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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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도 그렇고, 영혼의 친구와의 이별도 그렇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가족과의 이별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삶인것 같다. 누구와의 이별이 가장 가슴아플까. 가족? 연인? 친구? 이별의 고통의 경중을 말하기도 힘들것 같다. 지금 현재의 이별이 가장 아플것이므로.  

 

  오늘의 젊은 작가상 여섯번째 작품 『끝의 시작』은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또한 이별 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글이기도 하다. 

 

  한 남자, 영무는 병원 침대위에 모로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폐암 말기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다. 병원에서는 늘 환자들의 칙칙한 냄새가 난다. 죽음의 냄새를 피워 올리기도 한다. 영무는 엄마와 단둘이 살아왔다. 어렸을때 자살한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았던 트라우마로 결혼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의 자살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이 그를 늘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엄마의 폐암 판정과 함께 아내의 이혼 요구를 들은 것이.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온다던가. 영무의 상황이 그랬다.

 

  영무의 아내 여진은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했다. 시어머니의 암 판정 소식을 들은것과 거의 동시에. 아이를 유산하고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미용실을 하게 되면서 여진은 남편 영무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여진이 만나는 띠동갑 차이나는 어린 석현과의 만남에 한가닥 즐거움이 일었다. 말이 없는 남편. 아이를 잃은후에 당연한 수순처럼 각방을 쓰게되었을때 남편에 대한 마음이 점점 식었다.

 

  우편취급소에서 국장으로 있는 영무와 함께 3개월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정이 있다. 소정은 집에서 늘 쿰쿰한 냄새를 피우던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가 잃은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가장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컸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일하던 곳에 3개월을 근무하고 이곳 우편취급소로 오게 되었다. 소정에게는 남자친구 진수가 있다. 진수의 바램으로 진수의 부모를 만난후, 군대에 있다가 복학한 진수는 점점 바빠했다. 공부때문에 바쁘고 취업을 준비해야하는 과정의 바쁨을 이야기했다.

 

 

문밖의 노크 소리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충만하게 즐기는 것,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사랑 없이 건조하고 퍽퍽하게 사는 것보다 뜨겁고 충만하게 사는 것, 그게 지금 여진이 바라는 삶의 방식이었다.  (89페이지)

 

  창밖으로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찬란함이 있었다. 영무가 병원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도 어느새 4월이었음을 알려주었고, 벚꽃이 지기전에 진수와 함께 벚꽃길을 걸어보고 싶은 소정에게도 안타까운 4월이었으며, 석현과 함께 도시락 바구니를 챙겨 벚꽃을 구경하기로 했던 여진에게도 찬란한 4월의 봄이었다. 가장 찬란한 봄을 말해주는 4월에 이들은 모두 이별을 앞두고 있었다. 

 

  4월의 봄을 좋아한다. 빛나는 4월엔 벚꽃잎들이 흩날려서이다.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계절에 누군가는 이혼 통보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하고,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야 하고, 바쁜 이를 뒤로한 채 아름다운 벚꽃길에 혼자 서 있어야 했다.

 

그는 외로움 속에서 늘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막상 다른 사람과 함께 있게 되면 어색해하며 혼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 안도하며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에는 다시 누군가 다가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게 모순으로 점철된 인생 패턴이었다. (105페이지)

 

  짧은 소설이다. 짧은 소설임에도 소설속에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커다랗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날 수 있는, 어쩌면 거부하고 싶은 이별들이 나타났다. 부모의 죽음, 배우자의 이혼통보, 연인과의 결별. 부모의 죽음같은 경우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기 때문에 사실 두렵다. 그 두려운 마음때문에 영무가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에 그저 안쓰러웠다. 나에게도 영무처럼 우리 엄마나 아빠를 바라볼 날이 있겠구나. 피할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이별이었다. 이별을 거친후 이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상처를 거친후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것처럼, 이들의 상처도 곧 아물어 질 것이다. 4월이 끝나고 5월이 시작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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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2-0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책 받았어요. 이 시리즈 모으고 있다는^^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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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4월의 세월호. 수많은 아까운 청춘들을 바다에서 잃어버렸던 때.

