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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이들 모두와 영화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다. 

보고 나온 차 안 에서, 

"어떻게 제 머리를 그렇게 피가 철철 나게 칠 수 있다니?"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왜 그랬다니?"

"학교가기 싫으니까."


"센과 치히로,도 생각나고, 하울도 생각나고 좋던데."


"어려웠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나는 이 영화에서 노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하려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상의 공간으로 달아나지 마, 살아.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거다. 


악의가 없이 선의로만 가득 찬 세상은 불가능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삶보다 선의만큼 악의도 있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들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노골적이라 싫었고, 별로였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하고 싶은 말은 그거지만, 나도 어떻게 말할 지 알 수 없다는 혼돈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어서 좋았다. 

살아가는 가운데 마주치는 모순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로 한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환상적인 모험 다음 순간, 언제나 돌아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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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수학
https://www.youtube.com/watch?v=Zh3Yz3PiXZw&t=46s


네가 믿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너와 적대한다. 
그렇지만 나의 믿음은 너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너의 믿음으로 너를 공격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믿음 자체는 오히려 공고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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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고 싶대서 보러 갔다. 

나는 양이 늑대랑 우정을 나누는 것도 싫어하고(https://blog.aladin.co.kr/hahayo/5025827), 주토피아도 싫어하는데(https://blog.aladin.co.kr/hahayo/8604003), 여기서는 물이 불이랑 사귄다. 좋을 리가 없다. 

사랑은 생존 다음에나 누리는 건데, 이야기를 만드는 한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너무 당연시하는 문제가 있다. 물이 불이랑 만나면 물이 증발하든, 불이 꺼지든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판에 사랑이라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답없는 존재들이다. 

코코에서도 드러나는 문화창작자의 우월감(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267949)가족을 떠나는 존재들의 묘사,는 역시 서구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더하여, 이민자 정체성,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아들의 절을 받지 않는 엠버의 할아버지같은 사람인 거다. 

파친코를 볼 때도, 엘리멘탈을 볼 때도, 서구인의 비대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 한국계임을 드러내어 스스로를 파는 이민 2-3세대에 대한 거리감이 생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2-3세대야, 뭐 미국사람이지 한국계라는 게 의미가 있어?라고 말하더라. 뭐, 나는 2-3세대가 가지는 묘한 심사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외로움이나 고립을 부풀려서 생각하기 마련인 십대시절을 지나고, 성인이 되어 부모가 떠나온 자신의 뿌리가 지금 자신에 속한 산업(문화지)에서 각광받고 있는 걸 보는 건 어떤 마음일까, 싶은 거다. 여기가 얼마나 고 레벨의 경쟁사회인지는 모르면서, 부모가 떠나온 세상의 어떤 걸 들어 자신을 팔려고 한다. 미국인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면서, 스스로를 한국계,라고 부르겠지, 싶다. 선택하지 않은 이주라서 피해의식이 드러나 보인다. 


아이들이 재밌다고 했으니, 뭐, 나는 이제 너무 어른인가, 생각하고. 

구름이 내리고 홀쭉해졌던 비행선이 다시 구름을 태우고 빵빵해지는 게 좋았다고 해서, 뭐 그럼 됐다, 싶다. 


나는, 디즈니와 결합한 픽사가 유머감각을 잃었다고, 지나친 은유가운데, 대책없는 이야기 가운데, 겨울왕국에서 멋지게 비튼 어떤 클리쉐들이 다시 등장한다. 사랑이 전부인 양 키스로 마치고, 죽음 뒤에 다시 살아난다. 뒤에 꼬맹이들은 울었다는데, 다시 살아나다니. 

음, 조만간 디즈니는 양치기 소년처럼 아무도 울리지 못하는 이야기나 만들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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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범죄도시3라. 

가까운 영화관은 거의 매진이라, 먼 데까지 갔다. 아이들까지 태우고, 그런 운전은 처음이다. 

서둘러 출발해서 이르게 도착한 영화관에서 아이들에게 큰 팝콘은 하나, 콜라는 각각 하나씩 들려서 들어갔다. 영화는 15세 관람가다. 

군데 군데 웃음 포인트에 웃고, 왜 모범택시에서 약쟁이 아이돌로 나왔던 배우는 또 약 파는 클럽 양아치로 나온 거냐고도 했다. 

클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마약사건, 마약과 관련된 살인사건이 배경이고, 광역수사대로 옮겨 간 마석도(마동석)은 여전히 큼직한 주먹으로 범죄자들을 때리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무게중심을 나눠 가진 악당은 생각보다 매력이 없고, 흠 잡기 좋아하는 어른인 나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따라 웃는다. 오랜만에 꽉 찬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의 웃음이 전염되어서도 웃는다. 

