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벚꽃 산 쪽빛그림책 4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들의 관계는 참 신기하다. 5,60년의 나이 차이를 아무것도 아닌듯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내겐 언제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시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란 명함을 앞에 붙이면 한없이 푸근하고 너그러워진다. 장난치다가 장독을 깨트리고 이불에 오줌 싸고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오~냐, 니가 그랬더나. 괘안타!” 이러신다. 순도 100% 아이편이다. 정말 수수께끼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그 비밀을 풀 수 있을까.


연분홍빛 벚꽃이 탐스런 꽃망울을 막 터뜨린 어느날, 한 권의 그림책에 내게로 왔다. <할아버지의 벚꽃 산>. 표지엔 온통 연분홍 벚꽃. 그 속에 얼굴 가득 커다란 웃음을 머금은 할아버지와 한 소년이 있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를 부축이라도 하는지 조막만한 손으로 할아버지 팔을 꼭 붙들고 있다. 보기만해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사랑스러운 모습...


하늘이 파랗고 화창하게 맑은 날이면 할아버지는 나에게 말해요. “우리 강아지, 벚꽃 보러 가지 않으련?”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산에 몰래 벚나무를 심으셨다. 큼직하게 자란 벚나무를 보고 아이가 감탄한다. “할아버지는 참 대단해” 할아버지는 그냥 웃는다. “뭘, 뭘”. 또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쓰다듬으며 말을 건넨다. “어디 아픈데는 없느냐”. 산에서 할아버지와  아이는 언제나 즐겁다. 달리기랑 질경이 시합도 하고 민들레를 뜯어 풀피리도 만들어 분다.


그런데 펑펑 눈이 쏟아지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병이 나서 그만 자리에 누워버린다. 병 때문에 조금씩 작아지는 할아버지에 비해 부쩍 자란 아이는 혼자 벚꽃 산을 오른다. “우리 할아버지를 건강하게 해 주세요.” 두 손 모아 벚나무에 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할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 주세요.

할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 주세요.

 


 



그리고 바람이 따스한 봄날, 할아버지와 아이는 함께 산을 찾는다. 벚꽃 산의 벚나무들은 꽃망울을 활짝 피워 그들을 반긴다. 탐스런 벚꽃을 한참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우리 강아지, 고맙구나”하고 말을 건네고 집에 돌아와 스르르 잠이 든다. 보통 때처럼 ‘잘 자거라.’하고.....


벚나무에 얽힌 할아버지와 손자의 추억을 그린 <할아버지의 벚꽃 산>. 이 책은 그림만으론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다. 선이나 색감이 거칠고 투박해서 초등학생이 그린 게 아닐까...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 그림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따스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특히 할아버지와 아이가 벚꽃 산을 다시 찾은 대목에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잠깐 숨이 멎는듯했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흐드러지게 핀 벚꽃! 마치 하늘이 파랗게 화창한 날, 활짝 핀 벚나무 아래 내가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거의 마지막 부분. 돌아가신 할아버지 모자를 쓴 소년의 뒷모습이었다.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어떤 표정으로 뭘 생각하고 있을까...할아버지의 모자를 쓰고...

 



 

할아버지가 만든 벚꽃 산에 해마다 벚꽃이 예쁘게 피어요. 그럼 예쁜 등이 매달리고 봄 축제가 시작돼요.

“뭘, 뭘.” 할아버지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파란 하늘이에요.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사라진 게 아니다. 완전한 이별도 역시 아니다. 아이의 가슴 속에, 벚꽃 산을 찾는 이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오롯이 살아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해마다 봄이 되어 벚꽃이 피고 지는 그 날까지 언제까지나....


이 그림책을 보면서 20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아버지가 누워 계신 곳이 바로 벚꽃축제로 유명한 진해인데 3년 전 한식즈음...우리 가족이 아버지 산소를 찾았을때 마침 벚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온 사방이 벚꽃 천지, 벚꽃 터널인 걸 보고 큰아이는 “이야~~!!”를 연발하면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봄소풍 나온 아이처럼.


