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 틱낫한 스님의 생애와 가장 심오하고 본질적인 삶의 가르침
틱낫한 지음, 이현주 옮김 / 불광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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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왜 발명되었을까. 사람들은 왜 종교가 필요했을까. 

신이 있다고 생각해?라는 질문에 이렇게까지 믿는다면 있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믿음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존재로의 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 붓다가 되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나에게 적당하게 온다. 불교와 유교를 배경으로 가지는 동아시아의 믿음에 공감한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주제로 달려드는 책들을 보던 때가 있었다. 그럴 듯하게 현학적인 글들에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읽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는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면 그게 보일 것이다. - 8%(34p)


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른 누구와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내 가슴에 그냥 담아 두고 싶었다. - 13%(54p)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르는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그 때 우리 사이에 하모니가 이루어질 수 있다. - 16%(70p)


알아차림의 햇빛 안에서 하는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신성하다. 이 빛 안에서는 성 聖과 속 俗 사이에 경계가 없다. 설거지를 그렇게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나는 매 순간을 충실히 살고 그래서 행복하다. -19%(83p)


누구를 사랑할 때 당신은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가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참 사랑은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이해 없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따름이다. - 21%(89p)


젊은이라면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많은 청년 수도승들이 마르크시즘에 매료당하여 절 밖으로 나가서 그들의 운동에 가담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불의에 저항하는 행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는 행동이 마음챙김을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깨어서 알아차리지 않으면 행위가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할 따름이다. 우리는 마음 챙겨 행동하기 위해서는 명상과 행동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 21%(90p)


절로 돌아오면서 나는 울었다. 나중에 나는 스님들 가운데 한 분이 큰 쌀독 하나를 마당 구석에 몰래 묻어 두었다는 걸 알았다. - 23%(98p)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침묵이라 불리는 기적의 바다, 강력한 치유 능력이 있는 바다에 자기를 열어 놓는 순간이었다. - 26%(432p)


"친구들, 모든 것이 무상 無常 하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셨소. 언제고 전쟁은 끝나게 돼 있어요." 

문제는 그 무상함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현재 상황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동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 23%(126p)


일단 해야 할 일이 보이면 행동을 취해야 한다. 보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함께 간다. 그러지 않으면 본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 - 30%(129p)


위험은 자주 안에서 온다. 미리 막을 수 없는 돌발 사태가 벌어져도 침착하게 깨어 있으면 잠재된 위험이나 치명적인 사태를 조용히 가라앉힐 수 있다.  - 31%(133p)


"네가 평화를 원하는 즉시 너에게 평화가 있다"는 뜻이다. 몇 년 세월이 흐른 1976년 싱가포르에서 그 말을 실천에 옮길 기회가 있었다. - 32%(139p)


이런 일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우리는 일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영적으로 기운이 소진되었다. 그래서 앉기 명상과 걷기 명상을 끊임없이 실천했고 식사시간이면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말없이 밥을 먹었다. 이런 수련을 병행하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이 실패할 것임을 우리는 알았다. 숱한 사람들 목숨이 우리의 마음챙김에 달려 있었다. - 33%(143p)


곤경에 처하여 평화롭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를 끝내 모를 것이다. - 34%(145p)


마음챙김 수련은 한 척의 보트와 같다. 마음챙김 수련을 하는 것은 당신에게 보트를 주는 것이다. 수련을 계속하면, 보트에 타고 있으면, 당신은 고통의 강물에 가라앉거나 빠져 죽지 않을 것이다. 

그 퇴역군인은 이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결국 아이들 돕는 일에 자기 삶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들어감으로써 당신은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 다른 무엇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 45%(200p)


모든 것이 엉망일 때 당신이 닫아야 하는 여섯 문이 있다.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마음이다. 우리의 여섯 감각은 마음으로 통하는 문이다. 거센 바람이 들어와서 당신 방을 어지르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모두 닫아라. - 40%(211p)


잠시 명상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우리도 맑아진다. 그 맑음이 우리를 신선하게 해 주고 힘과 명징明澄함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 55%(239p)


그들에게는 부모 말고도 몸을 숨겨 줄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와 소수 자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발명품이다. 그 작은 가정에서 숨 쉴 곳이 없을 때가 있다. 부모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온 가족이 피해를 입는다. 집 안 공기가 무거워지고 어디 도망갈 곳이 없다. - 90%(432p)


밑줄을 치다가, 어디부터 칠 지 고민하게 만드는 쪽글들이다. 쪽글 하나하나가 밑줄 친 말의 상황들을 전한다. 베트남에서 태어나서 승려가 되고, 전쟁을 반대하면서 망명-엄밀히 말하자면 귀국할 수 없게 되었다-해서 살게 된 스님이 불교의 가르침을 전 세계인에게 전하는 글들이다. 프랑스와의 전쟁과 베트남전을 연달아 겪으면서 이념이 물결치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도 불교의 가르침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이야기들이다. 사람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병사가 겪는 어떤 침묵의 순간, 비행장에서 만난 군인과의 짧은 순간, 절망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 자신을 달래는 말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품고 있고, 모든 가르침은 그 시대에 맞도록 다시 전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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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개의 설계사
단요 지음 / 아작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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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운다. 