아들이 봐서 보는 드라마,로 모범택시,를 봤고, 지금 이로운 사기,를 보는 중이다. 

범죄도시3에서 법이나 절차를 귀찮아하면서 시원시원하게 나쁜 놈을 때려잡는 마석도를 보면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사람의 새삼스러운 직업을 보고 있자니, 상황이란 그런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무언가 근원적인 도덕심이 없다면 마석도와 주성철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라는 생각도 했다. 마석도와 주성철이 법을 무시한다는 면에서 다를 바 없는데도, 누가 내 편인지 분명한 이야기라 보면서 웃을 수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고 어른들이 말하면 싫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아이들 싸움에, 우리는 문명인이고 말로 해결할 걸 주먹으로 해결하려 하다니 야만적이라,고 하셨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에 반발하고 선생님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마음 깊이 두려워하면서 살았다. 

맞은 적이 없어서 맷집이 없어,라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맞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맞은 다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지도 못한다. 

독립투사라면 한 대 맞고 줄줄줄 불어버릴 지도 모르겠고, 옳고 그름이 몸의 고통 앞에서도 유효할지 상상할 수도 없다. 

법과 제도,라는 게 있으니, 심판과 응징을 법에 맡기라는 말이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답답한 건지도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생기고 이런 이야기들에 웃는다. 

무언가 문명이나 평화가 디폴트값인 것처럼 큰 소리내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가소로움이 이야기로 눈 앞에 있고, 사람들은 이야기들에 열광한다. 법이나 문명이나 평화는 무척이나 허약한 토대위에 있고, 그 토대는 힘이 있지만 그 편에 서기로 한 사람들의 힘 가운데 겨우 유지된다. 환혼의 장욱이 환혼한 진무를 불에 태울 때, 겨우 유지되는 평화란 걸 잊지 않는다. 

공동체가 어떤 마음을 굳건히 하지 않는다면, 마석도와 주성철의 차이는 종이 한 장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공동체의 굳건한 마음, 그 마음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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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4 딸래미가 유튜브의 밈을 보여주면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보러 갔다. 예약을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겨우 맨 앞에 네 자리를 앞 뒤로 앉아서 봤다. 

극장에는 아이를 따라 온 보호자 몇을 빼고는, 아이들끼리 온 중딩이나 고딩들이 가득했다. 

토요일, 같이 본 중1 남자애는 토요일 저녁에 친구가 보러가자고 했다면서 다시 일요일 표를 끊었다. 


나는 드라마 생각이 많이 났다. 

스즈메가 사는 집은, 스물다섯스물하나 희도의 집 같았고, 엄마의 유품인 유아의자는, 희도 아빠가 만들어주던 의자 생각이 났다. 스물다섯스물하나,를 볼 때는 일본 청춘물같은 색감이라고 했었지. 

문,이라는 설정이 도깨비의 설정을 보고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도 있으니, 영향을 주고 받을 만큼 가깝다고 느꼈다. 

다이진,은 좀 불쌍했고, 만화라고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저길 뛰어간다고? 싶게 뛰어다니는 스즈메는 나의 체력으로 상상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또, 우리나라 영화라면, 저런 - 바 장면이나, 담패피는 소타친구같은-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자애들의 대화를 묘사하는 게 남자,네 싶기도 하고. 



물음이 많이 생기는 나에 비해, 아이들은 설명할 말은 없어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보기에 큰 기둥 줄거리가 단순하고, 복잡한 부분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극장에 가득찬 십대,를 보면서,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공감이 없는 이 영화의 무엇을 아이들은 좋아하는가, 생각했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미래가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아이들이 중요한 사람이 되서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한다. 


그런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게 좋아,라는 소타의 말은 솟구치는 미미즈를 볼 수 있는 스즈메에게는 겸손으로 보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나에게는 그게 진실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 없다면, 아예 존재하는지도 모를 영웅,의 묘사다,라고 생각한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달리는 스즈메나 소타, 의 마음은 솟구치는 미미즈,를 보여주는 만화가 아니라면 알 수 없다. 모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일은 찾기도 힘들고, 알기도 힘들고, 하기도 힘들다. 세상은 분명하기 보다 흐릿하고, 그런 마음으로 했지만,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알 수가 없다. 


스즈메가 뛰는 동안 응원했지만, 나는 이미 그런 건 없음을 알고 있어서 열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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