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괴물들이 사는 나라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만 해” “안돼!!” “하지 마!” “제발 말 좀 들어라” “엄마 좀 살려줘”
혹시 누군가 나의 일상을 몰래카메라로 찍는다면...그 속엔 어떤 모습들이 담겨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굳이 심각하게 생각해볼 것도 없다. 매일 똑같이 벌어지는 일들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질 테니까.
“그만 해” “안돼!!” “하지 마!” “제발 말 좀 들어라” “엄마 좀 살려줘”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처음 만난게 큰아이가 두 돌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애는 둘째에 비해서 순한 아이였지만 당시로선 그걸 알 리가 없는 내 눈에 큰애는 사고뭉치 말썽쟁이에다 때론 괴물로도 변신했다. 책 속의 맥스처럼.
엄마가 소리쳤어.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맥스도 소리쳤지.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그래서 엄마는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 버렸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나는 아이에게 “니 할 일이나 해”라며 방으로 들여보낸다. 그런데 방에 들어간 아니는 내가 속이 뒤집어지거나 머리에서 연기가 폴폴 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할 숙제나 과제보다 자신의 특기이자 취미인 상상의 날개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바로 그날 밤에 맥스의 방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했지.
나무와 풀은 자꾸자꾸 자라났고,
나뭇가지가 천장까지 뻗쳤지. 이제 맥스의 방은 세상 전체가 되었어.
배를 타고 괴물나라에 도착한 맥스가 괴물 나라의 왕이 되어 괴물 소동을 벌이듯 아이도 괴물 나라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기라도 하는지 방에선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곤 했다. 조금 잠잠하다 싶어서 방 앞에서 기웃거려보지만 아이는 금세 또다른 놀이에 빠져있곤 했다.
괴물나라 왕 맥스는 쓸쓸해졌지. 맥스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그때에 머나먼 세계 저 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어. 마침내 맥스는 괴물 나라 왕을 그만두기로 했지.
그리고 잠시후 아직도 잔뜩 삐쳐있겠구나...하고 생각했던 아이는 너무나 멀쩡한 기분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엄마, 뭐 먹을거 없어? 배 고픈데....” 세상에, 난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데 넌 먹을 것만 찾는단 말이냐. 니 잘못을 니가 정녕 모른단 말이냐. 이렇게 일장연설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일단 꾸욱 참고 간식거리를 챙겨주면 아이는 맛나게 먹고 또 휑하니 지 방으로 가거나 거실에서 책을 읽곤 한다. 그제서야 난 허탈해진다. 난 대체 뭣 땜에 화를 낸 거니?
그날 밤에 맥스는 제 방으로 돌아왔어.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엄마를 잡아먹어버릴 거라던 맥스가 괴물나라에서 한바탕 놀고 나서 지겨워할 때 맥스를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 냄새였다. 그렇다면 나한테 실컷 야단맞아서 심술이 난 아이를 세상으로, 스스로 제 방에서 걸어나오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간혹 두 아이의 등쌀에 아이고 정말 못살겠어. 지겨워...하는 생각이 들때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들쳐보곤 한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 시간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신나게 열심히 놀이에 몰두하는 맥스를 보며 내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내 아이는 어떤 나라를 꿈꿀까...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을 보며 한가지 소원을 갖곤 한다. 내 아이들이 언제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더라도 가족의 사랑과 따스함이 잊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영화로도 제작 중이란 소식을 들었는데, 완성됐을까? 국내엔 언제 개봉하는 걸까. 기다려진다.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