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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제주도 사람이라 시청에 장애물이 있다. 

내가 지나온 시대들이라 시청에 장애물이 있다. 

아무 장애물이 없는 딸들은 즐겁게 시청하며, 내가 지나온 시대들을 그렇게 상상한다. 


1. 52년생 애순이는 어떤 시대를 살았을까. 

  드라마를 보다가 제일 먼저, 으잉?, 한 순간이다.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관식이랑 가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애순이 작은 아버지는 애순이에게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면 공장에서 납땜도 못 해'라면서 타박한다. 나는 어?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44년생인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신의 학력이 '선생은 너무 시시해서 안' 할 수 있는 거였다고 말했다. 75년생인 내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학교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기숙학교 전단지가 있었다. 열 두 세 살 먹은 여공들이 평화시장 닭장같은 공장에서 시다를 하던 시대가 1970년이다.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못 나왔다고 공장에 못 갈 시대가 절대 아니라는 거지. 52년생 애순이가 배경으로 비치는 그런 집에서 물질하는 어머니와 살면서 뭍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꾸는 건, 너무 허무맹랑한 꿈인 시대인 거다. 44년생인 아빠는 대학시험을 칠 때 할머니가 '똑 떨어지라'면서 소금을 뿌렸다고 했거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대단한, 돈, 자체가 없는 시대였다.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묘사가 하나도 없었던 그 '돈'에 대한 묘사가, 국민학생으로 보이는 금명이의 가방 속에서 월사금 고지서로 나올 때 기이하다고 느끼는 거지. 엄마 뿐인 애순이는 '대학'을 꿈꾸는데, 금명이의 아빠인 관식이는 '선생님께 월사금은 다음 주까지 드린다고 해'라고 말한다. '돈'이 없는 시대,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거였는지, 지금 세대는 모를 테고, 아마도 그래서, 저렇게 묘사하는 거지, 싶다. 초등학교 반장 에피소드도 너무 현대인의 관점이라 확인을 했다. 75년생 내 친구는 그 동네에서 처음 반장이 된 여자였다고 했다. 국민학생이던 나는 아예 반에서 따로 뽑았다. 반장은 남자만 하고, 여자는 부반장부터. 후보로 올라갔다. 표가 많았는데도 아예 물러나라고 따로 불러서 말을 한다고? 그걸 억울하다고 집에 가서 운다고? 그렇게 울면 엄마가 가서 항의해 준다고? 역시 너무 현대적인 관점이라 이해가 안 된다. 상상으로 잘 꾸며낸 과거네, 싶어서 이입하기보다 물러나서 보게 되었다. 


2. 90년대 제주도 아파트에는 누가 살았을까.

  금명이가 대학을 가고, 유학을 보내려고, 애순이는 엄마가 살던 집을 팔고 시내 작은 아파트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묘사는 낡은 아파트로 집을 줄여서 가면서, 딸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묘사하지만, 나는 90년대? 제주도? 아파트? 의심하는 마음이 되서 남편에게 묻는다. 90년대 제주도에 낡은 아파트가 있어? 그 때? 제주도에 아파트는 부자들만 사는 데였지. 별로 없었어. 

속았네, 금명이가 속았어. 엄마들은 딸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과장하여, 정신적으로 지배하려고 하니까, 빚진 마음을 심어주려고 묘사한 어떤 거에 속은 거네. 

이런 식으로 어긋나는 묘사들에서, 어른들 말을 걸러 듣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남동생은, 대학에서 학자금대출 신청이 까였다고,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한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했었다. 나는 가난한 부모가 자신의 전부를 내어 우리를 키웠다고, 엄마가 말한 대로 상상했지만, 아빠는 '그래도 우리 살 궁리도 해야지'라고 말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말하는 건 걸러 들었어야 하는 거다. 정말 드라마의 묘사는 애순이가 금명이한테 다 퍼주고 도심의 아파트 작은 집으로 줄여서 들어가는 거였지만, 실상은 엄마가 좀 더 도심으로 편리한 삶의 방식으로 이전했을 수도 있는 거고, 오히려 더 부자가 된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부모가 그렇게 자기 삶을 챙기는 게 자식들한테도 좋은 거지. 그런데, 드라마는 오해하고 과장하고 애닲아 한다. 


3. 모래시계 

   어! 어? 제주도에서 모래시계 했어? 내가 모래시계를 기억하지. 딱 서울방송에서만 했는데, 신문이며 뉴스며 대서특필되는 인기였으니까. 그건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남편에게 물었더니 방학을 보내고 났더니, 서울서 보고 온 놈들이 너도 나도 그 얘기를 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했지. 제주도에서는 모래시계,를 볼 수 없었습니다, 지. 