그 때의 뉴스는 수학여행가는 많은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가 바닷물에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 300여명을 거의 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다행이다. 다행히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구나 안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뒤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님을 밝혔고,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배 안에 있다는 거였다. 한시가 급한데 구조작업 더디었고, 마음은 답답해져왔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아이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조금은 알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도 그럴 수 있었기에, 더더욱 빨리 아이들을 구조해주기를 바랬다.

 

 

  하루가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서도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물론 진도앞바다의 물살이 센곳이라 구조작업을 하던 이들도 쉽지 않음을 조금쯤은 이해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까운 목숨들이 저 바다 차가운 곳에 있는데, 그들을 얼른 구할수 없음에 안타깝기만 했다. TV속에서 뉴스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파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고 이제 뉴스속에서만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들을 간간이 접했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을 울게 만들었던 사건도 시간이 지나니 잊혀지는 듯 했다. 점점 무심해지고 있을 무렵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시 읽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작년 4월의 그 시간속으로 이끌었다. 이 글을 쓴 열두 명의 작가도 나의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간절한 마음으로 세월호에 탔던 이들에 대한 생환을 기원했기에 그 아픔이 더욱 컸을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57페이지, 박민규편)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65페이지, 박민규편)

 

 

라고 했던 박민규 작가의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것처럼 말해놓고 몇 달 지나지도 않아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이렇게 아프고 미안한테, 아이들의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열두 명의 작가가 쓴 세월호에 대한 질문들을 읽으며 가장 명징하게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았던 이는 박민규 작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그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한다.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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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2-0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세월호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금요일엔 돌아오렴` `기억의 방법` 이 두권을 구입했습니다....

마음이 슬픈게 아니고 통증이 느껴지네요....
 
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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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쯤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 춤』을 읽으며 오늘의 강남이 어떤 식으로 되어졌는지 과정을 알게 되었다. 복부인들과 정계, 재계가 얽혀 부동산 투기를 하며 선거자금과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의 사람인 우리에게는 너무도 먼 수치의 돈. 이런 돈을 만들기 위해 한판을 벌인 이야기를 읽으며 왠지 씁쓸함을 감출수 없었다.

 

  또 한 편의 강남 이야기를 읽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강남 1970」의 원작. 로맨틱 드라마에서 재벌남으로 주로 출연했던 배우 이민호의 처음 액션 영화 출연작이며, 선 굵은 외모와 푸근함을 주었던 배우 김래원이 주연한 영화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를 잇는 거리 3부작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 감독이다. 유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남성성을 내세운 연기를 했고, 모두 흥행에도 성공했다. 남성적인 미가 물씬나는 영화, 폭력이 난무할 것 같아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이기도 했다.

 

  개봉한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영화와 소설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읽은 소설 『강남 1970』은 영화와 거의 비슷하게 쓰여있을거라 생각됐다. 소설을 따라가다보니 영화의 화면이 그대로 그려졌던 것이다.

 

  '내 땅 한번 원없이 만들어 볼것이다' 라고 얘기한 겁없는 청춘 김종대와 '군바리와 건달들은 줄을 잘 서야한다'라고 말하는 백용기가 이 책의 주요 인물이다. 김종대에게는 친여동생같은 선혜가 있고, 종대를 아들처럼 여기는 강길수가 있다. 종대와 용기는 고아원에서 만난 사이로 넝마주이로 거리에서 머물다가 논두렁 건달인 강길수의 수하로 들어가고, 작업 중에 종대는 용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서로 다른 파의 수하로 들어가게 된 이들은 각자의 길로 들어선다. 땅값을 한 번 튀겨보자는 정치인들과 건달들이 합세하여 한 판을 펼치는데, 이곳은 각종 비리와 거짓, 배신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그다지 관심없었던 영화였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는 영화보다는 정적인 영화가 더 좋아 피하고 싶었던 까닭에 보고싶지 않은 영화였는데, 소설로 읽고나니 왠지 영화가 더 궁금해졌다. 다른 영화 상영시간표만 들여다봤는데, 이 책을 다 읽고 이 영화 시간표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뒷편에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 그 궁금증이 더했다.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유하감독과 배우 이민호, 김래원, 정진영의 인터뷰였다. 영화에 대해 임했던 배우들의 심정들, 유하 감독과 영화를 함께하는 것에 대한 감정들을 말했다. 책을 덮고 나는 그들의 인터뷰가 궁금해 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동영상으로 나온 예고편과 메이킹 영상, 인터뷰 영상을 대여섯개쯤 클릭해서 살펴보았다. 싸우는 장면이 좀 잔인해도 이 배우들을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내들의 짙은 땀내음이 기대된다고 할까.

