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는 파스칼의 철학적 사유를 다룬 책인 줄 알았다. 책을 받아들고 보았더니 기독교 고전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은, 신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불신자를 위한 책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아울러 신에 대한 믿음과는 상관없는 삶의 방향, 불신자들에 대한 깊은 염려를 다룬 철학적 사유에 가까운 책이었다.

 


팡세 전문가인 김화영 교수의 정확한 번역으로 천여 편의 단상들로 구성되어 신을 믿는 자들이 바라보는 불신자들에 대한 시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불신자들이 불행하다 여긴 적이 없건만 파스칼의 눈으로 보는 불신자들은 충분히 불행하다는 것은 의외였다. 믿지 않은 내가 불행했던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신자들이 바라보기에 불신자들은 믿음의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불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을 더 가엾게 여긴다는 점이 독특했다. 무신론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가차 없는 공격을 가하라고까지 말했다. 파스칼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했던 책이라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직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자기 인생 문제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71페이지, 72-106/66-120)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표현하는 묶음15. 이행편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게끔 이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문장을 살펴보자. 아마 팡세나 파스칼은 알지 못해도 이 문장만은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이 갈대를 꺾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움큼의 물안개, 한 방울의 물로도 충분히 그것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갈대를 꺾는다고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우주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거기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196~197페이지, 200-231,232/347-391)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주 안의 우리는 한낱 미물일 뿐이다. 지구에 터를 잡고 사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라 여기지만 자연 앞에 무너지고 만다. 며칠째 내리는 집중호우로 일가족이 사망하여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인재에 가까워 보여도 어쩌면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그저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원한 허무 속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진노한 하나님 손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뿐이지만, 둘 중의 어느 것이 영원한 내 몫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나약함과 불확실로 가득 찬 것이 내 상태이다. 이 모든 사실로부터 내가 내리는 결론은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생각할 필요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진지한 회의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수고를 하기도 싫고 답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370~371페이지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신을 찾게 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신을 찾게 되는데 나 또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못하겠다. 간절하게 구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팡세-분류된 단장 편에서 긴 편에 속하는 <신을 찾도록 권고하는 편지>에서는 우리의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올 감정들을 다룬다.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보려고 하지 않는 거로 무지를 고집하며 불행으로 뛰어드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파스칼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한 정신의 차이의 명쾌한 논리는 우리의 믿음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다. 기하학이 신과 연결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기하학자가 좋은 눈을 지니게 된다면 섬세하게 될 거라는 것조차 의문스럽지만, 기하학자로서 보는 섬세함의 논리는 이처럼 판단과 지성으로 맞닿아 있다.


 

파스칼 연구자인 김화영 교수의 명확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만나게 된 팡세를 드디어 읽었다는 뿌듯함이 든다. 불신자를 위한 기독교 명작 고전 임에도 파스칼의 생각과 철학을 알 수 있어 기쁨이 크다. ‘철학을 경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철학하는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깊이 사고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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