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간 오늘의 젊은 작가 5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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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 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은 뭐였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많이 읽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 하나의 뮤지션을 몇년씩 좋아하기 보다는 아마 몇 개월씩 주구장창 그 뮤지션의 음악만 들었으니.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음악을 주구장창 들었을때, 당시 한방을 쓰던 여동생으로부터 '제발, 이제 그만 좀 듣자'고 할 정도로 오랜시간 듣기도 했었지. 또 누가 있었더라. 그때는 시디가 없었고 LP시대라 LP를 꽤 모았었다. 테이프로 녹음해 듣다가 뮤지션의 음반을 사기 위해 시내를 온통 돌아다니기도 했었던 때. 문득 이 글을 쓰는데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속에서 우나가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때문에 뉴욕을 그렸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제니 준 스미스. 다. 그 다음이, 1954년에 태어남. 이고. 이 책은 제니 준 스미스로 시작해 재발매된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을 들으며 끝난다. 소설 속에 자리한 제니 준 스미스란 인물이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 우나의 아버지가 들었던 곡을 우나가 들었고, 우나의 친구인 '내'가 들고 있었으니. 이 책은 우나의 이야기이고, 제니 준 스미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뭘 참 못했던 우나. 우나와 나, 배정, 우나의 동생 우미. 이들 넷은 늘 함께 움직이며, 우나의 집 근처를 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이들. 그나마 '나'와 배정은 학원을 다녔지만, 우나와 우미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우나의 방을 상상한다. '내'가 바라보았던 우나. 늘 집에서 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고, 준이 살았다는 포틀랜드를 말했던 우나. 우나를 바라보는 '나', 우미와 배정을 바라보는 '나' 그들의 시간들은 늘 반복이었다. 제니 준 스미스 혹은 준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왔던 것처럼 이들의 시간도 반복되는 시간들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우나가 살았던 그 골목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 도시에서의 시간들은 늘 반복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불안한 청춘. 불안한 미래. 어느 누구의 관계에서도 확실함을 알수 없었던 젊음의 시간들. 이들의 시간은 모호함의 시간일수도 있었다.

 

 

 

 

박솔뫼 작가의 책을 읽은 게 『을』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에서의 느낌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 예전의 리뷰를 살펴보니, 그래도 잘 모르겠다. 책의 내용은 자세히 적지 않고, 그때의 느낌을 적은 글이니 더 그럴지도. 한가지 기억나는건 박솔뫼 작가의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을』을 읽었을때부터 약간 모호한 글을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어떤 것' 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꽤 좋아하고, 알아가고 싶은데 그들의 삶, 두려움과 방황이 책 속에서도 나타나는가 싶기도 하다. 배정과 우미, 우미와 나, 나와 우나의 삶처럼. 늘 뉴욕의 거리를 그렸던 우나.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 마저 그렸던 우나가 미국으로 향했을때 우나는 좀더 잘하는 것이 생겼을까. 준의 첫 음반이 재 발매되고, 내가 음악을 듣고 밖으로 나가 어딘가를 향해 달려나가듯이 청춘들은 늘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나는 미국에 가서 제니 준 스미스를 찾았을까. 그래서 대구에서와는 또다른 도시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 무엇하나 확실하게 말해준 건 없지만. 어떻게든 그 시간들은 흐르기 마련이고, 우나에 대한 기억, 우미에 대한 기억, 배정에 대한 기억들도 청춘들의 한 시간이었음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는 일. 아마도 그건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낸 이들의 마음 한 조각. 그리움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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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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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골든 슬럼버』, 『밤의나라 쿠파』, 『사막』등을 쓴 추리소설 작가이다. 추리소설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읽지 않은것 같다. 그래서 이사카 코타로의 산문집이 나왔다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추리소설 작가는 에세이를 어떻게 쓸까? 추리소설처럼 긴장감있게 쓸까? 아니면 작가의 평범한 일상들을 쓸까? 못내 궁금했다. 그의 에세이를 폈다. 에세이에서 만난 작가는 아동문학을 쓰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글을 썼다.