9살인 큰아이는 지금도 간혹 그때 얘길한다. 옛날처럼 벚꽃이 많이 있는 곳에 또 놀러가자고. “으응? 그때 놀러간 거 아닌데?”  “그럼?”  “엄마가 아버지 만나러 간건데?” “참, 그랬지...”  “엄마, 엄마는 참 안됐다.”  “왜?”  “엄마는 아빠가 없잖아!” “그래...그러네. 엄마의  아빠가 계셨으면 우리큰아들 디게 이뻐해 줬을텐데...우리 똥강아지~,....이러면서.”  “어? 그럼 나도 안됐네!!”


추억에도 유효기간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언제까지일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떠나더라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겨진다는 걸 아이가 언제쯤 이해하게 될까.

뱀꼬랑지> 이 책은 속면지도 꼭 눈여겨 봐야한다. 앞뒤의 면지가 본문의 내용과 연결된다. 앞에선 잎이 무성하던 벚나무가 뒤에선 꽃잎 두 장이 날리고 있다. 책을 덮을때 뒤쪽 면지에 꽃잎 두 장이 흩날리는 걸 보고 가슴에선 쿵,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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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탐험대 이집트 인류 문명 발굴하기 3
재키 가프 지음, 정윤희 옮김, 조가영 감수 / 넥서스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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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때 모출판사의 만화로 된 <보물찾기> 시리즈를 두어권 사줬다. 요즘 아이들은 누구나 읽는다는 책이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나 그 책을 안 읽었다고 친구들과 화젯거리가 없을까봐 걱정하던 차였다. 다행히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내용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남은건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는 거였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책의 내용을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받아들였다. 어른인 나는 한번 읽고 제쳐뒀는데 아이는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더니 입에서 줄줄줄 나왔다. ‘엄마, 일본엔요....’ ‘인도는....’ ‘이집트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한편으론 기특하면서도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점이 느껴졌다. 어린이들이 한 나라의 문화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데엔 성공했지만 깊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찾아내는 건 아이들 소풍의 보물찾기처럼 쉬운 게 아니다. 문화재가 장난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일로 고민하던 차에 만난 책이 바로 <고고학 탐험대, 이집트편>이었다. ‘인류 문명 발굴하기’란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이집트엔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미라...등 유명한 유적과 유물을 알려주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바로 고고학이란 학문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책 곳곳에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책을 읽는 아이들이 유물 발굴 현장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문화재를 발굴한 고고학자의 얘기를 ‘증언자의 한마디’ 코너에 담았고.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추측하고 연구를 하는지 그 과정이나  기술을 ‘고고학 도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큰아이가 저학년이라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읽어나갔는데 이 책을 통해 아이와 나는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처음엔 피라미드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 단순히 식량저장고로 사용된 장소란 주장이 있었다던가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유망직종은 문서를 기록하는 필경사였다는 점.(“필경사가 돼라! 힘든 노동이나 자질구레한 일을 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낫과 괭이를 들고 농사를 짓거나 배를 저으며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10쪽), 미라를 제작하려면 적어도 70일은 걸린다는 사실과 투탕카멘의 죽음이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는데 학자들은 투탕카멘이 살해당한 걸로 추측한다고 했다. 이 외에 이집트 국민(귀족이나 피라미드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의하면 19세기초, 전 세계에 이집트 유물수집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들 귀한 보석이나 금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손상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이집트의 험한 날씨는 유물과 유적의 훼손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하여 책을 읽으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집트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약 70%의 유물이 땅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또 과학의 발달에 따라 고고학 발굴에도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고 있으니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땐 고대 이집트의 세계의 비밀이 어느정도 밝혀지진 않을까...기대해본다.




주말이나 휴일,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시된 유물이나 문화재를 보고 오는 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유물이나 문화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예전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이고 문화다. 박물관을 찾기 전에 이 책을 한번 읽어보자. 유리에 둘러싸인 유물이나 문화재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아이들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그 이전에 박물관을 아이들 공부를 위해, 숙제나 과제를 위해 찾는 곳으로 알고 있는 우리 부모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여전히 긴 세월 속에 묻혀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퉁이를 도는 순간 또 어떤 놀라운 것들이 숨겨져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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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먼저 그랬어요! 모두가 친구 9
가브리엘라 케셀만 글, 유 아가다 옮김, 펩 몬세르랏 그림 / 고래이야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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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얘가 먼저 그랬어요!”




