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표지 두 장에서 의문이 생겨서, 두 장을 나란히 걸고, 별 말 안 쓴 페이퍼가 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2801476

이렇게까지 저자에 대한 상이 다른 것은 자아상의 차이일까, 생각했다. 

더하여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이 '저자'가 되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저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까지 하는 지경이다. 적어도 관종이니까 책을 쓰겠지, 싶은 태도에 더하여, 가끔은 책 속의 이런 태도는 무엇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도저한 자기 연민, 참기 어렵다. 


1. 소녀를 둘러싼 퍼즐

무료책이 풀렸었나, 꽤 오래 전에 이걸 다운받아 읽었었다.

시대적으로 동양을 우월하다고 하는 서양인의 묘사가 있어서 좀 놀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인상은 아니다. 

소녀는 유명인사가 되고 싶어 글을 쓴다. 그녀가 쓴 글은 내게 치기어린 걸로 보였다. 

읽으면서, 소녀에게 유명인사가 되라고 부추기는 엄마-기억은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가 의아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무언가 좋은 일을 하라는 조언이 아니라, 유명해지라는 조언이라니. 그건 좋은 조언인가. 그건 과연 엄마가 딸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인가. 서양인의 악명조차 유명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거 같달까. 

소녀에게 어떤 조언을 지금의 한국사회가 한다면, 과연 책 속의 조언과 비슷이나 할까. 유명해지고 싶어서 글을 쓴다면, 그 글은 무엇을 쓰게 될까.   




2.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https://blog.aladin.co.kr/hahayo/12520560 )

사람들이 같이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인 남자는 자신이 만난 비정상인 사람들에 대해 썼다. 그런데 나는, 읽는 내내 정상과 비정상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비정상이라고 측정하는 의사가 가진 기준은 어떤 의미의 척도인가, 라는. 결국 그 사람이 가진 표본 이상이 될 수 없는 연구들인데 말이지. 표본이 남성 뿐이라면, 여성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표본이 서양인일 뿐이라면 동양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비정상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그 사람이 소수자일 때, 언제나 비정상의 딱지는 붙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읽다가, 서양인은 왜 정상이 필요하지,라는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사람은 다 다른데, 기준점이 필요한 건가, 싶었다. 



3.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이 책 때문인가. 이 책의 한글 제목이 맘에 들어서 받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제목이다. 한글 제목이 다른 거였다면 나는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번역해 놓은 한글제목은 전혀 내용과 상관없어보이고, 영문제목을 그대로 번역했으면 쳐다도 안 봤을 거다. 

나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란 책을 읽고 나서 이게 서구화된 사고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0737472 ) 그리고, 이 책 제목의 '존재에 대해 사과한다'는 말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을 때 느꼈던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라는 반항적인 감정을 떠오르게 했고, 그래서 읽고 싶었다. 존재에 대해 사과해서는 안 된다. 사과는 행동에 대해서만 해야 하는 거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가 붙인 적 없는 제목에 공연히 기대하고 책을 고른 내 잘못이다. 저자는 그저 자신이 배운 과학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과학책이라기에는 자아가 너무 돌출해서 읽기가 싫다. '출근하는 일처럼 여러분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나에게는 큰 장애가 된다'는 식. 어차피 다른 사람 마음 속은 알 수가 없잖아? 그런데, 자신은 진단명이 있다고, 남들에게는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고???

박사학위를 받고 멀쩡?하게 공부하면서 책도 쓰는 학자가 자신이 자폐스펙트럼에 ADHD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그런 진단명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생각한다. 자신의 성취에 스토리를 보태는데 도움이 되는 건가. 

윤스테이를 보다가 깊은 데서 올라오던 분노 '먹으면 죽어????'같은 게-그 때 티비에서 외국인 투숙객의 못 먹는 음식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비건이라는 건 뭐 그렇다 쳐도, 해산물도 못 먹고, 견과류도 못 먹고, 못 먹고, 못 먹는 것들, 도대체 지가 해먹을 거 아니면 적당히 좀 해라,라는 깊은 화가 갑자기 폭발했었다.- 닥친다. 그냥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불편을 조금씩 참을 수는 없는 거야. 네가 자폐에 ADHD면 어울려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네가 할 역할은 없는 거야? 내가 알고 너를 그저 이해해줘야 하는 거야? 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의 화가 닥친다.