 

 

 

 

  건달들의 생활이란게 좋을 때는 형님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들의 목숨을 끊는 일도 불사하는것 같다. 고아원에서부터 형제처럼 자랐지만, 서로 다른 편에서 있다보면 서로 바라보는 게 달라질수도 있는 일이다. 폭력으로 얻으려 했던 일들도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가, 정직하게 얻어야 오래갈수 있다는 것. 또한 지지 않아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밑바닥에서 저 위 하늘이 닿는 곳까지 가려했으나 결국에는 허무함 만이 남게 되었다. 감독은 그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탕을 하려했으나 결국에는 모두 비열한 자들이 되었다. 비열한 거리에서 물거품처럼 희망이 가라앉았다. 이게 현실일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강남은 그저 그들의 갈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지지 못하는 자의 갈망, 갖고 싶은 자의 강한 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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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꽃들 돌런갱어 시리즈 1
V. C. 앤드루스 지음, 문은실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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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군가에게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고 해야 할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고, 제목과 V. C. 앤드루스라는 이름도 익숙하다. 분명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읽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기에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책 표지도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돌런갱어 가문 이야기 5부작의 국내 첫 완역본이라는 문장도 눈에 띄어서였다. 책의 표지를 보자면 아찔한 느낌을 준다. 다섯 권의 책 모두가 한 소녀의 다리를 부각시켰다. 꽃잎이 소녀의 다리를 감싸고 있는 듯하고 왠지 금지된 감정을 가진듯, 아찔한 감정을 갖게 한다. 이것은 표지에서부터 책의 내용을 알려주는듯 하다. 금지된 사랑, 비밀의 문, 숨겨진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것 같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끌릴 수 밖에 없는 것. 혼자서라도 보고싶은 것. 호기심을 충족하고픈 욕망에 들뜨는 지도 모르겠다. V. C. 앤드루스의 『다락방의 꽃들』의 꽃들이 그랬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가족들. 어느 날 아빠가 사고로 죽자 엄마는 오빠와 캐시, 어린 쌍둥이들을 데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이끈다. 외조부모님 댁으로 가기 전 엄마는 약간의 비밀을 알려준다. 열여덟 살에 엄마가 큰 잘못을 했고, 외할아버지는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을만큼 큰 부자라는 것. 또한 엄마의 잘못때문에 외할아버지의 많은 유산 상속자에게 제외되었다는 것. 이번에 외할아버지에게 잘못을 빌면 다시 상속자에 이름을 넣어줄 수도 있다는 것. 외할머니가 말한대로 다락방에 하루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것.

 

  엄마는 유산 상속을 받을때까지만 고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받기만 하면 엄마에게 네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아이들은 넓은 집에서 마음껏 누리고 살수 있다며 버텨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하룻밤이 며칠이 되고, 며칠이 몇주, 몇달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엄마는 아이들이 보고싶었다며 매일 저녁 나타나다가, 며칠 만에 값비싼 선물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고 어느 때는 몇 주를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가 입고 온 값비싼 드레스, 값비싼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한다. 

