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9140.html


카스피님의 글( https://blog.aladin.co.kr/trackback/caspi/16358277 )을 통해 칼럼을 보았다. 매체의 지면을 가진 기자가 칼럼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 

기자는 '여자가 서른다섯이 넘어가면 임신출산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걸 아무도 공공연히 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남자들이 속으로는 젊고 어린 여성을 원하더라도,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라는 건가? 

나는 임신이나 출산,이 어리고 젊은 여성이 가지는 권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기자의 태도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광수의 질문이나 그 질문을 여과없이 방송에 내보낸 매체가 '여성을 도구로 생각하고, 사람을 나이로 차별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끝없이 동안,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그걸 알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몇 살로 보이느냐?'고 묻는 여자 출연자들이 떼로 나오는데, 그 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종류의 힘이고, 짝짓기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힘의 우열은 확실히 젊고 어린 여성에게 있다. 다루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위태롭고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기는 해도, 그게 힘이 아닐 수는 없다. 

그래서, 여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언니'라는 호칭은 가끔 모멸이나 무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 언니,와 남자들도 있는 데서 부르는 언니,는 다르다는 걸 여자들은 안다.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은, 어쩌면 문명의 도구이고, 우리는 말을 해야만 한다. 말이 실질과 다르더라도, 그 말과 실질을 맞춰 보면서 상대를 탐색하고 그 말 가운데 서로를 옭아매면서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고 더 깊은 관계들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뭐, 신문사 데스크의 기자님과 내가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니지만, 좀 더 내밀한 영역까지 공개하고 있는 그런 연애프로그램 가운데, 둘의 대화를 어디까지 공론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까. 공공의 영역에서 할 수 없는 말이 너무 늘어나서, 이제 방송이 점점 내밀한 영역으로 파고 들어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SERI 연구에세이 47
송호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잃어버렸다. 

2006년에 출간된 책을 2025년에 읽었으니, 시의성이 떨어져서 공감이 안 되는 건가,하면서 읽었다. 그런 것만은 아닌 게 그 때 읽은 사람 중에도 별이 작은 사람들이 있네. 


내가 읽으려고 고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책이었는데, 언니는 이 저자가 너무 싫다고 했다, 여러 해를 묵혔다가 다 늦게 읽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한국인의 평등주의,였고, 언니가 싫어한 것은 저자의 선민의식,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도 나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언니가 왜 싫어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펀 게시판 같은 데서 '이렇게 힘들게 대학에 왔는데, 학벌주의가 더 공고해졌으면 좋겠어요'의 잘 포장된 다른 말처럼도 보이는 책이다. 교양없는 부자와 교양있는 가난뱅이가 같이 올라간 도마 같다. 

아예 다른 종류의 문화를 향유하면서 계급을 공고히 구분한다는 서양 중산층의 분별 기준을 가소로워하는 나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바라는 게 뭘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부유층의 어떤 행태를 덜 좀 깠으면 좋겠는 걸까. 지나치게 돈자랑하는 꼴을 못 보는 대중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인은 이러저러하다,는 어떤 특성에 대한 책들이 말미에 그런 점을 고쳐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좀 싫어하는데 좀 그런 책이다. 우리가 디뎌야 할 한 두 세 계단 쯤이 앞에 더 있는데, 평등주의 때문에 못 갈 거라는 말이 우스웠다. 평등주의 때문에 더 살만해진 어떤 걸 모르는가, 싶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있고, 어느 정도 공평하게 이뤄지는 교육이 있다.   

총기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미국에서 살고 싶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게 꽤 좋아서 그런 것도 같다. 샘이 많아서, 휩쓸린다면 끝간 데 없이 괴로울 나라지만,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단점이라고만 하지도 못한다. 어떤 세상이라도 자기 중심은 자기가 잡아야지. 

지금의 나에게,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의 사회나 국가 형태로 '선진국'이 있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딸아이의 책 짐에서 찾아 읽는다. 

길지도 않은데, 그렇게 많은 말들을 들으면서 쉽게 읽지는 않게 되는 바로 그 책이다. 

변주된 이야기들을 이미 알고, 소개해주는 말들도 여러 번 듣는다. 

그래도 원작을 읽는 건 아마 처음인 거 같다. 

악당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심한 오셀로를 비웃고, 내가 에밀리아, 일 수 있을까 질문한다. 