4. 독립하지 못하는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4막을 볼 때, 남편은 "정말 못 봐 주겠네"라고 했다. 이제 내 나이와 비슷해진 애순이와 관식이가 나보다 열살은 이르게 나았으니, 열 살은 더 먹은 큰 딸과 작은 아들을 끼고 있는 묘사가 불편했다. 서로 독립하지 못하게 옭아매는 부모자식 관계는 힘들었다. '둘째는 없어'라는 양금명과 박충섭의 묘사는 아쉽고, 과장적으로 괴로운 출산의 묘사나, 지나치게 가까운 부모자식 관계를 보고 있자니 괴로웠다. 일년에 열번도 못 본다,며 아쉬워하는 애순이를 보는데, 늘 힘드니 오지 말라,던 아빠 생각이 났다. 늘 길 위에 아이들을 조마조마해하던 아빠 생각이 난 거지. 나도 조금은 그런데, 어떻게 애순이는 자주 오라고 하는 거지 싶었다. 자주 보고 싶어도, 꾹 참는 부모 마음을 모르니까, 그러는 건가. 정말 그런 부모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모르는 건가. 상상하는 미움, 상상하는 관계, 어른이 되지 못하는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들,을 보는 건 괴롭다. 자식이 나에게 '어디 평생 나 끼고 살아 봐'라고 하면 공포물인데. 드라마는 그걸 모르는 거 같다. 

부모가 되어 강인해지는 마음, 어른이 되는 마음, 에 대한 묘사가 없다. 저런 엄마도 있겠지, 싶지만, 저런 엄마를 좋아하기는 정말 어려운데, 싶은 엄마가 애순이였다. 엄마인 애순이의 강함이나 단단함은 없다. "이걸 열여덟에 어떻게 했대?"라는 양금명에게 "열여덟에 나으면 더 쉽단다"라고 토를 다는 나는 '지나치게 서로를 애닯아 하는 엄마와 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들을 이르게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 아들은 아직 더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신만만함을 꺾기 위해 많이 애쓰면서 충돌하게 되는데 말이지. 


젊은이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것은 양금명 덕분이어야 하고, 성실한 부모님 세대의 삶은 끝까지 팍팍했어야 하는 거였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성실한 남편과 살면서, 정말 티비 속 묘사처럼 팍팍했다면, 그건 애순이가 정말 잘못한 게 맞는데 말이지. 부모는 자기 몫을 항상 챙기고 자식을 보살폈어야 하고, 자식은 부모가 자신의 전부를 내어줬다고 마음의 빚을 만드는 그 모든 말들을 적당히 걸러 듣고는,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만 부모에게 되갚으면 되는 건데 말이지. 양금명이 오애순한테 대거리할 때는 참, 요즘 문제적 커뮤니티의 장면들을 눈 앞에 펼쳐놓은 듯 딱 밉던데.   


2025년을 사는 여성,이 부모세대의 말들로부터 상상하는 윗 세대의 묘사,가 화면 속에서 펼쳐진다. 첫 화를 봤을 때, 아, 이렇게 허술해서 공중파에서 못 하는 거네,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고 초6 딸이 열심히 보고 있어서 같이 봤다. 이제 드라마를 만들면 보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만은 아니니까 '타겟이 세계인이라서, 현대의 젊은이라서, 저렇게 만들었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너무 가짜같은 이야기네,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김수현(드라마 작가, 사랑이 뭐길래, 인생은 아름다워, 내 남자의 여자, 사랑과 야망, 등등등을 썼습니다), 드라마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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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3-29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말씀처럼 요즘은 지난 세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선지 60~70대들에게 물어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전혀 알아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한마디도 작가들의 직무유기죠.
실제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갈 나이면 대체로 66~67년도 인데 이 시기면 서울에도 중산층을 제외하면 여성들이 고등학교를 가는 일이 드문 시기라서 제주라면 여고진학이 매우 드물었습니다.이 당시는 시골에서는 가난한 집의 여성일 경우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는 이들이 많던 시대였죠.그만큼 그 당시 고등학교는 말 그대로 고등 학력자였다고 할 수 있는데 고등학교 못가면 공장이나 가라니 참 고증이 안된 이야기죠.
제주도에 살지 않았기에 90년대 제주도의 아파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서울의 경우만 봐도 아파트라는 것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강북지역에 일부 있었던 주거 형태이고 강남 개발이 되며서 8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보급된 주거문화 였습니다.하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이른바 강남에 많이 포진되었고 기존의 강북 지역은 여전히 단독주택이 대다수 였죠.이런점에서 본다면 서울보다 늦은 지역인 제주도에 아파트라는 것은 남편말처럼 부자들만 가는 주거형태였을 겁니다.
지금이야 각 지역마다 민방이 생겨서 SBS를 볼 수 있지만(SBS+지역뉴스및 방송),SBS가 처음 생긴 90년대는 서울방송이란 말 처럼 서울과 인근 경기지역에서만 시청이 가능했기에 모래시계를 제주도에서 볼 수는 없었겠지요.만일 VTR로 녹화해서 봤다고 하면 그건 말이 되는 이야기죠.
조선시대도 아니고 해방직후 이야기도 아닌 70년대 이후 이야기인데 이처럼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작가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드라마의 경우 시청율만 따지고 또 누가 이 새대 고증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별족 2025-03-30 07:01   좋아요 0 | URL
저는 세계인을 상대로 한 기획물이라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젊은 시청자를 몰아서 이슈가 되면 되니까 짧은 릴스로 풀 만한 장면을 넣고, 인지도 있는 젊은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고요. 여러 고증 실패는 드라마판이 너무 젊어져서 정말 모르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나의 엄마에 대해 쓰면서 우리 문화의 여자들, 특히 어머니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강한 존재'라고 썼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2575630 )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나의 클릭질에서 다 드러나니까, 유튜브는 쇼츠로 저 한국엄마 콘텐츠를 보여주는 거다. 