 

  그때 오빠 크리스는 열네 살, 캐시는 열두 살, 쌍둥이 코리와 캐리는 겨우 네 살의 나이였다. 네 아이들은 햇볕을 보지도 못하고, 한여름에도 창문이며 커텐을 열수도 없었고, 잠겨진 다락방에서 엄마를, 아침마다 음식 바구니를 가지고 오는 마녀같은 할머니를 기다려야 했다. 그들의 놀이터는 먼지가 잔뜩 낀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책도 읽고, 쌍둥이들에게 공부도 시키고, 그 모든 놀이를 해야 했다.  

  

 

 

 

  아이들은 햇볕을 보고 자라야 한다. 햇볕을 받아야 피부도 건강해지고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것이다. 자연속에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을 엄마는 자신의 돈을 위해 아이들을 다락방에 가두어놓았다. 그곳은 햇볕도 없었고, 꽃도 없었고, 무엇보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 엄마가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는 걸 기다리고 있지만, 그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쌍둥이 아이들이 혈색도 없이 파리하기 말라가고 있을동안 엄마의 외모는 더 빛이 났다.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돈이지." 라고 말한 엄마의 말.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방으로 가지고 온 값비싼 드레스나 장난감들을 사지 않고 모아두면 자신들과 함께 살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텐데. 하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글쎄, 돈 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랑이 아닐까. 엄마가 했던 잘못이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고, 아이들이 그 죄를 뒤집어 쓸 필요는 없는 것. 아이 넷을 다락방에 버려두고 어쩜 그렇게 자신의 삶을 위해, 돈을 위해, 사랑을 위할 수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거짓 맹세만 할 뿐 자신의 행복이나 즐거움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 거짓말, 거짓말만 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다락방 조그만 곳에서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것도 몰랐던 것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본다. 내가 캐시의 엄마라면 이렇게 했을까. 의지가 약했던 엄마, 돈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엄마, 누리고 살아왔기에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던 것일까.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빠였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릴수가 있었을까. 아빠와의 사랑의 결실로 맺어진 네 아이들을 어쩌면 그렇게 다락방에서 시들게 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엄마에게는 자신보다 아이들이 첫째인 법인데, 엄마 코린에게는 돈 앞에서는 자식들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걸리적거리는 존재. 없었으면 더 좋았을까?

 

  수많은 의문부호를 안게 되었다. 캐시가 말하는 엄마, 오빠, 쌍둥이 아이들에게 엄마나 다름없었던 캐시. 다락방에서도 이들은 꿈을 키웠고 저 먼 세상으로 나가고자 했다. 어떠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길은 있는 법. 그 길을 찾아 떠나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가족의 비밀은 또 어떤 식으로 진실을 향해 갈까. 아이들의 미래는 또 어떻게 될까. 바로 다음 권을 읽고 싶지만, 숨을 고르자는 의미로 며칠을 기다려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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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허밍버드 클래식 4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서령 옮김 / 허밍버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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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때 TV에서 해주는 만화로 만났던 소녀, 빨강 머리 앤. 이름을 말할 때는 늘 앤Ann에서 e가 하나 더 붙은 앤이라고 말했던 소녀. 자기 이름이 앤 말고 코델리아 였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던 소녀. 시냇물, 풀 한 포기, 나무 하나에도 이름을 붙여줘 이름을 부르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상상의 나래를 폈던 소녀, 빨강 머리를 가진 앤을 다시 만났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 속의 앤과 몇 년 전에 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나왔던 『빨강 머리 앤』과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를 읽었던 그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빨강 머리 앤』은 나에게 어린 시절의 한 공간을 자리한다. 마음속의 그 시간들은 어른이 된 지금에도 오랜 시간 남아있을 정도로 애틋한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만난 앤. 내가 품고 있었던 그 모습으로 다시 내게로 왔다. 여전히 머리는 빨강인채,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에게 혹은 단 하나의 영혼의 친구 다이애나에게. 여전히 재잘재잘거리고 상상속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길 즐겼던 소녀 그대로였다.