AI, 대형언어모델, 퍼지이론이니 소설과 소설 말미에 붙어있는 네 개의 에세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소설의 이야기가 뒤에 붙어있는 실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이야기들과 겹쳐서 불안이나 걱정은 조금 더 커진다. 

전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나는, 챗지피티에 질문 하나를 던질 때마다 500미리 물 한병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다. 대신 이렇게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소설을 쓴 소설가의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아는 척, 기술이란 참으로 무섭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통해 배우는 AI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도덕적 감각도 없이, 잘 꾸며진 맥락 가운데, 사람처럼 섞인다. 사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그럴 듯하게 맥락을 파악하지만, 무언가 비어버린 대화란 사람 사이에도 벌어지는 일이니, 많은 만남이 채팅과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어떤 세상에서 상대가 사람인지 아닌지 알 게 뭔가 싶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이 요구되는 건 가치관에 대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이 무언가를 대신 결정해주는 상황은... 아주 매력적이거든요.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결괏값은 무작위일지라도 경로 비용은 0으로 고정된 선택지라고 할 수 있겠죠." - 17%


다들 불합리한 균형 맞추기 게임에 중독된 상태로 태어난다. 밀어내는 사람에게 이끌리고, 너무 쉽게 풀리는 관계는 시시하고, 상대를 어떻게 해보려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즐겁게 내 갈비뼈를 빼내어 바치는 중이고.... - 25% 


게다가 설정값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피차일반이다. 가치관이 합의된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모두의 꿈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갖가지 허상 중 하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 30%


그래도 어쨌든, 면허가 박탈당하더라도 수많은 사람 앞에서 떠드는 값으로는 충분하다고 봐요. - 37%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슬픔이건 죄의식이건 다가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느끼지 않았다. 애당초 내가 그 뉴스를 본 건 가을에 접어들고서도 한참이 흐른 뒤였다. 정리된 의혹을 찾아 읽기는 편해도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는 늦은 시점이었다. - 56%


자신 바깥의 것들에 바쳐지는 맹목성이란 고결한 만큼 자기 본위다. 스스로의 몫이 아닌 것을 감히 자신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에, 그 오만한 착각 때문에 몰락마저 기쁘게 봉헌하는 것이다. - 58%


"현존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우선합니다."

박사는 그렇게만 답했다. 감정형 인공지능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주입하는 대원칙이었다. -64%


기호들의 관계로만 환원되는 이해도 여전히 이해입니다. - 76%


더 많이 학습했는데도 더 모르는 역설적인 상황을 빚어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여전히 가설이라는 점을 다시 언급해둡니다). -82%


유연성을 발휘하는 친구와 악질적인 선동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 87% 


결국 인식을 약간만 왜곡시킨 다음 자기 본위로 끌어 오기만 하면 윤리학의 도구들을 사용해 묘한 일들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됩니다. - 90%


그런 이유들은 곧잘 타인의 이유와 경합하므로, 인간이 맺는 상호관계란 '상대에게 자신의 이유들을 정당화하거나 상대의 정당화를 받아들이는 절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수용과 거부가 행위의 도덕적 성격을 결정하고요. - 91% 


헌신과 애정과 자아도취를 혼동하고 그것을 믿어버리는 태도는 몹시도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 94%


참, 소설의 이야기는 이북으로 67%에서 마친다. 뒤에 붙은 건 소설에 덧붙이는 말, 아마도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여러가지 생각했을 기술적 발달의 현재 상황인데, 읽어볼 만 하다. 


뇌, 인공 뇌, 뇌에 생긴 병, 같은 것에 나는 저항하는 마음이 있다. 이야기가 그럴 듯함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지 못한 건, 설계사의 성정이나 상황이었다. 아마도 사이코패쓰일 수 있는 약으로 다스리는 중인 설계사의 어떤 상황이 설계사를 가장 비중있는 화자, 내가 이입해야 하는 책의 화자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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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성부, 달 밝은 밤에 케이팩션
김이삭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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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어떻게 만들까, 상상하면서 읽었다. 

