 좌파의 이분법에 의존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 이분법에 따르면, 보수가 아니면 거의 자동적으로 ‘진보’였다. 우파든 좌파든 이 전략에 기대왔다. 그러나 보수가 아니면 모두 ‘진보’라고 통칭하는 일은 진보 부풀리기 혹은 진보 인플레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강남좌파는 유럽식으로 말하면 중도좌에 가깝고 미국식으로 말하면 리버럴에 가깝다.(물론 거꾸로 중도는 저절로 강남좌파는 아니다. 중도 가운데는 자신을 진보라고 자처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래서 모호함과 오해를 피하려면, 강남좌파는 중도좌나 리버럴로 지칭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보’의 강한 상징적 효과 때문에 강남좌파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따라서 이제 그 말이 했던 모든 역할은 의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들은 진보의 상징적 가치와 기득권을 공짜로 혹은 이상하게 누리면서, 동시에 보수와 진보의 경직된 진영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치 정치가 보수와 진보의 단순한 지형 안에서 존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거기 그치지 않는다. 강남좌파는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중도·중도좌 혹은 리버럴의 층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게 한다. 물론 이 중도와 리버럴은 과거 좌파처럼 정치 영역에서 윤리적 진실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모호하고 복잡한 행동의 결이 인정되지 않는 한, 대중민주주의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중도나 강남좌파는, 내가 최근작 <우충좌돌>에서 설명했듯이, 상당히 모호하고 분열된 생활을 한다. 강남좌파를 자처하는 어떤 사람들은 이제 진보를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생활에서도 좌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강남좌파가 생활에서 좌파가 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열심히 지적·문화적·상징적인 자본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그저 나쁜 짓도 아니며, 쉽게 비난할 일도 아니다. 다만 사실은 사실대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니 ‘좋은 사람은 어쨌든 좌파’라는 상징성에 매달리지 말자. 그 대신에 문화적 자본과 경제적 자본을 확보하는 데 열성이면서도 일정하게 공정성을 추구하는 이 중도 혹은 리버럴의 ‘더러운 존재’를 정치적 실존의 차원에서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자기 자식은 외고나 좋은 대학에 보내면서 말로만 교육의 공공성을 외치는 좌파가 많다면, 강남좌파의 위선을 비판하는 보수의 목소리는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우렁찰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보수적 가치(정직과 국가 사랑 등)를 지키지도 못하는 우파가 강남좌파의 위선을 고발하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자신을 무조건 진보·좌파라고 자칭하는 강남좌파가 제 덫을 놓는 점도 있다.

강남좌파는 보수에게만 먹이가 되는 게 아니다. ‘자칭 정통 좌파’에게도 그렇다. 좌파도 아니면서 좌파를 내세우니까. 그러나 중도나 리버럴에 속하면서도 진보의 인플레를 조장하는 강남좌파적 전략도 좋지 않지만, 진보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려는 ‘순수’ 좌파적 관점도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전자는 진보를 부풀리고, 후자는 진보를 너무 좁힌다. 전자는 공짜로 막 먹으려 하고, 후자는 먹지도 못하면서 으르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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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감 주지만 진보 외연 확장에 기여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엘리트주의에 대한 성실한
자기비판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배려로
‘스타일의 정치’ 넘어서야

지난 학기에 전교생 교양과목으로 ‘진보와 보수’를 열었다. 300명이 넘게 신청한 이 강의에서 빈번히 토론된 주제 중 하나가 ‘강남좌파’다. 온라인 토론에서 한 학생은 “이념이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며, 강남좌파도 좌파의 주류가 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반면 다른 학생은 “요즘 ‘진보’가 세련되고 쿨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식으로 잘못 활용되는데 강남좌파가 그 전형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가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이라면, 다른 하나는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팽팽히 맞섰다는 점이다. 왜일까. 그것은 강남좌파가 우리 사회 뇌관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은 이른바 ‘빗장 도시’다.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동시에 소유한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강남’은 사회적 위세를 상징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기존 좌파의 이미지와 충돌한다.

