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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촌놈 생일이에요 - 놀이 유물 ㅣ 우리 유물 나들이 3
이명랑 지음, 배현주 그림, 김광언 감수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는 김치와 양파를 무지 싫어한다. 아무리 작게 잘라줘도 숟가락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웩” 토해버리기 일쑤다. “한국사람이 김치를 안 먹으면 어떡해! 얼른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어!” 반협박 비슷한 호통을 치면 아이는 “왜? 한국사람이라고 왜 꼭 김치를 먹어야하나? 왜 그래야 되는데?” 두 눈 또록하게 뜨고 이렇게 따지고 든다. 이거야 원...
그래서 터득한 것이 이름하여 꽁꽁숨기기전법! 오무라이스나 볶음밥을 해주는 것이다. 김치나 양파를 아주 잘게 다져서 다른 재료보다 먼저 후라이팬에 볶은 다음 참기름이나 캐첩으로 버무린다. 그리고 달걀지단을 얹은 다음 캐첩으로 하트 모양이나 웃는 얼굴 같은 것을 그려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잘도 먹는다.
아이들이 꼭 알았으면...하는 우리만의 풍습이나 전통, 이런 것들을 알려줄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에게 심각하게 “너도 이제 우리의 풍습이나 전통을 알아야할 때가 됐어. 앉아서 조용히 얘기 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아이들이 뜨악해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속알맹이가 고리타분한 풍습이나 전통이라면 겉은 설탕이나 초콜릿을 한꺼풀 입힌 것처럼 달콤새콤 달짝지근...한 것으로 아이들을 유혹할 필요가 있다. 얘기보따리를 풀어서 재미난 얘깃거리를 풍성하게 늘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오늘은 촌놈 생일이에요> 이 책은 우리의 놀이유물에 관한 그림책이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내비치지 않는다. 오로지 금순이의 장날 구경이 주된 포인트인 것처럼 깜쪽같이 포장되어 있다. 거기다 하지 말라면 오히려 기를 쓰고 일을 저지르는 아이들의 습성까지 이용해서 아이들을 책 속으로 폭 빠지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부턴 만사오케이!!
엄마 몰래 장터에 간 금순이를 따라 다니며 시골 장터 바닥을 누비면 되는 것이다. 금순이따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가슴조이며 구경하고 윷놀이판에도 기웃거리는가하면 인심좋은 엿장수 아저씨가 나눠준 엿으로 아이들이 엿치기하는 것까지 실컷 구경한다.
집에 돌아갈 때도 그냥 가면 밍숭밍숭하고 재미없다. 바람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을 구경하느라 해가 저무는 것도 모르고 마을 어귀에서 벌어진 탈놀이 구경하다 혼비백산하는 금순이를 봐야 한다. 주인공이 실수를 하거나 놀라는 모습이 뭐가 그리 좋은지 아이들은 까르르...재밌다고 웃는다.
이렇게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책장을 넘길때마다 우리의 고유한 놀이를 자연스럽게 보고 알게 되는데 거기엔 이 책의 편집이 큰 몫을 차지했다. 보통의 그림책에선 본문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늘어놓은 다음 뒷부분에 <참고하세요>하고 본문 중에 나온 것의 세부설명을 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앞으로 끌어왔다. 세부설명이 필요한 부분마다 한쪽 페이지에 놀이에 대한 설명을 놀이 도구 사진과 함께 소개해두었다. 그래서 부모가 책을 읽어주다가 아이의 질문에 일일이 책 뒤쪽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니까 편리하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때 역시 마찬가지다. 얘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그림책을 바로 덮어버리지 그 뒤쪽까지 살펴보지 않는다.
이 책을 보니 요즘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엔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촌놈 생일이라고 할만큼 장터에 가면 아이들에게 신나고 구경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부모따라 대형마트에 가서 엄마가 둘러볼 동안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란 만화를 뒤적이거나 게임코너를 기웃거리는 게 전부다. 운이 좋으면 옷 한 벌이나 장난감 하나 손에 쥘 수 있을 정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금순이가 장터로 가는 풍물패를 따라가는 장면에 제일 앞에서 있는 사람이 한자로 쓴 기를 들고 있다. 그걸 보더니 요즘 한창 한자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아는 척을 한다. &%천하#대본...이라고.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얼른 알려줬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농사짓는 사람이 나라의 근본이다. 농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인데 먹는 게 귀했던 시절엔 정치도 농업이 잘 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고. 그래서 농사가 잘 되야 백성도 잘 살고 나라도 부강해지는 것으로 여겼다고 말이다. 무슨 뜻인지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이담에라도 엄마가 얘기했던 것을 기억할까....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