어릴때 형제가 많았던 우리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항상 누구와 누군가가 티격태격 다투고 토라졌다. 그때마다 엄마는 “누가 그랬는데?”하고 물으셨다. 그럼 대답은 당연히...“얘가 그랬어!”




아이는 누구나 마찬가진가보다. 그때의 그 말을 요즘 내 아이에게서 듣는다. 17개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이 좀 귀찮게 해도 잘 돌봐주면 좋으련만...늘상 짜증을 낸다. “야,  내 꺼 만지지 말랬지. 부서졌잖아!!” “너, 저리 가!”...그러다가 결국엔 작은애 울음보가 터진다. 무슨 일인가 달려가보면 씩씩거리던 큰애가 말한다, “내가 안 그랬어. 얘가 먼저 그랬어”라고,




고래이야기 출판사의 모두가 친구 시리즈 중 <얘가 먼저 그랬어요!> 이 책은 아이들의 다툼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밤새 잠을 푹 자지 못한 타틴은 아침부터 기분이 나빴다. 잔뜩 화난 얼굴에 팔짱을 꼭 끼고선 길을 걸었다. 걸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봐...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걸어가던 중에 만나는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싸운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어른에게 타틴은 화난 목소리로 친구가 먼저 그랬다고 말한다. 길을 가는 자기에게 친구들이 말을 걸거나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친구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리곤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때 고양이 친구를 만난다. 얘가 또 귀찮게 하려나...싶어 막 짜증을 내려는 타틴에게 고양이 친구는 초콜렛을 내민다. “무슨 소리야? 하나 먹어봐.”하고.




기분 나쁜 타틴이 별 것 아닌 일에 친구와 화를 내고 싸우고 다투는 모??냥 지나칠 일을 장난감이 부서졌거나 배고픈데 좋아하는 간식이 없을 때, 엄마아빠가 놀아주지 않거나 친구한테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아이는 유난히 짜증을 낸다. 장난이나 호의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때 엄마인 내가 아이가 왜 그러는지 얘기하면서 마음을 이해해주고 잘 다독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아이의 얘길 들어주기보다 나도 덩달아 짜증을 냈다. 불끈불끈 치솟는 화를 어찌하지 못해 쩔쩔 맸다. 그런 내 모습이 아이들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지, 내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생각하면 덜컥 겁이 난다.




사람들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누구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폭력성을 어떻게 관리를 해서 순한 양처럼 만드느냐...하는 거다. 이 책에선 ‘초콜릿’을 내밀었다. 화가 난 아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캐묻기 전에 일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아이의 마음자리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라고.




타틴은 화를 내는 대신 친구가 내민 초콜릿을 집어 먹었어요. 하나 또 하나 먹다 보디 기분이 점점 좋아졌어요. “오물오물 냠냠. 오물오물 냠냠.”우스꽝스런 소리도 재미있었고 초콜릿 범벅이 된 친구 얼굴도 웃겼어요...타틴은 이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표지에 위로 치켜뜬 짙은 눈썹 때문인지 무척 심술궂어 보이던 타틴의 표정이 끝부분엔 한껏 부드러워졌다. 입가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고서 웃고 있다. 초콜릿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화난 아이에게 백발백중의 효력을 발휘하는 ‘마음의 초콜릿’, 나도 준비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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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함께 - 생각하는 그림책 2
제인 시몬스 글.그림, 이상희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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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 이맘때쯤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가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처음이었다. 우리 집에 큰아이의 친구가 놀러온 게. 살짝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는구나, 단짝 친구도 사귀고...하는 생각에 괜시리 설레었다. 그후로도 집에 곧잘 놀러오는 아이의 친구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키가 커서 제일 뒷자리에 앉는 아이가 어떻게 맨 앞자리의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날 닮아 덤벙대는 큰아이에 비해 그 아이는 똑 부러진다...싶을 정도로 야무졌다. 외모만 아니라 성격도 정반대인 두 아이. 그런데도 좋다고 서로 꼭 붙어다니는 게 참, 용하다...싶었다.