 

 

이사카 코타로의 산문은 다정다감했다.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소소한 삶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고, 작가도 우리처럼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구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이번 산문은 그가 10년 동안에 쓴 산문들을 묶었다. 작가가 된지 10년이 넘었고, 중간중간에 몇몇 곳에 에세이를 쓰고 펴낸 것을 한 곳에 묶었다. 그의 에세이는 가볍게 아무런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의외의 발견이었다. 책속에 있는 삽화도 귀여운 동물그림이다. 글에서 말하지 못한 면을 동물 그림에서 느끼기도 했다.

 

 

작가의 산문 중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말해보고자 한다. 작가가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을 다룬 글이었다. 영화를 좋아해 자주 보러다니는데 선호하는 좌석이 있다. 정 한가운데에서 화면이 온통 나에게 향하듯 해야 좋아한다. 또한 옆좌석에서 휴대폰 보는 것도 질색을 하는 편이라, 영화 시작전 같이 간 이들에게 영화보면서 절대 휴대폰 보지 말라고 다짐까지 받고는 한다. 작가의 글에서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모자를 썼다던가, 소곤소곤 거린다던가, 부시럭대며 뭔가를 먹는 사람들 때문에 영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겠다는 글을 보며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제발 영화볼때 다른 소음 좀 내지 마세요! ㅋㅋ

 

 

 

 

어느 작가에게나 자신을 만든 작가나 작가의 책이 있을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도 5명의 작가, 10권의 책을 말했다. 5명의 작가중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도 있었고, 알고 있는 작가도 있었지만, 어느 작품이 작가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수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가 말하는 작가는 이카가와 지로와 니시무라 교타로, 시마다 소지, 유메마쿠라 바쿠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였다. 이 작가들 중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아는 작가는 오에 겐자부로인데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 메모를 했다.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면서.

 

 

'최고의 다정함은 상상력이다' 라고 곧잘 말합니다. (.......)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기왕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이 의외로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만, 아니, 아닙니다. 메시지도 좋지만 책 좀 읽읍시다. (55페이지)

 

 

이사카 코타로의 글은 이처럼 다정다감하다. 특별하게 고민하며 읽을 필요도 없고, 그가 말하는대로 따라가다보면 이 작가 성장소설이나 연애소설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에세이는 작가를 알아가는 일이다. 소설 속에서보다 훨씬 더 진솔한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독자들의 작가의 에세이를 기다리곤 한다. 이사카 코타로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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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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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기억하기에 조조 모예스의 신작 『원 플러스 원』은 두 번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신간 안내를 할때부터 저 책은 구입할 책으로 작정했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내용으로 올해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작가의 신작이기에. 조금의 염려도 없이 읽게 되었던 이번 신작 『원 플러스 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작가답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또 한 번 감동하고 눈물을 터트렸고, 이런 작품을 쓴 조조 모예스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내가 소설 속 제스라면 어떨까. 남편이 떠나고 2년 동안 아이들 양육비 한 푼 받지 않고 낮에는 청소부 일을,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들은 둘이나 되는데,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때 모든 일에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더군다나 큰 아이 니키는 남편의 첫사랑에게서 낳은 아이로 학교에서는 괴짜로 놀림 받으며 폭력적인 아이들에게 자꾸 맞는 아이다. 둘째 아이 탠지는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를 가졌다면? 편하게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저녁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어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아이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조조 모예스는 참 따스한 마음을 가진 작가인것 같다.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들의 마음이 늘 따스한 걸 보면.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또한 기본적으로 따뜻함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상황임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 이게 참 힘든 일인데 주인공 제스는 힘든 일이 있어도 잘 될거라는, 어떻게든 해결할거라는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내부자거래에 대해 법정에 서야하는 에드를 대하는 마음에도 푸근한 마음을 전해주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은 우연찮게 다가오는 것 같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삶을 포기한 남자 윌 트레이너를 돌보며 어느새 사랑에 빠져버렸던 루이자의 이야기를 그렸던『미 비포 유』에서도 그렇고, 수학 천재인 탠지가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올림피아드를 위해 우연찮게 여행을 같이한 에드와 제스의 만남도 그렇다. 제스에게 에드는 기적처럼 다가왔다. 보험도 없이 남편의 차를 몰고 스코틀랜드를 향해 가려고 했지만, 에드의 배려로 차 안에서 3일간의 여정을 함께 한 것이다. 깔끔하고 자신 밖에 몰랐던, 침을 질질 흘리는 커다란 개와 차 멀미로 자꾸 토하는 탠지, 말이 없는 니키, 그리고 옆에 앉은 낯선 여자 제스를 차에 태우는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에드를 변화시켰다.