추리소설이나 SF의 효용은 대중에게 과학이나 합리의 태도를 고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감정에 대한 거라면, 추리소설은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고,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고양시킨다고.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이제 나는 그런 시기를 지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그런 걸 믿나, 합리라는 게 결국에는 가장 마지막 결정의 근거여야 한다고 믿는지 내 자신에게 물었다. 

추리소설이고 사건의 범인들을 추적하는 탐정의 시점으로 법과 제도 안에서 벌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면서도, 다시 드러나지 않는 범죄들을 어떻게 벌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은 불가피했던 게 아닌가 또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바꿀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지요. 저는 검험 산파이니 검시는 제 의무이자 권리입니다."-7%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윗사람의 업무까지 할 줄 아는 건 곤란한 일이다.- 13%


선택지가 많은 것은 괴로움이라,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제약많은 시대의 씩씩한 여성들 이야기에 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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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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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편책이고, 오래 꽂혀 있었다. 궁금하네,라고 생각했지만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이런 얘기 흔하잖아,라고 생각했다. 

미국인 사회학자가 텔아비브 공항의 폭탄테러에 가담한 일본인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본 내 공산주의?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숙청사건에 대해 쓴 책이다. 

젊은이의 결벽성, 이념의 경직성, 고립된 조직. 

일본에 공산주의를 이념적 지향으로 삼는 조직 두 개가 연합해서 탄압을 피해 산중에 비밀리에 모였다. 모여서 함께 하는 와중에 내부자를 숙청한다. 사소할 수도 있을 말이나 행동이 이념적 지향과 다르다고 폭력으로 깨우친다면서 직접 때리고, 결국 죽은 '동지'를 이념적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한 '패배사'로 규정한다. 그렇게 처음, '이탈자'를 죽이고, '동지'들을 숙청하고, 경찰 탄압에 맞서는 영웅적 서사 다음에 선 법정에서 동지의 살인자로 재판받는다. 

다 읽고 나서 남은 감상은 관찰자의 문화적 차이다. 내가 짧게 궁금하다고 생각하고도 오래도록 펴 보지도 않은 것에는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았던 게 있는데, 미국인인 저자는 더 오래 궁금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하고 책도 썼을 것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을 때 가졌던 서구인의 무정부적 이상향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는 것도 같다. 젊은이의 순수함이 어떻게 왜곡되었나,나 이데올로기는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이 저지른 일탈처럼 묘사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나 잘못이 없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같을 수도 있다고 믿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고양시키는 어떤 태도가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닫는 것은 얼마나 순식간인가 싶기도 하다. 종교보다는 정치가 고양되는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숙청 사건을, 정치보다 종교가 고양되는 서구인의 관찰기록으로 보는 것은 덜컹거린다. 종교적 숙청을 수도 없이 자행한 서구인의 눈에는 정치적 숙청이 생경하겠지만, 동아시아인인 나는 왜 저 관찰자는 자기는 아닌 척 말하는 걸까, 싶기까지 했다. 관찰자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옹호하는 심리도 느껴져서 뭐지, 싶기도 했다.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이러한 이론을 밀고 나가다 보면 결국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같은 행위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범인이 정신장애인이니 책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정신장애에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질 수도 없다. 나아가 이렇게 생각하면 사건의 원인을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찾을 책임에서 모든 사람이 해방되고 문제는 개인의 심리 상태라는 차원에 묻히고 만다. 따라서 미국인은 일본의 다른 집단까지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에 공적 책임을 지고 나서는 데 크게 놀랐다. 책임 의식에 관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미국인에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 p67


이것과 꼭 닮은 사례로 1930년대 에스파냐 내전의 국제 여단을 들 수 있다. 그들이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지역 분쟁에 다 같이 참여한 배경에는 더 큰 목적을 이루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들이 지원하는 투사들에게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동시에, 더 큰 이념젹 관련성 때문에 에스파냐로 향한 것이다. - p73


당을 떠난 사람들에게 공산당의 지도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론과 방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최후의 심판에서 해방되었음을 뜻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창조하도록 자유롭게 풀려나 이데올로기를 두고 마음껏 논쟁할 수 있었다. 다음 10년간 당파 분열이 계속 이어졌고 새로운 조직은 학생 운동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파벌, 즉 섹트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분열의 원인이 된 논쟁이 무엇이든 간에 새로운 섹트는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독자적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 알맹이는 그들의 선배와 동료들이 지닌 이데올로기와 거의 다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섹트마다 특징적인 스타일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대부분 일본공산당의 틀을 계승하여 수입을 얻고 조직을 유지하는 확고한 원천인 지방 학생 조직을 지배하고자 경쟁했다. -p 95


