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순례 -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인간 붓다의 위대한 발자취
자현 스님 지음, 하지권 사진 / 불광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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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의 '최고의 붓다 이야기책'이라는 서평(https://blog.aladin.co.kr/zerolife/11365201)을 보고 골랐다. 불교에 대한 책이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의상대사-원효대사!!!- 해골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전설의 고향의 스님들과 어렸을 때 아빠가 독송하던 금강경이 옛날 노래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고, 소풍으로 갔던 절집과 이런저런 여행지의 방문들이 있었다. 궁금해서 읽은 책도 있고, 사놓고 읽지 못하는 책도 있다. 내 생각의 바탕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던 거 같다. 호감과 호기심 가운데, 상상하는 불교가 내게도 있기는 하다.   

이 책은 불교를 부처님의 생애 중심으로 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 당시 인도에 대한 이야기로 지금의 인도 그 장소의 사진들과 함께 들려준다. 이야기만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에는 문화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풍토나 기후에 대한 설명도 있고, 남아있는 흔적들의 사진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인도가 동아시아보다 능력주의나 개인주의 문화였다는 이야기에 놀라고, 인도의 명상적 풍토가 여름의 더운 한낮 때문이라는 설명도 듣는다. 수행자에서 스승이 되어 처음 제자를 받아들이는 사슴농장-아, 그렇다, 사바하 생각이 많이 났다-이나, 기원정사로 알려진 기수급고독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제다이가 제타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재미있다. 지금의 아이돌을 묘사하듯이 부처님을 묘사하는 스님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해지면서 달라지는 모습들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듣는다. 부처님의 제일 훌륭한 제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한 다른 해석이나, 자등명 법등명-나는 이걸 '진리의 꽃다발 법구경'(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85720)에서 부처님의 유언으로 알고 있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등불로 삼으라는 말로, 그런데, 스님은 이게 유언은 아니었다고 말하신다.(부처님의 유언은 '방일하지 마라'였다고 한다. 방일, 잘 안 쓰는 말이라서 찾아 봤는데,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놂'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도의 피난처에 대한 묘사를 하신다. 우기에 살던 땅이 잠길 때 대피처가 있듯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대피처로 삼으라,는 말이었다고-에 대한 말도 그 변화하는 은유에 대해 생각한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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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백승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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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MD의 통곡리스트(http://www.kyobobook.co.kr/eventRenewal/eventViewByPid.laf?eventPid=38372&classGb=KOR&orderClick=42d )를 보고, 교보에서 산 책이다. 회사의 단체구매 아이디가 있어서 샀는데, 이사한 주소도 전화번호도 옛날 거였고, 심지어 수신인 이름조차 회사이름이었어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 이미 다른 사람이 사는 집을 노크해서 받았다. 일주일도 더 지난 다음이었다. 붙박이 같은 나처럼 어디든 가려하지 않는 사람이, 어쩌다보니 상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어 쓴 글들이다. 재미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인 자신이 자신의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자처하여 택한 문맹의 삶이다. 중국어를 모르는 채로 간 상해에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나는 빌려사는 집의 물건들에 대하여, 혁명의 작은 집이 커다란 쇼핑몰로 둘러싸이고, 도살장이 신혼부부의 촬영지가 되는 도시에 남은 기억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들려준다. 상하이,라는 영어동사가 사기치다,라는 의미라는 걸, 자신의 경험과 함께 들려주기도 하고, 하루라도 먼저 도착해서 가족들을 안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 전화통화에 대해 들려준다. 

말을 하지 못하고 나를 둘러싼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바짝 긴장하고 나서야 하는 일이고, 어리숙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다. 바보같았는데, 숨기고 싶었을 텐데, 숨기지 않는 글들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참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행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행동들을 떠올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식은땀은 흘리기도 한다. 이제 나는 세상이 내게 준 상처보다는 나의 흠결을 더 부끄러워하는 남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흠결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구로 제멋대로 위안을 받는 남자.

자기의 흠결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나의 흠결을 받아주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위악을 떨 때는 몰랐던 고마움 또한 생겨난다.
‘defaut‘라는 단어를 ‘상처‘에서 ‘흠결‘로 읽어내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아직도 위악을 떨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흠결 많은 나를 어떻게 받아줬는지 떠올린다. 그 많은 흠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준 아내, 친구들, 동료들. 그래서 조금 더 웃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의 흠결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아니,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 흠결없는 영혼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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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시동 1~4 - 전4권 (완결)
조금산 글.그림 / 더오리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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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정말 재밌게 본 웹툰이 영화화된다고 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은 두고 둘이 보러 갔다. 나는 실망스러웠고, 남편도 실망스러웠던지 원작만화를 사야겠어, 라면서 샀더라. 남편이 커버를 벗겨 보고 내려놓으면 읽었다. 어, 영화가 딱히 못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가 나의 인상. 한 번 더 영화를 본 남편은 기대가 줄어서 두 번째는 괜찮았다고도 했지.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남편과 나의 눈은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했다. 

예전에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를 읽고 쓴 서평(https://blog.aladin.co.kr/hahayo/5509650)에 달렸던 '가령 사회에서 경쟁에 더 많이 노출되는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편리하게-안이하게-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좀 미워하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라는 댓글 생각이 났다. 그 때, 그런가, 싶었던 그 기억이 다시 난 거지. 세상이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불친절하지 않은데, 남편에게는 그렇게까지 불친절했던 걸까. 

무인도,라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 반의 학예발표회를 보면서도, 엄마랑 둘이서 무인도에 가고 싶다는 택일이 생각이 나는 것은 십대 남자애들이 세상에 느끼는 관계에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것일까,라고도 생각한다. 