해설까지 읽고, 다시 한 번 '절대적'인 것들에 가지는 믿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아고   천성요? 그까짓 거! 우리가 이런 저런 인간이 되는 건 다 우리한테 달렸어요. 우리 몸은 정원이고 우리 의지는 정원사와 같은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쐐기풀을 심거나 상추씨를 뿌리거나, 히솝풀은 꽂아놓고 사향초는 뽑아버리며, 한 가지 약초로 정원을 채우거나 여러 가지를 마구 심어놓거나, 또는 태만을 부려서 불모로 만들거나 부지런히 비료를 주거나 간에 글쎄, 그렇게 할 힘과 바로잡을 권한은 우리의 의지에 있다 이겁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저울에서 한쪽의 이성이 다른 쪽의 욕정과 균형을 맞춰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저급한 본능 때문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하게 될 거란 말씀이죠. 하지만 우리에겐 이성이란 게 있어서 발광하는 충동, 색욕의 자극, 무절제한 욕망 따위를 식혀주는 거라고요. 그런데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도 그 따위 것들에 붙어있는 한 줄기 또는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p54-55


에밀리아   밝혀질 거예요. 조용하라고요? 안 돼요. 난 공기처럼 자유롭게 말을 할 거예요. 하늘과 인간과 악마들 모두가, 모두가 나에게 창피를 주더라도 말을 할 거예요.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으면서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언니와 여동생과 남편과 명절에 모여서 회사에 싫은 사람 흉을 볼 때 그러지 말라,고 그러면 안 된다던 아빠, 데모하고 뉴스에 목청을 높이는 나에게 정치란 네모난 그릇에 둥근 국자로 물을 푸는 것 같은 거라던 아빠 생각이 났다. 언니랑 싸우고, '요즘 사람들은 돈만 주면 뭐든 시키려고 한다'며 화를 내던 아빠, 여동생이 배가 불러 결혼식을 한다고 동네 창피하다던 아빠 생각이 났다. 태어난 동네에서 초등학교 동창인 엄마와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아빠 생각이 났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세대차이가 나고, 가끔 어떻게 설명하지, 싶은 순간들에 아빠와 싸우던 내가 겹친다. 이제 나도 아빠처럼 이해받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만하게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래, 나도 안다,고 건성으로 흘려들을 말이나 하고 있다. 

  

이야기 속의 화자는 열 두 살에 이미 죽은 아이인데, 아이가 묘사하는 할아버지가 아빠 같았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외부적으로 부여하지 않았어도 권위를 가진, 작은 촌 동네의 글을 아는 사람이다. 거대한 국가의 권위가 작은 마을까지 미치지 못할 때에 사람 사이의 문제에 대해 청하여 듣는 사람, 선생들이 자리를 비운 학교에서 글자를 가르치는 사람. 그러고도 자신의 아들들 일로 머리를 조아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는 그런 할아버지가 결국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것으로 닫는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걸 과연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무섭다. 


자오더취안에게는 자오씨우친 같은 담력과 기개가 없었다. 원래 사내들은 여자들 같은 담력과 기개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면서도 누리끼리했고, 위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모양새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인 같았다. -28%(p372~373)


"딩 선생님, 선생님께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무가 다 베어져버리면 마을이 마을 같지 않을 거예요. 저는 관을 만들지 않아도 좋습니다. 사실 저는 죽기 전에 집사람에게 붉은 비단 저고리를 주고 싶었어요. 이 일은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에게 약속한 일이거든요. 사람이 죽고 나면 관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을 나무가 전부 베어져버리는데 말입니다." - 56%(p 738-739)


그녀는 눈빛으로 삼촌을 압박했다. 삼촌이 목을 들이밀기만 하면 자신도 곧장 밧줄 안으로 목을 들이밀 작정이었다. 상황은 이미 죽음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죽음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 우리 삼촌은 얼굴에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아주 못된 웃음, 장난기 섞인 웃음이었다. 삼촌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루라도 더 살 수 있으면 살아야지. 정 가고 싶으면 링링이 먼저 가. 나는 더 살아야겠어." -70%(p924-925)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쓸 만큼만 있으면 되지 돈이 이렇게 많아서 어디에 다 쓸꼬?"

아버지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열병이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89%(p118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4-12-07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신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공연을 준비한 마샹린과 아내에게 선물할 붉은 비단 저고리를 훔친 자오더취안이 아련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책이 왜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풍자와 은유로 읽힐 부분도 일부 존재하지만 그 정도도 허용 못하는 사회라니...