서양인들은 자기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괜찮고 좋은데, 자기는 괴로워 죽을 것처럼 좀 작작해야 한다. 이 저자의 책이 왕립학회의 좋은 책이 되었다면,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베스트셀러도 된 거라면, 인간세상에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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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집에 굴러다니던 잡지에 들어있던 짧은 이야기. 


잘 차려입은 교수가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손가락이 하나 없는 종업원이 서빙을 했다. 

교수는 주인을 불러서 저런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은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식당의 주인은 교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나서, "저는 배운 걸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배움이란 것이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는 거였던가. 


많이 배웠어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삶보다 적게 배웠더라도 배운 것들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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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의

이 책을 읽을 때 법가와 유가에 대한 말이 기억에 남아 남겼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686347

이미 썼지만 다시 쓰자면, 당시 대부 이상을 통제하는 방식은 관계이고, 이하를 통제하는 방식은 법이고, 법가는 대부 이하를 통제하는 방식을 전체에 확대하여 대부 이상에게도 법에 따른 통제를 요구하고, 유가는 대부 이상을 통제하는 방식을 전체에 확대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삼는 거라고 했다. 

더하여, 법가는 대부이상의 자결을 금지시켰다고도 했다. 스스로 벌하는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낮은 계급이 벌을 받듯 법에 따른 처벌을 받으라고 했다고. 

나는, 척지다,라는 말이 법과 관련된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https://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6749) 그렇지, 법이란 그런 것이지. 법대로 하자,는 말이 너와 나의 인간 관계는 끝이라는 의미로 들리지,라고 생각했다. 공동체는 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동체는 예와 의리로 유지된다. 예와 의를 기리는 이야기들로, 법은 그저 하한선이다. 얼기설기 엮은 하한선, 인간이라면, 인간의 관계라면 해서 안 되는 일에 대해, 결국 마지막에 의탁하는 하한선이고, 할 수 있다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어떤 것이다. 

그런데, 복잡한 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뻔뻔함이 공동체를 물들이고,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이길 때까지 멈출 수 없는,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다니!!!


2.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https://blog.aladin.co.kr/hahayo/10685062

시민운동이 동료시민을 설득하는 수고로움 대신, 법관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택함으로써 초기 운동의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평판을 갉아먹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설득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아니라 꼭 한 사람, 권위있는 한 사람을 설득해서 자신의 주장을 더 많은 사람에게 관철시키려고 한다. 민주적인 체하지만, 실상은 자신은 복종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복종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한가? 


낙태죄 완전폐지를 위한 청원에도 반대하는 마음(https://blog.aladin.co.kr/hahayo/12210402 )이었고, 비동의 강간죄 제정에도 반대하는 마음(https://blog.aladin.co.kr/hahayo/12367911 ) 이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말하지만, 이걸 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544871)

https://blog.aladin.co.kr/hahayo/13581886

법의 심판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시작한 순간 질 수 없다.

현대의 법정은 로마시대의 격투장처럼 이기고 지는 일만 남는다.

형사와 민사가 있고, 형사는 공동체가 규정한 죄를 심판하는 자리라서 그 기준은 공동체의 기준이 되고, 판결은 새로운 정의가 된다. 

정의당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장혜영의원의 입장문에 대해 의견을 쓸 때(https://blog.aladin.co.kr/hahayo/12343250 ), 연예인 남친의 낙태종용을 폭로한 여자에 대해 쓸 때(https://blog.aladin.co.kr/hahayo/13052482 )형사와 민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하고 싶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두 사람이 괜찮대도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게 형사다. 형사사건 중에도 그 영향이 작을 때 일부 반의사불벌죄(https://namu.wiki/w/%EB%B0%98%EC%9D%98%EC%82%AC%EB%B6%88%EB%B2%8C%EC%A3%84)나 친고죄(https://namu.wiki/w/%ec%b9%9c%ea%b3%a0%ec%a3%84 )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예외들이고 성폭력범죄, 아동범죄는 그간의 노력으로 예외가 아니다. 아동학대나 성폭력을 누군가가 신고하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심판의 절차는 진행된다. 이제 심판대에 피해자의 자리는 없고, 공동체를 위해 죄를 심판하려는 검사와 자신을 변호하려는 가해자가 있다. 