유튜브 쇼츠로 '한국엄마'라는 게 떳다. 한국인 엄마와 흑인 물리학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 스탠딩 코미디언 마이클 요의 콘텐츠다. 


흑인,을 흑인이라고 부르는 게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는 것이 의아한 나의 태도가 저 엄마에게 모두 드러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bXyL3hqefI



https://www.youtube.com/watch?v=1CiUaP8r7Xw


"그래? 거짓말 하랴?"-"뭐? 내가 없는 말 했어?"라고 번역되어 있다-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게 나는 무례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도구가 갈등을 다루기 위해 개발되어 있는데, 그 말을 왜 자꾸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말라고 하는지 의심한다. 그래도 개중 가장 평화로운 도구, 말로 갈등을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말해야만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자신의 느낌 그대로, 듣는 나는 그 사람의 말의 의도를 넘겨짚지 말고, 들은 데서 출발해서 다시 또 말해야 한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면 나쁜 대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얼굴을 보고 표정을 보고 하던 말이, 글이 되고, 더 넓게 확장되면서 둘 사이 문제 없던 대화가 문제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문제가 되는 말들 가운데, 우리는 대화하기 보다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으레 상대를 어떤 틀에 넣어 넘겨짚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서 오해를 마음 속에 쌓아두는 건 아닌가. 나와 같은 사람은 없는데, 그래서 조율하기 위해 말이 있는 건데, 숨기고 감추고 조심하느라, 아예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다니 너무 답답한 세상이다. 

그래, 세상 모두가 이런 나를 무식하고 무례하다고 해도 나는 저 한국엄마처럼 굴어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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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같이 보고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으니, 아이들이 재밌다고 했다. 


나는 심심하고, 별 재미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반응이 신기했다. 

요즘 좀 진지한 문화비평을 읽고 있나 싶은 중딩 아들은 '어려운 질문을 쉽게 보여주는 영화'라는 감상을 남기고, 초딩 딸은 '재밌었다'는 짧은 감상이었지만 재밌었던 거 같다. 

폭력이 난무하는 오락영화들을 주로 같이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 못한 나의 감상은 역시 범죄도시인가, 싶었는데 말이지. 이야기가 여러 갈래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단순한 이야기가 좋은데,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감상은 나중에 남편이랑 둘이서만 차에서 했다. 나는 개의 설계사,를 읽은 데다가, 지금 어떤 관계들은 물성이 없어서-전화통화로만 이루어진 관계들이 있다, ㅋ- 저런 이별을 상상하는 것, AI로 죽은 사람의 가상 시뮬을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AI가 스스로를 엄마로 상상하면서 폭주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려주지 않은 정보를 알은 채 하는 게 가능한가, 같은 생각을 했다. 플래너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남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 나는 그 서비스가 보여주는 어떤 형태가 진실이 아니라, 내가 제공한 정보로 만든 허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영화가 아닌 채 해도 그런 거니까 말이지. 남편은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에 불만이 있는 거 같았다. 원더랜드라는 가상공간에 자신의 삶이 있는 AI라는 설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거 같다. 

찾아 본 어떤 감상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게 되는 사람들,에 대한 거였다. 

그렇지,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 라고 새삼 자각했다. 

어려운 질문을 쉬운 그림으로 보여주는 영화였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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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이들 모두와 영화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다. 

보고 나온 차 안 에서, 

"어떻게 제 머리를 그렇게 피가 철철 나게 칠 수 있다니?"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왜 그랬다니?"

"학교가기 싫으니까."


"센과 치히로,도 생각나고, 하울도 생각나고 좋던데."


"어려웠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나는 이 영화에서 노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하려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상의 공간으로 달아나지 마, 살아.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거다. 


악의가 없이 선의로만 가득 찬 세상은 불가능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삶보다 선의만큼 악의도 있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들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노골적이라 싫었고, 별로였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하고 싶은 말은 그거지만, 나도 어떻게 말할 지 알 수 없다는 혼돈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어서 좋았다. 

살아가는 가운데 마주치는 모순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로 한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환상적인 모험 다음 순간, 언제나 돌아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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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수학
https://www.youtube.com/watch?v=Zh3Yz3PiXZw&t=46s


네가 믿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너와 적대한다. 
그렇지만 나의 믿음은 너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너의 믿음으로 너를 공격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믿음 자체는 오히려 공고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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