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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평점 :
한 소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꽂히는 문장들이 있다. 매번 읽어도 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마도 그건 개인의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 (244페이지)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427페이지)

이런 감정은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장을 꼽아보면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렇듯 20년째 사랑받고 있는 소설이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읽었던 사람들은 새로 발간된 책을 구매하고 오래전에 느꼈던 감정을 복기한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새롭게 느끼기도 하고, 매번 같은 부분에서 울컥하고 또 감동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릇 이런 거, 라는 감정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공진솔과 이건의 사랑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느낌. 우리는 변해도 진솔과 건은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을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게 아스라이 떠오른다. 지금은 휴대폰 어플로 라디오를 듣지만,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서함이란 게 있었다. 사서함 몇 호, 라는 말만 들어도 이 소설을 떠올렸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과 멘트에 귀 기울였던 느낌들. 지금이야 신청곡을 보내기보다 그저 누군가가 신청한 노래들을 조용히 혹은 함께 음악을 듣는 사람과 가까이에 있는 듯한 감정을 공유한다. 라디오의 특성이 혼자 듣지만 혼자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라디오 피디와 구성 작가와의 사랑은 이렇듯 설렘을 주었다. 매일 함께 부대끼며 음악 선곡 작업과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면 저절로 가까워질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업무만큼의 고충은 따르기 마련이지만 꽤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공진솔과 이건 피디의 관계에 더 집중했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애리와 선우의 관계도 보였다. 관계의 확장, 시선의 확장이었다. 힘든 사랑을 하는 애리에게 건 피디의 존재는 이건과 진솔, 애리와 선우의 관계 변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사랑의 실체를 깨닫기 위해서는 때로 과격한 상황이 있어야 했다.

짝사랑에 대하여 진솔처럼 빠른 결정을 해야 하는데 나의 과거는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 혹시나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다리는 기간이 길었다.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봐야 하는 쓸쓸한 사랑에 마음이 아팠다. 건과 진솔, 애리는 다른 사람의 등을 바라봐야 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쓸쓸하고 울고 싶은지 경험한 사람만 알 일이다.
이도우 작가의 글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가만가만히, 속삭이듯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마음을 홀리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임에도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한다. 내 쓸쓸했던 연애를 떠올리고는 진솔과 이건의 사랑에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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