보수든 진보든 강남좌파는 일종의 ‘불편함’을 안겨주는 개념이다. 보수에겐 자신의 배타적 소유물이라 생각했던 강남에서 좌파의 본격적 등장이 반가울 리 없고, 진보에겐 ‘강남’과 ‘좌파’라는 모순적 상징의 충돌이 결국 진보세력을 희화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 점에서 강남좌파는 서구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샴페인 사회주의자’, ‘캐비아 좌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칭찬이라기보다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강남좌파에 대해선 먼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강남좌파의 등장은 서구 사회 ‘여피 좌파’(yuppie left)의 출현에 대응한다. 여피 좌파는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등장한 진보적 성향의 고소득 사무직과 전문직 종사자들, 즉 ‘문화 좌파’ 또는 ‘골드칼라 좌파’를 지칭한다. 여피 좌파로 변신한 ‘68세대’는 1990년대 중도좌파의 정치적 기획인 ‘제3의 길’의 주요 지지그룹을 이루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좌파의 등장은 ‘486세대’의 분화를 보여준다. 고소득 사무직과 전문직이 된 일부 486세대는 앞선 산업화세대의 동일한 계층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대세론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서 이 계층이 젊은 시절 품었던 좌파적 가치를 다시 발견한 것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최근 복지국가 담론에 대한 486세대의 높은 지지는 바로 이를 증거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가치판단이다. 한편에서 강남좌파는 민주화를 주도한 노동자나 중간계급에게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낯섦과 이질감을 안겨준다. 더욱이 노동운동·시민운동에 헌신해온 이들에게 ‘낡은 좌파’라는 이미지를 부과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일부 지식인 강남좌파가 오피니언 리더로서 진보적 여론 형성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와 중산층 안에서 진보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강남좌파의 미래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강남좌파를 자임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강남좌파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이들은, 좌파적 가치를 지지한다면 ‘자기성찰적 이성’을 더욱 발휘해야 한다. 강남좌파란 말에 담긴 복합적 의미를 고려해 엘리트주의에 대한 성실한 자기비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배려의 태도가 요구된다. ‘스타일의 정치’를 넘어선, 진보세력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진정성의 정치’를 발휘해야 한다.

둘째, 강남좌파 담론의 등장이 우리 사회 경제·사회 변동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예상되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 강화되는 퇴출의 공포, 증가하는 노후생활의 불안 등은 이제 사무직은 물론 전문직까지도 시장과 성장보다는 국가와 분배의 역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를 특징짓는 이러한 변화는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성찰적 연대’를 요구한다. 강남좌파 담론이 단지 소비되는 게 아니라 생산적 논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ps : 김진석 교수의 글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자기 자식은 외고나 좋은 대학에 보내면서 말로만 교육의 공공성을 외치는 좌파가 많다면, 강남좌파의 위선을 비판하는 보수의 목소리는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우렁찰 것이다." 나는 이 말의 적확한 의미를 안다. 이런 사람들이 강남좌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학교에 많았다. 발령 첫 학교 전교조가 강성인 곳이었다. 사람을 챙겨주고 문제제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담임도 열심히 하시고 학교일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는 입에 발린듯한 애기들만 했다. 학생들에게 "학원 갈 필요없다." "입시 위주의 교육 문제니 너희들 하고 싶은 것들 찾아해라". 어찌보면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학생들에게 주장(?)하던 선생님들의 자식들은 외고, 과고 갔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명문대에 갔다. 물론 그 분들의 자제분이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좋아해서 부모가 애기 안해도 알아서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교조의 반대 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 때는 교직 경력이 짧아 주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딱 공격 당하기 쉬웠던 경우같다. 아마도 "의식과 존재의 불일치"가 심했던 이들이라 생각된다.  

물론, 자식이 나도 생기고 나니 이런 상황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다. '의식'은 있으나 '존재'가 따라가주지 않는 경우가 계속 생긴다.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자기성찰적 이성’을 잘 발휘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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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처럼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는 읽고 싶어지는 책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한겨레 신문의 사설을 보자마자, 강남좌파 주문해서 손안에 넣었답니다. ㅎㅎ

햇빛눈물 2011-08-10 16:59   좋아요 0 | URL
저도 조만간에 읽을 생각입니다. 지금 읽고 있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다 읽은 다음에요.
 
모자이크 세계지리 - 지도 따라 지구 한바퀴, 세계가 가까이 보인다
이우평 지음 / 현암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를 알아야할 학생들이 지리를 가르키는 교사들이 한번쯤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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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향이 내륙지역이어서 어렸을때 부터 생선을 별로 먹어본적도 없었고, 그나마 먹었던 '동태찌개'의 그 비릿한 맛 때문이었는지 생선하면 우선 '비릿'한 맛이 떠올랐다. 그나마 자반고등어와 갈치구이는 좋아했다.

그런데 최근에야 생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구이류. 내가 사는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정선네 생선구이'라는 생선구이 집이 있는데, 그 집에 다닌 이후로 생선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고갈비', '병어 구이', '도루묵' 등등 침이 당긴다.(한번 꼭 가보시길...) 