게다가 적군파 이론은 적군파에 속한 일본 청년 병사들을 그야말로 활동의 중심에 세워놓았다. 선택받은 일본 청년으로서 세계 혁명 전쟁에서 자신들이 전위라고 자각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요컨대 적군파 멤버들은 일본에만 머무를 필요가 없었고 훈련된 일본의 기동대와 독선적인 일본 대중을 상대로 하여 허무한 충돌을 거듭하며 좌절감에 빠질 필요도 없었다. - p100


적군파 초기 지도부는 적군파를 만들어 분트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에 이미 분트 내부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이 대학 4학년이거나 유급한 학생이었다. 한편 모리의 군대는 어린 학생이나 노동자가 섞여 있었던 다이보사쓰 고개 그룹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이보사쓰 고개 그룹만큼 소박하지는 않았지만 이론 투쟁에 아주 능숙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단 그들이 지하 군대에 들어간 동기는 대부분 모험을 꿈꿨다기보다는 순수하게 혁명에 의한 변혁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 p133


증언에 따르면 모리는 악당이라기보다 자기 기만에 능숙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오자키의 죽음을 합리화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지도에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했으리라고 모리는 자백과 비슷한 자기 비판 과정에서 이야기한다. 따라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해석을 쥐어짜내야 했고 실제로 그런 해석을 찾아냈다. 모리의 이론이 강력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은 바로 그 이론이 다른 멤버들도 공유하던 문제를 해결해주는 자기 기만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면에서 모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상태였다. 단 그에게는 사태를 즉시 정당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힘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분석을 밀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자기 기만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이데올로기가 진실되게 가리켜 보여주는 사회 상황을 간과하게 될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지성과 창조성을 경시하게 된다. -p200


야마다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리도 이 도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리는 정신과 육체의 고차원적인 결합에 의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선(禪) 사상에 기반을 둔 무사도 정신을 공산주의화 개념에 적용하여 야마다의 비판을 물리쳤다. 이런 생각은 전쟁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와 꼭 닮았다. 열정에 불탄 수많은 군인들은 이런 관념을 믿었기 때문에 적국이 군비 면에서 얼마나 우월하든 간에 일본군의 정신력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p206


나가타는 가와시마의 의견을 이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가타는 1969년에 가와시마에게 성폭행당했다. 당시 가와시마는 혁명좌파의 최고 지도자였고 나가타는 같은 조직 내 여성 운동 분야에서 지위가 중간 정도 되던 조직 운영자였다. 열성적인 활동가였던 그녀는 성폭력 때문에 운동에서 발을 빼기는 싫었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좌파 내부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혁명좌파의 방침은 여성은 여자이기 전에 먼저 혁명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폭력 문제, 남자의 성적 우위 문제는 혁명좌파의 관심 밖이었다. 게다가 가와시미는 최고 지도자였고 나가타는 하부 여성 멤버엤다. 나가타는 성폭력 문제를 제기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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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철학으로 저항하다 -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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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부모라서,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지 못 할 거 같다. 


저항,이라는 말이 멋지다고, 저항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나의 젊은 날들이 있는데, 지금 부모가 된 나는 나의 부모님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철학으로 저항하다,라는 책이 가지는 지향이 '저항'이라서,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세상을 자신의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철학은 필요하다. 세상을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믿는다면 투쟁에 적합한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고, 세상을 힘을 합해 함께 만드는 무엇으로 믿는다면, 또 그렇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나와 다를 바 없는 너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나의 질문이라서, 정치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선택의 순간 갈등한다. 

투쟁의 순간, 이익에 대한 말이 정직하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오직 이익 때문이라면, 나의 이 저항이 힘을 발휘할 공간은 생기지 않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나의 이익이지만, 나만의 이익은 아닌 이유여야, 이익이 걸리지 않은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조금이나마 귀라도 기울여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거다. 

명분이나, 사명감이, 어떻게 들릴 지 알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무언가를 같이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어부 이야기를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자의 숙명적 실패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일본 아이누의 연어낚시와 아이누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언어로 사로잡히는 사고의 저항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밥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인 나는, 일본인 특유의 약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불교나 유교적 태도는 아닌, 서구화된 태도 가운데, 저항이나 정체성에 대한 말들이라도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곧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면서 뚜렷한 의식으로 아내와 아들의 탈출을 본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상궤를 벗어난 고통일 것입니다. - 34%


그러니까 이 저항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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