꽃이 핀 들판을 신나게 달려가는 개 두 마리. 뭐가 즐거운지 입이 귀밑에 걸렸다. 생각하는 그림책, <둘이 함께>.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니들, 뭐가 그렇게 좋은데?”하고 물어보고 싶다...대답해줄래?


<둘이 함께> 이 그림책엔 두 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덩치가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복슬이와 작고 깡마른 체구의 땅꼬마. 비 내리는 날 처음 만난 둘은 순식간에 친구가 된다. “안녕”하는 인사에 “안녕”하고 답을 하면서. 그리고 둘은 나란히 산책하거나 깔깔대며 함께 논다.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야” 복슬이가 말했어요. “나도 네가 제일 좋아”  땅꼬마도 말했지요. 모든 게 근사했답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모든 걸 함께 하기에 그 둘은 너무나 달랐다. 높은 언덕도 폴짝 잘 올라가지만 헤엄을 못 치는 땅꼬마와 헤엄은 잘 치지만 높은 곳을 못 올라가는 복슬이. 또 뭐든지 반대였다. 햇볕을 좋아하는 땅꼬마와 뜨거운 햇볕이 싫다는 복슬이, 너무 빠른 땅꼬마와 너무 느린 복슬이. 그 둘은 결국 서로에게 실망하고 토라진다.


늘 함께 있던 친구가 잠깐 곁에 없으면 금방 쓸쓸해지기 마련이듯 그들도 곧 외로움을 느낀다.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 복슬이와 땅꼬마, 그들은 다시 화해한다. “다시 친구하고 싶어” “나도야”. 그리고 외친다.


“멋진 날씨야” “진짜 멋지다!!”



알록달록 원색의 그림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가 등장해서 통통 튀듯 가볍게 느껴지는 그림책 <둘이 함께>. 이 책은 너무나 다른 둘이 만나 함께 하는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함께’란 말은 둘이 하나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자신과 상대방의 다른 점을 서로 탓하기 전에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즐겁고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물론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 결코 쉽지 않다. 큰아이도 친구와 잘 놀다가 간혹 다투고 토라진다. 그럴땐 꼭 복슬이나 땅꼬마처럼 “나 이제 @@랑 친구 안하기로 했어.”하고 선언한다. “친구니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 줘야지”하고 애길해도 들은척도 안한다.


나 역시 아이를 둘이나 낳고 나이가 사십이 넘었지만 상대방의 거슬리는 행동엔 이맛살을 찌푸려지고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 ‘넌 왜 그런데?’하는 삐딱한 생각이 먼저 비집고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나 자신을 점점 더 비참하고 끔찍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는 걸 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됐다.


친구와 다툰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온다. “@@랑 다시 친구하기로 했어”하고. 나도 아이처럼 좀 더 유연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조금씩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따로따로 하고 놀 때에도...함께 있었어요. 햇살이 쏟아지건 비가 내리건 날마다 근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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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웃음 어디 갔지? - 생각하는 그림책 1
캐서린 레이너 지음, 김서정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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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목요일. 날씨 : 해. 제목 :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

 

오늘은 속담책을 보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 근대 이상하다. 완전 내가 곰이고 엄마가 주인이다. 기분나쁘다. 비교하자면 엄마는 기와집이고 나는 초가집이다. 너무나 기분나빠서 화가 나서 화산폭팔할 것 같다. 근대 오늘 공부는 너무 많아 힘들어죽겠다. 너무나 힘들다. 끝.

