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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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덫에 갇힌 사람은 기억 속 장소로 가길 꺼린다. 과거의 기억과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일부러 마음속에 봉인해두었던 진실의 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고 해도 전혀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는 문이 열릴 수밖에 없다. 자의든 타의든 열리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의 아우터 헤브리디스 제도 최북단에 위치한 루이스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한 형사의 이야기다. 본토와 떨어져 있는 섬이라는 곳에서는 고립의 냄새가 풍긴다. 그들만의 종교와 인식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섬에 안주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외부의 도시로 나가 다시는 섬에 발붙이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과거의 기억 속 섬을 그대로 과거로 남겨두고 싶지만 핀 매클라우드에게는 다시 현실이 되었다.


 


 

 

다섯 살 난 아들을 사고로 잃은 핀은 4주간의 휴가 끝에 경찰서로 불려갔다. 루이스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가 수사하고 있던 살인 사건의 유사성에 거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핑계가 필요했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내와의 불화에서 조금쯤은 거리를 둘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현재 상황과 과거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핀 매클라우드가 화자로 나서 과거를 떠올린다. 루이스섬은 친구 아슈타르와 줄곧 핀을 사랑해왔던 마샬리를 빼놓고 상상할 수 없다. 섬에서는 바닷새 구가를 먹는 전통이 있었다. 섬의 남자들은 안 스커에 가서 2주 동안 머물며 구가를 잡았다. 2주 동안 섬에서 벌어지는 일은 섬에서만 머물 뿐 바깥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됐다. 핀의 과거로 들어가며 핀과 마샬리, 핀과 아슈타르, 아슈타르와 마샬리의 관계는 이 소설의 중요한 쟁점이다. 섬에 다녀와야만 성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18년 전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것이 관건이었다.


 

문화의 차이는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외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우리나라의 개 식용 습관에 대하여 비난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습관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용해왔던 것 같다. 일명 보신탕집으로 불렸던 식당들이 꽤 많았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도 구가를 먹는 이유로 동물보호단체의 반대 시위가 있었고 시위자의 폭행 사건도 발생했었다.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쫄깃한 구가의 맛을 포기할 수 없었겠지만, 과거부터 이어오던 전통과 바닷새 보호 중 어떤 게 중요한 것인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섬의 특수성 때문에 이 소설이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다. 스릴러 소설 임에도 아름다웠던 이유는 루이스섬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가를 잡으러 배를 타고 떠나는 남자들, 2주간의 적당한 크기의 구가를 잡는 일,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섬에서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남자들을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프로테스탄트 적인 종교의 신념과 과거의 유산에 젖어 아내와 딸, 아들에게 고압적인 전근대적인 산물 또한 섬의 고유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이 필요한 법이다. 과거의 유산에 갇혀 지내서는 안된다. 그토록 잊고자 해도 다시 그 장소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잊을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천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주해야 한다.

 


블랙하우스로 시작해 루이스맨, 체스맨으로 이어지는 루이스섬 3부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루이스섬의 풍경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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