별족 2024-12-08 09:5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공산주의,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eBook] 평등은 없다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속지 처음이 '(아마도) 이 책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조안에게'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도덕철학자가 쓴 글이 굉장히 사적으로 읽혔다. 서문과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경제적 평등,과 평등과 존중이라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이다. 두 장 중에 첫번째 장이 사적으로 읽혔다. 경제적인 수준에 만족도가 다른 커플에서 벌어질 법한 어떤 논쟁의 끝에 쓰여진 장 같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를 경영하자는 제안에 '당신이 나에게 오는 해를 가리지 않는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고 대답하는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하는 말처럼 보였다. 소득이 다른 것, 부유하고 부유하지 않은 것은 옳고 그른 것과 하등 관계가 없다. 부유한 사람이 더 훌륭한 것도 아니고, 덜 소유했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편견이 아니냐고, 경제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당신도 극빈이 해소되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고, 경제적인 평등은 도덕적 이상일 수도 없다, 고 말한다. 분노하지 않는, 불평하지 않는 개인에 대한 어떤 말들에 항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경제적 평등에 대한 주장이 도덕적으로 옳은 주장이 아니라고 말하는 1장과 달리 2장은 경제적 평등을 앞세운 사람들의 주장이 때때로 다른 감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말처럼 보인다. '내가 누구네 집 딸이었어도 대접이 이랬겠어?'라는 불만의 표현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게 아니냐고 말한다.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는 어떤 과격한 발언들이 과연 도움이 되는 말인가 싶었던 짧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갑질에 대한 분노가 존중을 고양하기 보다, 분노를 고양하는 상황을 볼 때마다 가지는 의문에 대한 말들이다. 열개를 다섯사람에게 두 개씩 나눠주는 것이 좋은가,라는 단순한 질문이 현실에서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이야기에 더하여, 과연 경제적 평등과 존중의 평등을 엮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인지 질문하게 한다. 


경제적 평등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절한 화폐량을 판단하는 문제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는 문제를 분리하게 된다. 그 결과 핵심과는 거리가 있는 다소 부차적인 문제, 즉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위치와 비교할 때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어떠한가 하는 문제를 중요한 도덕적 관심사라도 되는 양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여기게 된다. 이렇듯 평등의 원칙은 우리 시대의 도덕적 혼란과 피상성에 기여하고 있다. -24p


경제적 평등주의의 근본적 오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가진 것으로부터 얼마나 큰 효용을 얻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적게 가졌는지 아닌지의 여부만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이런 오류는 소득이 적은 사람이 중요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부유한 사람에 비해 많다는 그릇된 가정에 일부 기인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소득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지는 도덕적 중요성에서는 완전히 부차적인 문제이다. - p53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작은 만족을 제공하는 자원에 만족하는 것이 무책임하거나 게으르거나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현재 가진 자원에 만족하겠다는 그의 결정 - 다시 말해, 자신이 현재 이만큼의 자원을 가졌다는 사실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결정 - 은 자기 삶의 현재 상태와 질에 대한 매우 지적이고 통찰력 있는 평가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 p66


평등주의는 종류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중요한 도덕적 이상으로 간주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단연코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불평등을 수긍하거나 거기에 무관심하거나 불평등을 제거 혹은 개선하려는 노력들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나는 그러한 많은 노력들을 지지한다. 내가 그러한 노력들을 지지하는 것은 평등이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기 때문에 평등주의적 목표들도 본질적으로 가치 있다고 확신해서가 아니라, 실용성에 기초한 경험적 믿음으로 볼 때 대개의 경우 더 많은 평등이 서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추구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평등 자체에는 내재적 혹은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가 없다고 확신한다. - p71


공정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평등주의적 분배를 정당화할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사람들을 다르게 대우할 특별한 이유를 제공하는 사항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경우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게 만드는 것은 평등의 선험적인 혹은 선제적인 도덕적 중요성이 아니라, 존중과 공정성의 도덕적 중요성이다. 

벌린이 제시한 것과 같은 사례들에서 평등의 요구와 존중의 요구가 일치하는 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다. (중략) 그러나 이 경우에 요구되는 평등은 결코 평등주의 자체가 가진 도덕적 권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평등주의는 파생된 것이다. 평등주의는 존중과 공정성이라는 더 기본적인 요구들에 기초한다. 근본적으로 볼 때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자격이 주어지도록 명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진 인간성에 대응하는 것의 도덕적 중요성이지 그 자체로 강력한 목적이 되는 평등의 도덕적 중요성이 아니다. -p86~ 88


합리적 태도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성이 그 자체로 비도덕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믿음을 선택하거나 어떤 행동방침을 따르는 것이 합리성의 요건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도덕적 명령에 어긋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존중에서 벗어난 대우를 정당하게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합리성에 어긋난다는 사실 외에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도덕적 중요성을 가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