큰아이가 지난 겨울방학때 쓴 일기다. 늘 한 페이지의 절반 정도만 쓰던 아이가 왠일로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웠다. 도대체 뭘 썼길래? 궁금해서 봤더니 이런 내용일 줄이야...매일 조금씩 하기로 약속했던 문제집이 너무 많이 밀려서 야단을 쳤는데 그 사정을 모르시는 담임선생님께서 이걸 보시면 날 어떻게 생각하실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엄마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고쳐달라고 부탁해볼까. 아니, 불만이 가득 찬 아이에겐 소용없는 일이겠지...싶어 단념했다. 문제의 일기 때문에 엄마가 요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줄도 모르고 개학날 아침 아이는 일기장이 든 가방을 자랑스레 등에 메고 현관을 나섰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외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큰아이의 불만은 그 날 하루만의 얘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야단보다 잔소리를 싫어한다더니, 정말인가보다. 무슨 얘길해도 툴툴대고 짜증을 낸다. 예전에 비해 잘 웃지도 않는다. 밝게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예쁜 아이였는데...왜일까? 뒤늦게 태어난 동생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 웃음 어디 갔지?> 이 책에는 웃음을 잃어버려서 슬픈 호랑이 아우구스투스가 웃음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덤불 밑에 들어가고 높은 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깊은 바다와 사막에도 가보지만 웃음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갑자기 만난 비를 피하느라 물웅덩이에서 철퍽 거리며 한참 놀고나서야 깨닫게 된다. 웃음이 바로 자기 코 밑에 있다는 걸. 행복할 때면 언제나 웃음은 거기 있다는 걸. 

무척이나 짧고 간단한 내용이다. 반면에 그 속에 든 뜻은 깊고도 심오하다.


 

주인공인 호랑이 이름부터 범상치않다. 바로 ‘아우구스투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이자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아우쿠스투스. 만약 황제인 그가 웃음을 잃어버려 슬픔에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온 백성이 그의 웃음을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지 않았을까. ‘황제의 웃음을 찾아주는 이에겐 금은보화, 혹은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지만 호랑이 아우구스투스는 달랐다. 그저 쭈우욱 기지개를 켠 뒤 웃음을 찾아 나선다. 없거나 잃은 건 다시 찾으면 된다는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 역시 시원시원하다. 얼핏 보면 붓 가는 대로 대충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흑갈색으로 서슴없이 죽죽 그려진 호랑이 줄무늬는 다른 사물이나 배경에 비해 호랑이를 더 돋보이게 했다. 더불어  독자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오로지 호랑이의 동작이나 표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건 바로 호랑이의 눈이다. 밀림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맹수 호랑이의 눈을 점 하나 콕, 찍어놓는 말다니! 정말 대담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하나의 점에 불과한 호랑이의 눈이  어느 순간 씽긋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걸 아이는 처음엔 이상하다, 줄무늬 때문에 어떤 게 눈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몇 번 반복해서 보던 어느날 드디어 아이는 “호랑이 표정, 진~짜  웃겨”하고 쿡쿡 웃음을 뱉었다. 오호라....드디어 웃는구나!!



 
이때를 놓칠새라 아이에게 물었다. “호랑이가 왜 웃는 거야?”  “웅덩이에서 물장구 치는 게 재밌어서”  “호랑이는 행복이 뭐래?”  “재밌는 거”   “넌 언제 행복한데?”  “멋진 장난감 살 때랑 맛있는 거 먹을때”...순간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을 살포시 누르고 “엄마랑 아빠랑 동생보다 더?”  “음...” 이럴수가!! 고민할 게 뭐 있냐? ㅠㅠ “만약 가족이 함께 있는 거랑 장난감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어쩔거야??”  “그럼, 가족!!”   "그래, 행복은 머~얼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거...그게 바로 행복이네!!"  앗싸!! ^^

 

호랑이 아우구스투스가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결코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모든 곳에 있다는 진실을.

 

참, 표지에서부터 줄곧 옆모습만 보이던 호랑이가 웅덩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난 마지막에 가서야 정면을 바라보는데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책을 보고 있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갖는 생각-이상-과 지금의 생활-현실-을 웅덩이에 자신을 비춰보듯 마주봐야 한다고.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그 다음엔? 숙제를 끝낸 아이가 밖으로  놀러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곳에 있는 행복을 만끽하라고. 

 

아이와 얘길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무척 홀가분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를 막 해결한 느낌. 혹시나 그 기분이 달아날까봐 얼른 아이를 꼬옥 안았다. 덩치는 크지만 아직 어린 아이. 이 아이의 마음을 그동안 너무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으며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나 역시 잊고 살았다. 


너 그거 아니?  행복은 세상 모든 곳에 있지만 엄마는 니들이 웃을 때가 젤루 행복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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