 

언젠가부터 가족을 이루는 사람들이 꼭 피를 나눈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차라리 피를 나눈 가족이 오히려 더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오합지졸처럼 모여든 가족이 더 진짜 가족처럼 보여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스가 선택한 니키, 제스를 바라보는 니키의 마음, 정신없는 가족처럼 보여졌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따스함이 에드를, 우리를 따스한 마음으로 물들게 했다.

 

조조 모예스는 우리에게 뭉클함을 선사했다. 우리들 주변에서 있음직한 소재로 우리의 마음을 열었고, 점점 가족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스토리를 보며 우리는 감동을, 가슴뭉클함을 느끼는 것이다. 조조 모예스가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정말 좋다. 힘들고 지치는 삶을 살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로 전해지는 그녀의 시선이 좋은 것이다.

 

좋은 책을 읽었다. 조조 모예스는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는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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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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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니스 루헤인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읽고 싶었던 『살인자들의 섬』을 아직까지도 읽지 못했었는데, 하며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이름을 내 블로그 검색창에 썼다. 그러고보니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되던때의 갱들의 이야기인 『리브 바이 나이트』라는 작품이었다. 술, 여자, 갱단의 이야기. 즉 남자들의 냄새가 자욱하게 밴 작품이었었다. 그래 읽은 적이 있었지. 지독히도 남성적인 소설이라고 느꼈었지. 이번에 읽은 데니스 루헤인의 『더 드롭』또한 남성적인 냄새가 짙게 밴 갱 영화같은 소설이었다. 표지에서부터 곧추세워진 총이 전면에 위치해 있었다.

 

 

며칠 전에 읽고 리뷰를 쓴 김탁환, 이원태의『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에서도 느낀 바지만, 선과 악이 존재할때, 내 스스로 선의 편에 있다고 느끼지만, 책 속에서, 혹은 영화에서 악과 악의 대립이 시작될때면 나나 다른 독자나 영화관객들은 악의 편에 서 있되 주인공의 입장에 서게 된다. 혹시라도 주인공이 죽을까봐, 혹은 더 못된 사람에게 당할까봐 숨죽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주인공 또한 분명히 나쁜 사람인데도 말이다.

 

『더 드롭』에서의 밥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소설에서처럼 범죄자를 좇는 형사거나, 갱단에게 돈이 털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드롭 바를 사촌 마브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밥에게 복면의 강도들이 돈을 털어가며 이야기는 시작됐다. 드롭 바를 운영하는 곳에서 여태 강도들이 없을리가 없었을테고, 과거에 한가락씩 했다는 밥과 마브가 손놓고 털리는 것을 보며 어이없게 털린다 싶었다. 드롭 바를 운영하지만 진짜 주인은 갱단의 우두머리 소유였고, 드롭 바에서 번 돈은 갱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돈까지 털렸으니 이제 마브와 밥은 죽을 위기에 처해졌다.

 

그 며칠 전 밥은 우연히 쓰레기통을 정리하다가 피가 묻은 채 쓰레기통 밑바닥에 있었던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쓰레기통 주인인 나디아에게 개에 대해서 묻고,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 집으로 개를 데리고 가서 키우기 시작하고 산책을 하다가 개 주인 에릭을 우연히 만났다. 밥의 주변에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에릭이 무척 신경쓰이기 시작하는 참이다.

 

 

 