 

  최근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고, 어렸을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사 모으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우리 마음속의 동화를 여전히 믿고 싶은 어른들의 또다른 꿈이었을 것이다. 동화는. 내게 『빨강 머리 앤』이 그렇고, 『캔디캔디』가 그렇고, 공주가 나오는 모든 동화들이 그렇듯이. 인디고에서도 예쁜 일러스트로 만들어진 동화가 출간되고 있는데, 허밍버드에서는 약간 더 고급스럽게, 어른용으로 나온 동화책이었다. 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가 직접 번역하여 소설적 매끄러움을 더 했다.

 

  소설은 때로는 전혀 모르는 내용을 보고 싶고, 다시 읽자고 마음먹어도 늘 다른 소설에 밀리기도 하는 터. 여러번 자주 읽는 소설은 사실 몇 편 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라면 판형대로 구입하고 읽기를 주저하지 않을것이다. 몇 번을 읽어도 다 아는 내용이어도 책을 읽을때면 늘 설레며, 이번에는 아니겠지 하지만 늘 그 부분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마는 그런 책이 있다. 앤이 마릴라에게 어렸을 적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할때 였고, 매슈 아저씨의 죽음을 대했을때, 마릴라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초록지붕 집을 팔아야겠다고 했을 때였다.

 

저기가 집이라는 걸 알고 돌아가는 건 참 행복한 일 같아요. 전 초록지붕집이 벌써 좋아요. 그 전엔 한 번도 어딘가를 좋아해 본 적 없는데. 집이라고 느껴진 곳이 없었거든요. 아, 마릴라, 진짜 행복해요. 당장이라도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135페이지)

 

 

 

 

별일이죠. 저 애가 온 지 이제 겨우 3주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같이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앤 없는 이 집이 상상이 안 가요. (155페이지)

 

마릴라! 전 하나도 안 변했어요. 진짜로요. 잔가지를 쳐내고 새가지를 뻗어 올리는 것뿐인걸요. 여기 초록지붕집에 있는 진짜 앤은 언제나 똑같아요. 어딜 가든, 겉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달라질 건 없어요. 제 마음속엔 언제나 마릴라의 꼬마 앤이 있는걸요. 평생 매슈랑 마릴라, 그리고 초록지붕집을 매일매일 더 사랑하는 앤 말예요.  (444페이지)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앤이 사랑스러웠다.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김서령은 책을 번역하다보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앤을 키워야 했던 마릴라 아주머니가 더 눈에 들어왔다고 했는데, 그 부분의 문장을 읽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앤이 좋았다. 앤에게 애정을 쏟는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가 좋았고, 마릴라와 앤의 사정을 알고 에이번리 학교를 양보해준 길버트도 좋았다.  

 

  나이를 먹어 만난 동화는 어렸을 적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었다. 오히려 어렸을 때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앤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어렸을 적 우리가 가졌던 소녀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준 시간이었다. TV 만화속의 주근깨 소녀 빨강 머리 앤이 아직도 머릿속에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앤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의 목소리마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재잘재잘거렸던 앤의 목소리가 언어가 되어, 문장이 되어 다시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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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2015-01-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지금 다시 읽고 있어요. 꼬마 친구 한명이랑 같이 읽어요. 초등 3학년이라 완역본이 좀 힘들까 싶었는데 재미있어 하네요. 전 인디고판으로 읽는데 일러스트가 마음에 덜 들어요. 너무 예쁘기만라고 사실 꼼꼼이 읽지 않고 그린 티가 나요 ㅎ. 허밍버드 클래식 기억해 둬야 겠어요.

Breeze 2015-01-27 13:05   좋아요 0 | URL
저도 인디고판 가지고 있는데 인디고판보다 훨씬 좋네요. 허밍버드 클래식을 어린왕자도 가지고 있는데 기대하고 있어요. ^^

말리 2015-01-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버트가 나오는 장면엔 가슴이 아직도 ㅎㅎ. 이 나이에도.. 여전히 재미있어 저도 놀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