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허밍버드 클래식 4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서령 옮김 / 허밍버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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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렸을때 TV에서 해주는 만화로 만났던 소녀, 빨강 머리 앤. 이름을 말할 때는 늘 앤Ann에서 e가 하나 더 붙은 앤이라고 말했던 소녀. 자기 이름이 앤 말고 코델리아 였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던 소녀. 시냇물, 풀 한 포기, 나무 하나에도 이름을 붙여줘 이름을 부르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상상의 나래를 폈던 소녀, 빨강 머리를 가진 앤을 다시 만났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 속의 앤과 몇 년 전에 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나왔던 『빨강 머리 앤』과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를 읽었던 그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빨강 머리 앤』은 나에게 어린 시절의 한 공간을 자리한다. 마음속의 그 시간들은 어른이 된 지금에도 오랜 시간 남아있을 정도로 애틋한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만난 앤. 내가 품고 있었던 그 모습으로 다시 내게로 왔다. 여전히 머리는 빨강인채,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에게 혹은 단 하나의 영혼의 친구 다이애나에게. 여전히 재잘재잘거리고 상상속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길 즐겼던 소녀 그대로였다.

 

  최근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고, 어렸을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사 모으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우리 마음속의 동화를 여전히 믿고 싶은 어른들의 또다른 꿈이었을 것이다. 동화는. 내게 『빨강 머리 앤』이 그렇고, 『캔디캔디』가 그렇고, 공주가 나오는 모든 동화들이 그렇듯이. 인디고에서도 예쁜 일러스트로 만들어진 동화가 출간되고 있는데, 허밍버드에서는 약간 더 고급스럽게, 어른용으로 나온 동화책이었다. 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가 직접 번역하여 소설적 매끄러움을 더 했다.

 

  소설은 때로는 전혀 모르는 내용을 보고 싶고, 다시 읽자고 마음먹어도 늘 다른 소설에 밀리기도 하는 터. 여러번 자주 읽는 소설은 사실 몇 편 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라면 판형대로 구입하고 읽기를 주저하지 않을것이다. 몇 번을 읽어도 다 아는 내용이어도 책을 읽을때면 늘 설레며, 이번에는 아니겠지 하지만 늘 그 부분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마는 그런 책이 있다. 앤이 마릴라에게 어렸을 적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할때 였고, 매슈 아저씨의 죽음을 대했을때, 마릴라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초록지붕 집을 팔아야겠다고 했을 때였다.

 

저기가 집이라는 걸 알고 돌아가는 건 참 행복한 일 같아요. 전 초록지붕집이 벌써 좋아요. 그 전엔 한 번도 어딘가를 좋아해 본 적 없는데. 집이라고 느껴진 곳이 없었거든요. 아, 마릴라, 진짜 행복해요. 당장이라도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135페이지)

 

 

 

 

별일이죠. 저 애가 온 지 이제 겨우 3주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같이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앤 없는 이 집이 상상이 안 가요. (155페이지)

 

마릴라! 전 하나도 안 변했어요. 진짜로요. 잔가지를 쳐내고 새가지를 뻗어 올리는 것뿐인걸요. 여기 초록지붕집에 있는 진짜 앤은 언제나 똑같아요. 어딜 가든, 겉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달라질 건 없어요. 제 마음속엔 언제나 마릴라의 꼬마 앤이 있는걸요. 평생 매슈랑 마릴라, 그리고 초록지붕집을 매일매일 더 사랑하는 앤 말예요.  (444페이지)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앤이 사랑스러웠다.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김서령은 책을 번역하다보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앤을 키워야 했던 마릴라 아주머니가 더 눈에 들어왔다고 했는데, 그 부분의 문장을 읽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앤이 좋았다. 앤에게 애정을 쏟는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가 좋았고, 마릴라와 앤의 사정을 알고 에이번리 학교를 양보해준 길버트도 좋았다.  

 

  나이를 먹어 만난 동화는 어렸을 적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었다. 오히려 어렸을 때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앤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어렸을 적 우리가 가졌던 소녀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준 시간이었다. TV 만화속의 주근깨 소녀 빨강 머리 앤이 아직도 머릿속에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앤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의 목소리마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재잘재잘거렸던 앤의 목소리가 언어가 되어, 문장이 되어 다시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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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2015-01-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지금 다시 읽고 있어요. 꼬마 친구 한명이랑 같이 읽어요. 초등 3학년이라 완역본이 좀 힘들까 싶었는데 재미있어 하네요. 전 인디고판으로 읽는데 일러스트가 마음에 덜 들어요. 너무 예쁘기만라고 사실 꼼꼼이 읽지 않고 그린 티가 나요 ㅎ. 허밍버드 클래식 기억해 둬야 겠어요.

Breeze 2015-01-27 13:05   좋아요 0 | URL
저도 인디고판 가지고 있는데 인디고판보다 훨씬 좋네요. 허밍버드 클래식을 어린왕자도 가지고 있는데 기대하고 있어요. ^^

말리 2015-01-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버트가 나오는 장면엔 가슴이 아직도 ㅎㅎ. 이 나이에도.. 여전히 재미있어 저도 놀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