한 때는 남자들의 영화인 갱 영화도 무척 챙겨보았었는데 반해 최근엔 이런 영화를 피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이는 게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생각에 잠기게 되는 여운이 있는 영화가 더 좋아서이다. 물론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글이 더 좋은 이유, 최근에 내가 보는 영화와 비슷하다. 『더 드롭』은 톰 하디 주연으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의 원작 소설이었고,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소설 속 밥을 보면서 사람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갱단에게 순순히 돈을 빼앗기는 걸 보며 그의 심성도 개을 주워온 것처럼 선한 심성을 가졌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소설 초반에 보였던 무력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아닌것처럼 숨기고 있었을 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성당이 없어진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던 모습이 다는 아니라고. 사람은 여러가지 모습을 숨기고 있다. 우리도 보여지는 모습이 다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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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누아르 - 범죄의 기원 무블 시리즈 1
김탁환.이원태 지음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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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범죄라 하면 법을 어기고 저지른 잘못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내가 직접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의 현상을 우리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혹은 TV나 인터넷 등을 이용해 보고 듣는다. 범죄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게 일반적인 우리에게 범죄를 다룬 영화나 책등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가령 범죄 영화를 보았을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때려죽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만약 범죄자들이 주인공인 경우 우리는 범죄자의 편이 되어 다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얼마전에 신문에서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있는 짧은 기사를 접했다. 배우 샤론 테이트를 죽인 희대의 살인마 찰슨 맨슨이 한 젊은 여자와 옥중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사였다. 사진을 보기만 해도 끔찍한 인물이었는데, 이런 인물에 열광하고 결혼까지 한다는 기사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간간히 일어나는 것도 같다. 범죄자가 희화화되어 옥중편지를 보내거나 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도 있으니 뭐 할 말은 없다.

 

 

이런 것처럼 영화속에서나 소설속에서 범죄자가 주인공인 경우, 우리는 스스로 그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목숨을 단칼에 베어도 이 사람은 내가 쫒는 주인공보다 더 나쁜 사람이야,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 원. 김탁환 작가의 신작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책 속의 주인공 나용주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그러했다. 작가 김탁환은 연출가 이원태와 함께 영화같은 소설, 소설같은 영화로 이야기를 만드는 '무블' 시리즈를 기획했고,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는 그 첫 번째 소설이다.

 

 

'검을 잡기 전엔 무엇을 하셨는지요?' 라는 질문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현재는 조선 최고의 검계 중의 검계, 검계 중에서도 대두령이다. 사당패에서 탈을 쓰고 줄타기를 하던 자였다. 우연히 사당패의 꼭두쇠에게 검을 배우고, 그로 인해 마포 검계의 막내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마포 검계의 검계로, 무예별감 소속으로 있다가 호암군의 호위무사로, 다시 마포 검계의 대두령이 되는 이야기이다.

 

 

 

 

검을 잡을때는 탈을 쓰고 줄타기를 하듯 유연하고도 거침이 없이 했고, 호암군의 호위 무사로 있을때 호암군의 생명을 구했다는 이유로 호암군에게서 벗이라는 말을 듣는다. 곧 왕이 될 세자의 이복 형제인 호암군은 어느 누구도 믿을 자가 없었다. 세자 쪽에 있는 사람들은 호암군을 견제했고, 세자의 병세가 완연해지자 그의 목숨까지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자신의 목숨을 살린 나용주를 호암군은 벗으로서 믿고싶었던 것이다.

 

 

검계의 눈과 귀는 강나루나 저자거리에만 깔린 것이 아니다. 조정이나 왕실 깊숙한 곳까지 낮말과 밤말을 줍는 이들이 숨어들었다. 매수당한 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검계의 일원으로 신분을 바꾸고 잠입한 자도 있었다. (73페이지)

 

 

위 73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자니 영화배우 현빈이 주연했던 영화 「역린」이 떠올랐다. 이산을 죽이기 위해 반대파들이 이산 주변 곳곳에 숨겨놓았고, 결국엔 이산을 죽이려고까지 했잖은가. 세자가 갑자기 병사하자 세자로 옹립되었고, 왕이 갑자기 죽자 새로운 왕이 된 호암군의 모습은 어쩌면 영조 이금과도 비슷했다. 노론의 힘으로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금과 비슷하게 호암군 또한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로 을론에게는 지지로, 갑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이 된 모습이 그러했다.

 

책의 제목답게 조선시대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범죄는 있어왔을 것이고, 저자는 범죄의 기원을 조선시대부터 잡았다. 칼을 쥔 자들이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는데도 버젓이 밀주를 하고, 술을 파는 이득을 챙기기 위해 다른 검계와도 싸웠다. 또한 권력있는 자들과 손을 잡아 더 큰 이득을 위해 나쁜 일을 도모하기도 했다. 요즘과 다를 바 없다.

 

 

김탁환 작가의 글 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영화적인 스토리에 재미있게 읽혔다. 스토리가 흥미롭고,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쉼없이, 아주 즐겁게 읽었다. 결국 선과 악은 종이 한 장의 차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었달까. 무언가 좀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선이라 자부하는데 악을 지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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