시동을 웹툰으로 보면서 정말 좋아서 영화를 기대한 남편과 영화에도 만화에도 역시 시큰둥한 나 사이에 간극은 그것인가,라고도 생각한다. 

세상은 무섭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피와 살이 튀지만 사정이 있겠지, 라는 나의 태도는 물러서서 등 떠미는 사람인 건가. 함께 살지만, 얼마나 알 수 없는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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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유영일 옮김 / 양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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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라는 말처럼 오해하기 쉬운 말이 있을까.

욜로, 가운데, 저 말은 '인생, 뭐 있어, 지금 놀자'처럼도 들리고, 꾸준하고 한결같고 심심해 보이는 사람을 한심해하는 태도처럼도 보인다. 

어제의 내가 그랬는지, 미래의 내가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자아,라는 말, 신,이라는 말도 그런 오해들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한다.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에서 권력에 결탁하여, 여론을 좌지우지하려는 예수정(극 중 전혜진의 시어머니였다)이 그래도 자신의 회사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항의하는 전혜진에게 묘한 톤으로 '너는 아직 자아가 있니?'라고 묻는 장면이 남아 있다. 그 때의 내가 자아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서, 그 말을 계속 생각했다. 자아는 없어야 하는데, 저기 왜 자아가 있냐,고 조롱당하는 사람의 편에 나는 왜 심정적으로 서게 되는 될까. 내 안의 신성, 보편적인 도덕심은, 때로는 '자아'라고도 표현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아는 아니지만, 자아로 표현할 수 밖에 없고, 신은 아니지만 신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순간 뿐이라서 영성을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책은 초보적이라고 하고, 가끔은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처럼 포장도 했지만, 오해 가운데 그런 말은 아니다. 

깨달음으로 건너가는 말의 배가 오해를 가득 싣고 떠다닌다. 그 가운데 반짝이는 무언가를 오해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조금이나마, 삶이 살만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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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최은경 지음 / 오마이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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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1차를 접종해야 내년에 2차를 맞을 수 있는데, 결국 맞히지 못할 거 같다. 우편으로 접종안내가 왔을 때는 남편이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는 주사맞은 친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면서 맞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남편은 나라에서 어련히 알아서 필수접종해주겠냐며 아프다고 안 맞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다그쳤다. 평소에 예방접종을 군소리없이 맞는 딸이었어서, 나는 그럼 나중에 네 돈 내고 맞아라,라고 하고 말았다. 아빠에게 울면서 안 맞겠다는 딸에게 나는 설득할 말을 못 찾은 것도 물론 있다. 이걸 계기로 섹스에 대해 말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딸은 이게 여자들만 맞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도 말했으니, 나는 딸도 여기저기 주워들은 말들이 나만큼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살펴보면 이성애혐오도 있는 것 같은 십대 딸에게-십대의 나는 엄마를 뒤에서 안은 아빠를 보고 더럽다고 생각했었다!!!!-, 네가 섹스를 했을 때 옮으면 죽을 수도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게 어려운 거다. 얘가 아마도 '안 할 건데!'라고 말하면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이다. 살아봐, 말 같이 되나, 그러니까 맞아야 돼,라고 말하는 게 가능합니까? 나는 아이가 안 할 건데,로 백번 쯤 항의하고, 그 말에 아이가 갇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십대의 나를 돌이켜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말한 대로 딱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말한 것을 지키려고 일없이 애썼고, 내가 한 말들에 갇혀서 쩔쩔 맸고, 내가 이렇게 빨리 나이먹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설득할 말을 못 찾고, 맘대로 하라고, 이제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말았다. 남편도 결국은 내버려둔다. 돈 내고 맞으려면 아까울 텐데. 


아이들은 정말 모를까,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가르쳐야 할까, 나는 못 하겠다. -그런 그림책 캡쳐만 보고도 혐오스러워서 스크롤을 마구 내렸다- 똥을 누고, 오줌을 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걸 모르지 않는 것처럼, 직관적인 형태로부터-여자에게는 구멍이 있고, 남자에게는 막대기가 있으니-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여자들은 좀 더 오래 아닌 채로 남기도 하지만,-대학생 때 친구가 같이 자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고 지하철에서도 못 잤다고 했던가-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였던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쩔쩔 매던 개 두 마리를 여러 아이들과 함께 목격한 적이 있다.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소풍이라도 가는 길이었나, 거의 한 반이 같이 걷고 있었는데, 그걸 본 나는 못 본 척 했고, 짖궂은 남자애들은 아는 체를 하려고 했던가. 그래도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정확히 알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게, '흥분하면 남성의 성기가 딱딱하게 곧추 선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놀라기는 했다. 남자에 관심이 없었나? 섹스에 관심이 없었나? 이전의 나의 상태는 저런 물렁물렁하고 축 쳐진 게 어떻게?-남동생이 있다-였었다. 내가 남동생한테 섹스북,이라는 책을 사줬으니, 나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인 것은 틀림없는데, 왜 부모가 되어서는 이렇게 된 걸까. 성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러운 건, 너무 본능적인 일이라서 '말'이라는 문명의 도구에 담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한다. 다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건, 그저 존중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끄러워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가. 그 부끄러운 마음이 정말 없는가? 성을 몰라서 강간이나 폭행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닌가? 성교육을 통해 성행위를 통해 쾌락을 얻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가? 쾌락을? 가르쳐? 쾌락을 얻을 때 필요한 예절을 가르쳐???? 그저 나에게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밖에는 더 가르칠 말도 없는 내가, 성은 더 특별?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미 부모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성에 대해서 필요한 것은 이미 배운 게 아닐까? 책 속에 가득 찬 교정하려 드는 어떤 태도에 대한 반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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