구이 뿐만 아니라 매운탕, 회 등 지금은 생선 요리 전부 좋아한다. 아, 그리고 최근에 참치회가 그렇게 맛나더라. 캬...정말 입안에서 씹는 맛이 예술이더라. 내가 예전에 먹었던 참치는 참치가 아니었다. ㅠ.ㅠ(멸종 위기에 있는 참치한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런데 '메로'란 생선 혹 들어봤나? 대부분 횟집에서 먹어 보았을 것이다. 회 정식을 먹다보면 메로구이를 주는 집이 있다. 정말 맛있다. 약간 삼치 구이 비슷한 형태와 맛이 나는 것 같긴 하지만 삼치는 왠지 매케한 냄새 집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푸지게 먹어야 제대로 먹는 반면 횟집에서 먹는 메로구이는 그 달콤한 양념맛도 있지만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아주 좋다. 그런데 정작 '메로'가 어떤 생선인지는 몰랐다. 궁금해하지도...

오늘 환경운동연합에서 매달 보내주는 월간지(7월호)를 보다보니 '남극 로스해를 지켜라'라는 꼭지의 기사가 보였다. 읽다보니 남극의 로스해가 지구상에 남아있는 바다 가운데 가장 오염이 안 된 곳이며,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지역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연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남극보호연합 소속 활동가 랍 니콜이라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로스해가 위협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상업조업 때문이란다. 특히, 남극 이빨고기(일명 메로)의 인기가 아주 좋아 무분별하게 남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빨고기는 먹이사슬에서 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이빨고기를 남획하게 되면 먹이 사슬이 깨지면서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내가 먹었던 메로가 '이빨고기'였구나. 남극에서 온 놈이었다니.." 놀라웠다.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생선이 남극에서만 잡히는 놈이었다 생각하니. 이런 생각을 하다 '메로'가 궁금해 검색을 좀 해보니 이런 기사가 나온다.  

"한국 어선 ‘메로’ 남획 국제 망신… 국제기구에 4년연속 적발" 기사 내용이다.

한국 원양어선이 세계적 보호종인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일명 메로·사진)를 남획하고 있다. 마구잡이 어획으로 국제 기구에 4년 연속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계속된 경고에도 올해 다시 제한 어획량을 3배 이상 초과해 어획 쿼터 축소 등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관할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위반 사실을 보고받고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국제 망신을 자초했다.    

19일 농식품부,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남극보호연합에 따르면 인성실업 소속 인성7호는 지난 2월 남극해의 한 해구에서 메로 135t을 낚았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이 정한 이 구역의 제한 어획량(40t)을 3.37배나 넘은 수치다.

인성7호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에 남획으로 적발됐다.

메로는 수심 1500m 남극 수역에만 서식한다. ㎏당 2만5000원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어종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부터 남극해 조업에 뛰어들었다. 멸종을 우려한 국제사회는 보존위원회를 중심으로 남극 수역에서 과학 조사를 목적으로 하는 시험 조업만 허용하고 있다.

보존위원회는 해구 별로 잡을 수 있는 총 어획량과 국가별 어선 수를 정하고 있다. 메로 개체수를 확인하기 위해 100마리를 낚을 때마다 의무적으로 3마리에 꼬리표를 달아 풀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어선들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표지 부착방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각 어선에는 보존위원회 소속 감시원이 함께 타는데 한국 어선들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작은 고기에만 꼬리표를 달아 방류했다. 시험 조업의 전제조건조차 지키지 않은 사실상의 상업조업 행위인 셈이다.

또 한국 어선들은 2009년에는 박스 포장용 플라스틱 밴드를 사용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 밴드는 해양오염 우려 탓에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심각한 규정 위반이 반복되자 보존위원회 회원국들은 한국 정부에 불만을 제기했다. 농식품부와 외교통상부는 “선원들이 복잡한 규정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단순실수”라며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다. 정부는 지적사항이 제기될 때마다 철저한 교육과 의무 이행을 약속했지만 위반은 되풀이됐다.

비난 여론이 높자 우리 정부는 올해 보존위원회가 주최하는 남극 생태계 모니터링 작업반 회의를 주최하겠다고 제안했다. 현재 회의는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하지만 회의가 열리는 와중에 다시 위반사항이 보고되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원양산업발전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해당 어선의 어업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쿠키뉴스. 2011.7.19)

창피할 따름이다. 먹는것도 쉽지만은 않다.


ps : 로스해의 위치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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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연합지 받고 계시는군요, 저도 다달이 받는 중인데.
그런데 7월호 아직 못 읽었나봐요, 메로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없는걸 보니.

메로는 정말 맛있어요. 메로탕은 진정 환상이죠, 파는데도 별로 없지만.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남획되는 녀석이었군요. 에구. 에구. 정말 에구구.

햇빛눈물 2011-08-10 16:55   좋아요 0 | URL
그런데 메로구이 정말 맛있죠!! 앞으로 이 놈 먹을때마다 생각나서 어떻하나 고민이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