장혜영의원은 정의당 내의 징계로 사건을 끝내려고 해당 사건을 고발하지 않았고,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https://namu.wiki/w/%EC%9E%A5%ED%98%9C%EC%98%81/%EB%85%BC%EB%9E%80 ) 


고소와 고발이 들어오면 이제 검사는 그 죄를 다뤄야 한다. 이건 무지한 내가 그저 형사와 민사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형사에도 특별히 성범죄나 아동범죄의 경우 피해자 변호인을 국가에서 지정해 의견을 청취하고 재판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벌어지는 아동학대 재판은 그 판결이 세상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 판례가 될 수 있다. 이미 신고한 아동의 학부모는 재판 당사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의견을 낼 수 있고,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재판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이제 세상의 새로운 기준이 생기면 세상은 또 그만큼 변화한다. 그 변화는 좋을까, 나쁠까,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나와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는 상대가 나와 벌어진 갈등에 대해 나와 대화하기보다 법에 호소하겠다고 가장 먼저 결심한다면 그 공동체는 공동체로서 건강하기 어렵다.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 개인들과, 갈등상황에서 언제나 심판자에게 달려가는 개인들, 그리고 개인들 위에서 심판하는 심판자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어떻게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심판이란 것도, 호소한 개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개인이 이길 때까지하염없이 늘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그런 귀찮고 지루하고 길고도 긴 그런 송사에 휘말리기 싫어서 더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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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수학
https://www.youtube.com/watch?v=Zh3Yz3PiXZw&t=46s


네가 믿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너와 적대한다. 
그렇지만 나의 믿음은 너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너의 믿음으로 너를 공격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믿음 자체는 오히려 공고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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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준비를 하는데 초4딸래미가 "오늘이 일본군위안부기림의 날이라는데 뭐야?"라고 물었다. 

일본군위안부,가 뭔지부터 설명을 해야 한다. 

뭐라고 하지. 

전쟁에 대해 말해야 하고, 군인에 대해 말해야 하고, 위안,이 뭐였던가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뭔가 애써서 설명을 하고는, 지금 쓰면서는 검색을 했다. 어떻게들 설명하고 있으려나, 하고. 

"일제시대에 일본이 전쟁을 했잖아. 전쟁을 하는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니까 제정신이 아니잖아. 총들고 있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통제가 안 되니까, 여자들을 데리고 가서 위안이라는 걸 해주게 억지로 시켜. 식민지 여자들이나, 점령지 여자들이나 본국의 여자들을 칸막이 방에다 넣어놓고 군인들을 밀어넣지. 군인들은 그 여자들을 때리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자들은 방에 갇혀서 계속 군인들한테 나쁜 짓을 당하지. 그러다가 애도 생기고"

"돈 벌게 해 준다고 속여서 잡아가기도 했고, 군인들 도망갈 때 죽이기도 했어."


다 늦게 지금 적으면서, 참 사전이 있었는데, 사전을 찾아서 알려줄 걸, 하고는 사전을 찾아봤다.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 사실과 관련된 문제를 국내외로 알리고,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기리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

사전을 찾아서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일본군 위안부,가 뭔지 아는 사람에게 하는 설명이다. 


기리는 게 뭐야? 

기억하고 또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데, 뭐지. 


다음 국어 사전을 찾아봤는데, 추어서 말하다. 라고 되어있다. 추어서,라는 말이 들어있다. 

타동사

[(명)이(명)을](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우수한 점이나 잘하는 일을) 추어서 말하다.

  • 시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은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만들었다.

  •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 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제정하였다.

 


집에 있는 그림책 두 권을 꺼내 두고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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